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77화 (77/167)

77. 우리꺼야.

해남검단원들의 처소인 천막에서 각 전각에서 넘쳐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독고우가 한 거구의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곡주! 수하들의 실력이 일취월장 했군.”

“왜국의 살수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수치이지요.”

자신의 제자이자 아들이며 현 곡주인 사망도 독고패가 웃음을 지었다.

“저 앞에 나아간 놈들은 제법 힘깨나 쓸 것 같던데?”

“이미 황금띠를 두른 놈들은 놔 두라 지시를 했습니다.”

“잘했네. 쓸데없는 희생은 줄여야 하는 법.”

“그나 저나 청부대금에 비해 투입된 살수들이 많으니 조금 더 쳐 주시지요.”

“허허, 이미 끝난 이야기를....”

“아무리 전대 곡주시고 제 아버지시지만 구할을 깎는 경우는....”

“우리 땅을 왜구의 살수들이 더렵히려는 것을 알려 주었잖아. 그리고 맨 입으로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어휴!’

“욕 하는 거 다 들린다.”

“아니요. 제가 언제....”

“네 놈들 하는 거 봐서 조금 더 줄 수도 있으니까 일을 다 마치고 셈을 다시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저는 적을 마중하러 이만....”

뒷짐을 진 채 느릿하게 왜국의 살수들이 나아간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독고우의 뒤에 서 있던 풍령곡주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지워져갔다.

“십일호, 가서 목표물의 목을 가지고 오너라.”

“하이!”

일호의 명에 십일호가 목표물이 있는 전각 옆에 십구호와 이십호를 보내고 자신을 포함한 여덟명의 닌자들이 검단주가 있는 전각 앞으로 모여 들었다.

수신호를 이용하여 자신은 정문으로 나머지 일급살수들은 양 옆에 나 있는 창문과 지붕에 자리를 잡았다.

뒤에 지켜 보던 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일호가 품에서 묵색의 무엇인가를 꺼내어 정문 안으로 집어 던졌다.

‘퍼펑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뭉클 거리며 안에서부터 퍼져 나옴과 동시에 십일호와 닌자들이 정문, 창, 지붕에서 안으로 신형을 날려 들어갔다.

‘차창 차차창 슈스스스슉 피비비핑 푸푹 사아악’ 검이 맞닿는 소리와 암기들이 공간을 가르는 소리, 살이 갈라지며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 잠시 후 무거운 침묵이 전각 안에 내려 앉았다.

“끝났나 보군. 너무 과했어....”

일호가 혀를 차며 신형을 돌려 나가려는 찰나 이호가 입을 열었다.

“일호, 확인을.....”

안에서 흘러 나오는 피내음이 점차 진해지는 중에 십일호가 목표의 목을 들고 나와야 함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일호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육호부터 십호까지 확인!”

오른팔에 황금띠를 두른 다섯의 특급 살수들의 신형이 전각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전각 지붕으로 스며든 육호의 눈에 창과 문에서 새어 들어온 달빛에 갈라지고 널부러진 일급 살수 여덟의 시신을 보며 귀식대법으로 숨을 죽였다.

‘살수들의 솜씨! 이도류 놈들이 이 곳에?’

한 호흡에 도륙되어진 살수들의 시신을 훑어 보며 적들의 움직임을 잡아 내기 위해 하나의 대들보가 되어 갔다.

목표물이 있는 전각 옆에 들어간 십구호와 이십호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잠잠한 전각을 보고 일호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오호!”

순식간에 자리에서 지워진 오호의 신형이 어느새 전각 안 칠흑 같은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슈카각’

자신이 방금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는 검의 궤적을 보며 반대편 대들보 그림자에 녹아 들어갔던 오호가 급격히 다시 튀어 나왔다.

‘파바바바박’ 소리와 함께 자신이 서 있던 대들보에 틀어박힌 암기를 보고는 순식간에 땅과 하나가 되었다. 땅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댄 오호의 얼굴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최소 다섯! 일급 이상.....’

귀식대법으로 호흡과 심장소리까지 죽인 오호가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십구호와 이십호는 이미 죽었다.’

전각 안에서 피어 오르는 피내음에 인상을 구긴 오호가 이를 꽉 깨물었다.

‘여기에 우군은 나 혼자! 난전으로 이끌면 놈들이 함부로 나대지 못할터....’

