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증거를 가져와!
“카아앙”
어느새 노인의 앞을 막아선 독고우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노인 공경이 뭔지도 모르는 돌쌍놈이구만.”
“쳐라!”
남해검문의 제일 제이 무력대인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의 무사들이 일류를 상회 하는 자신들의 무위를 믿고 거리낌 없이 살수를 뻗어 내었다.
“절대로 네 놈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칠파검사 요추광의 검이 벽라도의 어르신들을 해하려는 남해검문의 검을 막아섰다.
“금사도도 있다!”
섬전쾌도 사중현이 자신의 도를 들고는 요추광의 옆에 섰다.
“크아아악 아아악”
자신들의 땅에 남해검문의 무사들이 설치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어 검을 들고 나섰던 벽라도문의 무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적의 검에 썰려 나갔다.
“이, 이런 개자식들이....”
칠파검사 요추광이 자신의 친위대와 함께 벽라도문의 무인들을 도륙하는 남해검문의 무인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봐, 어르신을 업어.”
벽라도민들이 전방에 벌어지는 싸움을 피해 벽라도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노인들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북리준이 노인들이 도민들의 도움으로 광장을 벗어 날 수 있게 일월신검을 들고 사납게 짓쳐들어오는 검과 도를 맞이했다.
‘캉 카캉 콰직’
백건을 두른 두 백건폭풍대원이 북리준의 상체와 하체를 가르기 위해 날아오는 도를 막아낸 후 뻗어낸 왼손에서 뛰쳐나온 월륜에 머리가 터져 나가고 이어 기쾌하게 뻗어 나온 일월신검에 심장이 꿰뚫렸다.
요불위가 자신의 검을 들고 다른 가신들이 피하는 동안 힘들게 흑건질풍대원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늙은이가 힘이 좋네!”
히죽 거리며 검을 뻗어내는 검의 궤적에 요불위의 왼팔이 걸림과 동시에 둥실 공중에 떠올랐다.
“아버지!”
요추광이 아버지의 팔이 잘려 나가는 모습에 신형을 날리려다 자신과 검을 맞댄 남해검문 무사의 검에 등이 갈려 나갔다.
“놈!”
어느새 날아온 일륜에 가슴이 갈려 나간 무사를 뒤로 하고 북리준이 요추광을 부축했다.
“늙은 것들은 빨리 저승으로 꺼져라.”
요불위의 왼팔을 잘라낸 남해검문의 무사가 검을 횡으로 휘둘러 목을 잘라내려는 순간 ‘커허어억’ 억눌린 신음과 함께 피가 솟구쳐 나오는 자신을 목을 부여 잡았다.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라는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네 놈이나 먼저 가거라.”
독고우가 날린 단도 두 자루에 목을 꿰뚫린 적에게 다가가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북리준과 독고우의 일검 일수에 적들이 고꾸라지고 달려드는 벽라도문의 무사들을 베어 넘기던 흑건질풍대 부대주인 파랑일검이 주위를 둘러 보니 자신만이 두 발로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해검문의 무사들을 이리 도륙해놓고 무사하기를 바라지 마라.”
“흥, 어이가 없구나. 네 놈들이 무단으로 쳐들어와 우리 벽라도문의 무사들과 주민들을 이리 무참히 살해해 놓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주위를 둘러 보니 확실히 벽라도문의 사람들이 훨씬 많이 죽어 넘어져 있었다.
“길을 열어라. 난 대 남해검문의 흑건질풍대의 부대주인 파랑일검이니라.”
“아이구, 예! 알겠습니다. 길을 열어 드리지요...라고 할 줄 알았냐? 이런 개새끼가 다 있냐?”
요추광이 갈린 등에서 연신 흘러내리는 피를 무시하고 이를 부득 갈았다.
“나, 나도 같이 데리고 가시오.”
저 뒤편에 서서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던 요문원이 조그맣게 소리를 쳤다.
“피빚은 피로 갚아야 되는 법! 네 놈으로 인해 흘린 피의 대가로 목을 내 놓거라.”
