소설리스트

해남검귀-57화 (57/167)

57. 가자, 남해로....

자신을 중심으로 두 개의 검진이 중첩되어 역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를 유심히 바라보던 북리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상의 중첩인가? 팔괘의 확장인가?’

두 개의 검진이 사상을 중심으로 돌아 가는 듯한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개진!”

유검패의 기합성에 안쪽에 돌고 있는 열 명의 검수들의 검이 일제히 내뻗어졌다.

‘카라라라랑’

자신을 향해 물결쳐 오는 검의 파도를 단숨에 거둬낸 북리준의 검이 바깥원에서 불규칙적으로 뻗어 나오는 검에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검을 내질렀다.

‘차차차차차창 차창’

순간 거두어진 검들이 호시탐탐 북리준의 전신을 노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팔괘의 확장을 사상의 중첩으로 착각 하게 하려는 검진이군. 그럼 아주 간단하지!’

북리준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르자 바깥원을 구성한 검수들이 안으로 순식간에 들이치고 뒤로 빠졌던 안쪽 검수들이 들이친 검수들의 검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미친룡이 뭔가를 계산하고 지랄을 하겠냐? 말 그대로 광룡은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쳐 깨버리는 검이다.’

남해무극칠절 중 천괴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콰가가가가가가각‘

북리준에서 피어오른 광룡의 기세사 북리준의 전신을 저미러 다가드는 검들을 그대로 깨부수었다.

’콰직 콰콰카카직 콰지직‘

북리준의 검에 부딪친 동창 검수들의 검들이 그대로 부러져 나가자 당황한 검수들 사이에서 유검패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회진!”

반밖에 남지 않은 검들을 들고 급히 뒤로 물러나 자리를 잡으려는 찰나 ’시이이잉‘ 기이한 음이 장내를 가로지르며 뭔가가 검진을 구성하는 네 사람을 직격했다.

“크윽 큭 컥 크으윽”

북리준의 두 팔에서 뻗어 나온 기이한 물체에 직격당해 반토막난 검을 떨어 뜨리고 뒤이어 날아온 물체에 오른팔과 다리를 베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런...”

순식간에 진의 주 구성축이 무너져 내리자 검진이 흐트러지고 그 사이를 검집을 든 어사가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뻐억 뻑 빠아악 빡‘

둔탁한 격타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무너져 가는 군관들을 보며 유검패가 힘없이 검을 내려뜨렸다.

’후우우웅‘

어사의 검집이 자신의 눈 바로 한치 앞에 멈추가 떨어뜨린 고개를 힘겹게 든 유검패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는 동료들이 들어왔다.

“한번 더 해 볼텐가?”

몸 어디 한 곳 베인 상처 하나 없는 어사의 모습에 유검패가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졌습니다. 처분대로 하소서.”

북리준이 검을 수납하고는 뒤에 물러서 관전하고 있던 금의위 군관들을 바라 보았다.

“준비들 하거라!”

그 때 금의위 군관 중 중앙에 대기하고 있는 군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희도 패배를 자인합니다. 동창의 검진이 깨어진 바 저희가 어사님께 도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자신들 보다 한 수 위를 자랑하는 동창의 검진이 무참히 깨진 모습을 보고 금의위 군관은 스스로 패배를 자인했다.

“부상자를 돌보고 진영을 갖추어라!”

네 명 정도가 팔과 다리에 베인 상처가 있고 나머지는 검집에 두드려 맞은 정도여서 금방 사열 종대의 진영이 갖춰졌다.

“내기에서 본관이 이겼다. 검패! 내기의 조건이 무엇이었는가?”

“비무에서 다섯합을 견디는 군관이 나오거나 어사님의 몸이나 옷을 벨 수 있다면 저희들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했고 그 반대의 경우 불문곡직 어사님의 명에 따라야 합니다.”

“아직도 본관이 그대들의 지휘관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앞으로 나서라!”

모든 군관이 미동을 하지 않은 채 존경의 염을 담은 눈으로 북리준을 바라보았다.

“검패! 앞으로 동창과 금의위의 군관은 네 통솔하에 두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본관에 대한 도전은 이번만 용납해 줄 것이다.

