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남해출사
태사의에 비뚜름하게 앉아 있던 백무결의 전신에서 유형화된 마기가 넘실 거리며 신형을 일으키자 불만을 토로 했던 사대마가주가 입을 닫았다.
“나도 현 상황의 우리 힘이 백년 전 선조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준비한 백년 동안 저 중원 무림에 큰 소리 꽤나 치는 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저 너른 중원에 우리 신교의 기를 제대로 꽂기 위해서 난 어떤 짓도 다 할 수 있어.”
천마의 뒤에 선 마기로 뭉쳐 이글거리는 거대한 마신의 상을 보며 사대마가주와 광명좌우사가 고개를 숙였다.
“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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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옛 천산파의 터에 북리준의 도움으로 천산무관을 개관하고 옛 천산파의 영화를 하루 하루 차곡 차곡 다시 쌓아 가고 있는 와중에 들려온 마교 발호의 소식에 문주인 도경명의 시름이 깊어져 갔다.
자신의 딸이자 이미 자신의 무공 경지를 한참 넘어선 도교교가 조용히 아버지를 불렀다.
“이제 겨우 터를 잡고 뭔가 해 보려는 찰나에 이 무슨..... 휴우, 정말 악연은 악연이로구나.”
긴 한숨과 함께 결심을 굳힌 도경명이 숙였던 고개를 치켜 들었다.
“최대한 모든 것은 천산동부로 옮기고 무관원들과 함께 남해로 내려가자. 숙부님들과 북리 봉공과 함께 마교를 대적할 방법을 모색해야지.”
“옳은 결정 이십니다. 이 곳에 버티고 있어 보았자 이대로 쓸려 나갈 뿐입니다.”
“준비 하거라. 먼저 북리봉공에게 서신을 띄우고.”
그 때 밖이 약간 소란스러워지는 듯 하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전혀 생각지 않던 얼굴이 들어섰다,
“기룡아!”
곤륜의 문하로 다시 돌아간 자신의 동생이 기별도 없이 들어오자 도교교가 반갑게 맞이했다.
“곤륜문인이 뭔 일이냐?”
“아버지!”
도교교가 뾰족한 어조로 소리를 치자 도경명이 손사래를 쳤다.
“알았다 알았어....”
“기룡아, 어떻게 왔어?”
“누나! 마교 발호 소식 들었지?”
“그래, 그렇지 않아도 네게도 서신을 띄우려고 했는데....”
“곤륜은 일찌감치 사천으로 물러난대. 사천 경계에서 공동, 아미, 청성, 당문과 연합전선을 구축 하여 마교를 막는다고 하더라구.
속가제자들은 원하는 문인만 같이 한다고 해서 난 돌아가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어.”
“허허, 곤륜이 슬기롭게 대처 하는 구나.”
도경명의 말에 기룡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대 곤륜이 개 쫓기듯 도망간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형과 사숙들이 많았지만 장문인의 지엄한 명에 어쩔 수 없이 사천성으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곤륜 장문인도 함께 가시느냐?”
도경명의 물음이 기룡이 삐딱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같이 가시기 불편 하셨는지 마교의 동태를 살피고 사천에서 합류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기룡의 말에 도경명과 교교가 서로를 마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능히 그러시고도 남을 분이지.....”
“뭐가요? 마교한테 겁 먹고 꼬리에 불 붙은 강아지 마냥 도망가는 거요?”
“기룡아....”
교교의 눈에 떠오른 안타까움에 영문을 모른 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이 모자란 놈아! 곤륜의 장문인은 곤륜을 살리고 곤륜이 뒤집어 쓸 오명을 혼자 짊어지고 가시려는 거다. 아마 곤륜을 홀로 지키시다 마교를 맞이 하시겠지.....”
순간 항상 자애로운 미소로 곤륜문인들을 대하시던 범진 도장의 얼굴이 떠오르며 장문을 원망하던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 나라도 함께 해야겠어.... 어.....”
