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개소리
“부도주, 이게 무슨 해괴한 짓거리지?”
평소 해남검문에 편입되는 것을 지지해 온 금사도 부도주인 왕보당의 입가에 뒤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아무리 자신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욕심이 과하기로서니 왜구와 손을 잡다니요.... 큰 실수를 하셨소이다.”
“뭔 개소리야?”
금사도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옆에 서 있던 벽라도의 소도주가 말을 이어 받았다.
“아버지, 그러기에 진즉 제게 도주의 위를 물려 주시고 편히 쉬시라니까 왜 이리 사달을 만드시는지...”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지금 네 놈의 말은 이 애비가 왜구와 결탁을 했다? 증거는 있느냐?”
벽라도주가 분에 겨워 이를 악다문 채 자신의 아들을 쏘아 보았다.
“당연히 있지요. 증거도 없이 현 도주이며 제 아버지를 내칠 수 있겠습니까?”
능글거리는 미소를 입에 단 채 품 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읽어 보시지요. 직접 쓰신 서찰이니 뭐 보실 필요도 없겠지만요.”
요문원이 내민 서찰을 황급히 받아 펼쳐 보니 자신의 필체와 비슷한 편지에 마사히로와 남해검문을 쳐 없앨 방안을 강구 하기 위해 만나자는 내용과 벽라도주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런 미친.... 내가 이런 편지를 쓴 기억이 없거늘.”
“금사도주의 편지도 있습디다!”
요문원과 마찬가지로 작은 금사도에 얽매이지 말고 남해검문으로 돌아가자고 열변을 토하다 디지게 얻어 터졌던 왕보당도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하아, 어이가 없네. 이게 내 필체하고 같냐?”
자신이 봐도 개발새발 쓴 서신 밑에 선명하게 찍힌 금사도주의 직인만이 눈에 들어왔다.
“네 놈들이 만든 가짜 서신으로 금사도와 벽라도를 남해검문에 가져다 바치겠다? 하하, 이런 개자식들이 다 있나?”
벽라도주의 말에 금사도의 부도주인 왕보당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의 아들이 개자식 이면 당신은 뭐가 될까?”
“왜 내 별호가 섬전쾌도인지 보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칠파검사도 있다, 이런 썩을 놈들아!”
두 도주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두 사람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두 도주의 무공 실력을 감안 하지 않고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머리가 많이 모자른거지요.”
그 때 도검이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 오자 금사도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수를 데려 왔구나! 그래 어디서 굴러 먹던 놈들을 불러 왔는지 낯짝을 구경해 보자꾸나.”
갑자기 금사도주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리며 바깥의 풍경이 두 도주의 눈에 들어왔다.
“이, 이런....”
금사도주와 벽라도주의 친위대 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무릎을 꿇은 채 결박이 지어져 있었고 자신들을 향해 빙글 거리는 웃음을 짓는 두 명의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탈혼파랑.....자전쾌도.... 허, 이 놈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남해검문의 두 무력대의 대주인 흑건질풍대주와 백건폭풍대주가 자신들의 검과 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감히 네 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더러운 발을 디미는 것이냐?”
“아이구, 무서버라! 그 유명한 금사도주와 벽라도주님을 한꺼번에 뵙게 되니 감개가 무량 합니다.”
자전쾌도의 빈정거림에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자신의 무기를 힘없이 떨구었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 나중에 기회를 보자!’
‘무슨 기회? 저 놈들이 저리 나오는 것을 보니 우리를 옴짝 달싹 못할 함정을 다 준비해 놓았다고 봐야지.’
벽라도주의 체념어린 전음에 금사도주가 자신의 머리에 한 인물을 떠올렸다.
‘해남검단주! 우리의 구명줄은 그 사람이야. 우리의 처지를 그 사람에게 알려야만 해.’
‘어떻게?’
‘지금부터 생각해 보자.’
“이리 싱겁게 끝내시려고?”
“놈! 여기서 우리의 명줄을 끊으면 절대 네 놈들 뜻대로 금사도와 벽라도가 남해검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알고 있소이다. 우리가 천천히 단계를 밟아 남해검문에 들어 갈 터이니 그 동안 감옥에서 당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반성이나 하고 계시우.”
비열한 웃음을 짓는 왕보당의 얼굴을 보며 섬전쾌도의 입가에 처연함이 매달렸다.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원들에 의해 자신들의 친위대와 함께 감옥으로 향하는 두 도주의 뒷모습을 보며 왕보당과 요문원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자, 술상도 차려져 있겠다. 벽라도주, 한잔 하시겠소이까?”
“좋지요, 금사도주!”
두 배반자가 키득 거리며 금사도주와 벽라도주의 빈 자리에 앉아 술잔을 채우는 모습을 보며 뒤편에 서 있던 흑건질풍대주가 한껏 비웃음을 입에 물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참아! 저 놈들이 온전히 금사도와 벽라도를 검문에 바칠 때 까지만.....’
그렇게 소리 없는 반란이 무마되고 두 도주와 친위대는 깊고 깊은 감옥으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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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계 작업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수고했다.”
“아직 두 도주를 따르는 잔당들의 정리가 남았지만 차후 한 달 안에 온전한 금사도와 벽라도를 품에 안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단천수사 방백의 말에 목철군이 흡족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군. 해남검단주 놈의 목은 언제 자른다고 하던가?”
“곧이라고 기별을 받았습니다.”
