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탈출로는?
‘채채채챙 카카가각 크악’
자신들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 붙은 왜구들을 도륙 하며 달려 나가는 낭인들을 따라 잡은 유검패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병신같은 새끼! 동창의 군관이라는 새끼가...”
서방 포대를 맡은 유검패가 낭인들과 동창, 금의위 군관과 함께 포를 무력화 하는 중에 볼일을 보러 나온 왜구 놈을 처리 하지 못해 발각되어 참살된 것을 두고 다시 한번 속에서 천불이 솟아 올랐다.
“더 빨리 뛰어!”
유검패가 앞장 서 신법을 전개하는 낭인과 군관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숲에 들어 서면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것이다.”
횃불에 번들거리는 왜도를 치켜든 사무라이들이 날 듯이 달려 나와 자신을 두 조각 내기 위해 신형을 띄우는 순간 공간이 갈라지며 튀어 나온 삭도에 의해 목과 허리가 갈라지며 떨어져 내렸다.
“곤오소협!”
난무하는 삭도의 궤도에 걸린 왜구들 대여섯의 육편이 비산을 하고 뒤따르던 몇몇 왜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곤오가 두 자루의 삭도를 양 손에 감아 쥔 채 유검패를 향해 일행들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고개짓을 했다.
“알겠소! 바로 따르시오.”
유검패가 땅을 박차고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뒤를 쫓는 순간 곤오의 신형이 모래처럼 스러져내렸다.
“사, 사술이다...”
겁에 질려 뒤로 물러 나려는 왜구 무사의 목이 순간 공중으로 솟아 오르고 뒤에 서 있던 마사히로의 세 번째 제자이며 제삼 코케닌인 사스케가 자신의 왜도를 흔들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병신새끼들. 적들을 쫓아라. 물러나면 내 칼에 죽는다!”
마사히로의 제자이며 코케닌의 명에 왜구들이 우르르 유검패가 사라져간 방향으로 뛰어 가기 시작했다.
“산 채로 잡아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저며 주겠다.”
잔인한 미소를 입에 한 가득 베어문 사스케가 앞으로 튀어 나가자 그를 따르는 사무라이들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크아아악 차차창 카카가가각’
퇴각이 여의치 않을 시 합류 하기로 한 숲에 다가가기 위해 미처 포위망을 구축 하지 못해 돌파하기 용이한 곳을 하후상의 창과 팽무강의 도가 뚫어 내기 시작했다.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접선 장소에 도달 하는 것이 먼저다.”
철면신산이 후위에서 자신을 저미기 위해 뻗어 오는 왜도를 걷어내고 착실하게 일검에 하나의 목숨을 취하며 고함을 질렀다.
“뚫었습니다.”
온 몸에 피갑칠을 한 하후상의 장창이 마지막 왜구의 머리통을 터뜨린 후 팽무강이 소리를 질렀다.
“전속 전진!”
철면신산의 명에 하후상과 팽무강이 양 옆에 달려드는 왜구들은 썰어 뚫어대며 길을 열자 그 뒤를 제갈청하, 모용민, 언철진이 따라 붙었다.
‘크아아아악’
“이런....”
후미에서 철면신산과 함께 일행을 엄호하던 동창의 군관이 예사롭지 않은 기세의 사무라이들에게 둘러싸인 후 팔다리 머리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모습에 철면신산이 미련없이 신형을 돌려 신법을 전개했다.
‘헉헉헉헉’
유검패가 저 뒤에서 물밀 듯이 밀려오는 왜구들의 무리를 일별하고는 지체 없이 숲 안으로 뛰어 들었다.
“정지!”
사스케의 명에 왜구들이 적들이 뛰쳐 들어간 숲을 노려 보며 손을 들었다.
“이 숲의 뒤편은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전면만 막고 숲을 들이친다면 전부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어느새 자신의 뒤로 군대를 이끌고 다가온 사제이며 제오코케닌인 미쯔스키가 앞으로 나섰다.
“넌 북방 포대를 습격한 놈들을 잡으러 가지 않았나?”
“놈들도 저 편 방향으로 이 숲에 뛰어 들었습니다.”
자신의 왜도를 들어 숲의 서편 방향을 가리켰다.
