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93화 (93/167)

93. 난 해남검귀다.

“궁병 앞으로!”

약 일천의 궁병이 강궁에 활을 잔뜩 메긴 채 앞으로 나섰다.

“발사!”

‘슈슈수수수수수슛’

일천여발의 화살이 약 백여장 떨어져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왜구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악 카아악 크악’

방패병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로 치켜든 방패 사이로 떨어져 내린 화살을 몸으로 받아낸 왜구들이 우수수 바닥에 신형을 눕혔다.

다시 한번 일천여발의 화살이 공중을 수 놓은 후 금대인의 진군 명령이 떨어졌다.

“전군 돌겨억!”

“우와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

전장에 일렁이는 투기에 온몸을 내던진 청조의 군대와 해남검단의 오백 단원들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왜구들이 일렬로 쌓은 방어선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진형, 진형을 유지해라. 흥분하지 말고 진형을 이탈하지 마라.”

왕일이 목이 터져라 자신을 앞서 나가는 청조의 군대들을 따라 나서는 청룡대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악 죽여라!”

약 일만여명의 청조 해군 정병, 해남검단원들과 정면에서 충돌한 왜구들 사이에서 피보라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좌익 돌아, 창병 우익 지원 우익 선회!”

왕일의 고함소리에 수레바퀴와 같이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삼재검진과 창병의 조합에 달려 들던 왜구들이 그 자리에서 썰려 나갔다.

“창병 정면 우익 빠져 후익 돌진”

현무대주 사검평이 자신의 검진을 향해 달려 드는 왜구들을 차근 차근 쳐내며 전진을 거듭했다.

‘커허어어어억 크아아아악’

일천 창병의 내지르는 강창에 꿰뚫린 왜구들을 넘어 번쩍이는 만도로 무장한 보병들이 파죽지세로 앞에 보이는 왜구들을 잘라 나갔다.

피보라와 함께 비산하는 신체 부위들이 한 폭의 지옥도를 연상 시키는 전장의 참혹한 모습이 전체 전장에서 펼쳐 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인원과 무력 차이에 삽시간에 쓸려 나간 왜구들의 시신들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 보던 마사히로의 명이 떨어 졌다.

“전군 후퇴!”

“둥 둥 둥 두둥 둥 두둥”

후퇴를 알리는 고의 울음에 왜구들이 정신없이 뒤로 내달리는 모습에 금성무 총병 대인이 손을 들어 명을 내렸다.

“전군 대기!”

압도적인 우세 속에 왜구들을 뒤쫓다 혹시 모를 함정에 빠질 것을 우려한 명에 군데 군데 위치한 군관들에게 명이 하달 되었다.

“전군 대기!”

“전군 대기 하라.”

“전군 그 자리에서 대기!”

한 눈에 보아도 제대로 서 있는 자가 이백이 채 안 되고 저 뒤편 피 구덩이 속에 엎어진 이천 가까운 수하들을 일별한 마사히로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난 이 곳 무극도의 쇼군 마사히로다. 적장은 모습을 보여라.”

유창한 중원어에 내공을 실어 전장 구석 구석 퍼지는 마사히로의 목소리에 군관들이 총병대인을 에워쌌다.

“내가 무서운가? 크하하하하.”

마사히로의 비아냥 거림에 한껏 꺾인 왜구들의 사기가 살아나는 것이 전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대인, 제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선 북리준의 모습에 총병대인이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어찌 하려는가?”

“저 놈, 마사히로 라는 적장에게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원한이 있습니다. 제가 저 놈을 공개적으로 잡는다면 이 전투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총병 대인이 곳곳에서 피어 오르는 왜구들의 사기를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괜한 일로 놈들의 사기를 높일 수도 있네.”

“대인께서 생각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 나지 않습니다. 저를 믿어 주시지요.”

전신에 튄 피가 말라 붙어 혈인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 북리준의 보고 금대인이 뒤에 군관을 바라 보았다.

“물수건을 대령하라.”

잠시 후 고급스런 면으로 된 물수건이 당도하고 금대인이 북리준에게 내밀었다.

