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당신들, 끝이야!
밤새 미려를 괴롭히고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은 야키토에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뭐라고요? 앞으로 광동 포구에 올 일이 없다고요?”
자신의 상관에게 들은 이야기에 분한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남해검문주 개새끼가 포구에 출입금지령을 내렸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려년을 납치해서라고 데려갈 것을....’
갑작스런 출입금지령에 예정되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물품을 싣게 된 야키토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출항한다!”
선장의 말에 마사히로의 부하들과 왜인으로만 구성된 배가 서서히 포구를 벗어나 드넓은 대해를 향해 선수를 돌려 나갔다.
“우리도 슬슬 출발해 보자. 잘 부탁한다!”
저 앞에 항구를 벗어나는 왜구의 배 세 척을 보며 수어피를 갈아 입고 등에 벽곡단과 물과 술이 든 호리병이 든 가죽 주머니를 맨 북리준과 함께 금아가 검푸른 바닷물에 몸을 담그었다.
거침없이 대해를 가로지르며 쭉쭉 뻗어 나가는 왜구들의 배 뒤편 삼백여 장 정도 북리준이 금아의 등에 올라타 가부좌를 튼 채 편한 자세로 망망대해의 풍경을 감상했다.
“좋구나.....”
호리병에 담긴 술을 홀짝 거리며 저 멀리 푸르른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저 멀리 해가 뉘엿 뉘엿 져가는 가운데 마사히로의 배는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가로지르고 금아의 등 위에 가부좌를 튼 북리준이 운기조식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하루 밤낮을 푸른 바닷물 밖에 보이지 않는 대해를 가로지르는 중에 저 멀리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다 온 모양이군.”
저 멀리 왜구들의 배가 자그마한 섬들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해 나아가고 수십 여개의 섬들을 지나쳐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서서히 속력을 줄여 접근을 했다.
배 위가 부산스러워 지며 선원들이 활짝 편 돛을 접고 천천히 나아가는 배의 선수 끝 머리에 여타 지나온 섬들과 비교 되지 않을 정도의 큰 섬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잠시 서자.”
북리준의 말에 자그마한 섬 해변가에 올라선 금아가 하루 넘게 헤엄을 쳐 지친 몸을 따뜻한 모래 위에 뉘였다.
“일단 원기를 회복하고 오늘 밤에 저 섬에 접근하자꾸나.”
북리준도 해변가에 서서 굳어진 몸을 풀고 벽곡단으로 허기를 달래는 동안 금아도 바닷속으로 들어가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다시 돌아 왔다.
해가 져 저 앞 거대한 섬에 하나 둘 불빛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북리준과 금아가 바닷물에 다시 들어갔다.
“일단 섬 주위를 한 바퀴 돌아 보자.”
금아의 등에 올라탄 북리준이 세필과 종이를 들고 섬에서 멀찍이 떨어져 주위를 돌며 무엇인가를 적고 그리기 시작했다.
“동서에 전망대가 두 개.... 배를 접안 할 수 있는 항구는 총 세 개 인데 남동서 방향이고....”
섬 주위에 펼쳐진 전망대와 포구, 병력의 배치 현황을 그려 넣고는 수어피로 만든 주머니에 종이와 세필을 집어 넣었다.
“여기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줘. 잠시 섬에 올랐다가 와야겠어.”
고개를 주억이는 금아를 뒤로 한 채 한 마리 물개처럼 수어피를 입은 북리준이 섬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귀신같은 신법으로 섬에 오른 북리준이 수어피를 벗자 흑색의 야행의가 나오고 벗은 수어피를 땅에 묻은 후 섬 중앙으로 서서히 나아갔다.
“당분간 약탈은 물 건너갔다매?”
“남해검문의 문주라는 새끼가 지랄을 했나 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말이야....”
포구에서 번을 서고 있던 왜구 무사 둘의 두런 거리는 목소리가 북리준의 귀에 들어왔다.
