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72화 (72/167)

72. 쌍륜신위

“지금 나하고 내 배와 선원들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자는 겁니까?”

벽라도주가 왜구들과의 첫 번째 조우를 위해 벽라도 소속 상선 하나를 내어 달라고 찾아온 검단주 일행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봐도 장난이 심한 것 같군요.”

옆에 서 있던 금사도주도 굳은 표정으로 일행들을 위아래로 쳐다 보았다.

“상선 하나의 값이 얼마며 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선원 하나 길러내는 데 얼마만한 비용이 드는지 굳이 설명해야 합니까?”

해남검단주와 철면신산, 제갈청하, 유검패, 독고우, 막대광, 곤오 총 여덟 명이 왜구들을 잡으러 왔다는 말에 다시 한번 목에 핏대를 세웠다.

“상선을 덮치는 왜구놈들의 숫자는 적게는 팔십에서 많게는 백명 이오. 지난 번 이야기 했듯이 우리는 배와 선원만 제공해 주겠다고 했는데 당신들 여덟만 덩그라니 와서 뭐라고요? 배와 선원을 내달라고?

왜 아예 왜구한테 배를 갖다 바치라고 하지 그래, 엉?”

그 때 유검패가 자신의 봇짐에서 금괴 세 개를 꺼내 탁자에 올려 놓았다.

“이 정도면 배 한 척 사고도 남고 선원들도 어느 정도 벌충이 될 것이오. 우리가 무사히 돌아 올 때 까지 보관해 주시오.”

‘꿀꺽’ 침을 삼킨 벽라도주가 마찬가지로 탐욕스런 눈빛의 금사도와 눈이 마주쳤다.

“커험, 큼! 돈이 문제가 아니잖소. 어사대인과 일행들이 못 돌아 오면 누가 왜구를 막느냐 그 말이오.”

벽라도주의 말에 금사도주가 첨언을 했다.

“왜구놈들도 배는 끔찍이 아끼기 때문에 왜구놈들이 약탈을 위해 바다로 나설 때에는 반드시 마사히로의 제자 중 하나가 선장으로 동승 합니다. 마사히로의 제자들 중 무공이 빠지는 자가 없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코케닌 계급을 지닌 스무 명 중 하나가 동승을 한다구요?”

“그렇습니다. 그 코케닌이 배를 탈 때 혼자 타겠습니까? 자신의 측근들을 반드시 대동하지요. 그러니까 머릿수만 많은 왜구라고 생각하시면 큰 코 다칩니다.”

“그들의 무위는 어느 정도로 보면 되겠소이까?”

철면신산의 물음에 벽라도주와 금사도주가 서로를 쳐다 보았다.

“우리 중원 무림의 척도로 보자면 마사히로의 제자는 절정 정도. 그 측근은 일류 고수 정도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금사도주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모하게 자살하러 가는 것이 아니니 배와 선원을 내주시오. 막상 바다에 나갔다가 왜구를 못 만날 수도 있지 않소?”

“그렇기는 하지만.....”

‘지들이 자신이 있으니까 그냥 줘 봐라. 어차피 저 금의 반만 있어도 손해는 아니니까.’

‘야, 내 배를 타고 자살하러 가는데 손 흔들며 잘 가라고 하고 싶냐?’

‘직접 당해봐야 뜨거운 맛을 아는 거지. 막상 한번 당하고 나면 다시 배를 빌려달라는 말을 안 할테니까.’

“좋소이다. 단, 반나절만 돌다 들어오는 것으로 약조를 해 주시오. 선원들에게도 상선을 가지고 잠시 나갔다 오는 걸로 이야기 하겠소.”

벽라도주가 중급 정도의 상선 하나를 내어 주며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만일 왜구를 만나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선원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오.”

중급 상선의 돛이 펼쳐지고 벽라도 포구에 정박되어 있던 배가 미끄러지듯 저 너른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뭐 우리 끼리 해도 왜구 놈 팔십이고 백이고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꼭 그리 해 볼려구?”

막대광이 한껏 부풀어 오른 돛이 팽팽해지는 모습을 보고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항상 검을 먼저 사용해서 무뎌진 륜을 벼리려고 합니다. 왜구들의 바다에서의 약탈하는 방법도 보고 될 수 있으면 그 배도 끌어 오고요.”