해남 전장에서의 하극상은 즉결 처형이다. 명심하라!”

“존명!”

사십명의 군관이 진심을 담아 포권을 취한 채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부상자를 돌보고 보름 후 출정할 때까지 모든 제반 준비를 맞추도록!”

“존명!”

우렁찬 사십명 군관의 복명소리에 밖에서 차를 즐기고 있던 유공공과 곽대인이 웃음을 지었다.

“정리가 얼추 되었나 봅니다, 허허허!”

“말 돌리지 말고 내 놔라!”

“꼭 받으셔야겠습니까?”

“내 놔!”자신의 앞에 손을 쫘 펴는 유공공의 손에 금자 한냥이 올라갔다.

“끄응, 고작 반시진 만에 끝내다니....”

유공공과 얼마만에 동창과 금의위의 군관들을 꿇릴지 내기를 한 유공공과 곽대인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해남검단을 내놓아라.....”

남해검문의 문주이며 비정하게 자신의 권위에 도전했던 동생 목철상의 목을 베어 장대에 걸어 놓고 즐긴 목철군이 태사의에 앉아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청조에서 무슨 냄새를 맡은 건가?”

자신의 주군이자 남해검문의 문주인 목철군을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 보는 백색문사복에 학익선을 손에 쥔 마흔 초중반의 문사가 입을 열었다.

“앞뒤를 따져 살펴보니 그런 징후는 없어 보입니다.”

남해검문의 개파 이래 최강의 힘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현 검문의 군사인 단천수사 방백이 학익선을 흔들었다.

“동창과 금의위의 수장들이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마지막 남은 골칫거리인 왜구 문제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전시 행정의 일환이라고 보여 집니다.”

“군사의 말대로라면 오래 가지 못하겠구만.”

그 때 옆자리에서 차를 홀짝이던 목철우가 찻잔을 내려 놓았다.

“해남검단을 지휘할 군관도 정삼품의 무직경관인 호군참령이라 들었습니다. 오히려 이 자를 잘 구워 삶으면 지금 보다 형편이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요.”

자신의 동생이며 일찌감치 살기 위해 무릎을 꿇었던 목철우의 말에 목철군이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있으나 마나한 해남검단의 문제는 접어두고.... 금사도와 벽라도는 아직 버티고 있는건가?”

“시간문제이지요. 앞으로 육개월 안에 문주님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방군사! 철우와 함께 최대한 그 기한을 앞당기도록. 금사도와 벽라도를 일통하는 것은 우리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 하는 것이오. 내부에 적을 두고 싸우러 나갈 수 없지 않소?”

남해검문의 개파 조사 이래 대성하지 못했던 남해칠십이파검을 대성 직전 까지 연성 했고 그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의 무력을 천무맹과 사황련의 웬만한 문파에 버금가는 전력으로 키운 목철군 문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좁아터진 섬에서 아웅다웅은 그만 했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저 너른 대륙을 남해검문의 기치 아래 질타하고 싶소이다.”

“문주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 마사히로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알려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청조에서 군관이 내려오면 당분간 자숙하라 일러 둘까요?”

“아니, 반대로 더 날뛰라 일러라. 도저히 자신의 역량으로 감당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갈 때 까지 들이치라 전해라.”

****

자금성 정문인 오문 밖!

동창과 금의위의 군관 사십명과 하북팽가, 하후세가, 모용세가, 진주언가, 제갈세가의 왜구 토벌을 위한 파견 무사 칠십 둘과 섬전창,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 허풍도 등 총 백여명의 무인들이 각자 말의 고삐를 잡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거 흥분되는데?”

“저 놈, 바다는 한번도 구경 못해봤다고 했나?”

하후상이 처음 보는 바다에 대한 동경에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자 모용민이 핀잔을 주었다.

“처음에나 흥분되지 이틀만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그냥 많은 짠물이야.”

언철진의 말에 하후상이 바짝 머리를 들이밀었다.

“싱싱한 해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잖아? 난 해산물이 좋더라.”

“그 해산물이 너를 싫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냐?”

“어? 괜찮아! 나만 좋아하면 돼.”

