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운도 더럽게 없네
‘카가가각 크가각’
마을 입구에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들고 있던 왜도로 막아내던 두 왜구가 검과 함께 사선으로 썰려 나갔다.
‘푸화아아아아악’
두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마을로 들어선 북리준의 양팔이 기이한 호선을 그렸다.
“크허어억 커허허헉”
피를 뒤집어쓴 악귀 같은 눈빛의 사내를 향해 뛰어 가려던 왜구 둘이 뒤통수를 직격한 륜에 머리가 갈라졌다.
“저, 적이다....”
자신들의 동료들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머리가 쪼개진 모습을 본 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쇄애애애액 퍼어억’
왜구의 피를 듬뿍 먹은 일월신검이 자신을 향해 달려 오는 왜구들의 목과 팔, 다리 등 검의 궤적에 걸린 것들을 다 공중으로 비산시켰다.
“귀, 귀신이....다, 커헉!”
순식간에 뒤에 십여명의 왜구들의 갈라진 시신을 남긴 귀신같은 사내의 검에 오른어깨에서 배까지 사선으로 갈린 왜구가 컥컥 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이, 이건....”
뒤늦게 도착한 동창 군관의 눈에 한 마리 검귀가 되어 날뛰는 어사의 모습에 한 순간 말을 잃었다.
“정신차려! 모두 돌격.”
유검패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동창의 인원들이 자신들의 검을 들고 마을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왜구들을 맞아 나갔다.
“그 짧은 사이에 열명이 넘게 죽어 나가다니...”
하의를 어디다 놓고 왔는지 보기 싫은 양물을 덜렁 거리며 달려 드는 왜구를 갈라낸 동창 군관이 중얼거렸다.
“어사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다. 단 한명의 왜구도 살려 보내면 안된다.”
유검패의 명에 열명의 군관이 마을 곳곳으로 흩어져 가고 뒤이어 숨이 턱에 찬 채 도착한 왕일과 청룡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사님과 우리가 왜구들을 소탕 할테니 마을을 벗어나 도주하려는 왜구들을 주살하시오.”
“알겠습니다.”
오십여명의 청룡대원들이 마을 초입에 갈라져 널부러진 왜구들의 시신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시이이이잉 쌔애애앵’
기음이 공간을 지배하면 그 앞에 달려들던 왜구들의 팔다리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일월신검이 춤을 출 때 마다 왜구의 목이 재주를 넘기 시작했다.
“거, 검귀다.... 도망가자!”
약 삼십여명의 왜구들이 신나게 약탈과 방화, 강간을 하다 들이친 검귀의 검에 반수 이상이 갈려 나가자 정신이 나간 채로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어딜!”
유검패의 검에서 피어오른 검화를 이마에 박아 넣은 채 터져 버린 머리를 뒤로 하고 급히 북리준의 뒤를 따랐다.
‘이성을 잃으시면 안되는데....’
순식간에 열 다섯이 넘은 왜구를 베어낸 북리준이 연신 다음 제물을 찾아 뛰어 다니는 모습에 유검패의 얼굴에 수심이 떠올랐다.
“대인!”
저 앞에 우뚝 선 북리준의 뒷모습에 급히 그 뒤에 내려선 유검패의 눈에 기이한 병기를 든 세명의 왜구들이 들어왔다.
“키키키, 이거 꽤나 재미있는 상황이네.”
“그래말이다. 그냥 심심해서 대형 몰래 피맛이나 보려고 나왔는데 이런 놈이 걸리다니...”
“이 놈이 여기 대장인가 본데 대형한테 저 놈 목을 가져가면 욕은 안 먹겠다.”
일본어로 연신 킬킬 대며 쇠사슬에 달린 낫 두자루를 땅에 늘어 뜨린 놈과 두 자루의 손도끼를 현란하게 돌리고 있는 놈, 전형적인 왜구의 활을 들고 전통을 메고 한쪽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세 놈의 몸에서 피어오른 예기에 유검패가 앞으로 나서려 했다.
“검패는 다른 사람을 도우라. 여기는 내가 맡겠다.”
“대인...”
“명령이다!”
“충!”
유검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땅을 박차고 동료들과 검을 맞대고 있는 왜구의 등을 갈랐다.
“저거 정신 나간 놈이거나 아니면 강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육개월전 왜국 본토 에도막부의 추살령에 마사히로가 있는 섬으로 쫓겨 합류한 풍마류 닌자 중 광귀삼살이라 불리운 삼형제가 자중하라는 대형 몰래 피맛과 여자 속살을 탐하려 나왔다가 북리준과 맞닥뜨린 것이다.
