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94화 (94/167)

94. 누구....?

“허어, 정말 귀신 같은 사람일세...”

무극도에 상륙하자마자 벽사도주와 금사도주가 배 열척과 벽라도와 금사도의 무사들 오백을 빼 내어 북리준이 지정해 준 무극도의 뒤편에 도착했다.

“검단주 반대편에 서면 인생이 괴로울 것 같다.”

자신들의 눈 앞에 마사히로의 아들인 류와 친위대 오십이 작은 범선에 군자금과 부흥을 위한 제반 장비와 서류를 싣고 포구를 막 나서는 모습이 들어 왔다.

“이, 이런.....”

자신의 스승이며 아버지를 남겨 두고 치욕적인 후퇴를 하는 것에 분통이 터졌던 류가 자신들의 앞을 가로 막고 대포를 겨누고 있는 열 척의 군선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서히 자신들이 타고 있던 범선을 에워싸는 열 척의 군선에서 우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바로 수장시켜 주겠다. 모두들 무기를 선미에 쌓아두고 두 손을 든 채 선수로 모여 무릎을 꿇어라.”

“죽을 때 까지 싸워야 합니다.”

“맞습니다. 대장님이 류님을 모시고 이 곳을 탈출 하십시오. 저희가 시선을 끌겠습니다.”

마사히로의 친위대원들이 비장한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잡아 나갔다.

“틀렸다. 이대로 대항하면 개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탈출선을 내린다 해도 저 포들을 피할 수 있겠는가? 살자! 살아야 복수도 하고 재건도 할 수 있음이니....”

자신들의 새로운 주군인 마사히로의 아들이며 제자인 류의 말에 친위대원들이 무기를 잡았던 손들을 힘없이 내렸다.

“항복 하겠다!”

류의 결정에 사무라이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선미에 쌓아 두고 선수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류님....”

“먼저들 가 계세요. 금방 쫓아 가겠습니다!”

친위대원들을 선수로 보내 놓고는 무기가 쌓여 있는 선미에 자신의 중도를 앞에 놓고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놈은 뭐야?”

선미에 쌓인 무기를 회수하려 금사도주와 벽사도주가 선미에 배를 대다 왜도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고 있는 젊은 사무라이가 눈에 들어 왔다.

“난 쇼군인 마사히로님의 아들이자 제자인 류라고 한다. 이 모든 치욕적인 패배와 실패는 나 혼자 안고 가니 부하들의 목숨을 보전해 달라.”

비장한 표정의 류의 얼굴을 본 금사도주와 벽사도주가 저 젊은 사무라이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크흐으윽 크흑”

선수에 도착한 청조의 군대들에게 포박 되어진 사무라이들의 귀에 선명히 들리는 류의 말에 침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님! 죄송하옵니다.”

자신의 앞에 놓인 중도를 들어 힘차에 왼쪽 복부로 밀어 넣은 후 도가 걸린 허리뼈를 지렛대 삼아 힘차게 도를 돌려내었다.

복부가 갈라지며 쏟아진 내장 위에 엎어져 절명한 젊은 사무라이를 보며 벽라도주가 혀를 찼다.

“뭐라고 하고 죽은 거야? 하늘에 대고 중얼 중얼.....저거 할복인가 뭔가 하는 거지?”

왜어를 전혀 모르는 금사도주와 벽사도주가 옆에 서 있던 통역을 쳐다 보았다.

“네, 왜인들이 자살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자신은 마사히로의 아들 류라고 합니다. 자신이 대표로 죽을 테니 부하들은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통역의 설명에 벽라도주가 고개를 주억 거렸다.

“말을 바로 알아 먹었으면 꽤나 비장 했을 텐데 말을 모르니 ‘중얼 중얼 허억 꽥’ 이 끝이잖아.”

“도주님! 이리로 와 보시지요.”

자신의 수하 중 하나가 지르는 고함 소리에 선실로 내려 가다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게 다 금괴야?”

선실을 가득 채운 금괴를 보고는 금사도주와 벽라도주의 눈에 한 순간 탐욕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정신차리자.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자. 검단주는 우리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다.”

금사도주가 자신의 뺨을 때리며 중얼거리는 말에 벽라도주도 그 큰 주먹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냅다 쳐 내었다.

