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암살의뢰
“우리가 너무 세게 나갔나? 잠잠하네.”
순찰 첫날 네 개대 백이십명이 넘는 왜구들을 묻고 난 후 일주일 동안 다시 이백명 가까운 왜구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그 후 약탈이 사흘 동안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제갈청하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물러날 놈들이 아니야. 다음에는 단단히 준비하고 오겠지.”
북리준이 오전 구보와 훈련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함께한 제갈청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오늘도 나갈거지?”
“당분간은 매일 나갈거야. 무뎌진 검을 벼리는 데는 전장만한 곳이 없지.”
“내일은 남해검문을 내방키로 약조가 되어 있으니까 오전부터 서둘러야 돼.”
“알고 있어. 그나저나 천풍루에서 받은 정보 중 쓸만한 것이 있나?”
북리준이 찻잔을 들어 한모금의 차를 삼켰다.
“마사히로 놈에 대한 것 중 흥미로운 것이 있더라구. 닌자라고 들어 보았어?”
“닌자?”
“왜국에서 다이묘나 영주에 소속되었거나 독립된 무력집단으로 첩보, 파괴, 침투전술, 암살 등을 일삼는 개인이나 집단 등 특수전투집단을 이르는 말이야.”
“살수집단이라는 말이군.”
“그래, 중원의 살수집단을 왜국에서는 닌자라고 부르는 거지.”
제갈청하가 자신을 바라보는 북리준을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현재 왜국에서 손꼽히는 닌자 가문이 열 개 있는데 그 중 수위를 달리는 곳 중 두 곳이 이가류와 풍마류야. 그런데 일년 전 에도막부에서 밀어주는 이가류와의 싸움에서 패한 풍마류가 본토에서 쫓겨나 마사히로에게 합류한 것 같아.”
“흠, 풍마류라....”
북리준이 사흘 전 남해무극칠적 중 뇌격에 타 죽은 세 명의 이질적인 왜구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주로 어떤 무기를 쓰지?”
“수리검, 쇄겸(사슬낫), 만력쇄(추가 달린 사슬), 바람총(입으로 부는 독침), 단궁 등을 쓴다고 들었어.”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놈들이 닌자들이었나 보군.”
“벌써 조우 한거야?”
“열흘 전 해우촌에서 괴상한 무기를 쓰는 세 놈을 만났어. 네 말을 들어보니 그 놈들이 닌자들이었던 거 같아.”
“마사히로의 군세가 심상치 않아. 삼천이 넘는 왜구들에 풍마류의 닌자 가문, 매일 새로 유입되는 난민들..... 만만치 않아 보이네.”
“어차피 깨뜨려야 할 적일 뿐이야. 놈들이 강하다면 내가 더 강해지면 돼!”
결연한 표정의 북리준을 보며 제갈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네.”
“다른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마사히로를 쇼군이라 칭하고 그의 제자 스무명을 코케닌으로 임명하여 난민들을 다스리고 있어. 최근에 들어온 풍마류는 이들의 관리를 거부하고 있고.”
“그 부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 봐야겠네.”
“고민해 볼게. 그리고 남해검문에 관해서도 알아야할 것이 있어.”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들었다.
“남해검문이 근 백년 래 가장 강성한 힘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남해검문의 관할하에 반항했던 광동 광서의 중소방파가 현 검문주가 직접 양성한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에 쓸려 나간 것이 육개월 전이야.”
“목표는 중원 진출이겠군.”
“그렇지. 그런데 다른 방파와 같은 방법으로 쓸어 버릴 수 없는 두 개의 방파가 남해검문 지척에 남아 있다는 거지.”
“그게 어디지?”
“금사도와 벽라도야. 이 둘은 원래 해남도의 남해검문에서 백년 전 독립한 문파인데 전전대 장문의 유지가 현 장문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거지.”
“무슨 유지인데?”
북리준이 제갈청하가 들려주는 새로 접하는 정보를 머리에 아로새기고 있었다.
