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말이 쉽지
‘구우우우우욱’
북리준이 기다리고 있던 금아의 울음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갔다 올께!”
곁에 있던 제갈청하가 걱정스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 보았다.
“최종적으로 작전을 검검하고 바로 올 거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짧게 설명해 줘.”
수어피를 갈아 입고 일월신검을 등에 멘 북리준이 저 편 바다에 둥실 얼굴을 내밀고 있는 금아를 발견하고는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다.
“수고했어. 안내를 부탁해!”
북리준이 금아의 등에 올라타자 금아가 긴 숨을 한번 내 뿜고는 빛살 같은 속도로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약 두 시진 정도를 쉬지 않고 바다를 가른 금아와 북리준의 눈에 저 멀리 백여척의 군선이 무리 지어 있는 장관이 들어왔다.
“거북이 돌아왔습니다.”
동창의 유공공과 곽대인의 지시사항대로 금빛 거북과 조우한 후 같은 자리를 세 번 맴돌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사전 언질에 금무성 대인이 돌아올 거북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있습니다.”
“정중히 모셔라!”
정면 맨 앞에 나와 있던 대장선의 깃발을 확인한 북리준이 금아와 함께 그 배로 다가갔다.
“총병 대인을 뵙습니다.”
배에 올라선 북리준을 맞이 하는 금무성 대인을 향해 포권을 취한 채 허리를 숙였다.
“반갑소. 호군참령어사! 황태자 전하와 유공공, 곽대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자신을 반가이 맞아 주는 금대인과 함께 대장선 중앙의 지휘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짧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해군 총병 금무성, 그 휘하 군관들 이십여명과 약 반 시진에 걸친 회의를 끝낸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어사의 책임이 막중하군. 논의 되어진 대로 일이 진행 되지 않을 경우 우리 수군의 피해가 막심 할 수도 있겠어.....”
“이번 대계 성공의 관건은 시간을 어떻게 맞추느냐입니다. 빨라도 늦어서도 안됩니다.”
“알겠네. 최선을 다해 맞추겠네.”
북리준이 다시 수어피를 입은 채 금아의 등에 올라타고 순식간에 저 편 바다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금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영물이 함께 하는 자이니 성공의 확률이 크겠구나.”
수하 군관들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에 들어선 금대인이 진중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전군 동남 방향으로 중속 전진하라. 이틀 동안 속도를 유지하고 추후 명을 내리겠노라.”
금무성 대인의 명에 군관들이 바삐 움직이고 돛대 위에 올라선 수기 군병의 깃발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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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틀 동안 나아가다 우리끼리 적진에 침투한다는 말인가?”
독고우의 말에 임시 막사에 모인 좌중의 인물들이 북리준에게 시선을 던졌다.
“맞습니다. 청의 수군이 당도하기 직전 적의 포대와 망루를 무력화 해야 합니다.”
독고우, 막대광, 곤오를 위시하여 팽무강, 언철진, 모용민, 하후상의 세가 고수들, 유검패와 동창, 금의위 군관 넷, 마지막으로 섬전창과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 벽사도주, 금사도주 등을 돌아본 북리준이 다시 말을 이어간다.
“무극도라는 섬 전체에 망루가 두 곳이 있습니다. 이 두 곳을 우리가 선점하여 청조의 수군이 무극도에 접근하는 것을 최대한 적들이 늦게 알아 차리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일 위험한 일이군....”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곳의 망루는 저와 독고숙부, 막숙부, 곤오가 맡습니다.”
“검단주는 빠져야지. 지휘를 해야 할 사람이 현장에 있으면 곤란하지 않겠어?”
제갈청하의 말에 팽무강이 동의를 표했다.
“부군사의 말이 맞습니다. 검단주는 이 모든 계획의 중심에 있는데 현장에 투입 되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서 무극도를 직접 갔다온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망루를 먼저 우리 손에 넣지 않는다면 포대를 무력화할 침투조를 적들에게 들키지 않게 섬에 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북리준의 확신에 찬 말에 좌중의 인물들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포대는 이 네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탁자에 펴 놓은 북리준이 직접 정탐을 하고 나서 만든 지도에 중인들의 시선이 모였다.