“검단주 몰래 빼 돌리려다 벽라도와 금사도가 거덜 날 수도 있다.”

“검단주가 절대 우리를 몰라라 안면몰수할 사람이 아니니 이대로 배를 끌고 가자.”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수하들을 시켜 금괴가 가득한 선실의 문을 폐쇄하고는 갑판으로 올라왔다.

“어쩐지 이런 날렵한 배가 왜 그리 둔중하다 느껴 졌는지.....”

“한 마디로 욕심이 화를 부른 거지. 저 금괴의 반만 실었어도 벌써 도망 가고 남았지.”

그 때 자신들이 위치한 포구의 언덕 너머에서 ‘우와아아아아아 아아아’ 승리를 축하하는 포효성이 울려 퍼졌다.

“끝났나 보군.”

“우리는 조용히 섬으로 복귀한 후 이 배를 숨기세나.”

****

제갈청하가 침상에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눈을 뜨지 못하는 북리준의 이마에 맺힌 땀을 수건으로 연신 닦아 내고 있었다.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 네 덕에 왜구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제갈청하가 바짝 마른 북리준의 입술에 물을 머금고는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자신의 입으로 흘려 보낸 물의 태반이 밖으로 흘러 나가는 모습에 제갈청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 올랐다.

“좀 차도가 있소이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철면신산과 금성무 총병대인이 제갈청하에게 물었다.

“보내 주신 의원의 말로는 현재 가사상태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오늘 밤이 고비 인데 내일 아침까지 정신이 돌아 오지 못하면 힘이 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압도적인 검강의 힘으로 적장인 마시히로를 먼지로 화해 날려 버린 북리준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열흘이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해남검단원과 동료들이 매일 북리준의 쾌차를 빌고 있었다.

“허허, 구국의 영웅이 이리 사경을 헤매고 있다니....”

“분명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저는 그리 믿습니다.”

철면신산의 말에 금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당연히 일어 나야지요.”

의원이 들어와 북리준의 코와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맥을 짚으며 금침을 놓는 등 부지런히 치료를 하는 모습을 제갈청하가 넋을 놓고 바라 보고 있었다.

“청하야! 너도 조금 쉬거라. 북리어사가 깨어나기 전에 네가 먼저 쓰러지겠다.”

“저는 괜찮아요. 틈틈이 잠을 자고 있으니까요.”

얼굴이 반쪽이 되어 버린 질녀를 보며 철면신산이 무슨 말을 건네려다 도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흔들며 방을 나섰다.

‘허허, 그 놈.....’

‘누가 당신의 제자 아니랄까봐 무식하기가 이를데 없군요.’

‘내 뒤만 이었나? 임자 뒤도 이 놈이 이었는데...’

마사히로의 마지막 수를 보며 준비가 채 되지 않은 무극칠절 중 육절인 멸절을 전신의 내공을 짜내어 한번 펼치고는 단 한톨의 내공도 몸에 남아 있지 않은 가사 상태에 빠진 북리준의 귀에 이상한 대화가 들려 왔다.

‘완전한 공(空)의 상태네. 이제 첫 고비를 넘겼으니 두 번 남았군.’

‘그 동안 몸이 남아 나지 않겠어요....’

‘그리 되도 할 수 없지. 다 우리의 업보인 것을...’

‘이 아이가 우리의 업을 해소 해주기를 바래야지요.’

뭉실거리는 안개 같은 모습을 한 두 사람이 자신을 내려다 보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 꿈결 같이 느껴졌다.

‘얘야,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할 일이 많단다.’

자상한 여자의 음성이 북리준의 뇌를 관통하자 북리준의 몸이 움찔 움직였다.

‘임마! 꾀병 그만 부리고 이제 일어나. 네 놈을 은애하는 여아가 먼저 죽겠다, 쯧쯧쯧!’

‘파츠츠츠츠츠 파아아아앗 츠츠츠츠’

북리준의 양팔에 차여진 일월수갑에서 기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완전한 공의 상태인 북리준의 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아아앗’

둥실 북리준의 신형이 침상에서 떠오르고 두 팔에 채워진 일월수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롱한 기운이 북리준의 전신을 감싸고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푸화아아아아아아학 화아아아아학’

전신을 휘감아 돌던 오색찬란 영롱한 기운이 북리준의 눈코입귀로 빨려 들어간 후 서서히 다시 침상으로 내려 앉은 북리준의 눈이 순간 번쩍 뜨였다.

