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70화 (70/167)

70. 어딜 감히

인시초(새벽 3~4시)!

잠자리에 누워 잠을 막 청하려는 북리준의 눈이 살며시 열렸다.

같은 시각 옆 전각에 누워있던 독고우과 곤오의 신형이 소리 없이 일어나며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는 막대광의 입을 독고우의 손이 막아 나갔다.

“뭐, 읍...”

‘누군가 북리봉공의 처소 주위로 몰려 들어 왔다.’

독고우의 전음에 막대광이 조용히 자신의 대도를 잡아 나갔다. 곤오 또한 어느새 갈아입은 풍령곡 살수의 야행의와 자신의 식도 두 자루를 챙겼고 독고우 또한 옆 탁자에 미리 준비해 둔 암기들이 빼곡한 허리띠를 두른 채 복면을 썼다.

‘네 놈은 도움이 안 되니 이 곳으로 들어오는 놈만 처리해라. 단 최대한 소음이 없게 해야 한다.’

‘왜국의 살수들이냐? 그 닌자인가 뭔가 하는?’

‘그런 것 같다. 동류의 냄새가 난다. 감히 왜국의 살수 나부랭이들이 대 풍령곡의 살수 앞에서 재롱을 피우려 하다니.... 톡톡히 댓가를 치루게 해주어야지.’

곤오와 함께 소리 없이 깊고 깊은 어둠에 신형을 녹여 나가는 모습에 막대광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저놈들, 아주 살판 났구만.’

막대광이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묵룡도를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눈을 반개 하고는 기감을 퍼뜨려 나갔다.

풍마류는 수장인 신이치를 정점으로 아래 한 명의 죠닌(上忍)이 있었다. 죠닌은 상위 계급으로 주로 작전계획을 세우며 닌자들의 운용계획을 수립한다.

일백명의 쥬닌(中忍)은 일급살수로 일호에서 십호까지는 특급, 나머지 십일호에서 백호까지는 일급살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머지 사백명의 닌자들은 게닌(下忍)으로 불리우는 가장 기본적인 전투닌자들로 백일호에서 오백호까지로 불리워졌다.

금번 살행에 투입된 이십호부터 이십오호까지의 일급살수들 뒤에 백십호에서 백십오호까지의 게닌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십호가 예리한 눈으로 잠들어 있는 전각 두 개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이십오호와 백십오호를 가리키고는 목표가 있는 전각의 옆 전각을 가리키자 두 닌자가 소리 없이 막대광 등이 기거하는 전각으로 스며들어갔다.

이어 수화로 나머지 칠인의 닌자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각자 신형을 일으켜 북리준이 기거하는 전각의 처마, 댓돌, 들보 등의 그림자로 녹아 들어갔다.

전각의 지붕 위로 침투를 맡게 된 백십일호가 기와를 걷어내고 자신의 신형을 집어 넣으려는 찰나 어둠을 가르는 삭도에 목울대가 잘려 나가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곤오가 넘어지는 닌자를 소리 없이 받아 지붕과 석가래 사이의 공간에 눕히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전각 안으로 스며 들어온 백십이호가 거대한 대들보 아래 은신포로 신형을 감추려는 찰나 들보에서 스윽 튀어나온 단도에 심장이 꿰뚫렸다.

쓰러지는 신형을 받아든 독고우가 대들보 안 그림자 안에 적을 구겨넣고는 그 자리에서 신형이 지워져갔다.

여기 저기에서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은 치열한 암투가 전개 되는 중에 막대광이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는 바로 위 천장이 소리 없이 열리며 백십오호가 거꾸로 왜도를 든 채 막대광을 둘로 쪼개기 위해 떨어져 내렸다.

‘슈아학’

어느새 손에 들린 묵룡도의 궤적에 걸린 백십오호가 두 조각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찰나 정면 방문이 활짝 열리며 독이 듬뿍 묻은 슈리켄이 막대광의 가슴으로 날아들고 뒤이어 이십오호의 쇄겸이 목을 날리기 위해 기쾌한 움직임으로 그 뒤를 따랐다.

