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71화 (71/167)

71. 배가 필요하오.

“초청?”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공동 명의로 검단주를 초청했네.”

철면신산이 건네주는 초청장을 받아든 북리준이 서신을 펼쳤다.

“무얼 노리는 거지?”

북리준의 말에 제갈청하가 바로 대답을 했다.

“지난 번 이야기 한 남해검문의 복속만은 피하고 싶은 거겠지. 다시 말해 검단주를 통해 청조의 힘을 빌려 지금의 상태를 유지 하겠다는 정도?”

제갈청하의 말에 철면신산이 보충 설명을 했다.

“금사도와 벽라도는 남해검문 보다 세가 약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독립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거지. 문제는 힘이 약하다는 거네.”

제갈풍과 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당연히 배지. 뭍에 기어 올라오는 왜구놈들이야 올라오는 족족 잡아 죽이면 되지만 바다 위에 떠 있는 놈들은 속수무책이지.

우리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금사도와 벽라도가 남해검문 보다는 약하지만 무시 못할 군선을 가지고 있어.”

“그럼 우리가 배를 요구하면서 저들에게 줄 것이 있나?”

북리준의 말에 제갈풍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동창의 영반이나 금의위 위장의 힘을 빌려야겠지. 그들이 왜구 척결을 위해 배를 빌려주는 것을 조정의 이름으로 공인해준다면 남해검문에서 함부로 그들을 공격 할 수는 없을 것이네.”

“숙부님의 말씀대로 공인이라 함은 이 쪽 남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떠들썩 하게 진행해야하고!”

두 사람의 말에 북리준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일석이조로군. 남해검문은 대수리를 핑계로 배를 내어 주지 않고 있는데 그 보다 작은 금사도와 벽라도에서 흔쾌히 배를 내주었다는 소문 만으로도 목장문 쪽에 타격이 있겠군.”

“양수겸장인 거지. 자신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을 용납 못한다고 자인한 목가 놈의 행동에 제약을 줄 수도 있고 말일세.”

“그에 더해 금사도와 벽라도가 계속 저항을 하게 하기 위한 힘을 실어 주는 것이 필요해. 금전적이든 병력이나 그 무엇이든 말이야.”

“충분히 만날 필요가 있겠군. 이틀 후라고?”

“숙부님과 나만 동행하면 될 듯해.”

“알겠어. 그렇게 준비를 해 줘.”

북리준이 검단원들이 팔조삼재검진을 수련하는 대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중앙이 그리 맥없이 나서면 좌우익이 다 죽어. 똑바로 안 해?”

“야이 새끼야! 죽으려면 너 혼자 뒤져야지, 그렇게 움직이면 셋 다 뒤지는 거야.”

“그렇지! 좋아, 조금 더....”

곳곳에서 곡굉에게 팔조삼재검진을 먼저 사사 받은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가 곡굉과 함께 각자 자신이 맡은 조들을 돌아다니며 어긋나는 검진을 바로 잡아 가고 있었다.

“왔는가?”

곡굉이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다가오는 북리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북리준이 바삐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검진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혀 갑니다.”

“세 낭인들이 도와 주고 검단원들이 자신들의 구명줄이 될 것으로 확신이 드니까 차츰 수월하게 되고 있네.”

“언제쯤 현장에 투입이 가능 하겠습니까?”

“진척도가 다 달라서 말일세.... 검진의 숙련도에 따라 상, 중, 하 세 부류로 나누어 훈련을 하는데 상에 속한 조들은 한 달 후 정도면 가능 할 것으로 보이네.”

“지금 흘리는 땀이 전장에서 흘릴 피를 대신 한다는 것을 항상 주지시켜주세요.”

“걱정마시게. 지난 번 팔조 낭인들 보다 더 절박한 사유들이 있기에 이를 악물고 따르고 있네.”

북리준이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가 있는 곳에 들러 인사를 건넨 후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텨! 창술은 막강한 하체의 힘이 바탕이 된다. 그 하체의 힘에 상체의 굳건함이 더해 지면 네 놈들 앞에 있을 왜구들은 다 죽은 목숨이다.”

