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늦지 않았군
북리준이 자신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 서는 왜구들을 일별하고는 즉시 땅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으허억”
북리준에게 다가서던 왜구들이 놀라 기함을 하며 뒤로 나자빠지는 찰나 신형을 공중에 띄운 북리준의 두 팔이 기이한 곡선을 그리자 일월쌍륜이 두 개 남은 포의 포구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그그그극 카가카카캉’
순식간에 포구 밖으로 뛰쳐 나온 일월쌍륜을 수갑에 수납한 북리준이 내려서며 그은 일검에 살과 피가 튀며 한 갈래 길이 열리고 미련없이 땅을 박차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쪼, 쫓아라!”
다섯 번째 코케닌인 유키토의 떨리는 고함소리에 왜구들이 북리준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뛰어 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놈의 무공이.....”
순식간에 포 다섯 대를 굴리고 잘라낸 복면인의 무위에 유키토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포 두 대를 정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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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는 다시 탈환했습니다.”
카이토의 말에 의관을 정제하고 자신의 무기를 챙긴 마사히로가 차가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놈들이 습격한 곳이 어디라고?”
“북방과 서방의 포대입니다. 북방의 포대는 산을 이용해 포의 심지를 붙이는 부분을 녹여 스무문 전부 다 못 쓰게 되었습니다. 서방의 포대는 일곱문 정도가 남았습니다.”
카이토가 자신에게 상황을 보고 한 후 북리준에 의해 서방의 포가 무력화 된 것을 알지 못한 채 보고를 이어갔다.
“망루..... 북방과 서방의 포대...... 이런! 제길.”
마사히로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전군 배에 올라 적의 습격에 대비하라. 놈들이 공격하는 방향은 북방과 서방이다.”
“아, 알겠습니다. 하면 북방 숲에 몰아 넣은 적들은 어찌 합니까?”
“빠가야로! 고작 열 명이 넘는 인원을 뭘 어떻게 해? 네 놈이 사무라이 오십을 데리고 가서 다 죽여버려.”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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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열명과 백 여명의 왜병들이 숲 속으로 조심스럽게 신형을 들이 밀었다.
‘사아아악 커허어억’
빽빽한 숲 속 사이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달빛을 더듬어 전진하던 사무라이의 정면 공간이 열리며 한 자루의 삭도가 갈지자로 춤을 추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방에 피를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갔다.
“저, 적이다.”
순식간에 사라져간 삭도의 궤적을 쫓아 자신의 왜도를 뻗어 내는 순간 불쑥 튀어 나온 삭도에 머리가 갈라졌다.
“귀, 귀신이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사무라이들이 맥없이 피를 뿜어 내며 허물어지자 그 뒤를 따르던 왜병이 뒷걸음질을 치다 위에서 떨어져 내린 창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피피핑 피핑’
자신이 은신한 나무 위에서 한 자루 한 자루 심혈을 기울여 날린 비도에 왜병들이 하나씩 그 자리에 신형을 눕혔다.
‘퍼버버버벅 파바바바방 파파팍’
왜병들 십여명이 무리 지어 지나가는 그 위에 떨어져 내린 언철진의 철권이 왜병들의 온 몸을 두들기자 언가의 철권에 닿은 몸통이며 머리가 터져 나가며 순식간에 십여명의 왜병들이 명을 달리했다.
‘피이잉 피이이이이잉 사아아악 사삭’
팽무강의 도에서 뿜어져 나온 도기에 썰려 나가는 왜병들이 영문을 모른 채 죽어 나가고 섬전창의 공간을 꿰뚫은 기쾌한 창에 몸이며 머리가 터져 나가는 왜병들 사이로 벽안독검과 독안검의 검이 왜병들의 목을 게걸스럽게 탐했다.
‘피피핑 피피피피피핑’
귀산자의 철주판알이 공간을 찢어 발기며 왜병들의 몸에 틀어 박히고 철면신산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현무형검이 뒤에서 미적이던 사무라이들의 목을 쳐 내었다.
‘크아아악 카아악 키헤에에엑’
숲 안쪽에서 연신 터져 나오는 비명성에 미쯔스키와 사스케가 눈을 마주쳤다.
