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73화 (73/167)

73. 성가신 놈

말이 끝나는 순간 다섯 무사의 왜도가 막대광의 전신을 저미기 위해 다섯 방향에서 찔러 들어오자 묵룡도가 회전을 하며 거대한 도면으로 왜도들을 튕겨 내었다.

‘하아아앗’

튕겨 나간 왜도가 다시 공중을 선회하더니 막대광의 목, 심장, 가슴을 노리고 재차 날아 들고 나머지 두 개의 도가 다리와 팔을 쓸어왔다.

“좋구나!”

다시 한번 묵룡도가 춤을 추며 세 개의 도를 휩쓸고는 그 여세를 몰아 하체를 노리고 신형을 낮추어 다가오는 무사를 둘로 갈라 버렸다.

“크으윽”

자신의 팔에 자상을 남기고 빠져나간 왜도의 주인을 쫓아가 기어이 두 조각으로 만든 막대광의 귀에 독고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칠칠치 못하게 칼침이나 맞고 다니고... 곤오야, 늙은이 도와 줘라.”

“가만히 있어! 오면 너부터 두들길테니까.”

곤오가 앞으로 나서려다 막대광의 말에 어깨를 으쓱 하며 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들이 좀 봐주었더니 뵈는 것이 없구나.”

막대광의 묵룡도 전신에 기이한 묵기가 어리는 듯 하더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왜도를 향해 거침없이 휘둘렀다.

‘콰차차차창 콰지직’

세 자루의 왜도가 순식간에 잘려 나가고 급히 뒤로 신형을 날리려는 세 무사의 가슴이 단 일도에 갈라져 버렸다.

‘크아아아아악’

“에이, 썅! 이게 무슨 창피래....”

자신의 왼팔에서 흘러 나오는 피를 보며 군시렁거렸다.

“동네 창피해서....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라.”

독고우의 빈정거림에 막대광이 얼굴이 벌개졌다.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좀 줄여야 겠다...”

유검패와 검을 맞댄 하루의 왜도가 공간을 가르며 상대의 목을 향해 쪼개어 지자 검패의 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상대의 심장을 노리고 나아갔다.

‘차창 차차차창’

연이어 자신의 검신을 두드리며 나아오는 기이한 검세에 하루의 안색이 일변했다.

‘내 밑이 아니다.’

두 손으로 사부가 직접 내려준 도를 다시 한번 그러잡고는 일도필살의 기세로 공간을 단축하며 신형을 날렸다.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양단하기 위해 날아오는 왜구 무사를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던 검패의 검이 단 일점을 향해 기쾌하게 뻗어나갔다.

‘커어어헉’

상대를 양단하기 위해 내리쳐진 검은 상대의 어깨 한 치 옆으로 빗나갔고 상대의 검이 일직선으로 자신의 심장을 쪼개는 충격에 왈칵 피를 토해내고는 그대로 허물어져갔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대인!”

갑판을 가득 메운 왜구들의 시신을 보며 독고우가 뒤에 경이로운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선원들을 바라 보았다.

“다 바다에 던지고 배는 가지고 가세.”

****

“이게 가능해?”

벽라도주가 자신의 상선에 달려 끌려 오는 거대한 왜구의 범선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떠 다니는 빈 배를 그냥 끌어 온 것은 아니겠지?”

“미친... 저 깃발 안 보여? 마사히로 놈의 기잖아. 저건 분명 왜구놈들의 약탈선이 분명 하다구.”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벽라도 포구로 들어서는 배 두 척을 보며 옥신각신 말을 주고 받았다.

“수, 수고 많으셨습니다.”

배에서 내려오는 검단주 일행을 두 도주가 뛰어가 맞이했다.

“다행입니다. 왜구가 적게 탄 배와 조우 하셨나 보군요.”

벽라도주의 말에 제갈청하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백 명이 훌쩍 넘었던데....”

“배, 백명이 넘었다구요? 그런데....”

처음에 배에 올랐던 여덟명의 일행 뒤에 줄지어 내려서는 선원들을 보며 벽라도주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도 안 죽었습니까?”

“왜 꼭 죽어야 하나요?”