하후상의 우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연무장에 다다르자 팔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찬 백 여명의 검단원들이 기마자세를 취하고 곧게 뻗은 팔로 무쇠로 만든 장창을 두 손으로 부여 잡고는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오셨소이까?”

섬전창이 북리준이 연무장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반갑게 다가 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이지요. 내 성명 무기가 창이어서 이 곳 창대 수련을 돕고 있는데 솔직히 하후상 소협의 효율적인 훈련방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섬전창과 대화를 나누며 일백여 창대의 훈련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북리준의 귀에 다시 하후상의 우렁거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던 창대단원들 몇몇이 휘청거리며 자세를 바로 하자 하후상의 새로운 명령이 떨어져 내렸다.

“찌르기 백번, 시작!”

후둘거리는 팔과 다리에 없던 힘을 다시 짜내며 독기 어린 눈으로 창을 내지르는 단원들의 기세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상 소협과 이야기 해 보았는데 이인 일조의 창진을 수련한 조들은 곧 전장에 투입이 가능 할 것이라 합니다.”

“곧이요? 너무 이른 것이 아닌지....”

“저도 그러한 이야기를 했으나 하후소협의 말이 ‘백번 천번 허공을 찔러 봐야 힘만 빠집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창을 내질러봐야 그 창이 진정한 내 창이 되는 거지요.’ 라는 말에 저도 동감 하였습니다.”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매섭게 무쇠로 만든 창을 내지르는 창대 단원들을 보며 흡족한 마음으로 북리준이 신형을 돌렸다.

****

“환영합니다.”

제갈풍과 청하, 북리준이 벽라도에 도착하니 두 명의 검과 도를 든 굳건한 인상의 두 사내가 일행을 맞이했다.

“이쪽은 금사도주이신 섬전쾌도 사중현 도주시고 본인은 벽라도주인 칠파검사 요충광이라 합니다.”

“무림동도들이 철면신산이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 해남검단의 군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 쪽은 제 질녀이며 부군사인 청하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이 신임검단주이신 어사 대인이십니다.”

북리준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하자 두 도주가 맞포권을 했다.

“이리 초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 당연히 저희가 초대를 해야지요. 아직 이 곳에 대한 모든 것이 낯설터이시니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구요.”

금사도주의 말에 제갈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서로 도움이 될 일들이 많이 있을 듯 합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요.”

벽라도주의 안내로 미주가효가 차려진 식탁에 둘러 앉은 일행이 건배를 하며 서너순배 술이 돌고 의례적인 인사들이 오갔다.

“본관을 이 곳에 초청해 주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북리준이 술잔을 호쾌하게 비운 후 운을 띄웠다.

“하하하, 남해바다에 인접한 백성들의 우환거리인 왜구들을 척결하기 위해 내려 오신 대인께 당연히 인사를 드리기 위함이지요.”

벽라도주가 다시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하려고 하자 제갈풍이 불쑥 끼어들었다.

“피차 서로 필요한 것이 있어 회합을 가지는 것이라면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소이까?”

“철면신산이라는 별호가 실감 나는 말씀이시군요. 벽라도주, 바로 시작 하시지요.”

금사도주의 말에 벽라도주가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을 이어갔다.

“어사 대인께서 현재 해남도와 저희 금사도, 벽라도와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짤막하게 설명을 드리지요.”

벽라도주가 해남도와 금사도, 벽라도의 분리 배경부터 현 상황까지 핵심만을 짚어 설명을 했다.

“벽라도주님의 말씀 대로 남해검문에서 선대 장문들의 금약을 깨고 저희에게 무력을 행사 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혹시 해남검단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움을 드리고 어사대인께서 저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지 논의 드리는 자리를 마련 하였습니다.”

금사도주가 말을 마치자 면사를 두른 제갈청하가 북리준과 눈을 마주치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 말씀 하시니 저희의 요청 사항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열흘 전 남해검문주의 초청으로 해남도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제갈청하의 청아한 음성에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귀를 기울였다.

“왜구의 신속한 척결을 위해 뭍에 올라오는 왜구들은 검단에서 감당을 하고 바다 위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섬멸하기 위해 배와 선원들을 요청하였으나 남해검문의 군선에 대한 대수리로 인해 지원 요청을 거절 당했습니다.”