“얼굴에 묻은 피는 닦고 나가시게. 적들이 누구에게 자신의 수장을 잃었는지 알게 해야 하지 않겠나?”

“감사합니다!”

북리준이 총병대인이 건네주는 물수건으로 얼굴에 말라붙은 피를 닦아내자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가 드러났다.

“훨씬 낫군. 가서 적장의 목을 베어 오시게.”

총병대인에게 포권을 취한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들고 천천히 전장 한 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마사히로를 향해 나아갔다.

“적장은 머리를 어디에 처박고 숨어 있.... 응?”

청조 군대의 중앙에 서서히 열리며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오는 모습에 마사히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어, 준이잖아.”

승진의 말에 얼굴에 튄 적병의 피를 소매로 문질러 닦아내던 왕일의 눈에 마사히로에게 나아가는 북리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래, 드디어 우리 준이가 그 날의 복수를 하는 구나.”

팔년 전 남해검문주와 마사히로의 협잡질에 스러져간 전 청룡대원들을 떠올리며 왕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괜찮을까? 북리봉공도 많이 지쳤을텐데...”

어느새 전장에 나온 막대광이 자신의 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북리봉공이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 했기에 저리 하는 거지. 네 놈 같이 객기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잖아.”

“뼈를 때리는 맞는 말이네....”

철면신산, 제갈청하, 유검패와 낭인들, 팽무강, 언철진, 모용민, 하후상등 살아남은 침투조의 인원들이 기대반 걱정반의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는 북리준을 쳐다 보았다.

“네 놈이 청나라의 적장인가?”

마사히로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의 젊은 놈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청나라의 제독을 하기에는 너무 젊군.... 그런데 말이야, 그 쪽이 초면이 아닌 듯 하군.”

자신의 십여 장 앞에 고요히 서서 웃음을 짓고 있는 젊은 무인의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날 비웃는 건가? 감히 쇼군인 나 마사히로를?”

“네 놈 말대로 우린 초면이 아니지. 혹시 기억 하는가, 팔년 전 네 놈의 왜도에 가슴이 갈라져 절벽에서 떨어진 검단 무사를.....?”

“팔년 전, 검단...... 뭐야, 해남검귀?”

현 남해검문주의 청부로 해남검단의 청룡 대주이며 자신들의 수하 사이에서 해남검귀라 불리우는 무인을 벤 기억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오른뺨에 희미해진 검흔을 쓰다듬었다.

“명이 긴 놈이군. 해남검단으로 복귀한 것이냐?”

“하하하, 아직 네 놈이 모르는 것이 많구나. 네 놈이 내 목을 따기 위해 그 많은 풍마류의 닌자들을 갈아 넣어 놓고 내가 아직 누군지 모르는 건가?”

“뭐라? 그럼..... 네 놈이 청조에서 내려 보낸 신임 해남검단주? 이런 개 같은 놈이......”

자신의 막강한 수족이 될 왜국 본토의 손꼽히는 닌자가문이 한 놈을 처리 하지 못해 스러져간 것에 잊혀졌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네 놈이 아주 죽을 자리를 제대로 골라 왔구나. 네 놈의 목을 베고 청나라 적장도 곧 뒤따라 보내 주마.”

진득한 살기를 온 몸에서 피어 올린 마사히로가 자신의 혈인반월도를 뽑아 들었다.

“오라!”

두 손으로 말아쥔 혈인반월도를 우측편으로 돌려 잡고는 땅을 박차는 마사히로를 향해 일월신검을 든 북리준이 마주 보며 신형을 날렸다.

‘카아앙 카캉 카아아앙 카앙 카가각’

순식간에 열합이 넘는 공방이 이어지고 순간 둘의 신형이 떨어졌다.

‘만만치 않은 놈이군.’

자신의 왜도에 전해지는 검단주라는 자의 검력이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라는 자각이 마사히로를 웃음 짓게 했다.

“좋구나!”

다시 공간을 단축하며 달려 오는 마사히로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한 줄기 공간을 가르는 선이 처음으로 적의 왜도에 막혔다.

