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74화 (74/167)

74. 음모의 밤

침중한 기색의 신이치와 아야토가 방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태사의에 앉아 있던 마사히로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무슨 일인가?”

“그 때 네 놈이 살행에 실패 했던 자! 이번에는 반드시 지워야겠다.”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냐?”

“이번에 성공하면 네 놈이 그리 원하던 풍마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마.”

마사히로의 말에 신이치와 아야토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최상급 살행을 시행하겠다.”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 해야지.”

“어찌 해 주기를 바라는가?”

“기다려라!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을 짜주겠다.”

“약속은 지키리라 믿는다.”

“물론! 단,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풍마류 전체가 내 밑으로 들어온다.”

마사히로의 말에 신이치가 입술을 비죽 올리며 신형을 돌렸다.

“판이나 짜 두거라.”

신이치와 아야토가 자신들의 집무실로 돌아와 자그마한 술상을 사이에 두었다.

“기회입니다. 저희 풍마류가 머물 섬은 이미 탐색을 마쳤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나 고민했는데 검단주라는 놈이 고맙게 느껴지는군.”

술잔을 들어 입안에 머금고 혀를 굴리던 신이치를 향해 아야토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판을 깔아 주겠다는 지에 따라 투입 인원과 작전을 정하겠습니다.”

“일호부터 백호까지 특급. 일급 살수 총 구십오명과 게닌(下忍) 이백 이상을 동원한다는 가정하에 무기와 물자를 수배해라.”

“하이!”

“우리 풍마류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단숨에 잔을 비운 신이치의 눈에서 강렬한 열망의 빛이 일렁거렸다.

****

“마사히로가?”

목철군이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온 목철우의 말에 단천수사 방백이 가져온 서류를 검토하던 눈을 들었다.

“해남검단이 내 손에 다시 돌아오기 전 까지는 보지 않기로 했는데?”

“변수가 생긴 모양입니다.”

“변수? 어떤?”

“자세한 것은 직접 장문에게 말하겠다고 합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그 어사 놈이 내려온 육개월 동안 마사히로 쪽의 피해가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동생이며 언제 어디서든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목철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놈들이 내려온 후 뭍에 약탈을 위해 올라온 왜구들의 상당수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반에는 어사 놈과 같이 내려온 동창, 금의위, 무림세가 놈들이 순찰을 돌아 왜구들을 도륙한 모양입니다. 그러는 사이 하후세가의 인물들이 백명의 창대를 만들고 일반 단원들에게는 삼재검진을 훈련 시켰던 모양입니다.”

“창대는 뭐고 검진은 뭐야?”

목장문의 물음에 목철우가 찻잔을 들어 메마른 입안을 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후세가와 낭인 중에 섬전창이라는 별호를 쓰는 놈이 창수 백명을 길러내었는데 각 대에 창수 이십인씩을 배치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에 검단원 한 놈 한 놈의 무공실력이야 삼재검법을 겨우 사용하는 수준이었는데 이 놈들이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이는 검진으로 마사히로의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목철우의 보고에 목장문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어사라는 놈, 단순히 운만 좋은 관리는 아니었나 보군.”

“결정적으로 뭍에서 본 손해는 바다 위에서의 노략질로 갈음해 왔는데 열흘 전 그 어사놈이 벽라도의 배를 빌려 타고 나가 마사히로의 범선을 끌고 돌아 왔답니다.”

“벽라도에서 배를?”

자신이 두려워 마지 않는 형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떠오르자 목철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게 벽라도주와 금사도주가 그 어사놈과 회합을 한 후 배와 선원을 내 주기로 약조를 한 모양입니다.”

“방백!”

옆에 서서 목철우의 보고를 말없이 듣고 있던 단천수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사히로와는 연을 서서히 끊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저희들의 목표인 중원본토의 진출에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벽라도, 금사도와 해남검단주와의 밀약은 두 도주의 마지막 발악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해남검단에 왜구 척결을 위한 배를 내어 주고 조정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 받으려는 얄팍한 속셈에 저희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요.

보름 후, 벽라도와 금사도가 해남검문 기치 아래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방백을 보며 목철군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기대하지! 마사히로 놈의 효용가치가 다 할 때 까지는 장단에 맞춰 주는 것으로 한다.”

