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62화 (62/167)

62. 쇼군 마사히로

“천산?”

제갈청하가 의문스런 표정을 짓다 뭔가 생각난 듯 손바닥을 탁 쳤다.

“네가 신강에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갔던 곳에서 온 사람?”

“맞아! 우리 전력에 큰 도움이 되실 분들이야. 너도 같이 가자!”

북리준이 제갈청하와 함께 왕일이 손님을 모셔둔 접빈각으로 나아갔다.

“도아우야, 북리아우가 아니고!”

“알아 알아! 잔소리 좀 그만 해라.”

“네 놈이 실수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데...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아아악, 알았어 알겠다고!”

귀령검 독고우의 제자인 곤오가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웃지마 자식아! 네 놈 스승의 잔소리에 너도 참 고생이 많겠다.”

그 때 자신들이 앉아 노닥거리고 있는 방안에 반가운 얼굴이 들어섰다.

“우아, 부...도아우! 날세.”

묵혈도 막대광이 자리에서 일어서 냉큼 북리준을 껴안았다.

“반갑습니다. 막대협님, 독고대협님! 곤오님도 오셨군요.”

정말 반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북리준을 보며 독고우가 웃음을 지었다.

“여기 계신 여협은....?”

“아, 저희 해남검단의 부군사 이신 제갈청하여협이십니다. 무림 삼화 중 백봉이라 불리우십니다.”

“오, 반갑습니다!”

연신 포권을 한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대는 막대광을 보며 제갈청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반갑습니다. 제갈청하라고 합니다.”

“하하하, 우리 도아우와는 어떤 관계인지...”

순간 쑥 들어오는 예기치 못한 질문에 제갈청하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빠아악’

막대광의 뒤통수에 작렬하는 독고우의 손바닥에 막대광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하하, 이 놈이 좌우 분간이 조금 안 되는 놈이라서.... 제갈여협이 이해해 주시구려.”

거대한 묵빛도를 등에 멘 거한의 노인과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는 흑색 무복에 검을 찬 노인의 정체가 궁금해진 제갈청하가 북리준에게 시선을 던졌다.

“여기 계신 분은 예전에 묵혈도라 불리우신 대협이시고 이 분은 친우 되시는 분이시지. 그리고 이쪽은 독고대협의 제자이신 곤오란 분이셔.”

풍령곡의 전대 곡주인 독고우의 정체를 굳이 밝힐 필요를 못 느낀 북리준이 에둘러 설명을 했다.

“묵혈도.... 아, 숙부님께 들은 적이 있어. 잔지방을 단신으로 멸문시키신... 무림말학 제갈청하가 대협을 뵙습니다.”

“하하, 젊은 처자를 나를 안다니 기쁠 따름이군.”

“제 숙부님이신 철면신산께서 묵혈도 대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정도 무림의 대표적인 무인 이시라고.”

“자네의 숙부란 분을 보고 싶군. 이왕이면 술 한잔 하면서 말이지.”

“숙부님께 당장 말씀 드려야 겠네요. 저는 잠시...”

제갈청하가 제갈풍에게 묵혈도의 내방을 알리러 방을 나서자 독고우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사귀는 처자인가?”

“하하하, 아, 아닙니다.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입니다.”

“무림삼화 중 한 명을 곁에 두었으니 우리 교교가 힘들겠네....”

“네? 교교낭자가 왜....”

‘빠아아아악’ 다시 자신의 뒤통수 작렬하는 친우의 익숙한 손바닥에 막대광이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아, 왜?”

“입 좀 닥치고 있어라. 여기 술병 하나 없냐? 얘 입에 처박게....”

히죽 거리던 곤오가 건네주는 술병을 받아든 막대광이 군시렁 거렸다.

“여기 도문주와 교교의 편지가 있네.”

독고우가 건네는 편지를 받아 품 속에 넣자 막대광이 자신의 친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편지 말고 돈도 줘야지.”

“내가 안 떼 먹는다! 이건 북리아우의 거사에 보태라고 도문주가 보내주는 거라네.”