“남방, 동방의 포대를 제외한 우군의 진입 예정 방향에 위협이 될 두 곳의 포대를 무력화 해야 합니다.”
“포대를 어떻게 무력화 하지? 터뜨리나?”
막대광의 물음에 하후상이 자신이 할 질문을 미리한 노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금사도주님이 말씀해 주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섬전쾌도 사중현이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사대인이 포대의 무력화에 대한 문의를 예전에 해 오신 적이 있어 설명을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사대인의 명으로 그에 필요한 물자를 충분히 실어 왔습니다.”
옆에 앉은 벽라도주가 자기로 된 자그마한 병 서너개를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그게 뭐요?”
하후상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불쑥 입을 열었다.
“염산입니다.”
“염산?”
막대광이 반문을 하자 금사도주가 중인들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사대인의 설명대로 라면 무극도에 설치된 포는 바퀴가 없는 철포로 붙박혀 있는 구 시대의 포로 추정됩니다. 탄환을 발사하는 모포(포신)와 탄환 및 화약을 채워 넣는 자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포 뒤에 있는 구멍에 탄약이 장전된 자포를 끼워 심지에 불을 붙여 점화하는 방식인데 이 포의 최대 약점은 점화를 위한 심지가 막히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염산으로 심지 구멍을 녹여 막아버린다는 말이군.”
독고우의 말에 금사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포에 접근하여 심지 구멍에 염산을 부어 넣는 것 만으로 포를 무력화 할 수 있습니다.”
금사도주의 말에 중인들이 포의 무력화 방법에 대한 이해를 했으나 만만치 않은 작전 내용에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지금 까지 말씀 드린 작전 내용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철면신산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일소 하기 위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검단주와 독고, 막 선배님, 곤오 소협이 망루를 담당합니다. 맨 먼저 섬에 오르는 조가 출발 하면 한 시진 후 포대를 무력화할 침투조가 움직입니다. 포대를 무력화 한 후 반 시진 내에 청조의 군선이 무극도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접근 할 예정입니다.”
철면신산이 입술이 타는 느낌에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포대의 무력화가 완료되어 망루 탈환조와 침투조가 신속히 탈출 하면 저희 군선이 청조의 해군과 조우하여 무극도를 공격하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입니다.”
그 때 말없이 듣고 있던 귀산자가 손을 들었다.
“참 쉽게 말씀 하십니다. 지금까지 들은 바에 의하면 왜구들이 득시글 거리는 섬에 올라가 꼴랑 이십이 안되는 인원이 망루를 점령하고 포대를 무력화 한다는 것이군요.
망루 라는 곳과 포대 라는 곳이 군대의 최대 요충지 인데 거기를 지키는 왜구들은 다 장님과 귀머거리란 말입니까?”
중인들이 꺼림직하여 미처 꺼내지 못한 말을 낭인무사가 꺼내자 일제히 철면신산에게 시선이 모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저희 해남검단 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분들입니다. 최대한 은밀하게 경비 하는 왜구들을 지우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 했습니다.”
철면신산의 말에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귀산자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쉬운 임무는 절대 아닙니다. 허나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지요. 만일 포대를 무력화 하지 못한다면 청조의 수군이 무극도에 오르기 전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 합니다.
낭인 고수분들은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참여 하시고 싶으신 분만 동참해 주십시오.”
“아니, 뭐....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귀산자가 단호한 북리준의 말에 머뭇거리며 말을 흐리자 옆에 앉아 있던 섬전창이 대신 말을 받았다.
“어차피 어사대인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 곳에 있지도 못했네. 난 동참 하겠습니다.”
“저도 합니다.”
“저는 원래 하려고 했습니다.”
벽안독검과 독안검의 말에 귀산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동참 하겠수....”
낭인들이 동참 의사를 밝히자 작전 회의의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앞으로 이틀 동안 전체 군선이 함께 이동 후 사흘째 되는 밤, 작전을 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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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망망대해를 다시 가로 질러 남동 방향으로 나아간 후 목적지인 무극도에서 반나절 걸리는 자그마한 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늘 밤이 많이 길겠군....”