요추광이 자신의 칠파검을 들고 힘겹게 앞으로 나서려 하자 북리준이 먼저 검을 들었다.
“부상이 심하오. 내게 맡기시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요추광이 등에 난 자상을 치료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자 북리준이 파랑일검의 앞에 섰다.
“잘난 어사대인께서 나오셨구려. 어디 어사나리의 검이 얼마나 매운지 한번 보여 주시오.”
파랑일검이 좌수에 든 자신의 검을 내세운 채 거침없이 땅을 박찼다.
‘카캉 캉 카카캉 그그그극’
자신의 별호대로 일검 일검에 격랑을 실어 내 뻗는 검을 일월신검으로 거둬 내는 북리준의 검이 순간 하늘로 치켜 올랐다 단숨에 떨어져 내렸다.
‘막고 가른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검을 막으려는 순간 어느새 뜨끔해지는 정수리의 기분 나쁜 느낌을 마지막으로 쩌억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봤냐?’
‘못 봤어....’
등을 치료하는 요추광에게 금사도주가 전음을 던졌다.
빛살 같은 속도로 파랑일검을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검을 미처 보지 못한 두 도주가 서로를 쳐다 보았다.
“장 내를 정리하고 죄인을 끌어 내거라.”
요추광이 등에 붕대를 감은 채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옛 가신들을 모시고는 명을 내렸다.
“아버지....”
“괜찮다. 어차피 왼팔은 잘 쓰지도 않는다.”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피에 젖은 붕대만이 눈에 들어오자 요추광이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그래라. 네 놈이 벽라도를 잘 이끌면 된다.”
잠시 후 요문원이 포박되어진 채 요추광과 요불위의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사, 살려 주세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살려 달라는 말을 내뱉는 아들을 보며 요추광이 한숨을 내쉬었다.
“데리고 가서 문초를 해라. 누구의 사주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전부 다 토설케 하라.”
집법당의 무사들이 요문원을 끌고 벽라도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아버지.... 할아버지.... 제가 잘못 했어요. 살려 주세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끌려 들어가는 자식과 손자를 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회한이 어렸다.
“제가 좀 엄히 키웠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머리가 다 굵어진 놈을 무슨 수로 당하겠냐?”
벽라도문의 문인들과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 하여 광장에 도열시켰다.
“어르신 중 다섯분이 숨지셨습니다. 벽라도문의 무사 스물여덟, 주민은 열둘이 이승을 떠났습니다.”
참담한 표정으로 보고 하는 부도주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주님이 누명을 쓰셨음을 알았지만 소도주와 남해검문 무사들의 협박에 못 이겨 그만....”
“되었네. 자네 탓을 할 생각은 없으니 뒷수습을 부탁하겠네.”
뒤 편에서 벽라도문의 뒷수습을 지켜 보던 북리준과 독고우에게 다가간 요추광과 요불위가 포권을 취한 채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닙니다. 같은 편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차후 벽라도는 해남검단주님의 편에서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금사도의 문제는 어찌하실런지요?”
북리준의 말에 금사도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금사도 또한 은퇴하신 원로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의 힘을 빌려 틀어진 곳을 바로 잡아야지요.”
“저희들의 무력이 필요 하실 듯 합니다. 동행 하겠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금사도주가 환한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 합니다!”
“독고숙부님, 한번 더 수고해 주셔야 겠습니다.”
“난 괜찮네.”
“우리 벽라도에서도 지원을 하겠소이다.”
요추광이 자신의 칠파검을 챙겨들고는 금사도주의 옆에 섰다.
“정말 고맙소!”
“어차피 우리는 한 배를 탄 거요. 끝까지 가 봅시다.”
****
“열흘 전만 해도 금사도와 벽라도를 품에 안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목철군이 차가운 얼굴로 자신의 앞에서 단천수사 방백에게 시선을 던졌다.
“변수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제 예상을 벗어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군사라는 자가 그런 변수도 통제 하지 못하다니.... 참으로 안타깝소!”