‘따다다다당’

거대한 묵도의 옆면으로 흘려낸 슈리켄이 옆 벽에 틀어 박히고 뒤이어 날아든 쇄겸을 슬쩍 목을 움직여 비켜 낸 후 묵도가 이십오호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크가가각’

어느새 빼어든 왜도로 막대광의 묵룡도를 비켜낸 이십오호의 입이 동그랗게 말리며 ‘피피핑’ 독침이 막대광의 얼굴로 쏘아져 왔다.

“흥!”

철판교의 신법으로 신형이 휙 넘어가며 독침들이 자신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 막대광의 심장을 갈라내기 위한 단도가 떨어져 내렸다.

‘파아아아앗’

철판교의 신법으로 신형을 눕히는 중에 막대광의 손에서 춤을 추는 묵룡도에 목이 걸린 이십오호의 목 없는 시신이 주춤 주춤 전진하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갔다.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엿 됐네. 독고놈이 생지랄 하겠어....’

둘로 갈리고 목 없는 살수들을 질질 끌어 방 한구석에 처박고는 자신에게 지랄을 떨 독고우의 얼굴이 떠오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십오호가 날린 슈리켄을 묵룡도를 흘려 낼 때 난 소음에 이십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칙쇼, 머저리 같은 놈들!’

나중에 두 머저리들을 치도곤 칠 생각을 접어두고 목표가 있는 방 앞 까지 접근한 이십호가 이상한 느낌에 급히 공중으로 신형을 띄워 올렸다.

‘피내음!’

전각 안에 진득하게 퍼져 나오기 시작한 피비린내에 주위를 둘러 보던 찰나 ‘콰아앙’ 소리와 함께 방 안에 목표를 제거 하기 위해 스며 들어간 이십이, 삼, 사호가 목과 가슴이 갈라진 채 문이 터져 나가며 방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몇이나 기어 들어왔습니까?”

북리준이 저 편 이십호가 은신하고 있는 대들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자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방향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열 놈이 들어왔는데 그 한 놈만 남았네.”

“제가 처리할까요?”

“놔 두시게. 살수는 살수에게 맡기시게...”

중원어를 알아 듣지 못하는 이십호가 자신의 눈 앞에 널부러져 있는 일급살수 셋의 시체와 주위에서 퍼져 나오는 피비린내에 살행 실패를 예감하고는 퇴각을 위한 은신을 시작했다.

“저 놈, 도망가려는 것 같은데?”

어느새 묵룡도를 어깨에 걸친 채 전각 안에 들어선 막대광이 툭 하니 말을 내뱉었다.

“독고숙부가 알아서 하시겠지요.”

이십호가 전각 안 구석 구석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넘나들며 전각을 빠져 나오자 연무장 한 가운데 무심한 표정으로 야행의에 복면을 한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 보는 모습을 보았다.

‘슈수수수수슛’

품 속에 들어간 손이 빠져 나오는 순간 세 개의 슈리켄이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연무장에 서 있는 자를 조각내기 위해 합쳐지려는 찰나 독고우의 손이 허리에 닿은 순간 ‘따다다다당 따앙 따당’ 뭔가 부딪는 소리와 함께 슈리켄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자세히 보니 붉은색의 철전 세 개가 이십호가 날린 슈리켄에 꽂힌 채 땅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에 지붕을 박차 올라 두 손을 힘차게 뿌려 내었다.

‘피슈슈수수수수수슉’

수 많은 침들이 독에 절어 번득이며 날아 오자 독고우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지워지며 침들이 땅에 박혀 들었고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달아나려는 이십호가 갑자기 뚝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크으윽’

어느새 자신의 배에 꽂혀 있는 붉디 붉은 단도 두 자루가 게걸스럽게 자신의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쇄혼쌍마비라고 하는 거다. 네 놈들이 날리는 허접한 암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지.”

이를 악다문 이십호가 중도와 단도를 뽑아든 채 자신의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독고우를 향해 쇄도해 나갔다.

‘카캉 캉 카카가가각’

어느새 뽑아든 용영검이 왜구 닌자의 중도와 단도를 비껴 흘려내고는 오른어깨에서 왼쪽 복부까지 갈라내었다.

‘챙그랑 챙’

두 손에 들었던 왜도 두 자루를 땅에 떨구고는 이십호가 상반신이 사선으로 갈라져갔다.

