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87화 (87/167)

87. 길잡이다!

순풍에 잔뜩 부푼 돛과 망망대해만을 이틀 동안 보아온 일행들의 앞에 자그마한 섬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군도가 나타났다.

“저 곳에서 정박 후 정비를 한다.”

북리준의 명이 벽라도와 금사도의 배들에게 수기로 전해 지고 대장선이 먼저 군도 안에 들어섰다.

“오늘 하루 이 곳 군도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가 머무는 곳에서 회합을 할 수 있게 준비를 부탁해.”

북리준의 말에 제갈청하가 고개를 끄덕인 후 배를 떠나 정박 중인 배들 사이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 바다라는 곳이 정말 심심하기 그지 없는 곳이군.”

막대광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땅에 내려서며 입을 열었다.

“네 놈이 잔잔한 바다를 보고 호강에 겨워 하는 말이다. 이 바다가 한번 성을 내면 우리가 타고 온 배 절반이 수장 될 수도 있어. 잠자는 바다에 감사하라고.”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불퉁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런 바다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복귀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구놈들의 배나 만났으면 좋겠구만....”

“생각이 다 있겠지. 기다려 보자구.”

흩어져 있는 섬 군데 군데 흩어져 취식을 하는 검단원들을 단도리한 대주들과 북경에서 내려온 일행들이 회합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커다란 모닥불이 제 몸을 활활 태우며 주위를 밝히고 해남검단의 비 전투대인 주작대를 제외한 네 개 대의 대주와 유검패를 위시한 동창, 금의위 군관, 팽가, 모용세가, 진주언가, 하후세가의 소가주들, 낭인들과 독고우, 막대광, 곤오의 옆에 철면신산, 제갈청하, 벽사도주와 금사도주가 자리를 잡았다.

“모처럼 저희 해남검단을 움직이는 주축들이 모였군요.”

북리준이 먼저 준비한 술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하고 술이 두어순배 돌았다.

“왜 갑자기 이런 예상치 않은 해상훈련을 하는지에 대해 다들 궁금하실 것입니다.”

북리준이 던진 말에 술잔을 부딪는 군웅들이 일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다들 갑작스런 해상 훈련이 당황스러울 법 한데 지금까지 참아 주셔셔 정말 감사합니다.”

호군참령어사이며 해남검단주, 그 이 전에 이름 없는 낭인, 천산파의 봉공인 북리준을 모인 인원들이 각 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희가 북경에서 해남검단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남해에 횡행하는 왜구를 일소 하는 것입니다.

허나, 우리가 일 년 반이 넘도록 한 일이라고는 뭍에 올라온 왜구들을 섬멸하며 언제 또 올라 오는지 하릴없이 기다리는 끝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거대한 모닥불에 비추인 북리준의 비장한 얼굴에 중인들이 숨을 죽였다.

“왜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모아 강해지면 뭍이건 해상이건 노략질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저희가 처한 곳에서 막기에는 끝나지 않는 전쟁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수뇌부 몇과 청나라 조정과 삼 개월 전 왜구들의 근거지를 소탕하기 위한 회합을 가졌었습니다.”

북리준이 숨을 죽인 채 자신에게 눈과 귀를 모으는 군웅들을 일별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이 곳에 있는 이유는 단순한 해상 훈련의 일환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왜구와 남해검문의 눈과 귀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판단 했기에 부득이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지금에야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우리 엿 된 것 같은데....’

‘나도 난데없이 실전 같은 해상 훈련이라는 말에 찜찜했다구.’

벽라도주와 금사도주가 중인들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우리끼리 뭘 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들어보자구. 만일 우리끼리 뭔가를 해 보자구 한다면 목숨 걸고 말려야 돼. 스물 다섯의 군선으로는 남해검문도 못 이긴다고.’

두 도주가 눈치를 보며 전음을 날리며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여는 해남검단주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럼 해상 훈련이 아니면 무엇을 하려고 이 먼 바다에 다 나온 겁니까?”

