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66화 (66/167)

66. 한번 만나봅시다.

“이제는 내 정체를 알기가 어렵지 않을것이오. 아, 일단 인사 하시오. 무림에서 삼화라 불리우는 백봉이시오.”

“제갈청하여협! 반갑습니다.”

“호호, 바로 알아봐 주니 감사하네요.”

“천풍루의 한 개 성을 책임지는 지부장이 땅따먹기해서 먹은 자리는 아니랍니다.”

제갈청하와 공소혜의 팽팽한 기싸움에 북리준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우리는 손님이오. 정보를 사러 왔소.”

“아, 실례했습니다. 그럼 그쪽이 황실에서 내려 보낸 해남검단의 신임검단주겠군요.”

천풍루 본단에서 황실에서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해 파견한 미지의 인물인 호군참령어사와 동창, 금의위, 다섯 개의 무림세가 인물들이 광동 해남검단에 내려 온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천풍루군요.”

“유추하기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제갈세가에서 철면신산과 백봉이 함께 했다는 소식을 이미 접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꼭 그 미지의 어사라는 확신은 너무 앞서 나간 거 아니오?”

북리준이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한 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북경에서 파견된 해남검단의 인물 중 우리가 정체를 파악 못한 사람은 신임 검단주 하나 였습니다. 무림삼화 중 하나이며 제갈세가에거 지낭을 불리우는 백봉을 대동하고 정보를 사러 온 자! 공교롭게 그 자에 대해 예전에 알아 보려다 실패한 자라면 제 확신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차분한 어조의 공지부장의 말에 제갈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이 가네. 앞으로 거래할 만해.”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자연스럽게 서로 말을 놓는 모습에 공소혜의 궁금증이 점점 부피를 키워갔다.

‘저 놈은 도대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괴한 놈이란 말인가? 돈 많고 무공이 쓸만한 놈이 팔년 만에 정삼품 호군참령어사가 되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천하에 까칠하기로 이름난 백봉과 친구를 먹어? 허, 점입가경이로고....’

뭉클 거리며 피어오르는 궁금증을 애써 가슴 한켠에 밀어 넣은 채 본업으로 돌아갔다.

“본단에서 예의 주시하는 분의 첫 의뢰시니 제 직권으로 무료로 해 드리지요.”

“호오, 내가 뭘 부탁 할 줄 알고 그리 통 크게 나오는 것이오?”

“그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대신 제가 검단주님의 뒤를 캐는 수고를 덜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부장의 말에 제갈청하가 웃음을 지었다.

“말할 맛 나는 분이군요. 아주 마음에 들어.”

“호호호, 천하의 백봉께 칭찬을 들었네요. 오늘을 매년 기념해서 잔치를 벌여야 겠군요.”

“내게 무엇이 궁금한지 물어 보시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알려 드리리다.”

북리준의 말에 공소혜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이름은요?”

“도천학.”

“나이는?”

“올 해 스물 여덟인가 아홉인가.... 아무튼 서른은 안되었소.”

“해남검단에 내려온 목적은요?”

“당연히 왜구 토벌이지요.”

“진정이신가요? 솔직한 대답을 해 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명나라 때부터 골머리를 썩여온 왜구 문제는 명, 청 모두에게 아주 귀찮은 존재 였다. 왜구들이 기껏해야 광동, 광서, 해남 지방의 해안가 마을의 약탈에 그치는 만행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소탕전을 벌이기에는 그 폐해가 크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부장에게 뭐하러 농을 하겠소? 내가 여기 내려온 목적은 단 하나요. 남해바다에서 더 이상 왜구들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함이오.”

내려진 발 너머 결연한 눈빛으로 이야기 하는 검단주를 보며 공소혜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자주 뵐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 까지만 묻지요.”

“다음에는 이렇게 선선히 답을 주지 않을 것이오.”

“그건 두고 보면 알일이지요. 오늘 의뢰 하실 건을 말씀해 주시지요.”

공지부장의 말에 제갈청하가 북리준 대신 입을 열었다.

