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95화 (95/167)

95. 반이나....

단천수사 방백의 설명을 말없이 듣고 있던 목철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마사히로를 죽인 자가 현 해남검단주라고?”

“그렇다고 합니다. 세작의 말로는 두 사람의 대결이 일반 무인들의 그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목철군이 자신의 무위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던 마사히로가 청조에서 내려온 어사에게 갈려 나갔다는 말에 인상을 굳혔다.

“그리고, 마사히로와 마지막 대결 전에 이상한 말이 오갔다고 합니다.”

“무슨?”

“마사히로가 해남검단주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화 중에 마사히로가 해남검귀를 언급 했다고 하더군요.”

방백의 말에 목철군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생각 날 듯 말 듯한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해남검귀......오, 그 놈이 살아 돌아 왔군.”

남해검문 장문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누군지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단천수사 방백이 장문은 알고 자신은 처음 들어 보는 별호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대관과 막가령을 불러 오라!”

갑자기 장문이 호명한 자들을 부르기 위해 대기 하고 있던 무사가 뛰어 나가고 잠시 후 전임 해남검단주 였던 목대관과 전 주작대주였던 막가령이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불러 계십니까?”

장문의 기억에 잊혀졌다 생각하고 나름 남해검문 안에서 힘 좀 쓴다는 인사들과 친분(?)을 쌓는 것에 전력을 다 하던 막가령이 자신을 다시 불러준 장문인의 명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장문과 마지막 밤을 함께 한 지가 삼년이 넘었어. 오늘.... 마지막 기회야.’

막가령의 기대에 찬 얼굴과 달리 목대관은 남해검문에 돌아 온 지 이년이 넘은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자신을 부른 적이 없었던 장문의 호출에 불안감이 커져갔다.

‘무슨 일이지? 남해검문에 들어와 실수한 기억이 없는데.....’

공손히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남해검문주의 차가운 음성이 떨어졌다.

“팔년? 구년 전 인가? 너희 연놈들에게 내가 장문이 되기 전 하달했던 명을 기억 하느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목대관과 막가령의 고개가 팩 들려지며 서로를 쳐다 보았다.

“기억이 안 나는가?”

장문의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 보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팔년, 구년 전이면.... 해남검단 시절인데? 내가 기린대주로 있었던 시기이고.... 아, 청룡대주새끼!’

‘주작대주로 있던 시절이었고 그 때는 목장문과 뜨거운 밤을 수시로 함께 했던..... 목대관이와 함께 뭐를 했다는 거지? 생각을 해라, 생각을....’

목대관과 막가령이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기억을 더듬다가 동시에 떠오른 단어들이 있었다.

‘청룡대주... 해남검귀.... 북리준!’

“장문인의 명으로 그 때 당시 역심을 품고 남해검문에 대항하려 했던 청룡대주를 없애라는 명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청룡대주 였고 해남검귀라는 별호가 붙었던 북리준이라는 자였습니다.”

목대관과 막가령이 어렵게 생각해낸 자신들의 머리를 스스로 칭찬하며 뿌듯한 얼굴로 장문인을 바라 보았다.

‘마사히로라는 단어는 절대 입에 올리면 안돼!’

막가령의 전음에 목대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놈들의 그 때 당시 보고로는 그 해남검귀라는 놈이 칼을 맞고 절벽에서 떨어져 광룡소에 삼켜 졌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당시 주작대주였던 막대주와 똑똑히 목격한 사실입니다.”

“분명히 저도 보았습니다.”

목철군 또한 광룡소라는 광폭한 장소를 알고 있기에 저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정말 운이 억세게 좋은 놈이었나 보군. 목대주!”

“네, 장문! 말씀하시지요.”

말이 대주지 열명 남짓한 떨거지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남해검문의 후문을 지키고 있던 목대관이 바짝 얼어 붙은 채 입을 열었다.

“신임 해남검단주에게 네 놈이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나?”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그 신임 검단주 놈, 혹시 알고 있는 놈이 아니었나?”

