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후환이 두렵지 않소?
“그, 그게 말입니다....”
벽라도주가 새벽녘에 해남검단주가 끌고 온 군선 앞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뭐가 문제인지요?”
남해검문의 기가 거센 바람에 펄럭이고 배 측면에 그려진 남해검문의 상징인 수룡의 그림을 보고 다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어, 어사대인! 이건 아니지요....”
옆에 같이 서 있던 금사도주 또한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해검문의 배를 나포해서 이 쪽으로 끌고 오시면 저희가 아주 곤란해집니다. 바로 돌려주시지요.”
“금사도주의 말이 맞습니다. 특히 군선의 경우 남해검문에서 아주 예민하게 다루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청조에서 내려보낸 어사대인이시라도 선을 넘으셨습니다.”
두 도주의 얼굴에 떠오른 곤혹스런 빛을 보며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이건 부군사가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옆에 서 같이 웃음을 짓고 있던 제갈청하가 두 도주 앞에 나섰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풀어 드려야지요. 저 두 척의 배는 남해검문과 하등 상관이 없는 경로로 저희가 수취했습니다.”
“이보시오, 누가 봐도 남해검문의 군선인데 상관이 없는 경로라니...”
벽라도주가 철없이 설치는 듯한 제갈세가의 처자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는 말이요? 이쪽 남해 바다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는 남해검문의 군선을 끌어 온 거란 말이오. 남해검문이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를 보내 해남검단을 쓸어 버려도 할 말이 없는 사안이란 말이오.”
금사도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면사를 쓴 제갈청하의 웃는 눈이 더욱 올라갔다.
“이 배는 어제 새벽녘에 저희 해남검단을 습격하러 온 마사히로의 부하들이 몰고 온 배입니다. 왜국의 살수단체인 풍마류의 살수 이백명이 이 두 척의 배를 타고 저희 검단을 습격했습니다.”
“무, 무슨 말도 안되는....”
금사도주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제갈청하의 말에 얼이 빠졌다.
“지, 지금 마사히로... 왜구의 살수들이 해남검단을 습격했다고 말씀 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부군사의 말대로 이백명이 넘는 왜구들이 몰려왔다가 떼몰살을 당하고 저희가 바다 위에 덩그라니 떠 있는 저 배를 몰고 온 것입니다.”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부랴 부랴 자신들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분명 왜구들이 타고 온 배라는 말씀이시지요?”
“자꾸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은 본관은 좋아 하지 않습니다.”
북리준의 얼굴에 떠오른 불쾌감에 금사도주가 허리를 숙여 사죄를 청했다.
“어사대인, 죄송합니다. 어사대인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이 너무 중대하여....”
“괜찮습니다. 설마 남해검문의 배를 훔쳐 두 분 도주에게 불이익이 오도록 이 곳에 끌고 왔겠습니까?”
“일단 차라도 한잔 드시고 계시지요! 저희는 잠시...”
북리준과 제갈청하를 남기고 두 도주가 부리나케 밖으로 나섰다.
“정신이 없겠지. 자칫하면 남해검문의 장문에게 싸움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사안이니까.”
“이 배를 빌미로 목가놈의 목을 죌 수 없을까?”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저었다.
“왜구들에게 빼앗겼던 배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는 상황이야.”
“그 놈, 이 배를 돌려 달라고 할텐데 어떻게 할려구?”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놈들이 이 상황을 인지 하기 전에 저 배들을 우리 걸로 만들어야지. 우리는 왜구들이 습격하러 타고 온 배를 가져온 거야. 저 배는 왜구들의 배라구.”
그 때 밖에서 갑론을박 의견이 분분했던 두 도주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어사대인! 저 배를 어찌 하시려는지요?”
“부군사가 이야기 했듯이 왜구들이 타고 온 배를 빼앗은 거니 저희의 전리품입니다. 저희 해남검단의 소속으로 배를 개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비용은 당연히 저희가 부담 할 것입니다.”
“대인, 비용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 배를 저희가 개조한 것을 남해검문에서 알게 되면 저희에게 불똥이 튈 수 있습니다.”
금사도주의 말에 옆에 앉은 벽라도주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조정에 적선 두 척을 입수 했다는 보고를 올렸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이 배는 왜구들이 타고 온 왜구들의 배입니다.
두 분은 저희의 정당한 의뢰에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을 받으신 것입니다.”
‘저 어사의 말이 맞잖아? 우리가 끌고 온 것도 아니고.....’
‘조정에도 이 상황을 안다면 남해검문주도 할 말이 없는 거지.’
‘근데 말이야.... 저 배, 왜구들에게 빼앗긴 남해검문의 배라는 거짓말을 믿냐?’
‘미친놈! 근 오년 동안 남해검문의 배를 습격한 왜구가 없는데 무슨 수로 빼앗아?’
‘그럼 이 건으로 목가놈과 마사히로가 결탁했다는 증거로 쓸 수는 없을까?’
두 도주가 연신 전음을 주고 받다 금사도주가 어렵게 북리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인, 지난번에 저희에게 알아보라고 하신 건 있지 않습니까?”
“말씀 하시지요.”
“벽라도주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어 봤는데 저 배들 말입니다. 절대 왜구들에게 빼앗긴 배가 아닙니다. 근 오년 넘게 왜구들이 남해검문의 배를 습격한 일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배를 빼앗길 일이 없었지요.”