“어딜 감히.... 왜구 나부랭이가 살수 흉내를 내고 있어.”

막대광과 곤오가 열 구의 시신을 연무장에 모아 놓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이 정도 놈들로 북리봉공의 목을 노렸다는 것을 보니 이 쪽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으이.”

막대광의 말에 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오는 놈들은 이 상황을 고려해서 보내겠지요.”

“그래, 좀 센 놈들로 보내라고 해.”

“미친놈아, 네 놈이 그런다고 전할 수나 있냐? 그리고, 좀 조용히 처리 하랬더니 아주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더구나.”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의 목이 쑤욱 몸 안으로 들어갔다.

“쪼잔한 놈이 냅다 암기를 뿌리잖아? 그렇다고 몸으로 받아 낼 수도 없고 해서 도를 갖다 대었더니 소리가 조금 났네....”

“조금이라고? 곤오야, 조금 났냐?”

곤오가 자신의 팔을 활짝 벌려 크게 원을 그렸다.

“미안허다. 난 소리가 나도 화끈하게 썰어 버리는 싸움이 났지 이런 소리 없는 싸움은 질색이다.”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놈!”

“으이구, 잘못했다구....”

****

“실패?”

남해검문주가 자신에게 보고 하는 군사 방백의 말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마사히로 놈, 난민 수가 조금 늘었다고 나태해졌나보군.”

“열 명의 닌자를 투입한 모양입니다. 전부 다 당했다고 합니다.”

해남검단에 뿌려 놓은 세작에게서 온 정보를 보고 하는 방백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도천학이라는 어사 말입니다. 일신의 무공이 우리가 무시할 정도는 아닌 듯 합니다.”

“그래 봐야 조정의 녹을 먹는 관리일 뿐. 그 때 도발에 넘어와 비무를 했다면 팔이나 다리 하나는 잘라서 보내려 했건만... 어찌 되었건 또 기회가 있겠지.”

탁자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들이킨 목천군이 방백에게 시선을 던졌다.

“마사히로 놈에게 경고를 보내라. 벌써 두 번째 실패라고....”

“알겠습니다!”

****

“또 실패인가?”

마사히로가 남해검문에서 온 전서응 편으로 온 검문주의 편지를 펼쳐 보았다.

‘마사히로! 지금까지 이룬 세가 다 네 놈의 능력과 힘으로 된 줄 착각하는 것 같군. 왜구들의 수를 늘려 뭍에 대한 약탈을 더 해 달라는 것과 관리 나부랭이 목 하나 따달라는 내 요청이 아주 하찮게 느껴지는가 보군. 정녕 우리 관계가 이리 끝나기를 바란다면 주저 말고 회신을 하거라!’

목철군의 비웃음이 한껏 머금은 얼굴이 눈 앞에 떠오르며 마사히로의 인상이 구겨졌다.

“신이치를 불러오너라!”

“하이!”

잠시 후 풍마류의 수장인 신이치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사히로의 앞에 섰다.

“내가 네 놈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정도로 한가해 보이느냐?”

“이봐, 오백이 넘는 네 놈 식구들을 받아 줬으면 밥값을 제대로 하던가 말을 제대로 듣던가 둘 중 하나는 해야지 않겠어?”

마사히로의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나직하게 뱉어내는 말에 신이치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패했나?”

“아주 깨끗하게!”

마사히로의 말에 신이치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건은.... 미안하군!”

“하아, 미안하다라..... 내가 애초에 네 놈이 이 곳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했던 대화가 기억나나?”

자신의 휘하 풍마류의 닌자들과 이곳에 의탁하는 조건으로 마사히로의 요청이 있을 때 풍마류의 군세와 닌자들을 빌려 주기로 한 조건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게.”

“한번의 실패로 놈들에게 잔뜩 경각심을 심어 줘 놓고 또 한번 더 기회를 달라?”

살행 실패에 대한 책임감으로 신이치가 입술을 앙 다문채 마사히로의 말을 기다렸다.

“네 놈 휘하의 닌자들을 뭍에 나가는 내 수하들과 섞어 내보내라. 가서 네 놈들이 그렇게 목에 힘을 주고 있는 살수로 해남검단 놈들의 머리를 날려 버려라.

그 후에 네 놈이 말한 기회를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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