“더 집어 넣어야 겠다.”
사형인 사스케의 말에 마쯔스키가 뒤를 돌아 보며 명을 내리려는 찰나 저 뒤에서 제일 코케닌이며 대사형인 카이토가 날 듯이 뛰어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사형!”
“스승님의 명이다. 너희들은 여기 있는 전군을 이끌고 배에 올라라. 곧 적들의 습격이 있을거라 하셨다.”
“하지만 저 안에....”
“여기는 내게 맡기고 전군을 수습하여 해상 전투를 준비 하라.”
“하이!”
카이토가 함께 온 정예 사무라이 오십인을 보고는 사스케와 마쯔스키가 자신들이 데려온 오백여명의 왜병들을 몰고 급히 포구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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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력은 도착 하는 대로 배에 승선 하여 전투 준비를 하라.”
무극도에 정박한 왜선들에 수 많은 왜구들이 급히 올라타고 한 대 두 대 포구를 벗어나며 전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뎅뎅뎅뎅, 북방과 서방에 포진하라.”
마사히로의 명에 의해 포구에 설치된 비상종이 쉬지 않고 악을 쓰고 약 백여척의 왜선들에 꾸역 꾸역 왜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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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욱.... 버겁군.’
팽무강이 온 몸에 피갑칠을 한 채 거친 숨을 조용히 내뱉고 있었다.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후욱 후욱.’
무극도에 들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시작한 전투가 거의 세 시진을 넘어가는 지금 체력의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백이 넘는 왜구들이 숲에 들어 온 후 잠시 찾아온 정적에 일행들이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비도가 다 떨어져 가.....’
자신의 몸 구석 구석에 꽂아 넣었던 비도가 고작 세 자루 밖에 남지 않음에 제갈청하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일행들은 다 살아 남았을까? 혹시 나만 남은 건 아닌지....’
하후상이 피에 절은 단창 두 자루가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며 피범벅이 된 옷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또 들어온다.’
섬전창이 숲 저 편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는 오십인 정도의 왜국 무사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놈!”
맨 앞에 선 카이토가 신형을 띄워 올리며 휘둘러진 왜도에 피가 뿜어져 나오며 힘없이 나무에서 누군가가 굴러 떨어졌다.
‘이런....’
금의위 군관이 적장의 왜도에 베어진 채 땅에 떨어지자 다섯 개의 왜도가 떨어진 동료를 난도질 쳤다.
‘위험해... 지금까지 상대한 일반 왜병들이 아니야...’
“놈들은 지쳤다. 최대한 빨리 처리 해라.”
“하이!”
지금껏 개인별로 움직이던 왜병들과 달리 오인 일조로 움직이는 사무라이들을 보며 섬전창이 숲 안으로 조심스럽게 신형을 옮겼다.
‘크허어어억’
사무라이들에게 발각된 동창과 금의위 군관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그것을 지켜 보던 모용민의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틀렸어....’
자신이 은신해 있는 나무로 다가 오는 오인의 사무라이를 보며 모용민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검을 잡아 갔다.
‘한 놈이라도 더 잡고 간다.’
“낄낄낄. 저기 한 놈 더 있네.”
“팔 다리가 흔들리는 모습이 여기에서도 보이는 구나.”
다섯명의 사무라이가 모용민이 숨어 있는 나무로 다가 오며 잔인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렸다.
‘같이 하자.’
모용민에게 전음을 던진 팽무강이 반대편 나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후후, 이번이 마지막 인 것 같군, 친구....’
‘그래.... 한 놈이라고 더 데리고 가야지.’
두 사람이 결연한 표정으로 다가 오는 사무라이들에게 신형을 날리려는 찰나 사무라이들이 서 있는 가운데 공간이 갈라지며 튀어 나온 검에 두 명의 목이 둥실 떠오르고 바로 그 앞 숲에서 뻗어나온 묵색의 거도에 세 명의 허리가 갈라져 갔다.
“독고대협, 막대협님....”
모용민과 팽무강이 다섯 사무라이가 널부러진 사이에 신형을 일으킨 독고우과 막대광을 보며 힘겹게 나무에서 내려섰다.