칠흑 같은 어둠에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점을 취한 오호가 과감히 장도와 중도를 양 손에 감아쥐고 신형을 일으켰다.

‘카캉 카카캉 캉 가아아악’

순식간에 십여합을 부딪친 후 적들의 난전을 유도하기 위해 긴급히 천장에 달라 붙은 오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왜? 설마 이 어둠 속에 적아를 구분한다고?’

급히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고 그 자리에 검과 암기가 틀어 박히는 중에 밑에서 기다리던 검들이 오호의 전신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목이 떨어져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문을 품은 채 치켜떠진 눈을 감지 못했다.

육호부터 십호까지 다섯 특급 살수가 각자 은신한 곳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겁도 없이 서서히 신형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슈카가가가각’

칠호의 왜도가 겁 없이 신형을 일으킨 적의 목을 향해 신속하게 뻗어 나갔으나 적이 내민 거대한 도에 막혀 어둠속에서 불빛을 일으켰다.

‘퍼어억’ 기음과 함께 순식간에 거도에 두 조각이 난 칠호의 모습에 육호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 일도에....’

풍마류의 특급 살수들이 팔에 두른 황금빛 띠에 새겨진 숫자를 어둠 속에서 자신들만이 구분 할 수 있도록 훈련하여 방금 갈라진 시신이 칠호임을 나머지 살수들이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화아아아악’ 거도를 든 사내가 화섭자를 꺼내 불을 피우자 네 명의 특급살수들이 암기와 슈리켄, 단검을 뿌려 내었다.

‘콰가가가가각’ 거도의 궤적에 휩쓸린 슈리켄, 단도, 암기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다시 중도와 장도를 든 특급 살수들이 다음 공격을 하려는 찰나 우모침, 단혼사, 혈심전 등이 빼곡하게 공간을 메우고 날아 들었다.

“흥!”

육호가 자신의 왜도를 든 채 팽이처럼 신형을 돌려 암기를 거둬내고 땅에 내려서는 찰나 거대한 도가 풍압을 일으키며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창 퍼어억’ 도를 방어하려 든 장도가 박살이 나며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터뜨려 버린 거도가 몸까지 두 조각으로 갈라 버렸다.

육호가 두 조각으로 갈려나가는 시점에 자신의 옆 공간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검에 양 옆구리를 관통당한 팔호가 그 자리에서 피를 쏟아내며 절명했다.

‘특급 이상....’

자신들과 동급 내지는 그 이상의 경지임을 깨달은 구호와 십호가 전각을 벗어 나기 위해 땅을 박차고 천장을 뚫으려는 찰나 ‘파라라라락’ 기음과 함께 전신에 독을 잔뜩 머금은 쇠침이 빼곡한 쇠그물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으으으윽 커허어억’

지독한 맹독을 머금은 침에 전신이 꿰뚫린 구호와 십호가 땅에 떨어져 내린 채 두어 번 경련을 일으킨 후 잠잠해졌다.

“곡주! 다 해치웠습니다.”

전각 회의실 중앙에 거도를 든 채 서 있던 사망도 독고패가 고개를 한번 휘돌려 목을 풀어 내고는 입을 열었다.

“남은 떨거지들을 정리하러 가자!”

일호가 두 전각에 들여 보낸 특급 살수들 마저 잠잠해 지자 불안한 마음에 직접 움직이려는 찰나 전각 뒤 숲에서 두런 두런 목소리가 들여 오기 시작했다.

“살수들의 싸움은 살수들이 마무리 짓는 것이 맞다니까.”

“아, 그러지 말고 저기 서 있는 떨거지 중 하나만 줘봐. 몸이 근질 거려 못 참겠다구.”

독고우에게 애원하며 몸을 드러낸 막대광의 뒤로 북리준과 철면신산, 제갈청하와 무림세가의 후기지수, 유검패와 동창, 금의위의 고수들이 차례로 신형을 드러내었다.

“우리가 당한 것인가?”

“그렇지, 완전히!”

일호의 당혹스런 물음에 자신의 앞 전각 정문을 걸어 나오는 거구의 사내가 대답을 했다.

“어디 감히 왜국의 살수들이 신성한 중원에 발을 붙이려고 해?”

머리에 風(풍)이라는 검은색 글씨가 선명한 풍령곡주가 거도를 땅에 쿵 내리 박았다.