“지난번 같이 큰소리만 치고 또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들고 오는 것은 아니겠지?”
목철군의 나지막한 말에 방백이 자신의 잔을 들어 한 모금 술을 삼켰다.
“풍마류의 수장이 직접 검단주의 목을 따겠다고 합니다. 알아보니 풍마류라는 가문이 왜국에서 손가락에 꼽는 살수 가문이더군요.”
“하긴.... 떨거지들이 개떼 같이 들고 일어나 봐야 개일 뿐이지. 제대로 된 승냥이가 놈의 목줄기를 물어 뜯는 것을 볼 수 있겠군.”
“청조에서 내려온 관리 하나에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계에 대해 온 힘을 쏟으셔야지요.”
방백의 말에 목철군이 자신의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래, 이 좁아터진 섬에서 벗어나 저 너른 중원무림을 질타해야지.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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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에 돌아온 북리준과 일행들에게 주작대주 상수인이 굳은 얼굴로 보고를 했다.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마사히로와 결탁했다는 죄명으로 모처에 구금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없는 동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네...”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상대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 금사도와 벽라도를 이끌고 있는 자는 누군인지요?”
“금사도의 부도주였던 왕보당이라는 자와 벽라도주의 아들인 요문원입니다.”
“당연히 그 둘은 남해검문의 편에 붙은 자겠군.”
철면신산의 말에 상수인 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놈은 금사도와 벽라도가 남해검문의 기치 아래로 들어 가야 한다고 누누이 주장해 온 자들입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두 도주와 친위대를 제압하는데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가 개입한 정황이 보입니다.”
“우리가 계획한 일이 어그러지겠는데?”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생각에 잠겨 있다 눈을 떴다.
“지금 당장 벽라도로 가서 상황을 보자. 금사도와 벽라도의 군선이 대계에 반드시 필요하다.”
북리준의 말에 제갈청하와 철면신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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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왔다고? 해남검단?”
대리 금사도주에 앉은 왕보당과 대리 벽라도주로 자리를 꿰찬 요문원이 술잔을 기울이다 수하의 보고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한번은 봐야 할 면상인데 빨리 해치우고 말자.”
왕보당의 말에 요문원이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벽라도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면사를 두른 제갈청하의 정중한 말에 요문원이 거드름을 피우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임시 벽라도주요. 무슨 용건으로 내 섬에 오신 것이오?”
“여기 계신 분은 정삼품 호군참령어사이신 도천학 대인이십니다.”
서릿발같은 위엄이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반가면을 쓴 어사를 보며 요문원과 왕보당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대인을 뵈오. 전 벽라도주와 금사도주가 왜구와 결탁한 정황이 나와 현재 진위를 파악 중입니다. 아마 곧 내가 정식 도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금사도의 대리 도주이신 왕보당 대협이십니다.”
“어사 대인을 뵙소이다.”
“우리가 맡긴 배를 보러 왔다.”
북리준의 차가운 음성에 요문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남검단의 배라니요? 금시초문이올시다.”
“당신의 아버지인 칠파검사께 왜구에게서 습득한 배 세척의 개조를 맡겼소이다. 그 배를 지금 보자고 하시는 것이오.”
철면신산의 말에 요문원이 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나중에 제가 죄인에게 물어 보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말씀 하신 배에 대해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때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북리준이 입이 서서히 열렸다.
“자네들이 이야기한 전 벽라도주와 금사도주를 직접 봐야 겠다. 안내 하거라!”
“아무리 어사대인이시지만 저희 도 내의 문제에 개입하시는 것은 월권이라 생각합니다.”
“월권?”
북리준의 전신에서 유형화된 살기가 피어 오르고 그 살기에 노출된 요문원과 왕보당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식은땀이 솟아 올랐다.
“크윽.... 아, 알겠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본 거친 살기에 요문원이 실금을 하고는 수치감에 고개를 숙였다.
‘그냥 얼굴 한번 보여 주는 것이니까 별일은 없을 것이오.’
‘혹시 모르니 이 연놈들이 만나고 나면 두 도주와 떨거지들을 모처로 옮겨야 겠소.’
두 임시 도주의 안내를 받아 벽라도의 심처에 위치한 감옥에 도착 하였다.
“어사 대인의 지위를 생각해서 이번만 면회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일다경만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요문원이 바지에 지린 오줌에 오만인상을 쓰며 자신의 거처로 뛰어갔다.
“다, 단주!”
감옥 창살 너머 널부러져 있던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초췌한 표정으로 창살에 매달렸다.
“어찌된 일 입니까?”
“목가놈에게 제대로 당했습니다. 우리가 마사히로에게 보낸 밀서라고 얼토당토않은 가짜 편지를 들고 온 두 잡놈과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의 무력에 무릎을 꿇은 거지요.”
저 너머 모퉁이에 숨어 귀를 기울이고 있던 왕보당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자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기막을 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으니 편하게 이야기 해 보시오.”
북리준의 말에 금사도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금사도와 벽라도가 독립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우리들의 의지에 동조하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킨다면 갈갈이 찢겨 넝마가 된 금사도와 벽라도만 남을 뿐입니다. 남해검문이 이런 상황을 원치 않기에 우리를 살려 둔 것입니다.”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저와 요가놈을 이 곳에서 꺼내 주십시오. 저 두 바보 놈이 모르는 저희들만의 힘이 있습니다. 저희와 바로 옆에 갇힌 친위대를 이 곳에서 빼내 주시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