제갈청하의 말에 벽라도주가 당황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맡겨 놓았던 금괴를 내 오시오.”

유검패의 말에 벽라도주가 부리나케 집무실로 뛰어 가고 금사도주가 끌고 온 왜구의 범선을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왜구들의 배를 이렇게 나포해 오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이 배는 어떻게 하실런지요?”

금사도주가 배의 처분을 묻자 철면신산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군선으로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해 주시오. 비용은 우리가 부담 할 것이고 운용은 두 도주님께 맡기겠소.”

“아, 예! 알겠습니다.”

벽라도주가 나는 듯 금괴를 들고 돌아와 유검패에게 건네고는 금사도주와 마찬가지로 왜구의 범선 앞에 침을 흘리고 섰다.

“어떻게....?”

“이야기 다 끝났네. 이따 내가 설명해 주지.”

금사도주의 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벽라도주를 향해 제갈청하가 다가갔다.

“저희 일행이 쉴 수 있는 방을 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쉬고 내일 복귀 하겠습니다.”

“아, 네네! 여봐라, 귀빈들을 모시거라.”

벽라도주의 명에 북리준 일행들을 안내할 무인이 앞으로 나서자 금사도주가 입을 열었다.

“저녁은 저희와 함께 하시는 것이....”

“그렇게 하지요.”

제갈풍이 말을 마치고는 앞서 나가는 일행들을 따라 나섰다.

“거기 너희들, 이리로 와 봐!”

벽라도주가 저 뒤에 엉거주춤 서 있던 선원 이십여명에게 손짓을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설명을 해 보거라.”

그제서야 입이 근질거려 미칠 것 같은 표정의 선장이 앞에 나서서 입에서 침을 튀기고 손짓 발짓을 해대며 말을 쏟아 내었다.

“왜구 놈들의 배를 발견한 순간 저희는 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냅다 뱃머리를 돌려 도망치려 했지요. 물론 왜구들의 범선에 바로 따로 잡히고 해적들이 던진 갈고리가 날아 드는 순간 바다로 뛰어 들어야 하나 고민을 했더랬지요.”

“서론은 빼고 본론만!”

벽라도주의 채근에 선장이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왜구들이 저희 배로 넘어오기 전 저 가면을 쓰신 대인이 같이 오신 일행분들과 저희 선원들을 갑판이 내려다 보이는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명을 내리셨습지요.

그 후 홀로 검도 없이 갑판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이 자살도 희한하게 한다.’ 라고 생각이 들었지요.”

“혼자? 저 일행들이 다 있던 것이 아니고?”

금사도주의 물음에 선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때 왜구들이 저희 배로 넘어오기 시작 하는 순간 ‘시이이이잉’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나더니 공중에 신형을 띄운 왜구들이 동강 나기 시작 하더라구요.

갑자기 피분수를 뿜어내며 팔다리 목 등이 후두둑 갑판에 떨어 지는데 전 하느님이 저 놈들에게 천벌을 주시는 건가 두 눈을 비볐더랬지요.”

“뭐래? 하느님, 천벌?”

벽라도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 보니 저 대인의 양손에서 흑색과 백색의 륜이 뻗어 나와서 왜구들을 쓸어 버리는 장관을 저는 평생 못 잊을 거구만유.”

“호, 혼자서 왜구들을 쓸어 내었다고?”

“네, 나중에 보니 저 뒤쪽에 복장이 고급스런 왜구 다섯 놈이 얼빠진 모습으로 있다 정신을 차리고 달려 들다 아까 금괴를 받아간 무사님과 거대한 묵도를 등에 매단 노인무사님께 목숨을 잃었지요. 이게 끝입니다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선장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부선장을 손가락을 가리킨 벽라도주가 되물었다.

“선장 술 먹었냐? 저 거짓말이 진짜냐구?”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저 대인분이 사신이었죠. 왜구들에게는.....”

선원들을 돌려 보낸 벽라도주를 향해 금사도주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거.... 우리가 동아줄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그나 저나 저 왜구의 배를 샅샅이 살펴 보자구. 뭔 수작을 부렸길래 우리 배 보다 그리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말이야.”