“고생들 했다....”
“지금 은신해서 하는 습격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대 놓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낫다.”
독고우의 말에 팽무강과 모용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힘들겠지만 움직여야 돼.”
독고우과 막대광 또한 이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적들을 베면서 체력이 거의 고갈 상태에 있었다.
‘카캉 카카캉 크아아아악’
무기가 부딪는 소리와 비명성이 들리는 곳으로 힘겹게 신형을 날린 네 사람의 눈에 온 몸이 갈라져 널부러진 동창과 금의위 군관 둘이 들어 왔다.
약 열명의 사무라이들에게 둘러 싸인 섬전창과 벽안독검, 독안검, 귀산자등이 팔 다리에서 연신 피를 흘리며 억지로 적들의 공격을 막아 가고 있었다.
“이놈들!”
막대광의 흑룡도가 낭인들과 대치하고 있던 사무라이의 등을 가르고 독고우의 용영검이 그 옆 적의 머리를 갈랐다.
“칙쇼!”
뒤를 잡혀 두 명의 동료를 잃은 사무라이들이 힘겹게 서 있는 팽무강과 모용민에게 왜도를 날리려는 찰나 사무라이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린 하후상의 단창에 머리가 터져나가고 옆에서 휘두른 왜도에 등이 갈라졌다.
“크흐윽....”
“상아!”
팽무강과 모용민이 사무라이 사이에 떨어져 내린 하후상을 구하기 위해 신형을 날리고 어느새 다가온 제갈청하의 비도가 두 명의 사무라이의 목과 심장에 틀어 박혔다.
철면신산의 검이 하후상의 목을 내리치는 사무라이의 팔을 잘라내고 물러서 있던 섬전창의 창이 심장에 들어 박혔다.
힘겹게 내지른 모용민의 검을 걷어낸 사무라이의 왜도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들자 모용민이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어어억’
자신의 목을 향해 왜도를 날리던 사무라이의 팔목이 불쑥 나온 삭도에 잘려 나가고 잘린 팔목을 붙잡고 비명을 터뜨리던 왜의 무사의 얼굴에 언철진의 주먹이 틀어 박혔다.
“허억 허억 헉 헉”
열 명의 사무라이들을 겨우 치워낸 일행들이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거친 숨을 내 쉬었다.
“이, 인원이 다 인가?”
철면신산이 자신의 주위에 널부러져 가쁜 숨을 내쉬는 팽무강, 모용민, 언철진, 하후상과 낭인 넷, 제갈청하와 독고우, 막대광, 곤오, 유검패를 일별 하고는 자신도 자리에 주저앉았다.
“더, 더 이상은 무리에요....”
제갈청하가 자신의 비도에 명을 달리한 사무라이들의 시체에 엉금 엉금 기어가 비도 두 자루를 회수하고는 숙부의 옆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호오, 여기에 한꺼번에 다 모여 주었군.”
일행들이 기진맥진한 채 널부러져 있는 공터 저 편에 카이토와 약 스무명의 사무라이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으이구.... 지겨운 놈들일세....”
막대광이 흑룡도를 땅에 박아 넣고는 힘겹게 신형을 일으키다 적에게 베인 오른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끼며 다시 주저 앉았다.
철면신산이 왼팔에 베인 상처에서 솟아 나오는 피에 현기증을 느끼며 돌아 보니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고생들 하셨소이다.”
모두들 적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와 자신의 몸에서 흘린 피로 범벅이 된 채 주저 앉아 있는 동료들을 서로 돌아 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네.”
독고우가 자신의 친우인 막대광의 옆에 주저 앉아 입을 열었다.
“전부 다 죽여라!”
카이토의 명에 스물의 사무라이들이 자신들의 왜도를 치켜든 채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일행들에게 신형을 날렸다.
“준아.....”
제갈청하가 마지막으로 북리준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쉬이이이이잉 사아아아아아악’
일행들을 도륙하기 위해 신형을 띄운 다섯 사무라이들이 동시에 허리가 동강 나며 사방에 피를 뿜어 내고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다행이.... 늦지 않았군.”
“준아!”
숲 저편에서 일월쌍륜으로 일행들을 구한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다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