‘크으으윽’

무극칠절 중 단섬을 처음으로 받아낸 마사히로가 세 치 이상 땅에 박힌 발을 꺼내고는 빛살 같은 속도로 휘둘러지며 혈인반월도에서 반월 모양의 도기가 쏘아졌다.

“도기를 유형화 하다니..... 위험해!”

팽무강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슈아아아앙’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도기에 노출된 북리준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만 개의 검기의 파도를 거스를 것이 그 무엇이랴? 만파!’

일월신검에서 피어 오른 검기의 파도가 날아오는 마사히로의 반월형 도기를 맞아 나갔다.

‘콰아아아앙’

마치 대포가 터지는 소리가 중인들을 고막을 두드리고 두 검기와 도기가 부딪친 공간의 압축된 공기가 ‘파아아앙’ 터져 나갔다.

오른손에 든 왜도와 어느새 뽑아 든 중도인 요월도를 쥐고 쇄도하는 마사히로의 안색이 급변하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흑백의 무엇인가를 급히 걷어내었다.

‘카아앙 카캉’

자신의 요월도에 막힌 암기가 다시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오는 기척을 무시하고 암기를 조정하는 북리준을 갈라 버리기 위해 혈인반월도를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전력을 쏟아낸 진력을 실어 낸 자신의 왜도가 땅에서 솟아오른 벽력의 힘을 그대로 직격했다.

‘콰르르르릉 콰쾅’

벽력이 울부짖는 굉음에 가까이 위치한 왜구와 청조의 병사들이 터져 버린 고막을 두 손으로 에워싸며 땅을 굴렀다.

‘단섬, 만파, 뇌격을 막아내다니.... 역시 허접한 놈은 아니군.’

자신의 왜도를 타고 오르는 전격의 힘을 힘차게 휘둘러 털어 내고는 마사히로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좋구나 좋다, 크하하하하!”

정갈하게 빗어 고정한 머리가 풀어져 산발이 된 마사히로의 눈이 광기로 번득였다.

“이번에는 끝장을 내 주마!”

중도인 요월도를 땅에 던져버린 마사히로가 혈인반월도를 두 손으로 잡고 정면에 서 있는 북리준을 향해 겨누었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두 손에 맞잡은 혈인반월도가 몸부림을 치며 도명이 울리기 시작하고 그 도 위에 우유빛 강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 가문의 최고무공인 혈인무심결이니라.’

“도, 도강이다.”

팽무강의 말에 일행들의 안색이 변했다.

“도강을 쓰는 경지라니.....”

막대광이 침음성을 내며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 안돼! 안돼.....”

제갈청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멸(滅)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스러짐이다. 절(絶)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끊어짐이다. 삼라만상을 스러 끊어냄이 신검에서 피어남이니....’

천괴의 무극칠절 중 내력이 딸려 한번도 시전한 적이 없던 멸절의 힘이 일월신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 검강이다!”

북리준의 일월신검에서 몸을 일으킨 우유빛 검강이 자신을 쪼개기 위해 날아오는 마사히로의 도강에 부딪쳐갔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피해라!”

막대광의 내공 실린 고함에 청조의 군대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 났다.

“뿌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두 도강과 검강이 부딪힌 공간이 소리 없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팽창을 거듭하더니 순간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가며 거대한 바람이 전장을 휩쓸었다.

“쿨럭 쿨럭....크허억”

한쪽 무릎을 꿇고 일월신검을 땅에 꽂은 채 연신 피를 게워내는 북리준을 오연한 눈빛으로 내려다 보던 마사히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무슨 검법인가?”

“무, 무극칠절 중 며,멸절이다.”

“그렇군.....”

순간 오연히 서 있던 마사히로의 신형이 ‘푸스스스스’ 먼지가 되어 전장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악, 이겼다!”

해남검단원들이 서로 얼싸 안으며 북리준의 승리를 축하하며 고함을 질렀다.

“땡그랑....”

자신들의 쇼군인 마사히로의 신형이 먼지로 화해 사라지자 마지막 남은 마사히로의 제자인 슌이 손에 들었던 무기를 땅에 떨구었다.

“항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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