“마사히로놈 뚜껑 제대로 열렸겠는데? 근 십년 동안 왜구놈들의 배를 이렇게 온전히 끌어 온 적이 없었잖아?”

“그 뿐이야? 아까 선장이 이야기한 옷차림이 고급스런 무사들.... 아마 코케닌 중 한명 이었을 거야. 마사히로의 직전 제자!”

두 도주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왜구의 범선에 오르기 시작했다.

****

‘너무 남해무극칠절에만 의지하고 있었구나. 일월천뢰륜법을 검법의 보조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었어.....’

지괴의 일월천뢰륜법의 성취가 약 육성 정도 다다랐으나 이갑자의 내공에 이르기가 요원하여 뒤로 미뤄두었던 검법과 륜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운용 할 수 있는 것은 네 개의 륜법 중 두 개 밖에는 안된다. 일월파천과 일월파황은 현 상황에서 사용 할 수 없고.....

남해무극칠절의 경우 칠성의 경지에 전반 다섯검법의 운용만이 가능하다.’

남해무극칠절 중 단섬, 낙영, 뇌격, 광룡, 만파의 경우 검을 펼칠 수 있으나 후반 두 개 검법인 멸절과 무극은 아직 그 검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의 경지만으로 목철군과 마사히로를 깰 수 있다고 장담 할 수가 없다. 여지껏 검단에 대한 정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혔으니 내 무공을 참오하는 시간을 늘려야 겠다.’

다수의 적에 둘러싸였을 때 일월쌍륜의 효용성을 체험한 북리준이 남해무극칠절과 일월천뢰륜법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열 여덟째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대사형이며 제일 코케닌인 카이토의 보고에 마사히로가 안색을 굳혔다.

“자세히....”

“닷새 전 열 여덟째인 하루가 순번에 의해 바다로 나갔으나 현재 까지 복귀를 안 하고 있습니다.”

“안 하는 건가? 못 하는 건가?”

마사히로의 차가운 음성에 카이토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이,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지금 열 척의 군선이 하루의 배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 닷새 동안 폭풍이 왔느냐?”

“아닙니다. 폭풍으로 인한 난파는 고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그 새끼와 배가 하늘로 솟아 올랐는지 바다 속으로 짓쳐박혔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지, 지금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 때 카이토의 최측근이 안에 들어서며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렸다.

“벽라도에 있는 간자로부터 전언이 들어왔습니다.”

카이토가 인상을 찌푸린 채 건네주는 전언을 받아 들고 읽어내려가는 도중 얼굴이 점점 하애지는 것을 본 마사히로가 손을 내밀었다.

“직접 읽겠다!”

“하,하이....”

카이토가 떨리는 손으로 건네준 종이를 들어 읽어내려가는 마사히로의 얼굴에 점점 서리가 짙게 내려 앉았다.

“하루 놈의 배가 벽라도에 있다? 해남검단주 혼자서 왜구 백명을 도륙했고 하루와 그 떨거지들의 목도 떨어졌다.....”

“뭔가 과장된 면이....”

“닥쳐라! 해남검단주라는 놈에 의해 우리 배가 벽라도에 끌려 간 것은 사실이잖느냐?”

“그, 그건....”

“새로 온 관리놈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구나. 뭍에 올려 보낸 우리 측 인원 사상자가 지난 육개월 동안 얼마나 되지?”

“처, 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신임 해남검단주가 내려온 지 육개월 동안 약탈을 위해 뭍에 오른 수하들 중 불귀의 객이 된 수가 천명이라는 말에 마사히로의 몸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는 바다에서도 설치시겠다? 도저히 이 놈을 그냥 둬서는 안되겠구나....”

육개월 전 해남검단주가 내려왔을 때 신경이 거슬리는 정도라 성가신 놈으로 치부했던 존재가 실제 처음으로 자신의 배를 빼앗아간 사실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본토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느라 네 놈에게 남해를 맡겨 놓았더니 아주 개판을 만들어 놓았구나.”

마사히로의 질책에 카이토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용서를....”

“신이치와 아야토를 불러라. 풍마류 전체를 갈아 넣더라도 그놈을 반드시 죽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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