두 자루의 사슬에 달린 예리한 낫이 서서이 회전을 일으키고 연신 공중으로 떠올랐다 내려 앉는 두 자루의 손도끼의 몸짓이 점점 빨라져갔다.
“누가 먼저 저 놈의 명줄을 끊는지 내기 합시다.”
활에 왜국의 짧은 화살을 매긴 막내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매달았다.
“내 도끼가 저 놈 이마를 찜했다, 크크크!”
“팔과 다리는 내가 잘라주마!”
왜국에서도 광귀삼살의 합격술은 꽤나 유명하여 그들의 손에 유명을 달리한 사무라이와 닌자들의 수가 상당했었다.
‘패애애애액’
첫째의 낫이 공간을 가르며 북리준의 몸을 가르기 위해 자유롭게 날개짓을 시작하자 기이한 발놀림으로 낫을 흘려 보내려는 찰나 ‘쉬이이익’ 손도끼 두 자루가 얼굴과 심장을 직격했다.
‘채애애앵 차차창’
일월신검이 북리준의 손짓에 두 자루의 도끼를 날려 보내고 허공에 떠 있던 낫을 회수하려는 왜구를 가르려 땅을 박차자 어느새 날아온 화살이 떠오른 북리준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
“잡았다!”
‘파라라라락’ 땅에 떨어 지는 듯한 북리준의 신형이 두 발로 굳건히 서고 그 입에 자신의 심장을 노린 화살이 물려 있었다.
“호오, 한가닥 하는 놈이네.”
세 사람의 절묘한 합격을 막아낸 북리준의 머리에 천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우가 내리치는 거친 파도를 두 쪽으로 가르는 뇌격을 보았는가? 이 지상에 그 어느 것이 천상의 손짓인 뇌격을 견뎌 낼것인가?’
‘우르르르르르릉’
피에 흠뻑 절은 놈의 검에서 기이한 울음이 터져 나오자 세 명의 살귀들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심상치 않다. 쳐라!”
세 살귀가 동시에 땅을 박차고 자신의 낫과 도끼, 화살을 연이어 쏟아내려는 찰나 ‘콰르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 오른 검에서 뇌전이 피어 올랐다.
‘콰지지지지직 지지직 크와아아아악 아아악’
북리준의 검에서 피어오른 뇌격에 휘말린 세 살귀들이 온 몸에서 매캐한 냄새를 뿜어내며 몸을 뒤틀며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었다.
“크크크, 거, 검귀....로구나...”
뇌격에 몸을 내어준 두 아우는 그대로 절명을 하였고 자신의 낫으로 겨우 흘려낸 첫째도 온 몸을 치달아 달리는 뇌전에 숨을 거두었다.
“대, 대인....”
유검패가 심상치 않은 기류에 급히 북리준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다 땅에서 솟아 오르는 뇌전에 휩쓸려 떨어져 내리는 세 왜구들을 보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검패!”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와 굳어버린 어깨에 손을 얹은 북리준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마무리를 해야지!”
“추, 충!”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검단주와 나란히 함께 걷는 유검패의 눈에 한없는 존경의 염이 피어 올랐다.
“청룡대주!”
“네, 검단주님.”
“단 한 놈이라도 살아 돌아 가게 해서는 안된다 일렀다. 명을 수행 하였는가?”
서릿발 같은 위엄을 전신에서 뿜어내는 북리준의 향해 왕일이 포권을 취한 채 허리를 숙였다.
“다행이 검단주님의 명을 완수 하였나이다.”
실제 먼저 마을로 들어간 북리준과 동창 군관들의 손에 다 죽어 나간 후 단 세 명 정도의 왜구만 처리한 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왜구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부상자의 치료와 정리를 도우라.”
마을 중앙에 있는 거대한 대추나무 아래 앉아 피에 절은 일월신검을 닦고 있는 북리준 앞에 유검패가 투박한 물잔을 내밀었다.
“대인, 목을 축이시지요.”
“고맙네.”
저 멀리 대추나무 아래 물잔을 든 검단주를 바라본 청룡대원이 몸서리를 쳤다.
“이 시체들 봐라. 온전한 놈이 하나도 없네. 검단주가 정말 전장에서 굴러 먹었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이 놈들 얼굴 좀 봐. 눈도 못 감고 뭔가 놀란 표정 그대로 죽었잖아. 검단주님과 함께 있으면 절대 죽을 일은 없겠다.”