봉투에 든 전표를 헤아려 본 북리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자 만냥씩이나.... 그 쪽도 돈 들어 갈 일이 많을텐데...”

“장난해? 자네가 열어준 천산동부에 쌓여있는 금괴와 은괴를 까먹었나 보네.”

막대광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쏘아보는 독고우의 눈을 피해 얼른 술병을 입에 물었다.

“무관은 열었는지요?”

“무관을 열고 관원들이 얼추 찬 것을 보고 출발했네. 자세한 내용은 편지에 써 있을 거네.”

“곤오님이 오시면 객잔은?”

북리준을 바라 보며 싱글벙글 웃음 짓고 있는 곤오가 걱정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저 놈 친우가 요리사인데 그 놈을 대신 박아 놓고 왔네. 안 데리고 올려고 했는데 한번 고집을 피우면 막을 수가 없어서.... 그래도 이 곳에서 제대로 한 몫 할테니 박대 하지는 말게.”

“박대라니요? 정말 환영 합니다. 아직 식전 이시지요?”

“뱃가죽하고 등가죽이 사돈하자고 하네. 빨리 밥하고 술 좀 주게. 저 망할 새끼는 지가 조금 먹는다고 남도 조금 먹을 줄 아나 봐.”

북리준이 접빈각에 술상을 봐 달라 요청을 하고 잠시 후 조촐하지만 정갈한 술상이 차려진 후뒤이어 도착한 제갈풍과 청하가 합석을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평소에 흠모하던 묵혈도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갈풍이 감격어린 표정으로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아이, 이러면 내가 부끄럽지. 퇴물이 된 사람에게 너무 과한 예는 부담이라네.”

“막대협님의 정도무림행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에 자꾸 금칠을 하는 제갈풍이 부담스러워 연신 술잔을 채우며 제갈풍에게 술을 먹였다.

“이건 이 분들이 주시는 군자금이야. 네가 가지고 있어.”

제갈청하가 북리준이 건네준 봉투를 확인하고는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금자 만냥? 도대체 뭐 하는 분이시길래...”

“그냥 돈 많은 사람을 좀 아는 늙은이라네.”

독고우가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제가 형님으로 모셔도 되지요?”

“그럼! 나도 좋지. 신기제갈가에 동생이 하나 생기는데.”

술이 얼콰하게 취해 서로 어깨 동무를 하며 호형호제하는 제갈풍과 막대광을 보며 독고우가 혀를 찼다.

“저놈의 끝없는 친화력에 경의를 표한다.”

혼자 자작을 하며 음식을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곤오를 보며 독고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주면 되겠나?”

“마침 잘 오셨습니다. 내일부터 마을 순찰을 돌 때 세 분이 함께 해 주셨으면 합니다. 왜구들을 만나게 되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도 왜구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으니 염려 말게. 저 놈도 왜구라면 치를 떨더군.”

둘이 서로 잔을 주고 받으며 웃고 떠들던 막대광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엥, 부....도아우가 호군참령어사에 제수 되었다고? 그러면 엄청 높은 사람이잖아?”

막대광의 말에 독고우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설명 드리지요.”

“와, 우리 아우가 정삼품 관인이 되었네. 나중에 나 자금성 구경 좀 시켜 줘!”

“미친놈아, 관리라고 자금성을 내 집 드나들 듯 갈 수 있냐?”

티격태격 하며 훈훈한 분위기에 들어가는 술맛이 더욱더 깊어지는 밤이었다.

****

“진짜 검단주가 뛸까?”

“말만 하는 거지. 안 뛴다고 욕할거야?”

“미친새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시초에 전체 검단원들이 연무장에 정렬하는 동안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려왔다.

“전군 정렬!”

동창 군관 복장의 매섭게 생긴 젊은 무인의 우렁찬 목소리에 연무장에 싸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제군들! 오늘부터 새로 태어 난다는 각오로 검단 생활에 임해주기 바란다.”

단 한마디를 한 신임검단주가 지휘대를 내려오는 맨 앞에서 구보를 시작했다.

“정말 뛰네...”