“남해검문의 장문은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어. ‘ 금사도와 벽라도는 해남도와 한 몸이다. 세 곳 중 어느 한 곳도 다른 곳에 복속을 강제할 수 없다. 서로 도우며 남해바다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라는 것이야.”
“그런데 현 남해검문주가 두 곳을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하는 모양이지?”
예전에 천풍루에 의뢰했던 남해검문에 대한 정보 중에 들어있던 정보가 불현듯 생각났다.
“금사도와 벽라도만 남해검문 휘하에 들어 온다면 아마도 바로 중원 진출을 하려고 할 거야.”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 금사도와 벽라도의 복속 말이야.”
“거의 팔할 정도? 현 금사도주 섬전쾌검 사중현과 벽라도주인 칠파검사 요추광이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있지만 대부분의 금사도, 벽라도의 무인들이 남해검문의 마수에 걸려 검문에 병합되기를 바라고 있대.”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아마도.....”
북리준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제갈청하가 마른 입술을 찻잔을 들어 축였다.
“일단 우리의 드러난 목표인 마사히로와 왜구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아직 남해검문에서는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낫겠어. 괜히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필요는 없겠지.”
“맞아! 하나 하나 적을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어. 아직 우리의 힘이 두 적을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내일 일단 남해검문주를 만나 한번 건드려 볼 필요는 있겠지.”
“준비해 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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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귀삼살에 대한 복수를 하게 해 주겠다?”
“그렇다네.”
풍마류의 수장인 신이치와 마사히로가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상을 사이에 두고 날카로운 눈빛을 교환했다.
“어떻게? 설마 네 놈의 제자 놈인 아키토라는 놈의 말대로 뭍에 나가는 공격조에 우리를 갈아 넣으라는 말인가?”
이틀 전 아키토가 마사히로의 전언이라며 뭍에 오르는 공격조에 풍마류의 무사들을 파견해 달라는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신이치가 입술 한쪽을 비죽 올렸다.
“그건 이미 자네가 거절한 사안인데 내가 굳이 강권할 일이 아니지. 그냥 자네들 특기를 조금 활용해 달라는 말일세.”
“우리 특기?”
“잠입, 요인 암살! 그 누가 풍마류의 목표가 된 후 그 살수를 피했겠는가?”
“후후, 누구의 암살을 의뢰하는 건가?”
“신임 해남검단주라는 놈일세. 그 놈이 영 눈엣가시 같이 행동을 해서 말이야. 그 놈만 죽어 없어지면 나머지는 흐지부지 하다 다시 남해검문에 검단이 넘어가겠지.
지난 사흘 동안 삼백이 넘게 희생되었네. 잡혀 있는지 다 죽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답답한 거지.”
마사히로가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잔을 채웠다.
“우리가 네 놈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빚은 이걸로 터는 것으로 하지.”
“일단은.....”
“준비 마치는 대로 네 놈에게 이야기 하마.”
“기대하지.”
신이치가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는 신형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잠시 후 제일 코케닌인 아키토가 슬며시 방안으로 들어섰다.
“말씀은 잘 되셨는지요?”
“신이치가 준비를 마치는 대로 이야기 하면 놈들을 해남검단에 데려다 주고 오너라. 이번에는 밥값을 제대로 해 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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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가 풍마류의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죠닌 아야토를 불러 들였다.
“아야토, 작전을 짜라. 목표는 해남검단주! 실행은 닷새 후.”
닌자 사회에서 군사 신분으로 불리우는 죠닌(上忍)인 아야토를 향해 신이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살행의 난이도를 어느 정도로 책정할까요?”
“고작 청조의 관리 한 놈이기는 하지만 마사히로가 우리 보고 밥값을 하라고 던져준 청부이니 중상으로 가라.”
풍마류의 청부 등급은 하하로 시작하여 최상 까지 총 여섯 단개로 구분되는데 중상이면 중급 살행으로 보면 되었다.