“풍마류 알지? 그 닌자 무사들 말이야.”
“알지.”
“주군의 명으로 살행을 나갔다가 실패 했나봐. 그 때문에 남해검문주라는 놈이 신경질을 내는 모양이더라구.”
“뭍에도 못 오르고 배도 내 보내지 말라고 했다매?”
무사가 주위를 휘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바짝 낮추었다.
“성에 아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쇼군께서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을 거라더군.”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냥 들은 이야기라니까.”
“개뿔 아는 것도 없네....”
북리준이 두 무사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은 뒤구석 구석에 늘어진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각 포구에 설치된 포의 개수와 배치 병력을 눈여겨 보고는 저 안에 높게 솟은 성루를 향해 나아갔다.
약 한 시진 후 바다에 떠 있던 금아의 감겨진 눈이 떠지고 다가 오는 북리준을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자. 필요한 것은 다 알아냈어.”
북리준이 자신의 등에 가부좌를 튼 채 자리를 잡자 금아가 다시금 미끄러지듯 돌아 왔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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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놈들이 왜 잠잠한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북리준이 돌아와 군사, 부군사, 무림세가의 후기지수, 유검패, 독고우 일행 등과 회합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한테 호되게 당한 닌자놈들 때문에 금족령이 내려진 거네.”
막대광의 말에 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왜구들이 뭍에 오르거나 바다에서의 약탈하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그 안에 마사히로의 근거지를 칠 계획을 수립하려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팽무강이 손을 들었다.
“왜구들의 소굴을 파악한 것입니까? 아무도 모른다고 들은 듯 한데....”
“검단주가 직접 확인을 해서 알아 오신 것이니까 믿어도 돼.”
북리준이 검단에 돌아온 후 세밀하게 그려진 마사히로의 근거지에 대한 전도를 본 제갈청하가 자신있게 대답을 했다.
“군사, 부군사, 검패와 함께 북경에 다녀올 예정이니 이쪽은 여기 계신 분들에게 당분간 부탁 드리겠습니다.”
회합을 마치고 팽무강, 모용민, 언철진, 하후상이 따로 술자리를 마련한 후 둘러 앉았다.
“청하의 눈에 뭘 씌운 놈이 누군가 했더니 영락없네.”
“무슨 개소리야?”
모용민의 말에 하후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이구, 미련한 놈! 네 놈이 청하가 이상한 년이 되었다고 했잖아. 청하를 이상한 년으로 만든 놈을 알았다고!”
“응, 어떤 미친 놈인데?”
“난 저 놈이 어떻게 하후세가의 소가주가 되었는지 참으로 이해가 안가. 저렇게 눈치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고.....쯧쯧.”
모용민의 말에 다른 친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리는 그만하고 어떤 미친 놈이 그 미친년을 홀렸냐고?”
“딱 봐도 준이잖아! 아까 청하년이 준이 편에서 이야기 할 때 표정 못 봤냐?”
“아주 자랑스러워 죽을려고 하더라....”
“그랬어? 그 미친놈이 준이 였구나.... 불쌍한 놈....”
하후상이 누군가를 애도한 다는 듯 술잔을 들고 잠시 묵념을 한 후 단숨에 들이켰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수도 있어. 준이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면 그 년의 성질머리를 당해낼 자가 없을거야.”
언철진의 말에 하후상이 고개를 저었다.
“난 준이가 청하 그 년을 못 이긴다는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청하가 알면 네 놈 모가지를 따려고 할꺼다. 말 함부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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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목철군에게 보고하는 목철우의 목이 한껏 몸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검단주와 군사, 부군사, 동창의 군관만이 떠났다고 합니다.”
해남검단에 배를 돌려 달라고 갔다가 돌아 와서 정식 공문을 만들어 주면 배를 받을 길이 있을 것 같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다 된통 얻어터진 목철우가 더욱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보고를 이어갔다.