벽라도와 금사도의 운용할 수 있는 배가 총 삼십척 정도로 그 수를 불려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정도 넓이면 충분 할 것 같으니까 왜구들과 조우하게 되면 제가 말씀 드린 대로 부탁 드립니다.”

시원한 바람과 독수리 만한 갈매기들이 연신 공중을 헤엄치는 모습이 식상할 때쯤 돛대 위에 오른 선원 하나가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왜, 왜선이다. 동북쪽, 동북쪽....”

일행들이 선원이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과연 날렵한 모양의 범선이 마사히로 가문을 상징하는 기를 휘날리며 맹렬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 배라고?”

오랜만에 해상 약탈을 위해 배에 오른 마사히로의 열여덟번째 제자인 하루가 망원경을 들고 있던 수하에게 물었다.

“벽라도 깃발을 단 상선입니다.”

“후후, 벽라도와 금사도의 배는 불문곡직하고 다 잡아오라는 사부님의 명이 계셨지. 추격하라!”

백 여명의 왜인무사들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저 앞에 도망가려는 상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도, 도망을 가야 합니다!”

배의 선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북리준에게 뛰어 왔다.

“도망 갈 수는 있겠소? 저 배의 속도가 이 배 보다 월등한데....”

“최선을 다해 봐야지요. 대인, 우리는 개죽음 당하기 싫소이다.”

“당신들이 죽음을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클클!”

막대광이 묵룡도를 어깨에 걸친 채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일단 도망가는 척이라도 해보시오.”

북리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회선!”

배 전체에서 ‘그아아아아아’ 몸서리 치는 소리와 함께 배의 선수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배로 도망가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하루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점점 가까워 지는 상선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만 데려간다. 배는 통째로 끌어갈 예정이니 최대한 파손을 줄여라.”

무서운 속도로 벽라도 깃발을 휘날리는 상선의 옆에 배를 붙인 왜구의 선박에서 수십개의 갈고리가 달린 밧줄이 날아 들었다.

‘타타탓 타타타타탓’

상선 옆 난간에 걸린 갈고리들에 연결된 밧줄을 왜구들이 달라 붙어 당겨내기 시작했다.

“여엉차 영차 여엉차 여엉차”

백 여명의 왜구들이 달라 붙어 당긴 힘에 의해 벽라도의 상선이 왜구들의 배 옆에 달라 붙었다.

“포기 한 건가? 저항이 전혀 없네.”

잔뜩 긴장 한 채 저 편에서 날아올 화살 공격이나 갈고리, 병장기들에 대비하고 있던 왜구들이 혀를 찼다.

‘쿠우웅’ 소리와 함께 배가 서로 달라 붙자 십여명의 성질 급한 왜구들이 신형을 일으켰다.

“넘어가자! 와아아아아아.”

십 여명의 왜구들이 상대편 배로 넘어 가려 신형을 띄운 찰나 ‘시이이이이잉’ 소름이 돋는 기음과 함께 ‘파바바바박’ 팔이며 다리, 목이 잘린 채 상대편 배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뭐, 뭐야?”

동료들이 신형을 띄운 찰나 하늘에 피분수가 뿌려지며 몸이 동강 나 떨어지는 모습에 일순 굳어져가며 서로를 바라 보았다.

“뭐하는 거냐? 빨리 안 넘어가, 엉?”

뒤에 있어 그 광경을 보지 못했던 왜구들이 고함을 질렀다.

“자, 잠깐만....”

“죽여라, 약탈하라!”

뒤에 서 있던 높은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맨 앞에 서 있던 왜구들이 고개를 난간 위로 살며시 내밀어 상선의 갑판 위를 살펴 보았다.

“응?”

“뭐여, 한 명이야?”

검은색 흑의 무복에 무기도 안 든 채 양팔을 편안히 늘어뜨린, 무심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 보는 사내를 보며 왜구들이 신형을 일으켰다.

“한 새끼 밖에 없다. 죽여라!”

“와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백 여명에 육박하는 왜구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상선으로 넘어 오기 시작하자 갑판위에 서 있던 사내의 팔과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일월단혼!

혈륜이 창공을 가르니 잡히지 않는 혼마저 두 조각으로 가르리라.