“너무 높게 보시는 것이 아니신지....?”
고작 중원의 관리 하나를 지우는데 다섯의 일급 쥬닌(中忍)과 다섯의 게닌(下忍)을 투입하는 것이 과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실패해서 마사히로 놈에게 굴욕을 당하느니 확실하게 처리 하는 것이 낫다. 진행하라!”
“하이!”
신이치의 방을 나서는 아야토의 머릿속에 오랜만에 살행에 내보낼 살수들의 얼굴이 바쁘게 부침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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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검문의 방문을 위해 북리준과 유검패, 제갈청하와 제갈풍, 독고우가 검단을 나섰다.
“독고 대협이 굳이 동행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북리준의 말에 독고우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 사람을 알아 보는데 조금 나은 구석이 있다네. 봉공의 적이 되는 자이니 내가 조금 살펴보고 싶어서 그러니 너무 개념치 말게.”
“저야 감사하지요.”
광동 포구에 도착하니 남해검문에서 보내준 배 한척이 일행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이오.”
전임 검단주였던 목대관이 배에서 내려 북리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총 다섯 분이시오?”
“그렇소이다.”
목대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일행들을 훑어본 후 신형을 돌렸다.
“따르시오!”
바람을 한껏 머금어 부풀대로 부푼 거대한 돛 두 개가 인상적인 범선에 일행들이 승선하자 닻이 오르고 거침없이 거대한 대양을 향해 나아갔다.
파란 하늘과 검푸른 파도가 넘실 거리는 망망대해를 거슬러 나가는 범선 선수에 선 일행들이 두런 두런 말을 주고 받았다.
“배는 처음이신지요?”
“그렇다네.”
유검패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님과 부군사는 배를 타신 적이 있으신지요?”
“바다는 처음이라네. 내륙에서는 몇 번 타 보았지.”
북리준이 자신에게 눈길을 주자 어깨를 으쓱한 독고우가 웃음을 지었다.
“살아온 해가 조금 길어 배를 조금 타 보았네. 여기 남해바다에서 오래전에 한 일년 정도?”
“검패는 경험이 있는가?”
“네, 양부님을 따라 이 곳에서 배를 탄 적이 있습니다.”
저 멀리 갈매기들이 ‘끼룩 끼룩’ 거리며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유검패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약 칠년 전 인가 저희 양부와 곽대인을 모시고 제가 남해검문에 방문했었습니다. 아마 현 검문주가 저희를 맞이 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해남검단과 왜구들의 문제 해결에 애쓰고 있는 남해검문을 황제폐하의 어지로 위로코자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만난 남해검문의 장문의 느낌이 어떠했는가?”
철면신산의 물음에 유검패가 잠시 눈을 감고 저 아래 잠들어 있던 기억을 끄집어 내었다.
“한 자루의 칼 같은 사내 였습니다. 무엇이든 근처에 가면 베일 것 같은.....”
“칼 같은 자라.....”
독고우가 유검패의 말을 되뇌이며 중얼거렸다.
“오늘 첫 상견례이니 부담을 가지지 마시고 부군사는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에 의의를 가지면 될 듯 합니다.”
“그래, 선입견을 가지고 임할 필요는 없지.”
제갈풍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잠시 후 해남도에 도착할 예정이니 준비들 해 주시오.”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 콧빼기도 안 보이던 목대관이 삐죽 얼굴을 들이 밀고는 다시 선미로 향했다.
“검단주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제갈청하가 웃음을 지으며 저 멀리 멀어져 가는 전임 검단주를 바라 보았다.
“그리 신경 쓸 자는 아닙니다.”
북리준이 자신의 기억에 그리 높은 무공도 없었고 그렇다고 머리가 뛰어난 자가 아니었던 목대관에 대해 신경을 껐다.
“저기가 해남도 인가 보군요.”
북리준의 말에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땅덩어리를 일행들이 시선을 던졌다.
“자, 남해검문이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