자신이 누워있는 침상에 엎드려 너무 곤히 잠에 빠진 제갈청하를 내려다 보고는 살며시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으으응, 어, 어.... 준아!”

침상에 앉은 자세로 자신을 밝게 웃으며 내려다 보는 북리준을 보며 제갈청하가 그 품에 뛰어 들었다.

“준아, 정신이 돌아 왔어? 괜찮아?”

“다 괜찮아.... 네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네.”

“아니야. 이렇게 네가 깨어 났으면 되었어.”

왜인지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한 모습에 제갈청하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배가 고프네. 뭐 좀 먹을 것이 없을까?”

“당연히 배고프지. 열흘 동안 정신을 못 차렸으니까....”

“열흘?”

“아, 잠깐 기다려. 금방 먹을 것을 구해 올게.”

기쁜 얼굴로 방을 박차고 나가는 제갈청하가 만나는 사람마다 소리를 쳤다.

“검단주가 깨어 났어요.”

“으잉, 진짜?”

제일 먼저 제갈청하를 만난 막대광이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며 냅다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독고야, 북리봉공이 깨어 났단다.”

자신의 방에서 곤오와 상심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독고우가 벌떡 신형을 일으켰다.

“그래? 당장 가자.”

독고우와 막대광, 곤오가 날 듯이 북리준이 누워 있던 방으로 가는 도중 팽무강, 하후상, 모용민, 언철진 등을 만나고 유검패와 곡굉을 위시한 낭인들이 금성무 대인과 함께 뛰어 오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제갈청하의 말로는 자신이 열흘 동안 정신이 돌아 오지 않았다는데 꿈 속에서 본 두 사람의 형상이 자못 마음에 걸렸다.

“천괴님과 지괴님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북리준이 안개 같은 형상의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북리아우!”

문이 벌컥 열리며 뛰어 들어온 막대광이 북리준의 전신을 이리 저리 만지자 독고우의 손바닥이 막대광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이 무식한 놈아! 막 깨어난 환자를 그리 주무르면 어떻해?”

“아, 미, 미안! 너무 반가워서.... 북리아우,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괜한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다행일세. 다행이야....”

독고우가 진심을 담아 웃는 얼굴로 북리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준아, 이제 괜찮은 거지?”

“검단주, 다행일세....”

“크허어엉, 난 준이가 잘못 되는 줄 알고...”

하후상의 통곡에 모용민이 하후상의 목을 감아졸랐다.

“누가 죽었냐?”

그 때 일행들이 길을 열자 총병 대인이 앞으로 나섰다.

“참령어사, 괜찮으신가?”

“대인, 심려를 끼쳤습니다.”

“허허허, 무슨 말씀을! 이리 어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났으니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것이네. 내 이 기쁜 소식을 북경에 빨리 전하겠네. 이제 조금 더 쉬시게.”

금대인의 말에 일행들이 열흘 만에 깨어난 북리준을 조금 더 쉬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방에서 물러 나왔다.

“나중에 몸이 다 나으면 술 한잔, 알지?”

막대광이 눈 한 쪽을 찡긋 하며 방을 나서자 곤오가 공손히 북리준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자, 다들 나가주세요. 검단주님이 시장 하시답니다.”

제갈청하가 숙수를 닦달하여 급히 만든 전복죽을 들고 축객령을 내렸다.

****

“마사히로가 죽어?”

남해검문주가 놀란 얼굴로 자신에게 보고 하는 단천수사 방백에게 재차 물었다.

“네, 벽라도와 금사도에 심어 놓은 세작에게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정보의 진위를 파악 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확인 하였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부문주인 목철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놈의 새끼, 맨날 잘 난 척만 하더니 잘 뒤졌네요.”

분위기를 모르고 주절거리던 목철우가 자신을 쏘아 보는 장문의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입 닥쳐라! 자세히.....”

단천수사 방백이 약 일다경에 걸쳐 마사히로가 근거지로 삼은 무극도가 어떻게 괴멸되어 갔는지 상세히 설명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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