제갈청하의 말에 두 도주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대수리? 이건 무슨 개소리야?”

벽라도주의 말에 금사도주가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래 오년에 한번 육개월에 걸쳐 대수리 기간을 갖는 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닌가 보군요.”

제갈풍의 말에 벽라도주가 어이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아, 사기를 쳐도 유분수지. 그럼 육개월 동안 남해검문은 섬에 틀어 박혀 배만 수리 한답디까? 허허, 어이 상실일세....”

“남해검문주가 어지간히 배를 내 주기 싫었나 봅니다.”

금사도주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배를 내어 주실 수 있으시다면 조정의 힘을 빌려 드리겠소이다.”

북리준의 말에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눈을 서로 마주쳤다.

“가능합니다. 단, 배와 선원만 지원해 드리지요. 무인들은 불가 합니다.”

금사도주의 말에 벽라도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배와 선원만 주시면 됩니다. 훈련 중인 검단원과 조정에 요청하여 수군을 지원받을 예정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가 배와 선원을 내 주면 저희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제갈청하가 미리 준비한 답변을 이야기 하려는 찰나 북리준이 손을 들어 저지를 하고는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정에 품의를 올려 금사도와 벽라도가 왜구 척결을 위해 이러 이러한 도움을 주었다고 공표하는 것은 어렵지 않소이다.

물론 조정에서 실어 주는 힘이 두 도주에게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요.”

북리준의 말에 두 도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전음을 주고 받았다.

‘그 정도만 해 줘도 감사합니다 아냐?’

‘뭘 더 줄 게 있나 본데.... 더 들어보세!’

“그러한 공표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면 남해검문이 다시 발호를 하지 않겠습니까?”

“급한 불을 먼저 끄자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사 대인께서 혜안이 있으시면 들려 주시지요.”

금사도주의 말에 북리준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자신을 쳐다 보는 제갈풍과 청하를 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작금 문제의 원인은 남해검문의 장문인 목철군의 욕심이지요.”

도대체 어사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두 도주의 귀에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가 들려 왔다.

“본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 남해검문의 장문과 마사히로라는 왜구의 수장이 모종의 협약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만일 두 분이 남해검문의 장문과 마사히로와의 밀약에 대한 정보나 증거를 주신다면 조정의 힘을 빌어 목철군을 걷어내 드리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금사도주와 벽라도주의 눈이 한껏 커졌다.

‘뭔가 알고 왔네... 이거 청조정에서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이거 위험한 제안이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단숨에 쓸려 나갈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이거 배만 빌려 주고 청조의 힘을 빌려 이 상황을 고착시키려고 했는데 잘만 하면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국면이 될 수 있는 거 아냐?’

‘목장문 그 잔인한 새끼가 이걸 알면 우리를 가만히 두겠어?’

‘저 쪽에서 제안해 놓고 말을 흘리겠냐? 우리쪽만 조심하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우리도 조사를 한번 해보려고 한 사안이니까 당장 답을 주지 말고 이따 이야기 좀 해 보자구.’

두 도주가 바삐 전음을 주고 받는 사이 북리준과 일행들이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하하하, 갑자기 후욱 치고 들어오시니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한 것 같으니 오늘은 이 곳에서 묵으시고 내일 떠나시기 전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바삐 자리를 파하고 북리준과 일행들은 숙소로 이동하였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저들이 남해검문주에게 이 상황을 흘리면 어쩌려구?”

“그래도 나름 이득이 있는 거야. 흘린다면 남해검문주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몸이 달겠지. 그러면 결정적인 실수가 나올 수 있고 내가 의도한 대로 두 도주가 이 기회를 살리려 정보를 준다면 이것은 이것대로 도움이 되는 거지.”

“단주의 말이 맞다. 최악의 경우 배와 선원만 빌리더라도 우리는 그리 손해 볼 것이 없지. 이 숙부가 보기에 한 수 앞을 내다 보고 던진 오묘한 수라 생각한다.”

“내일 답을 준다고 하니 그 답에 따라 우리의 행동 방향을 수정 하면 돼. 서서히 목철군의 목을 조여 가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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