“뿐만 아니라 남해검문 장문인 목철군의 배에 대한 애착은 남해바다에 인접한 문파의 사람들 중에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남해검문주가 스스로 배를 내어 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벽라도주의 말에 금사도주가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두 분 말씀 잘 알겠습니다만 이 배 두 척으로 마사히로와 목철군의 밀착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구들에게 예전에 빼앗겼다고 하면 그 뿐이니까요. 마사히로와 목철군의 밀착과 결탁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정적인 증좌를 잡아 와 주셨으면 합니다. 이 배 두 척이 그 실마리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북리준의 말에 두 도주가 서로를 쳐다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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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생각이지?”
마사히로가 신이치와 독대를 한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고! 네 놈의 호언장담에 남해검문의 배를 두 척 빌렸는데 그 손해는 어찌할려고?”
마사히로의 얼굴에 걸린 차가운 미소를 보며 신이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놈은 배 두척의 손해 이지만 풍마류는 칠할 이상의 무력을 잃었다...”
“네 놈이 호언장담을 한 청부였는데 이제와서 변명을 하려는 건가?”
“이 곳에 남겠다. 네 놈이 원하는 대로 풍마류를 움직여 주겠다.....”
“그래, 네 놈이 내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으니까 천천히 갚아야지.”
이를 악다문 신이치가 방을 나선 후 마사히로와 수제자인 카이토가 안으로 들어섰다.
“한 명도 못 돌아 왔느냐?”
“네, 단 한 명도 못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목가놈의 배입니다.”
“안다! 그 새끼가 배 두 척을 흔쾌히 내 준 이유는 절대 실패할 수가 없다고 판단 했던 것이지. 우리만 실수 했다고 고개 숙이지 말거라.”
“배상 문제는 어찌.....?”
“일단 해남검단주 놈의 목을 딴 후에 이야기 하자고 전하거라. 물론 개지랄을 떨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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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님!”
매일 개인 연무장에서 두 시진씩 검을 벼리던 목철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호들갑 떨지 말거라. 체신머리 없이.....”
전신에 땀에 절은 목철군이 탁자에 놓인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었다.
“마사....”
“놈!”
순식간에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는 자신의 형이자 장문을 보고 목철우의 얼굴이 시퍼래졌다.
“죄, 죄송합니다.”
마사히로의 이름은 검문 내에서 발설 하지 말라던 문주와 군사의 말이 떠오르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계속.....”
“실패했다고 합니다.”
“실패?”
목철군의 얼굴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내용 파악은 했느냐?”
그 때 단천수사 방백이 천천히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전무합니다. 이백이 들어갔는데 단 한명도 나오지 못했고 배 또한 오리무중입니다.”
“오백의 검단원들이 자리를 비웠는데 고작 백여명의 인원으로? 누군가 개입한 정황은?”
“저희의 세작으로 움직이고 있던 검단원까지 전부 이리로 차출 되어 온지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목철우와 방백은 목장문의 배에 대한 집요한 집착을 아는지라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철우야!”
자신의 이름이 불리우자 목철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항상 놈 이니 새끼니 하는 호칭을 쓰다 이름을 부를 때는 아주 힘든 일을 시킨다는 경험에 한숨을 내쉬었다.
“네, 형님!”
“배..... 찾아 오너라.”
“알겠습니다.....”
한없이 처진 어깨로 연무장을 돌아 나가는 목철우를 바라 보며 방백이 입을 열었다.
“못 찾아 올 것입니다.”
“알아. 저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보고 싶을 뿐이다.”
“섬나라 난쟁이가 아주 배가 불러 터지는 모양이다. 광동, 광서 포구에 놈들이 발을 못 붙이게 하고 의뢰를 완수 할 때 까지 뭍과 바다에서의 약탈도 금지 시켜라. 굶어 봐야 고마운 줄 알지.”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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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검문의 부문주가 내방했습니다.”
철면신산, 제갈청하, 북리준이 향후 해남검단의 운용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는 중에 유검패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부문주?”
북리준의 물음에 제갈청하가 낮게 입을 열었다.
“목철군의 세 번째 동생인 목철우가 허울뿐인 부문주로 있어. 말 그대로 허수아비!”
“배 문제로 온 모양이군.”
철면신산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시라 하게!”
북리준의 말에 문이 열리고 유검패와 남해검문의 부문주인 목철우가 방 안에 들어섰다.
“어서오시오.”
북리준의 말에 목철우가 불안한 눈으로 포권을 취했다.
“남해검문의 부문주직을 맡고 있는 목철우라고 하오.”
“좌정하시지요.”
북리준이 권하는 자리에 앉은 목철우가 자신의 양 옆에 정면에 앉은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 보다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검단에서 저희 물건을 보관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돌려 주시오.”
목철우의 이야기에 북리준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갈청하와 철면신산을 바라 보았다.
“본관이 이 곳에 부임 했을 당시 남해검문 소유의 물건은 다 보내드렸을 텐데요?”
“허허, 다 아시면서 이러시면 곤란하오!”
“이보시오! 다짜고짜 검문의 물건을 내 놓으라 하면 무엇인지 알고 내 준다는 말이오?”
철면신산이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배, 배를 내 놓으시오! 우리 남해검문의 배 두 척을 해남검단에서 가져갔지 않소?”
목철우가 격앙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군사! 남해검문의 부문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본관이 이해가 안 가는구려.....”
“저도 금시초문인 이야기입니다.”
세 사람이 작당을 하고 시치미를 떼자 목철우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 감히 남해검문의 배를 가지고 장난을 치려 하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소이까?”
분기탱천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목철우를 보며 북리준의 얼굴에 냉기가 서렸다.
“본관을 협박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