제갈청하가 희희낙락하는 하후상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동 정렬!”

맨 앞에 선 유검패가 오문을 나서는 황태자와 유공공, 곽대인, 북리준을 보고 군호를 외쳤다.

“보기만 해도 늠름하군요.”

황태자가 삼엄한 군기를 온 몸에서 뿜어내는 무인들을 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황태자 전하! 대 청조의 골칫거리인 왜구를 완전히 소탕하러 출정하는 무인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옵니다.”

곽대인도 만족스런 표정으로 무인들을 둘러 보았다.

“참령어사의 명을 받들어 왜구들에게 대 청조 무관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오너라.”

유공공이 자신의 양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전하! 다녀 오겠사옵나이다.”

“참령어사! 왜구들이 다시는 대 청조의 땅에 발을 못 붙이도록 엄히 다스리고 오시오.”

“명을 받들겠사옵나이다.”

“하시라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띄워 주시게.”

곽대인의 말에 북리준이 포권을 취한 채 허리를 숙였다.

“유공공님, 곽대인님의 큰 도우심을 받들어 필히 왜구들을 우리의 땅에서 몰아내겠습니다.”

허풍도 곡굉이 희디흰 백마를 끌고 와 북리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부디 보중하시고 나중에 뵙겠습니다.”

북리준이 말에 올라타자 유검패의 구호에 따라 전원이 말에 올랐다.

“추울정!”

북리준의 내공이 실린 호령이 오문 전체를 쩌렁 울렸다.

선두에 선 북리준의 뒤를 따라 동창과 금의위, 무림세가, 낭인들이 저 먼 남해바다를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

“형님, 이야기 들으셨소?”

북리준이 실종된 후 급조된 청룡대의 대주가 된 왕일에게 부대주인 하승진이 툭 말을 뱉었다.

“앞뒤 없이 뭘?”

“우리 해남검단이 남해검문에서 분리되어 청조에서 내려온 군관이 직접 운용한다는 것 말이오.”

“난 또...!”

오전에 왜구들과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이고 정비차 나온 객잔 안에서 하승진이 주위를 살폈다.

“남해검문에서 검단에 내려오는 돈을 착복하고 왜구을 잡는 시늉만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조금 안 시끄러워지겠소?”

“미친놈! 잊을 만 하면 한번 조정에서 저런 짓거리를 한다. 물론 여지껏은 감사관을 파견하는 정도 였지만.... 그것도 남해검문에서 주는 돈 듬뿍 처먹고 매번 문제 없다고 돌아갔지.”

“아예 남해검문에서 분리해서 제대로 왜구를 손 보겠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다.”

“한 달! 어떤 놈이 내려오던지 그냥 애만 쓰다 다시 올라가는데 은자 한 냥 건다.”

“질 내기를 뭐하러 하오...”

그때 점소이가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구운오리와 화주 한병을 포장하여 승진에게 가져다 주었다.

“가자!”

왕일이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얼썩 철썩 처얼썩’

깊은 밤 검디 검은 파도가 저 아래 넘실 거리는 절벽에 올라선 승진이 구운오리와 화주잔을 바위위에 올려 놓았다.

“준이가 간지 벌써 팔년이구나.”

북리준이 마사히로의 추적에서 자신들을 떨어뜨려 놓고 홀로 움직이다 실종된지 팔년째 되는 날이 오늘 이었다.

“미안하다. 마사히로나 남해검문의 문주에게 우리가 복수를 해 줄 힘이 없구나....”

그 날 살아 돌아온 청룡대원이 왕일과 승진을 포함하여 넷이었다.

해남검단의 다섯 개 부대 중 하나가 통째로 먹혔는데도 형식적인 조사 몇 가지만 진행 한 후 내사 종결된 것에 왕일과 승진이 이를 꽉 깨물었었다.

“이제 편히 가거라. 친구야.....”

하승진이 화주병을 들어 바위에 뿌리고는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뒤에서 연신 술병을 입에 물고 승진의 행동을 보고 있던 왕일이 신형을 돌렸다.

“내려가자!”

하승진이 마저 남은 술을 바위 주위에 뿌리고는 바삐 내려가는 왕일의 뒤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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