순간 도교교의 손이 빛살 같은 속도로 동생의 혼혈을 짚었다.
“잘했다. 이 철 없는 것이 언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을꼬.... 꽁꽁 붙들어 매어서 같이 데리고 가자꾸나.”
도교교가 밖으로 나서 천산무관원들을 소집하고 먼 길을 떠나기 위한 채비를 시작했다.
‘북리봉공님, 곧 뵙겠습니다.’
밤마다 그리워 하던 북리준을 본다는 생각에 얼굴에 떠오른 홍조가 가실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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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가 발호를 했다라.....”
북리준이 독고우, 막대광, 곤오와 함께 천산에서 날아온 서신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옳은 결정이야. 괜히 그 곳에 남았다가 마교 놈들이 천산의 후예로 몰아 덤벼들면 대책이 없으니까....”
막대광의 말에 독고우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했다.
“오는 것은 좋은데 이 곳의 상황도 녹록치가 않네.... 천산무관원 백 여명이 내려 오면 있을 장소도 마련해야 하고 이곳 해남검단원들과의 관계도 정립해야 하고 말이야.”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술잔을 들어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그 건은 제가 준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교가 발호한 것이 저희가 남해검문을 치기 위한 호재 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는 군요.”
“분명 호재는 아닌 듯 하네. 이 곳 해남검단의 성격이 무림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조정에 가까운 군대 성격이라 마교의 발호에 검단을 활용할 수는 없음이네.
우리가 청조에 보낸 남해검문과 마사히로의 내통건에 대한 결정이 나기 전에 남해검문이 마교 발호를 핑계로 중원으로 나아간다면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거지.”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자신의 술잔을 채우며 말을 받았다.
“거기다 마교의 발호가 하루 이틀에 끝날 것이 아니기에 정마대전이 벌어진 와중에 조정에서 남해검문을 역적으로 몰아 군대를 파견 할 수도 없을 거고....”
“너무 미묘한 시기에 마교 놈들이 발호를 했군. 아마도 이 곳에 함께 온 팽가, 모용세가, 진주언가, 하후세가,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본가로 급히 돌아 갈 것이고 이는 우리의 전력이 약해짐을 뜻하는 거지.”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이 건에 관해 군사님과 부군사와 논의를 좀 하겠습니다.”
북리준이 자신의 집무실로 가는 길에 마침 자신을 보러 오는 철면신산과 제갈청하, 팽무강등이 보였다.
“소식은 들었지?”
집무실에 자리를 잡자 마자 제갈청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들었어. 본가에서 연락이 온 거야?”
“그렇다네. 백 년만의 마교 발호로 인해 무림세가에 속한 모든 무인들에게 소집령이 떨어졌네.”
철면신산의 말에 팽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팽가, 모용가, 하후가, 진주언가 전부 다 본가로 돌아 가야 해.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가야 해.....”
제갈청하가 힘없이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어차피 우리가 이 곳에 온 일차 목표는 달성 했으니 다들 본가로 복귀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조정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 오는 지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와 해남검단이 정마대전에서 정도 무림에 힘이 될 수 있는 방안도 찾아 보겠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철면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시로 연락을 하겠네.”
다음 날, 제갈세가를 위시한 무림세가의 무인들이 급히 각자의 본가로 복귀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있었던 이 년이 내게는 너무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하후상이 이 년 전 남해로 내려와 검단원에게 창술을 가르치고 왜구들을 상대로 원없이 창을 휘둘렀고 종국에는 왜구의 근거지를 직접 들어가 오래된 조정의 화근을 제거하는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했음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상이 말대로 나도 뜻 깊은 시간이었어. 마교의 발호가 아니었으면 너와 계속 함께 있고 싶었는데 아쉽군.”
팽무강이 자신들을 배웅하러 나온 북리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치 다시 못 볼 것 같이 이야기 하네? 조만간 또 볼텐데 뭘 그래. 준아, 빨랑 보자!”