“현 남해바다에 암약하고 있는 왜구들의 수괴인 마사히로와 왜구들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해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한 정보는 빼주세요. 해남검단원의 목숨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하나 더, 현 남해검문에 대한 소상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남해검문과 관련된 정보라면 다 좋습니다.”

제갈청하의 말에 공소혜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을 했다.

“마사히로와 왜구에 대한 정보는 아주 단편적이고 세세하지 못해요. 왜구들이 자신들의 근거지와 군세에 대한 비밀 유지가 철저해서 포구에서 흘러 들어오는 소문을 최대한 정제해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남해검문에 관한 정보는 다행이 저희가 수시로 최신 정보로 갱신하고 있기에 문제는 없을 듯 합니다.”

“언제쯤 받아 볼 수 있을까?”

“내일 이 시간 이 자리에 오시면 준비해 놓겠습니다.”

“정보를 수취하러 제갈부군사가 혼자 올 것이오.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

“어찌 할꺼요?”

금사도주 섬전쾌도 사중현이 자신의 처소에 방문한 벽라도주 칠파검사 요추광의 잔을 채워 주었다.

“장장 백여년이 넘도록 서로를 존중해 온 금기를 그 애송이가 자꾸 넘으려는 것을 난 용납 못하오.”

금사도주가 따라준 잔을 단숨에 들이킨 벽라도주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우리의 뿌리가 해남도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 허나 백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남해검문에서 독립할 때 분명 서로에게 도움을 줄지언정 복속을 강제하지 않기로 분명 약조 하지 않았소이까?”

분에 못 이겨 거푸 술잔을 비우는 벽라도주를 보며 금사도주도 답답한 마음에 잔을 들었다.

“벽라도주의 말이 맞지요. 틀린 말이 아닌데 문제는 남해검문주의 무력이 너무 커진 것이지요.”

금사도주의 말대로 근 이년 동안 남해검문의 무력부대들이 문주의 명을 받들어 남해검문에 반발하는 광동, 광서, 해남지역의 중소방파를 피로 씻어 내며 그 세를 불려나가고 있음을 알기에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소문 들었소이까?”

“무슨 소문이오?”

벽라도주의 뜬금 없는 말에 금사도주가 되물었다.

“왜구들을 척결하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해남검단이 남해검문의 손을 떠났다는 말이오.”

“아, 들었소이다. 어차피 남해검문에서 왜구의 소탕은 겉치레고 조정에서 내려오는 군자금이 주 목적이었다고 알고 있지요.

그래서, 해남검단에 조정에서 직접 검단주와 고수들을 파견한 것이 몹시 언짢은 모양이더군요.”

“그 내면에는 더 큰 문제가 있지 않소이까? 마사히로와 검문주와의 밀약이라던가....”

“허허,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그리 입에 담으시면 안되지요.”

“에이, 우리끼리 속 탁 터놓고 이야기 합시다. 실제 마사히로의 왜구들이 해남도에 약탈을 멈춘 지가 칠년이 넘었소.

그 미친놈들이 가까운 해남도를 안 털고 저 위에 있는 광동과 광서, 그리고 우리 금사도와 벽라도만 조지는 이유가 뭐겠소?”

벽라도주의 말에 자신도 평소 의심해 왔던 부분에 대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배도 그렇지요. 광동, 광서의 상단과 거래하는 우리 배도 가끔 털리는데 남해검문의 배가 털렸다는 소문을 못 들은지 오년이 넘었지요.”

“이번에 내려온 해남검단주가 정삼품 호군참령어사라고 하더군요. 혹시 청조에서 남해검문과 왜구들의 밀착관계를 캐려는 것이 아닐까요?”

벽라도준의 말에 금사도주가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현재 우리 사정이 녹록치 않으니 뭐라도 도움이 될만한 것은 다 잡아야 하지 않겠소? 저 애송이 검문주가 잔인한 손속에 높은 무공, 독랄한 무력부대를 가지고 타 중소문파를 쓸어 버리듯 우리를 그리 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소이까?”

“그래서 벽라도주가 그 이야기를 꺼내시는 연유가 무엇인지요?”