막대광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독고우가 말을 받았다.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지....”
“그래, 이번에는 몸 좀 제대로 풀 수 있겠구만.”
“그래, 계획대로만 된다면 왜구들을 원없이 썰 수 있을 거다.”
북리준과 독고우, 막대광, 곤오가 각자의 무기를 챙겨들고 입고 있던 옷 위에 수어피를 겹쳐 입었다.
“정말 몸 조심해....”
제갈청하가 걱정이 하나 가득한 얼굴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다 잘될거야. 걱정하지마!”
저 앞에 금아가 네 사람을 무극도에 데려가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고 북리준이 철면신산에게 전음을 날렸다.
‘망루 탈환조와 포대 침투조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탈출에 실패할 경우 집결지를 침투조에 주지 시켜 주시면 최대한 섬에서 버티겠습니다. 청조의 군선과 조우하셔서 신속한 공격 부탁 드리겠습니다.’
‘알겠소이다.... 무운을 빌겠소!’
“금아가 다시 돌아오면 침투조를 바로 출발 시켜 주시지요.”
배로 반나절 거리지만 금아의 속도로 한시진 정도면 도착이 가능하기에 철면신산에게 다시 한번 점검을 했다.
너댓명이 겨우 탈 수 있는 구명선이 내려지고 북리준과 독고우, 막대광, 곤오가 배에 오르고 뱃머리에 고정한 밧줄을 입에 문 금아가 힘차게 바닷물을 가르기 시작했다.
“허허, 영물은 영물이로고....”
네 사람을 실은 배가 기쾌한 속도로 바닷물을 가르고 날 듯이 달리자 막대광이 혀를 찼다.
“저와 곤오가 함께 하겠습니다. 두 분이서 다른 한 곳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북리준이 지도를 펴자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었다.
“망루를 점령하고 철수 하실 때 탈출이 용이치 않은 상황이 발생 한다면 이 곳으로 와 주십시오.”
두 망루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자그마한 숲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같은 시각 철면신산이 침투조를 모아 지도를 탁자에 편 채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포대를 무력화 하신 후 탈출에 실패 한다면 이 곳으로 집결해 주십시오.”
철면신산의 손가락이 가리킨 숲을 보며 침투조의 표정이 굳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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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터는 물 속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저 앞에 밝은 횃불과 모닥불이 휘황찬란한 무극도를 보며 북리준이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근다.
“금아야, 다시 한번만 수고 해줘!”
북리준의 말에 금아가 북리준의 얼굴을 한번 핥고는 빈 배를 끌고 왔던 물길을 돌아 나갔다.
“무훈을 빌겠습니다. 모쪼록 몸조심 하십시오.”
“우리 걱정은 말고 곤오 놈이나 잘 챙겨 주시게.”
차가운 바닷물 속에 몸을 밀어 넣은 네 사람이 저 멀리 보이는 망루를 향해 손과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근래 약탈을 못 나가서 좀이 쑤셔 죽겠구나.”
“쇼군께서 조금만 참으라고 하셨으니 조만간 뭍이건 해상이건 나가겠지.”
“소문 들었지?”
“무슨 소문?”
무극도 양 끝에 약 오장 높이에 위치한 망루에 두 왜인 무사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망망대해를 바라 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천명의 사무라이들이 우리 무극도에 합류 한다는 소문 말이야.”
“병신! 네가 알았다면 이 섬 전체 사람들이 다 안 거다.”
“개자식. 말 참 이쁘게 한다. 그나저나 그 사무라이들이 도착하면 이렇게 숨어서 노략질 하는 것도 끝이라던데?”
“병신아! 아무리 우리 측 병력이나 무력이 세다고 무턱대고 중원 놈들 땅을 덜컥 먹었다가 청조에서 해군을 파견하면 끝이야. 쇼군께 다 계획이 있겠지.”
두 무사의 잡담 소리가 점점 명료해 질 정도로 망루 사다리 반대쪽에 매달려 오르던 북리준과 곤오가 서로를 쳐다 보며 발 끝에 힘을 주고 망루 안으로 뛰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