“몇 놈이냐?”
“한 놈은 난도질을 쳤고 여섯 정도로 파악 됩니다.”
“이쪽도 여섯 아니면 일곱 정도니 총 열서넛 정도구나. 이런 적은 인원이 왜 들어 온 걸까?”
“일단 잡고 나서 살껍데기를 한겹씩 저며 내면 알 수 있겠지요, 크크크!”
“이쪽이오.”
철면신산이 피갑칠을 한 채 허겁지겁 숲으로 뛰어 들어온 유검패 일행을 손짓으로 불러 들였다.
“수고 많았소이다. 임무는....?”
“죄송합니다. 스무 문의 포 중 일곱문을 처리 하지 못했습니다.”
“허허, 할 수 없지요.”
섬전창과 귀산자가 헐떡이는 숨을 몰아 쉬고는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탈출로는 확보 되어 있겠지요?”
귀산자의 물음에 철면신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너무 일찍 발각이 되었소. 있는 상황을 그대로 말씀 드리겠소. 본래의 계획대로 라면 우리가 북방과 서방의 포대를 무력화 하고 해변가로 무사히 나아가거나 일이 잘못되어 이 곳에 집결해야 하는 시각이 너무 이르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이오?”
귀산자가 말을 빙빙 돌리는 듯한 철면신산의 말에 짜증난 표정을 짓자 섬전창이 귀산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저 들어 보고 이야기 하게. 계속 하시지요.”
어느새 철면신산과 섬전창의 주위로 모여든 일행들이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검단주가 여기 숲에 집결지를 지정한 이유는 이 곳에서 시간을 끌며 버티기에 유리하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오.
여기에 검단주와 독고대협, 막대협이 가세 하면 청조의 대군이 무극도를 급습할 때 까지 버텨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오.”
철면신산의 말에 귀산자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쉽게 말하면 여기서 청조의 수군이 올 때 까지 싸운다? 늦으면 죽는 거네....”
“이봐! 어차피 투덜 거려 봐야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잖아. 괜히 다른 사람 사기까지 죽이지 말고 싸우기 싫으면 저 쪽 숲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가.”
팽무강의 말에 귀산자가 발끈 하며 자신의 철주판을 잡아가려 하자 벽안독검이 그의 머리를 내리 눌렀다.
“팽소협의 말이 맞잖아. 어차피 갈 길은 정해져 있고 최선을 다해 보자구. 어사 대인이 생각이 짧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를 믿어 보자.”
“벽안의 말이 맞아. 이 상황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것은 너 혼자 죽는 걸로 끝나지 않아. 그리 마음에 안 들면 너 혼자 살길을 찾든가!”
섬전창의 단호한 말에 귀산자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음대로 하쇼.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나도 내 할 몫은 할테니까.”
“각 자 적을 맞이할 최적의 장소를 찾아 은신하시오. 지금 당장!”
“절벽 쪽으로는 빠져 나갈 방법이 없으니 이 전면의 숲만 포위하면 놈들은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사제인 미쯔스키의 말에 사스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시립해 있는 최측근 사무라이 열에게 명을 내렸다.
“반 정도는 산채로 끌고 오너라.”
“하이!”
코케닌 휘하 사무라이들이 일반 왜병 백여명을 앞세워 조심스럽게 숲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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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서 있는 망루 밑으로 새카맣게 몰려드는 왜구들을 보며 독고우가 걸치고 있던 왜병의 옷을 벗어 던졌다.
“이제 슬슬 이 곳을 벗어나자구.”
넝마가 되어 버린 왜병의 옷을 찢어 버린 막대광이 자신의 거도를 손에 들었다.
“지금은 도망 갈 때지?”
“당연하지. 저 밑에 가서 살 자신 있으면 뛰어 들던가!”
독고우가 저 편 숲에 왜구들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방향을 가늠했다.
“잘 따라와! 저 사이로 떨어지면 아주 괴로울테니까...”
망루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는 수십의 왜구들을 보며 막대광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갈 땐 가더라도 선물은 하나 주고 가야지.”
