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82화 (82/167)

82. 일났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옷을 갈아 입고 한껏 불만스러운 표정의 요문원과 왕보당의 배웅을 받으며 벽라도문을 나섰다.

“두 도주를 구하려면 오늘 밤 밖에는 없을 듯 해. 저 놈들 눈치를 보니까 두 도주를 어딘가로 옮길 것 같아.

청하야, 난 여기서 혹시 두 도주와 친위대를 다른 곳으로 옮길지 모르니까 감시를 하고 있을께. 백응으로 최대한 빨리 독고숙부와 막숙부, 곤오를 이곳으로 불러줘.”

“더 필요 없을까?”

“은밀하게 잠입하여 사람을 꺼내 오려면 그 세람이면 충분해.”

흑건과 백건을 쓴 자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 보았던 북리준의 말에 제갈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두 도주를 남해검문으로 옮기기라도 하면 방법이 없어지니까 최대한 빨리 조치를 해 줘. 여의치 않으면 나 혼자라도 진행할게.”

“우리는 배를 준비해 놓겠네. 조심하시게.”

“알겠습니다!”

북리준이 벽라도문의 정문이 잘 보이는 반대편 숲속 커다란 나무 위로 신형을 날리고 자리를 옮긴 제갈청하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 힘차게 불자 ‘삐이익’ 기음이 울려 퍼졌다.

잠시 푸드득 소리와 함께 제갈세가에서 가져온 전서응인 백응이 청하가 내민 팔에 내려 앉았다.

“부탁해!”

간략한 내용을 적어 다리에 달린 대롱에 넣고 힘차게 팔을 떨치자 백응이 순식간에 한 점이 되어 날아갔다.

북리준이 정문이 잘 보이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건포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늦지 않아야 할텐데....”

약 세 시진 후 완전히 해가 저물어 사위가 칠흑같은 어둠에 잠길 무렵 북리준의 눈에 독고우와 막대광, 곤오가 조심스럽게 숲을 벗어나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입니다!’

전음으로 독고우 일행을 자신이 몸을 숨긴 나무 위로 불러올렸다.

“오늘 총 열 두명을 저기에서 꺼내 오려고 합니다.”

“조금 많군.”

“위치는 파악을 해 놓았고 바로....”

그 때 정문을 주시하고 있던 곤오가 손을 들자 일행들이 입을 닫고 눈을 돌렸다.

“꼭 이 밤에 이 짓을 해야 하나? 내일 날이 밝은 후에 움직여도 되잖아.”

임시 벽라도주인 요문원이 불퉁 거리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어차피 남해검문에 보내야 하는데 이왕 일찍 보내면 우리도 속이 편하잖아.”

왕보당이 투덜거리는 요문원을 달래고 그 뒤를 거대한 수레 위에 나무로 만든 감옥이 얹혀져 있었고 그 안에 금사도주와 벽라도주, 친위대 들이 포박 되어진 채 앉아 있었다.

“그럼 부탁 드리겠소!”

마차 주위에 포진을 한 남해검문인의 복장을 한 무사들을 향해 왕보당이 포권을 했다.

열 명의 남해검문 무사들이 말을 탄 채 마차를 호위하고 벽라도문을 벗어나는 것을 본 북리준이 독고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이 숲이 끝나기 전에 해치우세.’

네 사람이 마차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작전을 세운 후 숲 속으로 신형을 녹여 들어갔다.

“허허, 끝이군. 이 약삭 빠른 놈들이 바로 우리를 남해검문으로 보낼 줄은 생각도 못했네.”

“검단주를 만나자 마자 바로 조치를 취할 줄은 미처 몰랐군.”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쳐다 보았다.

“너희들은 괜히 우리 때문에 개죽음 당할 필요는 없다. 끝까지 함께 해 주어서 고맙다.”

섬전쾌도 사중현의 처연한 말에 친위대장이 이를 꽉 깨물었다.

“저희는 도주님과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 포박되어진 벽라도주의 친위대장도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세는 기울었다. 우리가 몸을 빼낼 수만 있다면 방법이 있겠지만 이대로 남해검문에 끌려 들어가면 끝이다.