공간을 찢어 발기는 일월쌍륜의 궤적에 들어선 무엇이든 그대로 두 조각이 되어 공중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콰차차창 콰직 크아아아아악 카아악’

쌍륜에 걸린 검이든 도든 겸이든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며 무기를 든 왜구들까지 두 조각으로 갈라내는 신위에 뒤에 서 있던 하루가 고함을 질렀다.

“노, 놈을 포위하라. 포위해!”

전면에서 달려 드는 족족 피분수를 뿌리며 동강 나는 수하들을 좌우로 흩어지게 하여 삽시간에 갑판에 선 한 사내를 포위했다.

“칙쇼, 이 한 새끼 때문에 얼마나 죽은거야?”

족히 삼사십명의 왜구들이 여기 저기 잘려진 시체로 갑판 위가 그득해졌다.

“죽여버려, 갈가리 찢어서 죽여 버려!”

하루가 이성을 잃은 채 고함을 지르자 한 사내를 감싼 포위망이 조금씩 좁혀져 갔다.

“으아아아악”

사내의 손과 어깨가 움찔 거리자 앞에 서 있던 왜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겁먹지 마라. 한 명 뿐이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오륙십명의 동료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왜구들이 다시 천천히 자신들의 무기를 든 채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일월벽력!

창공을 찢고 떨어지는 두 개의 번개에 그 무엇이든 남아나지 않으리라.

사내의 양 어깨가 크게 한번 출렁이더니 두 손목에서 뻗어져 나온 흑백의 번개에 포위망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크아아아 내 팔.... 아아악 내 다리.... 커허허억’

사내의 손과 어깨가 넘실 거리며 발이 기이한 보법을 밟아 물 흐르듯 움직이는 동선에 수십명의 왜구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갔다,

“아름답네요!”

검단주의 요청으로 일행들과 선원들이 갑판이 환히 보이는 선실에 모여 북리준이 펼치는 죽음의 춤사위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제갈청하가 백여명에 가까운 왜구들에 둘러싸여 전혀 위축됨이 없이 추어대는 춤사위에 스러져 가는 왜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검단주의 성명 무기가 검인 줄 알았더니 륜이었구나.”

철면신산이 ‘콰르르릉’ 뇌성을 뿜어내는 일월쌍륜의 거침없는 비행에 혀를 내둘렀다.

“신인이셨구나. 저 분이 신인이셨어....”

선장과 선원들은 왜구들의 배가 자신들의 배 옆에 들러 붙었을 때 죽음을 예감하고 기도를 올리며 자신들을 사지에 보낸 벽라도주을 원망했었다.

“이, 이게 무슨.....”

자신들의 수하들 백여 명이 기세 좋게 벽라도의 상선으로 넘어간 후 이각이 안 된 시점에 두 발로 서 있는 우군이 자신을 포함한 측근 다섯 밖에 남지 않았음을 보고 하루의 시선이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마사히로의 제자놈이냐?”

어눌하지만 분명한 왜어로 입을 여는 사내를 향해 하루가 입을 열었다.

“나, 나를 아느냐?”

“내가 너 따위를 어떻게 알겠느냐?”

후둘거리는 다리에 힘을 준 하루가 자신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한 놈이다. 저놈만 죽이면 된다.”

“하이!”

자신의 측근 무사 다섯과 함께 천천히 죽음의 춤사위를 추던 사내를 향해 나아갔다.

“넌 누구냐?”

“해남검단주!”

“말도 안돼.... 청나라의 관리 나부랭이라고 들었는데....”그 때 북리준의 저 뒤 편 선실 문이 열리고 일행들이 천천히 갑판으로 나아왔다.

“검패!”

“네, 대인.”

“네게 좋은 기회가 될 듯 하다.”

“감사합니다!”

유검패가 자신의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아오자 뒤에 서 있던 막대광이 쿵 자신의 도를 바닥에 찍었다.

“나머지는 내 차지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날카로운 칼 같은 느낌의 무인을 향해 하루가 신형을 틀었다.

“네 놈들은 내 밥이다. 어따 신경을 쓰고 지랄이야?”

거대한 묵도를 들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노인을 보며 다섯 명의 무사들이 서로 눈짓을 하며 포위 진형을 갖추었다.

“안 도와도 되겠냐? 괜히 쪽 팔리게 칼빵 맞지 말고.”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대소를 터뜨렸다.

“아직 나 안 죽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