막대광이 자신의 묵룡도를 들고 망루 난간에 서서 개미 떼 같이 왜구들이 매달린 계단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사아아아악 끼이이이이이익’
묵룡도에 어린 도기에 육중한 계단을 망루에 붙들어맨 고정쇠가 깔끔하게 잘려 나가고 막대광이 계단 양 쪽을 잡고는 팔근육이 터질 듯 힘을 주기 시작했다.
“너, 넘어간다. 크아아아아아악”
거대한 계단이 서서히 뒤로 넘어가는 느낌에 위를 쳐다본 맨 앞에 선 왜구의 눈에 머리가 희끗한 중원인이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잘가!”
묵룡도를 자신의 등에 단단히 고정한 막대광이 난간에 위태하게 서 있는 친우를 바라 보았다.
“출발하자구. 여기는 너무 좁아!”
소리 없이 난간을 박차고 저 편 초가 지붕에 내려 앉은 독고우를 보며 막대광이 두 발에 진기를 몰아 넣고는 힘차게 발을 굴렀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망루를 박차고 날아 오른 막대광이 고개를 돌려 뒤를 힐끗 보니 자신의 두 발에 의해 뭉개져 가는 망루의 모습에 웃음을 짓고는 저 앞에 사는 친우의 뒤를 급히 따랐다.
****
“보고하라!”
“스무문의 포 중 열 셋이 상했습니다.”
“수리를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가?”
“족히 닷새는 걸립니다.”
“남방과 동방의 포를 이 곳으로 옮기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가?”
“열흘은 족히 걸립니다. 포를 수리 하여 재배치 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서방 포대의 경비를 맡은 다섯 번째 제자인 유키토가 이를 부득 갈았다.
“최대한 빨리 수리를 맡기고 상하지 않은 포는 넓게 산개하여 포진하라.”
포 하나에 열 명의 왜병들이 달라 붙어 낑낑 거리며 포를 옮기는 모습을 보고 유키토가 자신의 수하에게 명을 내렸다.
“북방 포대의 피해 상황을 알아 오너라.”
“하이!”
고정된 포를 풀러 산개 배치 하기 위해 포를 미는 왜병의 눈에 검은색 비조 한 마리가 밀고 있는 포신에 내려 앉았다.
‘우지끈’ 하는 굉음과 함께 포신에 내려 앉은 복면인이 있는 방향으로 포신이 순식간에 기울며 굉음과 함께 산비탈로 굴러 떨어졌다.
“포, 포가 떨어 진다! 조심해.”
‘쿠르르르르릉 콰롸라라쾅’
쇳덩어리 포가 산비탈을 타고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며 그 밑에서 작업을 하던 왜병들을 깔아 뭉개었다.
“크아아아악 내 다, 다리 아아악”
포의 산개를 위해 풀어 놓은 포신으로 널뛰며 천근추로 포신을 내리 눌러 세 대의 포를 더 산비탈로 굴린 북리준의 눈에 수십명이 굴러 떨어진 포에 처참하게 짓이겨져 죽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저, 적이다!”
“고작 한 명이다. 쳐라!”
고정된 포를 풀어 내어 옮기는 작업을 하던 백여명의 왜구들이 일제히 자신의 무기를 들고 야행의 차림의 괴한에게 달려 들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이잉 쉬이이이익’
복면 괴한의 두 팔이 허공에 휘둘러 지며 기이한 곡선을 그리자 공간을 가르는 기이한 소성과 함께 덤벼들던 왜구들의 팔다리며 머리가 공중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자신의 앞에 왜도를 들고 뛰어 가던 동료의 팔이 날아오는 것을 급히 자신의 도로 쳐낸 왜병의 눈에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커허억”
동료들의 신체의 일부분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가운데 자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에 순식간에 암전이 되었다.
‘세 개가 남았다!’
북리준이 일월쌍륜으로 자신을 에워싼 적들을 도륙하며 사이로 보이는 고정되어 있는 포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단섬! 극과 극의 한줄기 선.’
어느새 뽑힌 일월신검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선이 지나간 후 포신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두 동강 나며 다시 산비탈을 굴러 떨어져 내렸다.
“저, 적은 한 명이다. 당황하지 말고 에워싸란 말이다.”
마사히로의 다섯 번째 제자인 유키토의 고함에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던 왜병들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