목장문이 빙글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달고 하는 질문에 목대관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을 했다.

“그 검단주라는 놈이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 놈의 기도도 제가 생전 처음 보는 자였습니다. 결단코 제가 아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확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여는 목대관을 보며 목철군이 손을 내저었다.

“둘 다 물러가라.”

“저, 장문...”

장문의 축객령에 막가령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여는 찰나 목철군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장문의 호출에 최대한 화사하게 얼굴을 꾸미고 가슴이 깊이 파인 옷을 급히 찾아 입은 막가령의 얼굴에 절박함이 떠올랐다.

“막대주는 오늘 밤 따로 독대를 하지.”

“감사합니다!”

막가령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는 가슴이 훤히 보이도록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두 사람이 물러 난 후 단천수사 방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팔년 전, 장문의 위에 오르시기 전 악연이 있었던 것이군요.”

“그 놈에게 최후의 한 칼을 날린 놈이 마사히로였다. 워낙 존재감이 미미했던 놈이라 아예 잊고 있었던 거지. 그 놈이 살아서 이렇게 돌아와 내 신경을 긁을 줄이야....”

“그 때 당시 대주였던 놈이 어떻게 육년만에 정삼품 호군참령어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거지? 정말 모를 일이네요.”

부문주인 목철우가 방금 전 보았던 막가령의 젖무덤을 애써 기억에서 지우며 입을 열였다.

“놈이 어사가 된 것 보다 마사히로놈을 잡았다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군요. 무슨 기연이 있었기에 그런 고수가 되어 나타난 건지 말입니다.”

방백 또한 마사히로의 무공이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그것에 필적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대계에 지장을 줄 일은 아니잖습니까? 고작 왜구 대장놈과 그 떨거지들이 쓸려 나간 것이니까요.”

부문주의 말에 목장문과 방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금사도와 벽라도도 그 놈의 개입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어차피 소소한 일! 방백, 대계의 발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봐라. 혹시라도 그 눈엣가시 같은 검단주 놈이 끼여 들 여지가 있는지 말이다.”

“알겠습니다!”

****

북리준이 정신을 차리고 하루 동안 충분히 쉬고 난 후 찾아온 금사도주와 벽라도주를 맞이했다.

“쾌차 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갈청하가 밝은 얼굴로 두 도주의 앞에 찻잔을 내려 놓았다.

“어사 대인이 한동안 의식이 없으셔서 저희가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벽라도주가 운을 띄우자 금사도주가 바로 말을 받았다.

“무극도에서 저희에게 하신 부탁 말입니다...”

두 도주의 말에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갈청하를 일별한 후 두 도주가 북리준을 조심스럽게 쳐다 보았다.

“아, 그래요. 잡으셨습니까?”

“어사 대인께서 말씀 하신 것에 한 치의 틀림이 없더군요. 혹시 지금이라도 확인을.....”

“부군사! 군사님을 모시고 와 주겠어?”

“알겠어.”

제갈청하가 뛰어 나간 잠시 후 철면신산과 함께 방을 나섰다.

벽라도 군선 사이에 아주 교묘하게 숨겨진 작은 범선 하나에 두 도주와 북리준, 철면신산, 제갈청하가 올랐다.

“먼저 놈들의 선실을 뒤져 나온 서찰들과 서류들입니다.”

거대한 선실 안 커다란 탁자 위에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는 편지와 서신, 서류들이 일행들의 눈에 들어 왔다.

“여기는 왜어에 능통한 통번역 전문 서기입니다. 설명하게!”

탁자 옆에 공손히 시립해 있던 문사복을 입은 문인이 천천히 일행들을 탁자 앞으로 이끌었다.

“여기 있는 서신들은 왜국 본토와 주고 받은 것들입니다. 풍마류라는 닌자 가문의 접촉부터 무극도에 정착 하기 전까지의 서류, 왜국의 에도 막부에 대한 정보 등 실시간으로 받아 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할 만한 것이 있는가?”