괜히 너희들의 목숨을 헛되이 버리지 말고 남해검문에서 귀순을 종용하면 두 말하지 말고 따라라. 이 못난 도주 밑에서 고생들 많았다.”

금사도주의 말에 벽라도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금사도주와 같은 생각이다. 괜한 목숨 버리지 말고 길게 오래 살거라.”

두런 두런 감옥 안에서 들려 오는 이야기에 한껏 비웃음을 입에 단 채 마차를 모는 무사의 눈에 누군가 거대한 도를 들고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누구냐?”

마차를 모는 무사의 외침에 말을 몰고 마차를 호위하던 무사들이 각자의 검을 뽑아 들었다.

“우리는 대 남해검문의 무인들이다. 길을 열거라.”

“미친놈일세. 네 놈 말에 길을 열거면 여기 버티고 서 있지도 않았다.”

막대광이 묵색의 대도를 어깨에 걸친 채 씨익 웃음을 지었다.

“치워라!”

마차를 모는 무인 옆에 팔짱을 낀 채 주시하던 대장의 말에 두 무인이 말의 배를 걷어찼다.

‘두두두두두’ 말 두 필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미동도 않고 서 있던 적을 찢기 위해 두 무사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카카캉 캉 푸하아아악 화아악”

두 무사의 검을 묵색의 대도가 원을 그리며 거둬내고는 허공에서 용틀임을 하며 그려낸 유려한 곡선에 말과 함께 두 무사가 둘로 갈라졌다.

“이, 이런... 쳐라!”

대장의 외침에 말에서 신형을 박차 공중에 떠오른 두 무사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삭도 두 자루에 목이 달아났다.

“적이 하나가 아니다! 넌 숲을 뚫고 포구로 달리거라.”

대장이 순식간에 마차를 박차고 삭도가 튀어 나온 허공을 향해 신형을 날리고 마부석에 있던 무사가 거칠게 채찍을 내리쳤다.

“이럇, 가자!”

순간 마차 위에 얹혀진 나무 감옥 위 공간이 갈라지면 드러난 검이 남아 있던 마차를 몰던 무인의 머리를 가르고 허공에서 뚝 떨어진 흑의인이 말의 고삐를 잡아채었다.

삭도 두 자루가 양 손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흑의인을 향해 검을 뻗어내던 대장이 자신의 허리 어림에서 느낀 뜨끔함에 고개를 숙여 보니 자신의 하체는 저 뒤에 쓰러져 있고 상체만 날아가고 있었다.

뒤늦게 터진 파열음에 내장을 쏟아내고 절명한 대장을 보고 남은 생존자 셋이 서로 등을 대고는 방어를 하려는 찰나 ‘쉬이이이이’ 바람소리 같은 기음이 들리고 자신들의 발목을 자르고 다시 어둠속으로 돌아가는 륜을 절망스런 눈으로 바라 보았다.

‘퍽 퍼어억 퍽’ 발목이 잘린 채 쓰러지려는 세 남해검문의 무사들 목에 묵색 대도가 깔끔하게 떨어져 내렸다.

저 만치 달려 나갔던 마차가 서서히 북리준과 막대광, 곤오가 서 있는 곳으로 돌아 왔다.

“누, 누구신지....”

금사도주가 복면을 한 흑의인들의 고강한 무위에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나요!”

북리준이 복면을 벗자 오매불망 그리던 검단주의 모습에 벽라도주가 감격에 겨워 손을 모았다.

“거, 검단주님! 감사 감사하오.”

곤오의 삭도에 절단난 쇠로 된 자물쇠를 던져내고는 도주 일행들을 풀어주었다.

“일단 여기 있는 시체들을 숨겨 시간을 끌어야 겠습니다.”

금사도주와 벽라도주의 명에 친위대원들이 숲 속 저편에 구덩이를 파 열구의 시신을 묻어 버렸다.

“섬을 벗어날 배를 준비해 두었소이다. 가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벽라도주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난 번 두 멍청이가 모르는 저희들만의 힘이 있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섬을 안 떠납니다.”

벽라도주의 말에 북리준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남해검문에서 무력대를 파견한다면 위험합니다. 일단 저희와 함께 해남검단으로 이동 하시지요.”