“그 놈은 마사히로놈에게 맡기고 신경을 끄거라. 걸어 다니는 시체에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했으니 이번에는 뭔 수를 내겠지.”
그 때 단천수사 방백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목철군이 손을 내저었다.
“나가 보거라. 함부로 나대지 말고 숨도 쉬지 말고 찌그러져 있거라.”
자신의 동생이지만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철없는 행동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
“이틀 후에 결행 예정입니다.”
방백의 말에 목철군이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를 두 곳에 보내 지원을 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날 실망시키지 말고 제대로 하게.”
“걱정 마십시오. 모든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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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왔다고?”
황태자 윤청이 보고를 하러 온 유공공과 곽대인에게 반문을 했다.
“해남검단주로 내려갔던 북리어사가 성에 들어왔습니다.”
“오호, 반가운지고.... 어서 들라 하시오.”
잠시 후 북리준과 철면신사, 제갈청하, 유검패가 들어와 예를 표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황태자 저하를 뵈옵니다.”
“반갑다. 일어들 좌정들 하거라.”
황태자의 좌우에 유공공과 곽대인이 자리를 잡고 북리준 일행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느냐?”
“황태자 저하께서 염려해 주신 덕에 무탈하게 지냈사옵니다.”
북리준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황태자가 웃음을 지었다.
“그래, 왜구들의 소탕은 잘 되고 있는가?”
“네, 다행히 황태자 저하께 약속 드린 기한대로 왜구들의 토벌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오호, 장한지고....”
명대부터 골칫거리인 남해 바다의 왜구 문제를 해결 한다는 말에 황태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과인이 무엇을 도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보거라.”
황태자의 말에 제갈청하가 준비한 전도를 벽에 걸고 조심스럽게 그 앞에 섰다.
“이 지도는 북리어사가 직접 마사히로의 근거지에 잠입하여 그린 전도 이옵니다.”
거대한 섬 하나를 중심으로 포구의 위치와 진입로, 포대의 개수, 섬 중앙의 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세세하게 표시 되어 있었다.
“이 섬은 무극도라 불리우는 무인도입니다. 원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라 버려진 섬이었는데 이 곳에 왜구들이 둥지를 튼 상황입니다.”
황태자와 유공공, 곽대인이 관심어린 표정으로 지도를 들여다 보았다.
“저희 검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마사히로라는 자가 쇼군이라 스스로 칭하고 이 곳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인원은 약 삼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지금도 왜국에서 밀려난 난민들을 계속 받아 내고 있어 그 수는 늘어 나고 있습니다.”
“삼천에서 계속 늘어난다라....”
곽대인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유공공이 계속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저희 검단이 뭍에 올라오는 왜구들과 바다 위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쳐 없애도 이 곳이 건재하다면 별무소용이라 판단했습니다.”
“맞는 말이군. 근거지를 소탕하는 것이 발본색원하는 지름길이지.”
유공공의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래서 저희들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황태자 저하와 유공공, 곽대인께 도움을 청하고자 이 자리를 요청 드렸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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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소란스러움에 집무실에서 벽라도주와 술잔을 기울이던 금사도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 무슨 일이냐?”
고성이 오가는 소란이 계속 되는 가운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기세등등하게 들어섰다.
“도주님, 이들이 갑자기 도주님을 뵙고 따질 것이 있다고 이리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 왔습니다.”
자신의 제자이며 친위대주의 당황스런 얼굴 뒤로 금사도의 부도주와 벽라도주의 아들이며 군사가 같이 있는 모습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황당한표정을 지었다.
“네 놈이 이 곳에 무슨 일이냐? 벽라도는 어쩌고 이 곳에 허락도 없이 왔느냐?”
벽라도주 요추광이 자신의 아들이며 소도주인 요문원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주 아니 반역자라 해야 하나? 당신들 이제 끝장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