두런 거리며 왜구들을 시신을 수습하는 청룡대원들의 말을 들은 왕일과 하승진이 서로를 쳐다 보았다.
“완전 고수가 되어 돌아왔네....”
“준이가 해 낼 줄 알았어요! 이거 정말 든든한데요.”
****
기린대주 범량이 검은색 대도를 등에 짊어진 노인과 칼 같은 예기를 몸에 두른 그의 친우라는 늙은이. 또 그의 제자라는 순박하기 이를 데 없게 생긴 촌놈과 함께 하라는 말을 상기 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은 동창이네 금의위네 무림세가네 고수들과 함께 순찰은 내보내 놓고 왜 내 쪽에만 노인 두 마리와 촌놈 한 마리냐구? 운도 더럽게 없네.”
기린대 오십여명의 맨 뒤에 뒷짐을 진 채 어슬렁 거리며 쫓아 오는 노인 둘과 젊은이 하나를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 쉬었다.
“저 새끼, 우리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나 보다, 크크크.”
“마음에 들든 말든 신경 안쓴다. 북리봉공에게 도움만 되면 되지.”
막대광의 말에 독고우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곤오가 수화로 독고우에게 뭐라 말을 했다.
“놔둬라. 철없는 아해들의 말에 흥분하는 것이아니란다.”
“곤오가 가서 저 삭도 한번만 휘둘러 주면 찍도 못 쌀텐데.... 그냥 냅두지!”
“으이구, 나이 살이나 처먹었으면 나이에 맞게 행동 좀 해라.”
“미친새끼, 넌 좋겠다, 나이 많이 처 먹어서...”
기린대 전체가 눈 앞에 약 칠십여호가 살고 있는 어촌 마을에 들어서 촌장을 만나고 있었다.
“촌장어른! 왜구들이 쳐 들어오면 이걸 하늘로 향해서 당기면 되우. 그러면 근처에 있는 우리가 득달같이 달려 와서 왜구놈들을 다 치울테니까.”
“에휴, 그래 주면 좋지만 네 놈들도 살고 싶으니까 천천히 올껴잖아? 그냥 왜구놈들이 오면 다 놔두고 우리는 냅다 튈꺼니까 오지말어. 괜히 애먼 네놈들 목숨만 낭비하는 겨!”
“아이, 이번에 검단주가 바뀌어서 고수들이 많이 왔다구요.”
“고수? 어디?”
늙은 촌장의 말에 범량이 저 뒤에 어슬렁 거리는 두 노인을 가리키려다 손을 내렸다.
“그냥 있어요. 다음에 데려 올꺼구만....”
그 때 어슬렁 거리며 노닥 거리던 묵혈도와 귀령검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놈들 아주 제대로 걸렸네.”
묵혈도 막대광이 히죽 웃음을 지으며 마을 입구로 신형을 돌려 나갔다.
“곤오야, 저 놈 뒤 좀 받쳐라. 애먼 칼 맞게 하지 말고.”
독고우의 말에 곤오가 씨익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뒷춤에 꽂아 두었던 삭도 두 자루를 손에 들고 막대광을 따라 나섰다.
“어이, 기린대주라고 했나?”
“대주, 저 노인장이 부르네.”
촌장과 이야기 하는 중에 부대주의 말에 쇠꼬챙이 같은 노인네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지금 저 밖에 왜구들이 몰려 들고 있는데 자네들은 나오지 말고 흘러 들어오는 놈들만 처치하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네.”
자기 할말만 하고 휘적거리는 걸음으로 마을 입구를 향해 나가는 노인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어, 어... 노인장... 에이, 씨불! 야, 너희들은 여기서 왜구들이 못 들어오게 막고 마을 주민들은 저 뒷산으로 대피시켜, 빨리!”
“대주는요?”
“저 노인네들 죽어 넘어지기 전에 이리로 끌고 와야지.”
“조심하슈! 대주 몸 먼저 챙기라구.”
“알았어, 새꺄!”
범량이 씨풀 거리며 자신의 도를 들고 냅다 마을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몇이나 되냐?”
“한 서른마리....”
“각 열명씩 이면 되겠네.”
“내기하자! 자신의 할당량을 먼저 채운 사람이 다른 놈 몫을 처치하면 한 놈당 은자 한냥.”
막대광의 말에 곤오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척 내세웠다.
“미친놈, 네 놈 오늘 주머니는 내 것이다.”
독고우가 싸늘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