“아닙니다. 벽라도를 다시 찾을 방법이 있습니다. 어사대인께서 우리를 꺼내 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결연한 표정의 벽라도주의 말에 북리준이 말릴 수 없음을 느끼고는 막대광을 바라 보았다.

“막숙부님과 곤오는 청하와 함께 검단으로 돌아가세요. 저와 독고숙부님은 이 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나도 가고 싶은데.....”

모처럼 몸을 제대로 풀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벽라도에 들어온 막대광이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정말 제대로 살풀이를 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다음을 기대하지.”

막대광과 곤오가 돌아간 후 벽라도주가 길을 잡았다.

“한 시진 정도 이동해야 합니다. 따르시지요.”

다행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부상을 입을 자가 없어 벽라도주의 뒤를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약 한시진 정도 숲과 산을 따라 이동 하니 저 편에 자그마한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날이 뿌옇게 밝아 오는 마을 초입에 머리에 서리가 내려 앉은 백발의 노인이 빗자루로 땅을 쓸고 있었다.

“저 추광입니다.”

벽라도주가 조심스럽게 노인의 앞으로 나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추광이? 네 놈이 웬일이냐?”

노인이 반개한 눈으로 벽라도주와 그 뒤에 서 있는 일행들을 훑어보았다.

“부득이 힘을 빌리러 왔습니다.”

칠파검사의 말에 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신형을 돌렸다.

“들어오너라!”

휘적거리는 걸음으로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노인의 뒤를 벽라도주가 조심스럽게 따라 붙었다.

‘이 곳은 어디인지요?’

북리준의 전음에 벽라도주가 앞서 가는 노인의 등에 시선을 둔 채 대답을 했다.

‘이 곳은 저희 벽라도문에서 은퇴하신 선배님들이 은거 하시는 곳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마을 중앙 공터에 다다른 노인이 순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두 기상! 일 났다.”

우렁거리는 목소리가 약 이십여호 정도 되는 마을을 흔들었고 각 초가집 방문이 하나 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에고 에고.... 웬일이래?”

“저 잡놈.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구만.”

각 초가에서 허리가 굽거나 얼굴에 주름이 하나 가득한 노인들이 하나 둘씩 공터로 몰려 나왔다.

“엥, 초광이 아닌감?”

“도주가 왔어? 벌써 은퇴 한거야?”

“모두 입들 닫고 모여봐.”

중앙 공터에 커다란 나무가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그 밑에 약 삼십명 정도가 올라 앉을 정도의 평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평상 위에 노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빗자루를 들고 서 있던 노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가는 귀 먹은 난쟁이 똥자루 좀 누가 잡아와라.”

평상 위에 자리잡으려던 노인 하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시 내려와 저 편에 있는 초가로 어슬렁 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허리가 직각으로 굽어진 노인 하나의 손을 잡고 다시 평상에 오른 노인이 손을 내저었다.

“다 모였구만.”

스무명 정도 되는 노인들이 두런 두런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예의 빗자루 노인이 소리를 쳤다.

“아가리들 닥치고 여기 좀 봐.”

“썩을 놈.... 아가리는 동물들한테 쓰는 말이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원래 입에 걸레를 문 놈이잖아. 저 놈은 고쳐도 못 써...”

“아버지... 제가 하겠습니다!”

요추광이 자신의 아버지 이자 전대 도주 였던 요불위를 불렀다.

“그려라...”

빗자루를 평상에 세워 놓고는 중앙 빈 자리에 자리를 잡은 아버지를 보고는 요추광이 평상에서 훤희 바라 보이는 공터에 서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불초 요추광이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그려, 우리 추광이 마이 늙었네....”

“옛날에 추광이 노래 한 자락 잘 했는데... 오랜만에 노래나 한번 해 봐라.”

“춤도 곧잘 추었지 아마?”

또 시끌벅적해 지는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던 요불위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무슨 경로당이여? 아가리들 닥치고 말 좀 듣지?”

“입에 걸레 문 놈이 화났다. 조용히 하자....”

요불위의 고함소리에 말할 틈이 생긴 요추광이 잽싸게 입을 열었다.

“남해검문에서 우리 벽라도와 금사도를 자신들의 휘하에 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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