“맞아, 준이가 오던 우리가 가던 다시 볼 거야.”
모용민과 언철진이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팽무강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검단주! 올라 가서 그 쪽의 사정을 수시로 알려 주겠네.”
철면신산이 말을 마치고 자신의 뒤에서 맥없이 서 있는 질녀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청하를 남겨 두고 가고 싶은데 세가의 지엄한 명 때문에.... 미안하네.”
“아닙니다.”
친우들과 철면신산이 제갈청하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자 북리준이 면사를 한 채 애꿏은 땅바닥을 발로 차고 있는 청하에게 다가갔다.
“청하야!”
“나, 난 정말 가기 싫은데....”
“잠시 떨어져 있는 것 뿐이야. 여기 일이 정리되는 대로 너를 보러 올라갈게.”
“꼭이야!”
북리준이 손을 벌려 품을 열어주자 그 안에 몸을 던진 제갈청하가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북리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빨리 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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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검문 내 대연무장!
그 곳에 전 남해검문도가 장문의 명으로 도열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래?”
“아주 중대한 발표를 한다던데?”
“밖으로만 내 돌던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 전원이 다 모여있네.”
오랜만에 팔백여 남해검문도가 모여 쑥덕 거리는 소리가 점점 그 부피를 키워가는 시점에 대 연무장 정면에 위치한 단상에 단천수사 방백이 올라섰다.
“군사님이 올라 오셨다. 모두 조용!”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잦아들고 방백의 뒤 태사의에 오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해검문 장문인이 자신의 애검인 창천뇌검을 든 채 앉아 있었다.
“모든 남해검문인은 오늘 이 곳에 왜 다 모였는지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방백의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대 연무장 구석 구석을 메우며 울려 퍼졌다.
“저희 남해검문이 이 곳 해남도 여모봉에서 개파를 하신 선조님들의 뜻을 받들어 남해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한 지 어언 이백년이 넘었습니다.”
단상의 양 옆에 자리를 잡은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군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백년이 지난 지금, 이 곳 해남도는 저희 남해검문의 뻗어 나가는 기상과 힘을 담아 내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 남해검문의 장문인께서는 자신의 대에 이 좁은 해남도를 벗어나 저 너른 중원 무림에 우리 남해검문의 기치를 휘날릴 준비를 하셨고 이제 그 결실을 보게 되었소이다.”
‘무슨 소리야? 해남도를 버리고 중원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야?’
‘왜 갑자기....’
‘맞아, 우리가 구파일방 오대세가 보다 못 한게 뭐가 있어? 우리의 힘이면 당연히 그들과 자웅을 겨룰만 하지, 암!’
대 연무장에 서 있던 남해검문인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떠올리며 군사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장문의 명으로 이미 우리 남해검문이 옮겨갈 소중한 보금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오늘 이후로 남해검문의 모든 기반을 그 곳으로 옮기는 대역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단천수사 방백이 자신이 할 말을 마치고 뒤로 물러서자 뒤에 앉아 있던 목철군이 전신에 삼엄한 기운을 발하며 단상 앞으로 나아왔다.
“군사의 말대로다. 이 좁은 섬에서 벗어나 저 너른 중원을 질타하고 차후 남해검문의 번영과 발전을 저 중원무림 한 가운데에서 이룰 것이다. 날 믿고 따르라! 저 중원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우리의 발 아래 두겠노라.”
“우와아아아아아아 크와아아아아아”
남해검문인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장문의 말에 팔백여 검문인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 포효성을 내질렀다.
“남해검문 만세!”
“가자, 남해검문이여!”
“평소 우리를 업신 여기던 놈들의 코를 짓뭉개주자.”
자신의 발 아래 목이 터져라 지르는 검문인들의 포효성에 목철군의 얼굴이 만족스런 웃음이 피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