백호대주 봉필이 불안한 눈으로 서로 눈치를 보던 대주들을 대표 해서 손을 들었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왜구들이 쉬지 않고 튀어 나오는 그들의 근거지를 습격하려고 합니다.”

“여기 있는 배 스물 다섯과 육백이 넘은 인원으로 왜구들의 소굴을 소탕 하겠다고요? 아니 아니... 일단 하나 묻겠습니다.

왜구들의 소굴을 알기는 하고 움직이는 것 입니까? 그 누구도 그 놈들의 소굴을 알지 못했는데 검단주님께서는 그 곳을 안다는 말씀 입니까?”

벽라도주가 벌개진 얼굴로 말을 쏟아내었다.

“벽라도주님이 알맞게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당연히 놈들의 근거지를 다행히 알게 되었습니다.”

“자, 잠깐만요..... 왜구들의 소굴을 알았다 칩시다. 우리 배와 인원으로 왜구들의 근거지를 치겠다는 겁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 천이 넘는 왜구들과 백 척 이상의 군선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건 자살행위입니다.”

금사도주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열변을 토했다.

“금사도주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저희 군선과 인원으로 왜구들의 소굴을 치겠다는 것은 망상이지요.”

북리준의 말에 중인들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준이,,, 아니 검단주가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할려고 하겠어?”

모용민의 말에 하후상이 입을 열었다.

“금사도주님, 하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자신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실례를 한 것이 아닌가 의기소침해진 금사도주가 급격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삼년에 한번씩 청조에서 실시하는 해군 해상 훈련이 있는 것은 인지하고 계시는지요?”

“당연히 알고 있지요. 청조에서 훈련 실시 두 달전에 해남도와 벽라도, 금사도에 협조 공문을 보내 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에도 받았지요.”

금사도주가 보낸 눈길에 벽라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청조의 해군 해상 훈련이 이번에는 다른 경로로 움직일 것입니다.”

“다른 경로? 어디로 말입니까?”

벽라도주와 금사도주는 청조의 해군이 산동에서 출발하여 남해를 경유 하여 운남까지 이동하는 훈련 경로를 머리에 떠올렸다.

“저와 군사님과 부군사가 삼개월 전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대계를 위한 준비는 육개월 전부터 시작을 했고 앞으로 넉넉잡고 닷새 후 그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벽라도주가 신중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사 대인의 말씀을 종합하면 저희들은 지금 마사히로 놈의 근거지를 향하고 있고 그 곳을 공격할 때 청조의 해군도 함께 할 예정이라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정확하게 말씀 드리면 저희 군선 스물다섯과 청조의 해군 백이십척, 정예 해군 일만이 함께 할 예정입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발표에 좌중의 군웅들이 서로를 쳐다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질문이 있습니다.”

팽무강이 손을 들고 북리준과 눈을 마주쳤다.

“말씀 하시지요!”

“어사 대인의 말씀대로 라면 백 오십척이 넘는 군선이 자신들의 근거지로 쳐들어 오는데 왜구들이 아무런 조치 없이 손을 놓고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왜구들의 근거지라면 외부의 공격에 대한 화포나 군선에 대한 대비 없이 들어 갔을 경우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력의 대부분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는 있으신지요?”

팽무강의 날카로운 질문에 중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북리준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조의 해군과 조우 하기 전에 저희들이 해결해야만 할 문제입니다.”

“이 너른 바다에 우리와 청조의 해군을 어디서 조우할 예정이십니까? 자칫 저희끼리 교신을 하다 왜구들에게 들킬 확률이 너무 큽니다.”

언철진의 말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왜구들에게는 전혀 들키지 않고 청조의 해군과 조우할 방법이 제게 있습니다. 그 점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군웅들이 자신들의 궁금증을 질문하면 북리준과 제갈청하가 번갈아 대답을 해주고는 회합을 파할 시간이 되었다.

“지금 각 자의 배로 돌아가셔서 우리의 최종 목적이 훈련이 아닌 왜구들의 근거지를 치러 간다는 점을 명확히 주지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북리준의 말에 반신반의한 얼굴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군웅들의 뒷모습을 북리준과 철면신산, 제갈청하가 바라 보고 있었다.