장문인에게 항상 자신만 질책을 받았던 목철우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혀를 찼다.
“어디 변명을 들어 보지,”
“벽라도와 금사도에 소도주와 부도주를 포섭하여 그들의 자리를 공고히 해주는 댓가로 남해검문에 충성을 바치겠다는 확약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들을 돕기 위해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원 스물과 남해검문도 스물을 보내었습니다. 첫 번째 실수는 벽라도와 금사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은퇴한 가신들을 간과했습니다. 그들의 무력은 보잘 것 없지만 벽라도, 금사도의 무인들과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방백의 보고에 말없이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는 장문의 차가운 눈을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낸 무력이라면 능히 대국의 평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변수인 해남검단주의 개입이 없었다면 말입니다.”
“또 그 어사 나리가 끼어 들었나?”
“네, 남해검문으로 두 도주를 압송하는 과정에 개입한 것을 필두로 그 놈과 한 늙은이의 손에 대다수의 저의 문인들이 비명횡사를 했습니다.”
단천수사의 보고에 옆에 있던 목철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벽라도와 금사도에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의 부대주가 파견 나가지 않았소이까? 그들도 당한 것이오?”
두 부대주의 무위를 충분히 알고 있던 목철우의 말에 방백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저희 간자에 의하면 두 부대주가 다 검단주의 검에 유명을 달리 했다고 합니다.”
“그 놈! 두 대주 보다 하수는 아니겠구나.”
목철군의 말에 방백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판단하기에 장문인과 동수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요? 저희 장문의 무공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되었고! 앞으로 어찌할지 읊어 보거라.”
목철군의 말에 단천수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눈을 떴다.
“해남검단주를 먼저 없애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저희 행보에 훼방을 놓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 한 놈 때문에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네 놈의 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자인하는 것이냐?”
“그 검단주라는 자의 행보를 보면 저희 검문을 염두에 두는 듯 보여집니다.”
“일부러 그 놈이 우리 일을 방해 한다?”
목철군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왜구들과의 전쟁에 몰입하여 저희에 대한 예의를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보면 그 자가 저희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당장 벽라도와 금사도의 일만 해도 그 자가 개입할 만한 요인이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자가 저희 남해검문에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가 필요할 듯 합니다.”
“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가져와!”
“알겠습니다.”
“부문주!”
“네, 하, 하명하시지요.”
갑자기 자신에게 떨어진 말에 목철우가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극도에 서신을 넣어라. 하루 빨리 결행을 하라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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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벽라도와 금사도의 문제는 다 해결 된거네?”
제갈청하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
“그럼 대계를 계속 진행 하겠네.”
철면신산의 말에 북리준이 입을 열었다.
“첫째도 둘째도 보안이 이번 대계의 생명입니다.”
“알고 있네. 이 곳에서 대계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셋 뿐이지 않나? 걱정 마시게.”
“이번 대계를 성사 시키면 거대한 적 하나를 덜어 내는 것입니다. 필히 성공해야 합니다.”
굳은 표정의 북리준을 보며 제갈청하와 철면신산이 마음을 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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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출발할건가?”
“내일!”
“혼자 가는 것인가?”
“그것 까지 보고를 해야 하나?”
마사히로와 신이치가 독대를 한 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아니, 할 필요 없네. 의뢰를 성공시키기만 하면 되네.”
“놈의 목을 가지고 와서 내 수하들의 진혼제에 올릴 것이다.”
“그러시든지....”
신이치가 방을 나서고 제일 코케닌인 카이토가 방으로 들어섰다.
“해남도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카이토가 조심스레 건네준 편지를 꺼내 읽은 마사히로의 입에서 걸진 욕이 터져 나왔다.
“이런 개쌍놈의 새끼가.... 내가 제 놈 수하인 줄 착각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본토에서 넘어오는 오천 사무라이가 도착하면 더 이상 남해검문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 수 틀리면 남해검문을 싹 쓸어 버리면 되는 거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