****

남해검문을 빠져나온 목철군과 철우가 포구에 대기 하고 있던 소선에 몸을 실었다. 어둠이 가득 내려 앉은 바다를 헤치고 나아간 지 한 시진 정도 되어 자그마한 무인도에 배를 가져다 대었다.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거라.”

목철군이 자신의 검을 들고 홀로 섬에 내려 익숙한 걸음걸이로 기괴한 모양의 바위 쪽으로 나아갔다.

“오랜만이군.”

파도에 휩쓸려 마모될 대로 마모된 거대한 바위 그림자에서 마사히로가 신형을 일으켰다.

“당분간은 보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목철군의 말에 마사히로가 흰 이를 드러낸 채 대답을 했다.

“문제가 생겨서 도움을 좀 청하려 하네.”

“말해봐.”

“해남검단주라는 놈, 이번에는 제대로 지워 주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확실하게 놈을 지우기 위해 판을 좀 짜 주게.”

마사히로의 말에 목철군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판?”

“내 휘하에 풍마류라는 본토에서 한 손가락에 꼽는 닌자 가문이 있네. 중원에서는 살수단체라고 하더군.”

목철군이 팔짱을 낀 채 마사히로가 하는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 놈들을 다 집어 넣어 확실하게 그 어사놈의 숨통을 끊어야 겠네. 우리 쪽 손실이 만만치 않아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렇게 할 예정이네.”

고요한 달빛이 화사하게 내려 앉은 무인도 바위 위에 남해검문의 수장과 왜구들의 수장이 음습한 음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

주작대 소속으로 마사히로와 관련된 왜구들에게 정보를 수집하는 광동 포구 홍루에 몸담고 있는 미려에게 오랜만에 단골 손님이 찾아 왔다.

“저, 정말 보고 싶었다....”

항상 수줍은 듯한 표정 뒤에 잔인하고 포악한 폭력을 자행하고는 그 다음날 아침 미안하다고 눈물을 쏟아 내는 정신병자 같은 유키토라는 이름의 무사를 보며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유키토상,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나름 마사히로 휘하에 코케닌 중 최측근이라고 떠벌리는 놈에게 꽤나 유용한 정보들이 간간히 흘러 나와 주작대주가 꽤 많은 군자금을 건네며 예의 주시하라는 자였다.

“와우, 완전 진수성찬이네.”

오랜만에 온 놈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뽑기 위해 놈이 좋아하는 음식과 술을 준비해서 단 둘이 사방이 분홍빛인 방 안에 자리를 잡았다.

“한잔 받으시와요!”

이 곳 광동 포구 홍루에 몸 담고 있는 기생들 중 빼어난 미모와 언변으로 인기가 높은 미려가 자신에게 애정을 준다는 착각에 유키토의 눈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술이 두어순배 돌고 미려가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키토상, 섬에서의 생활은 즐거우신지요?”

“칙쇼, 즐거울 수가 있나? 요새 내게 할당 되어진 사람같지도 않은 새끼들 때문에 하루 하루가 지옥일세.”

“아, 지난번 말씀 하신 풍... 뭐라 하는 살수들 말씀이신가요?”

“맞아, 풍마류라고 하는데 아주 정신 나간 개새끼들의 집단이지. 오죽하면 사람 멱을 따는 살수짓을 업으로 삼았을까....”

미려가 연신 유키토의 잔을 채워 주며 같이 잔을 비우고 방이 덥다고 하며 그렇지 않아도 속이 훤히 비치는 옷들을 하나씩 벗어 나갔다.

“크흑, 내가 이 맛에 이 곳에 목숨 걸고 오는 거지.”

당장이라도 미려를 덮칠 듯 입맛을 다시는 유키토를 미려가 기술적으로 달랬다.

“아힝, 밤은 길다구요. 저는 유키토상의 대해 더 알고 싶다고요.”

고혹적인 눈빛으로 입을 여는 미려를 보는 유키토의 눈이 더욱더 풀려 나갔다.

“그 풍... 뭐라는 살수 집단이 유키토상을 많이 괴롭히나 봐요?”

“크크크, 그렇기는 한데 조금만 참으면 내게도 자유가 온다고. 그러면 미려상을 보러 더 많이 나올 수 있고....”

“조금만 참으면? 그럼 그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이 섬을 떠나는가 보군요.”

기분 좋게 잔을 비운 유키토가 기대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려를 보며 침을 흘렸다.