“무림 사대세가의 소가주님들과 독고, 막숙부님은 잠시 남아 주시지요.”

북리준이 약 일다경 정도 주위에 기막을 둘러 말이 새어 나가지 않게 뭔가를 지시를 내린 후 각자의 배로 흩어졌다.

“다음 단계를 대비해 주세요.”

“알겠네!”

북리준의 말에 철면신산과 제갈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런 씨벌.... 이거 완전히 자살하러 가는 거 아니여?”

해남검단원들이 각 대의 대주들에게 작전 내용을 들은 후 삼삼오오 모여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야야, 우리 검단주님을 믿자구. 언제 그 분이 우리한테 해 끼친 적 있냐? 검단주님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구천을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고.”

“그려, 저 놈 말이 맞아. 설마 윗 사람들도 같이 자살하러 가겠냐?”

벽라도 소속 배 한 척에서 ‘푸드덕’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 오르는 순간 ‘쌔애액’ 백색의 선이 하나 그어 지며 그 궤적에 걸린 전서구가 목을 잡혔다.

“잡아라!”

백응에 의해 목줄기가 잡힌 전서구를 손에 쥔 철면신산의 나직한 음성에 후미진 뒤편에서 전서구를 날렸던 누군가의 목에 제갈청하의 비도가 대어졌다.

“사, 살려 주시오....”

벽라도주와 함께 한 대장선에서도 검디 검은 하늘을 향해 새 한 마리가 창공을 향해 날개짓을 시작했다.

‘시이이익’ 공간이 갈라지는 기음과 함께 날아오른 월륜에 두 조각으로 갈라진 전서구를 받아든 곤오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잡았어!”

막대광의 거도가 목에 대어져 방울 방울 피를 흘러내린 벽라도 부도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갔다.

곤오가 가져다 준 피에 절은 돌돌 말린 전서를 편 북리준의 얼굴에 차가운 서리가 한겹 내려 앉았다.

“자결 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해주세요.”

“그거야 내 전문이지.”

독고우가 부도주의 입을 뒤져 독단의 유무를 확인한 후 혀를 물지 못하게 헝겊 뭉치를 입에 한 가득 밀어 넣은 후 재갈을 물렸다.

“어디 쪽인가?”

막대광의 물음에 북리준이 곤오에 의해 결박지어지는 벽라도 부도주에게 시선을 던졌다.

“남해검문 쪽입니다.”

북리준이 건네준 서신을 받아든 막대광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마사히로의 근거지 습격 / 청조 해군 조우 예정 / 닷새 후’

북리준의 호출을 받아 급히 다가온 벽라도주의 눈에 입에 재갈을 물리고 결박되어진 부도주와 눈이 마주쳤다.

“간자입니다. 남해검문에서 심어두었습니다.”

북리준이 건네준 밀지를 읽은 벽라도주가 냅다 발을 들어 부도주의 가슴을 내질렀다.

“에라이, 개자식아!”

제갈청하가 가져온 밀지는 왜어로 되어 있었다.

‘해상훈련은 속임수 / 무극으로 청조 해군과 함께 습격 예정.’

“독고숙부님! 두 간자의 취조를 부탁 드립니다.”

“내 제자가 그 쪽은 전문가라네.”

히죽 웃음을 지으며 두 자루의 삭도를 양쪽 허리에 꽂아 넣는 곤오의 모습에 두 간자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

“금빛 거북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한다. 거대한 금빛 거북을 찾아라.”

매 번 지나던 남해를 지나 운남으로 향하던 뱃머리를 틀어 왜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 청조의 정이품 무직 외관인 해군 총병 금무성 대인의 명에 망원경을 든 군관들이 눈이 빠져라 너른 바다를 뒤지고 있었다.

“차, 찾았습니다.”

군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받아든 망원경으로 주시하던 금무성 대인의 입에 웃음이 걸렸다.

“우리의 길잡이다. 전군 저 금빛 거북의 뒤를 따라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