“중원의 살수들인가?”

자신들과 동류의 향기를 맡은 일호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풍령곡이라고 한다. 중원 제일의 살수문파에 목이 달아나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자신들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수백의 살수들을 보며 일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결코 과하지 않았군..... 오히려 모자랐어...”

일호부터 사호까지 네 명의 특급 살수들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내가 네 놈들이 목표했던 해남검단주다. 이리 허망하게 수하들이 다 죽고 네 놈들 또한 죽어갈 생각을 하니 아쉽겠지....”

앞으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나서는 눈 부위를 가린 가면을 쓴 자를 향해 이를 악다문 일호가 눈에 독기를 품어내었다.

“기회를 주지. 너희 넷을 나 혼자 상대해 주마.”

이백이 넘는 풍마류의 닌자들을 다 잃더라도 목표을 완수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주군이 마사히로 놈에게 빌붙어 사는 수모를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일호가 네 명의 살수들에게 입을 열었다.

“저 놈과 함께 저승에서 만나자!”

일호의 말에 나머지 세 명의 살수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일호는 장도와 왜도를 교차해서 들었고 이호는 양 손에 수리검 세 자루씩을 겹쳐 들었으며 삼호는 쇄겸(사슬낫), 사호는 만력쇄(추가 달린 사슬무기)를 꼬아 들었다.

“우리가 해도 되는데 굳이 위험하게....”

독고패의 우려섞인 말에 독고우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좋은 구경이 될테니 두 눈 씻고 잘 보거라.”

천천히 일월신검을 뽑아든 북리준이 걸음을 옮기자 네 명의 특급 살수들이 북리준을 포위하는 형세를 취했다.

‘쇄애애애액’ 이호의 수리검이 북리준의 전신을 꿰뚫기 위해 공간을 헤집으며 날아들고 그 뒤를 이어 삼호의 쇄겸과 사호의 만력쇄가 적을 찢고 부수기 위해 비행을 시작했다.

‘지금!’

해남검단주라는 자가 세 명 살수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검을 치켜들려는 찰나 일호가 자신의 눈에 보인 유일한 허점을 향해 신도합일의 수법으로 땅을 박찼다.

‘만파는 말이다. 말 그대로 파도의 산이다. 검으로 일으킨 만 개의 파도, 누가 그것을 거스를 수가 있겠느냐?’

‘쿠르르르르르릉’ 북리준이 든 일월신검에서 거친 파도 소리가 들려 오는 듯 하더니 수 많은 검의 파도가 산 같이 일어서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역으로 덮쳐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악”

전신을 헤집는 검기의 파도에 전신이 저며진 세 명의 살수들이 그 자리에서 피모래로 화하고 간신히 신형을 빼낸 일호 또한 가루가 되어 버린 자신의 오른팔과 다리를 보며 허물어지는 신형을 왼팔에 든 장도로 땅을 짚고 버티어섰다.

“그, 그것이 주, 중원의 무공인가....?”

“그렇다. 네 놈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무공이 존재 하는 이 땅, 중원 무림이다!”

순간 ‘패애애앵’ 기음과 함께 공간을 가른 월륜에 의해 목이 잘린 일호가 서서히 그 자리에서 무너져갔다.

너무도 압도적인 무공에 좌중의 인물들이 침묵에 잠겨들었고 막대광이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침묵을 깼다.

“봤지? 우리 검단주 한테 개기면 저렇게 되는 거야.”

****

“끼이익 끼익 끼이익”

어둠에 잠긴 바다를 수많은 소선들이 남해검문의 기를 내건 범선을 향해 나아갔다.

“정확하군. 두 시진이라더니....”

풍마류의 죠닌 아야토가 자신이 탄 배로 접근해 오는 소선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승선이 완료되면 바로 출발한다.”

“하이!”

자신과 함께 배에 남아 있던 선원에게 지시를 내린 후 아야토가 닌자들이 올라 오는 뱃머리에 올라섰다.

“수고 많았다....으응?”

배에 올라서는 피에 절은 풍마류 닌자 무복을 입은 자들에게서 느낀 이질적인 기운에 아야토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리는 찰나 ‘솨아악’ 휘둘러진 대도에 둥실 허공에 아야토의 머리가 떠올랐다.

“자, 이제 이 배는 우리꺼야.”

복면을 벗어 제낀 막대광이 우렁 우렁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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