“남해검문이 왜구들과 결탁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청조에서 가만히 있겠소이까? 여지껏 왜구를 치기 위해 막대한 군자금을 매달 내려 보냈는데 그 콧대 높은 황실에서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남해검문을 치겠지요.”

“본래 관무불침이라 했는데....”

“허허, 남해검문이 왜구와 결탁 했다면 그건 역적질에 준하는 죄지요. 거기에 관무불침이 통하겠소이까?”

두 사람이 잠시 잔을 들어 비우며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방 안에 피운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검단주를 한번 만나봐야 겠군요.”

“그렇지요. 그 자가 여지껏 지나갔던 감찰관 같이 썩은 놈이라면 돈 좀 쥐어 주면 되고 뭔가 생각이 제대로 박힌 관리라면 우리가 이용 할 수있지 않을까 생각하오.”

“남해문주 놈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는 첩보가 있었소. 그 놈의 목표는 우리 두 섬의 복속이 아니요. 해남도와 금사도, 벽라도와의 오래된 관계로 인해 지금껏 참고 있었지만 그 놈의 진정한 목표는 중원 본토 진출이기에 광동, 광서 지역을 평정한 후 다음 차례는 분명 우리일 것이오. 그 후 본토로 전군을 몰고 올라가겠지요.”

금사도주의 말에 벽라도주가 한기를 느끼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이쪽으로 초청하는 방식이 낫겠지요?”

“아무래도 우리가 가기에는 검단의 위상이 너무 낮지요.”

“그럼 금사도와 벽라도 두 도주의 이름으로 초청장을 보내는 것으로 하지요.”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거대한 태사의에 삐딱한 자세로 술잔을 들고 있던 마사히로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아래 부복하고 있던 카이토를 바라보았다.

“주군, 나흘이 넘도록 한 명도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카이토의 말에 마사히로가 술잔을 옆에 놓인 탁자에 내려 놓고 허리를 세웠다.

“백 이십명, 네 개 대가 뭍에 나갔는데 한 놈도 안 돌아왔다? 평소에 배가 되는 인원이 나섰는데?”

“하이!”

마사히로가 차가운 표정으로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남해검문에서 우리 뒤통수를 친건가?”

“그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자신의 스승이며 주군인 마사히로의 질문에 치밀어 오르는 한기를 억지로 내리 누르며 카이토가 정중하게 대답을 했다.

“평소 주군께옵서 남해검문에 대한 감시와 방비를 소홀히 하지 말라시는 명에 따라 남해검문의 병력 이동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근래 남해검문의 문인들이 이동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럼 네 말대로 남해검문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 쓰레기 같은 검단 놈들에게 다 당했다는 말인가?”

“지금 확인 중에 있습니다만 신임 해남검단주가 북경에서 홀로 내려 온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자신의 수제자 이며 제일 코케닌인 카이토의 말에 마사히로가 조용히 잔을 채웠다.

“황실의 금의위와 동창이 통째로 내려왔나?”

“그, 그것은 아닌....”

마사히로가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라며 까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카이토가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퍽 퍼어억 퍽’

카이토가 뒷짐을 진 부동자세로 앞에 서자 마사히로의 손과 발이 복부와 가슴을 강타했다.

‘커허어억’

올라선 계단을 굴러 떨어져 내린 카이토가 머리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벌떡 일어서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똑바로 알아와. 카더라라고 다시 이야기 하면 내 손에 죽는다!”

“하이....그리고 하나 더 보고 드릴 것이...”

“말해!”

“풍마류의 사고뭉치 중 하나인 광귀삼살이 허락도 없이 이번에 뭍에 올랐습니다.”

“광귀삼살? 그 새끼들도 못 돌아온 건가?”

“하이!”

카이토의 보고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마사히로가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신이치가 제대로 열 받았겠구만. 잘되었네.... 카이토!”

“하이.”

“다음에 뭍에 보낼 인원 중에 풍마류의 닌자들을 포함시켜. 우리가 이야기 안 해도 놈들이 알아서 나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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