“하루 이틀 하다 말겠지 뭐”

왕일과 승진이 북리준의 옆에 모래주머니를 양팔과 발목에 찬 채 자리를 잡았다.

말없이 승진이 내미는 모래주머니를 북리준이 웃으면서 받아 들었다.

“저, 정말 검단주가 저걸 차고 달린다고? 저 새끼 목 달아나는 거 아냐?”

"갔다 달라고 했겠지... 그런데, 너무 무리 하는 거 아냐?"

"오늘 하루 하다 말 모양이지."

뒤에 서서 보고 있던 기린대주 범량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양팔과 발목에 모래 주머니를 찬 신임검단주가 구보를 시작했다.

“뭐가 바뀌기는 바뀌나 본데....”

백호대주 봉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을 재게 놀리기 시작했다.

****

“신임검단주?”

남해검문에서 보내온 서신을 열어본 마사히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새끼는 아직도 내가 제 놈 밑인 줄 아는 모양이군.”

약 십년 전 본토에서 혈혈단신으로 쫓겨와 남해바다에 암약하는 왜구들을 규합하여 거대한 군단을 만들어낸 마사히로가 혀를 찼다.

“쇼군을 무시하는 남해검문주의 목을 딸까요?”

왜의 천황이 내려주는 ‘쇼군(장군)’ 이라는 칭호를 자기 마음대로 갔다 붙이고 스무명의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고케닌(무사)’이라는 칭호를 붙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일단 놔두거라. 아직 남해검문을 삼킬 만큼의 힘이 모자라다.”

본토에서 전쟁에 패해 도망 나온 무사들과 난민들을 모아 현재 삼천명이 넘는 신민과 매일 유입되는 난민을 다스리는 남해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마사히로가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금번에 넘어온 닌자가문의 힘을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에도막부에 의해 본토에서 축출된 ‘풍마류’의 일인자 후마 신이치를 받아들인 마사히로를 애제자인 카이토가 부추겼다.

“아니, 아직 신이치의 검은 속을 다 파악 못했다. 남해검문주 놈의 말대로 약탈의 양을 배로 늘려라. 당분간은 놈의 장단에 맞추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

“오랜만의 순찰이군.”

왕일과 승진이 북리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십명의 청룡대원들과 유검패를 포함한 동창의 군관 십여명이 광동지역 어촌을 돌기 시작했다.

해량촌이라는 약 오십호 정도 모여 사는 어촌 마을에 도착한 왕일이 촌장에게 북리준을 소개했다.

“촌장어른! 이 분이 신임 해남검단주님이고 앞으로 왜구들이 오면 이 분의 검에 다 죽어갈 거라고요. 그리고, 왜구가 들이 닥치면 이걸 공중으로 쏴요. 그러면 근처에 있는 검단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올테니까요, 아셨죠?”

가는 귀가 먹어가는 촌장에게 손짓 발짓을 해가면 신호탄 다섯 개를 건네고는 왕일이 한숨을 지었다.

“알아 먹었겠지 뭐!”

그 때 저 앞에서 신호탄 하나가 처절한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터져 나갔다.

“저기는 어디인가?”

“해우촌인데?”

하승진이 신호탄이 터져 오른 곳을 가늠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지?”

“이 쪽으로 그냥 계속 한식경 정도 직진하면 나와.”

하승진의 말에 북리준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검패! 휘하 군관들과 전속 전진.”

“충!”

“너희들은 최대한 빨리 따라 붙도록. 먼저 간다.”

북리준이 땅을 박차고 한 마리 비조가 되어 저 멀리 멀어지자 그 뒤를 동창의 고수들이 연이어 따라 날기 시작했다.

“고수들은 다르긴 다르네..... 어이, 우리도 발바닥에 땀나게 뛰자구.”

왕일의 말에 오십여명의 청룡대원들이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북리준을 뒤쫓아 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카악”

북리준의 눈 앞 마을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와 꿈에서라도 듣기 싫었던 왜구들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이 땅에서 네 놈들을 다 지워주마!”

북리준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고 마을 초입에서 살행과 약탈을 하며 왜구들을 향해 일월신검이 유려한 비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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