“청나라에서 내려온 관리 하나의 목을 따기 위해 총 출동 한다더군. 그 살행이 성공하면 그 풍마류 개새끼들이 자신들만의 섬으로 떠난다는 거야! 정말 진정한 자유가 찾아 오는거지.”

‘청나라 관리.... 총 출동.... 자신들만의 섬..’

미려가 횡설 수설하는 유키토의 말에 자신만의 암기법으로 필수 단어들을 머리에 새겨 넣었다.

“축하드려요. 언제쯤 유키토상을 지금 보다 더 자주 볼 수 있을까요?”

“앞으로 길어야 한달 정도..... 그 새끼들이 내게 폐만 끼치는 것이 아닌 것이 그 놈들이 쓴다는 무기들과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이렇게 나와서 미려상을 볼 수 있으니까 좋네.”

술이 취해 수줍은 얼굴에 가려져 있던 폭력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오려는 모습에 미려가 이를 악다물었다.

‘캐야 할 것이 많다..... 오늘 밤은 많이 길겠구나!’

자신의 옷을 거칠게 벗어 제끼며 언제 준비해 왔는지 모를 짧은 채찍을 든 유키토를 보며 미려가 억지 웃음을 지었다.

****

“남해검문에서 협조 요청이 왔어.”

아침 수련을 마치고 몸을 씻은 후 서류를 들여다 보던 북리준 앞에 제갈청하가 섰다.

“무슨? 놈들이 우리한테 요청할 협조가 있어?”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면 해남검단이 남해검문의 지휘를 받았을 때 남해검문에 일손이 달리거나 인원이 필요한 경우 검단원을 차출해서 일정기간 활용해 왔었나봐. 지금 대수리 기간에 일손이 많이 달려 검단원의 차출을 요청해 왔어.”

제갈청하가 내민 협조 공문서를 받아든 북리준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가 꼭 협조를 해야 할 의무도 없고 말이지.”

“공문의 내용을 보면 목장문이라는 놈은 아직도 자기가 이 곳에서 왕인줄 아는가 봐.”

북리준이 내용을 보다 헛웃음을 지었다.

“검단원 사백명을 사흘 동안 빌려 달라고?”

“기간은 짧은데 인원이 너무 많네. 거부한다고 회신 할까?”

“미친 놈일세. 지금 뭍에 기어올라오는 왜구들 목을 치기에도 인원이 모자란데.....”

그 때 밖에서 곡굉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단주, 나 곡굉일세.”

“들어 오세요.”

방 안으로 들어서는 곡굉의 뒤로 철면신산과 주작대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데....”

셋의 얼굴에 떠오른 심각한 기운에 제갈청하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봉공, 날세! 들어가도 되겠는가?”

독고우의 목소리에 북리준이 일행들을 돌아보자 철면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세요.”

독고우와 막대광, 곤오가 땀에 절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지나가다 세 분의 얼굴이 심각해 보여서 혹시 우리가 도움이 될까 해서 들어왔네. 혹여 방해가 된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저도 어떤 상황인지 듣지를 못했는데 숙부님들도 같이 들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자신의 책상에서 내려와 방 한가운데 회의를 위한 탁자에 일행들이 자리를 잡았다.

“주작대주에게 예정에 없는 보고를 하러 온 대원의 이야기를 우연히 같이 듣게 되었는데 좀 많이 심각해 보여서 철면신산 대협께 말씀 드리고 바로 오게 되었어.”

곡굉이 말머리를 꺼내고는 주작대주인 상수인을 바라 보았다.

“광동 포구 홍루에서 마사히로 쪽의 유력인사와 연이 닿은 저희 단원에게 초지급으로 받은 정보입니다.”

상수인의 말에 제갈청하와 북리준, 독고우 일행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수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앞으로 한 달 안에 풍마류 라는 닌자 가문의 고수 수백이 검단주님의 목숨을 노리고 이 곳을 습격한다고 합니다. 마사히로가 검단주님에 대한 의뢰가 성공하면 풍마류 전체를 독립 시켜 주겠다는 확답을 했다고 합니다.”

상수인의 말에 철면신산과 곡굉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의 눈이 커졌다.

“수백? 미친 놈들이 우리측 인원 오백이 넘는 이곳으로 검단주를 죽이기 위해 뛰어 들어 온다는 거야? 허허허...”

막대광이 헛웃음을 지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북리준과 제갈청하의 눈이 마주쳤다.

“공문!”

“구린 냄새가 진동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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