철면신산의 물음에 벽라도 서기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가장 최근 주고 받은 서신 중에 에도 막부에 의해 잘려나간 쇼군들의 휘하 사무라이 오천이 무극도에 들어오기로 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무라이가 오천?”

제갈청하가 놀란 얼굴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뇌었다.

“네, 그렇습니다.”

“언제 어떻게 들어오기로 했는가?”

철면신산의 다급한 물음에 서기가 차분한 어조로 대답을 했다.

“금일을 기준으로 사흘 후 왜국 본토로 사무라이들을 싣기 위해 배가 출발하기로 약조가 되었습니다.”

“휴우, 천만다행이군요. 일반 왜구 무사가 아닌 본토 사무라이 오천이 무극도에 먼저 도착 했었다면 우리가 거기서 뼈를 묻을 뻔 했네.”

벽라도주의 말에 좌중의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 무극도 정벌이 보름 전 완료 되었고 마사히로 휘하 군선들 전체를 청조의 해군이 압류 하여 위로 올라갔으니 그 놈들이 무극도에 올 방법이 없겠군요.”

금사도주도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여기를 봐 주시겠습니까?”

서기가 가리키는 서신들이 가지런히 놓인 곳을 보니 눈에 익숙한 중원어로 된 서신들이 보였다.

“마사히로와 현 남해검문주인 목철군이 주고 받은 서신들입니다.”

서기의 말에 두 도주가 서로를 쳐다보고는 쾌재를 불렀다.

“증거!”

약 구년 전부터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을 보고는 철면신산이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청조에서 남해검문을 칠 명분이 충분 합니다.”

북리준이 서신들의 거의 맨 앞 부분에 위치한 편지를 들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화 이십냥 청부 / 해남검귀 척살 요망 / 조력자 둘 파견하여 길을 잡아줄 예정 / 착수금 열, 완수 시 열.’

구년 전 자신의 척살을 청부한 목철군의 편지를 보며 왜구들의 칼날에 스러져간 청룡대원들이 눈에 밟혔다.

“이런 개자식들을 봤나?”

제갈청하가 북리준의 어깨 너머로 편지의 내용을 보고는 쌍욕을 내뱉었다.

“이 편지 하나로 시작된 거군. 내 이 고단한 생이 말이야....”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게. 이 두 협잡꾼의 말로를 비참하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나?”

철면신산의 말에 영문을 모르는 두 도주가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이 편지들을 동창의 유공공께 보내 주세요. 역모로 엮어 우리 손으로 끝장을 냅시다.”

북리준의 말에 철면신산이 가져온 책상자에 편지들을 차곡 차곡 담아 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아래로 내려 가는 선실 앞에 섰다.

“문을 폐쇄했군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요.”

금사도주가 도리깨를 가지고 와 못질을 해 막아 버린 선실을 문을 뜯어내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선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이 부신 무엇인가가 선실 안을 가득 채운 것을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다 금괴 인가...?”

철면신산이 생전 처음 보는 막대한 양의 금괴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 금괴 때문에 멀리 도망을 못 갔습니다. 너무 많은 양이라 어사 대인께 처분을 맡기는 것이 옳을 듯 하여 문을 폐쇄하였습니다.”

금사도주와 벽라도주가 다시 보는 금괴들을 보고 가슴 한 구석에 밀어 넣었던 탐심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두 분 도주님이 이리 양심적으로 나와 주시니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드려야지요. 정확히 이 선실 안 금괴의 반을 두 분께 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군사님과 협의 하여 저희 검단으로 보내 주십시오.”

“히이익, 딸꾹 딸꾹.... 반이나...딸꾹.”

벽라도주가 금괴의 반을 내준다는 말에 연신 딸꾹질을 해대고 금사도주 또한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저, 정녕 바, 반을 주신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군사께서는 두 분 도주님과 협의 하셔서 금괴를 배분하시고 최대한 비밀을 유지한 채 검단으로 옮기는 방안을 마련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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