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00화 (100/167)

100. 수상한 움직임

“그동안 강녕하셨는가?”

독고우와 막대광, 곤오가 함께 도경명과 교교, 기룡 남매를 반가이 맞이했다.

“두 분 숙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경명이 포권을 취한 후 허리를 숙이자 막대광이 손을 내 저었다.

“우리 사이에 과례는 사양이야. 이따가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자구.”

“기룡이도 왔구나. 잘 왔다!”

구석에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기룡이 자신을 보고 웃어 주는 독고우를 보며 인상을 풀었다.

“총관님, 반갑습니다!”

“허허, 정겨운 호칭이군.”

도교교가 면사를 한 채 조심스럽게 북리준의 앞에 섰다.

“북리봉공님, 참으로 반갑습니다.”

“도낭자, 그 동안 무탈 하셨지요?”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북리준에게 들릴까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희 천산무관의 관원들입니다.”

‘다들 우리 천산파의 문인들일세.’

도경명의 전음에 북리준이 뒤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하고 있는 백여명의 무인들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두 분의 노고가 크셨습니다.”

“하하, 다 북리봉공의 돌봐주심때문이지.”

“곡형님! 안내를 부탁 드립니다.”

어느새 다가온 곡굉에게 천산파의 인물들을 소개하고 백 여명의 천산문인들의 숙소 안내를 부탁했다.

“반갑습니다. 뒤에 계신 천산무관원분들은 저를 따르시지요.”

“기룡아! 네가 곡대협과 함께 관원들의 숙소까지 따라가렴.”

도교교의 말에 기룡이 자신의 검을 굳게 잡은 채 앞으로 나섰다.

“관주님과 도낭자는 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지요. 두 분 숙부님과 곤오소협도 같이요.”

단출 하지만 정갈한 저녁과 술이 준비된 자신의 전각 안으로 들어선 북리준과 일행이 자리를 잡았다.

“긴 여행에 피곤 하실테니 천천이 여독을 푸시지요.”

술이 두어 순배 돌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는 중에 도경명이 북리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북리봉공! 혹시 마교의 발호에 대해 들으신 내용이 있으신지요?”

“저도 북경에서 내려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소식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두 분이 도착 하시면 천풍루 광동지부에 의뢰를 넣을 생각 이었습니다.

오늘 푹 쉬시고 내일 저와 함께 광동성에 들어가시지요.”

북리준의 말에 도교교가 눈을 빛내며 말을 받았다.

“저도 동행해도 될런지요?”

“당연히 가셔야지요. 천풍루의 지부장과 안면을 터 놓으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검단주, 들리는 소문이 맞는가?”

막대광이 자신의 술잔을 비우고 난 후 곤오가 채워주는 잔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관직을 내려 놓고 무림인의 신분으로 돌아 간다는 것 말일세.”

소문을 들은 독고우와 곤오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처음 들은 도경명과 교교는 갑작스런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해남검단에 검단주의 신분으로 관직을 받아 왜구를 소탕 해야하는 임무가 완료된 시점에 관직은 제게 거추장스러운 짐이라 생각 했습니다.”

“에이, 정삼품 호군참령어사라는 관직에 평생 목 매는 관리들이 허다 한데 조금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 어때? 나도 조정에 힘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뻐길 수도 있고 말이야.”

“미친놈! 네 놈이 뻐기기 위해서 북리봉공이 관직에 더 있으라는 말이냐? 술이나 처 먹어라!”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독고우에게 된통 욕을 먹은 막대광이 군시렁 거리며 잔을 비웠다.

“막숙부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요. 허나 마교가 발호하고 나면 분명 천산파의 흔적을 찾아 나설 것임이 자명합니다. 천산쌍괴 어르신의 유진을 이어받은 제가 당연히 천산파의 일을 도와야지요.

그런데, 관직에 몸 담고 있게 되면 관무불침이라는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어차피 제 숙원 중 하나인 왜구들을 일소 했으니 이제는 천산파의 일에 매진 해야지요.”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과 교교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정말 정말 감사하오, 봉공!”

“저도 감사드립니다!”

“아, 천산무관원들의 무공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지요?”

“기본 입문공인 천산검결의 경우 삼성에서 사성정도, 천산십팔류의 경우 삼할의 제자가 이성에서 삼성 정도의 경지입니다.

천유신보의 경우 전 관원들이 삼성 이상의 성취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교의 천산파 무공의 성취가 나를 앞질러 관원들의 무공 수련은 전적으로 교교가 맡고 있다네. 다행히 전 문도들이 건공무극신공을 밤낮으로 수련하여 그 기초가 부실하지는 않네.”

도경명이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 보자 교교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올랐다.

“과찬이세요. 북리봉공께서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한번 봐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의 천산파천삼검의 성취를 나중에 점검해 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문주님께 이 자리에서 허락을 받을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시게.”

북리준의 말에 좌중의 일행들이 일제히 먹고 마시는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북경에 가서 제 관직을 내려 놓는 일과 함께 해남검단의 거취 문제도 논의를 하고 왔습니다.”

“흠, 하긴 해남검단의 주적인 왜구가 없어졌으니 애매한 상황이겠군.”

독고우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에서는 해남검단원들의 노고와 수고를 치하하는 포상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검단을 해산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되었군....”

막대광이 몹시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는 술잔을 들었다.

“이것과 관련된 일인가?”

도경명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북리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해남검단원의 대부분이 왜구들에게 친인척을 잃은 사람들이기에 검단이 해산되면 갈 곳이 없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이에 북경에 가서 해남검단이 정식적으로 해체 되어 검단원들의 신분이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면 그들을 저희 천산의 품에 안았으면 합니다.

제가 해남검단에서의 생활만 팔년 가까이 됩니다. 이들은 오직 왜구만을 대적하는 생활에 조금 거칠지만 순박하고 검단원들끼리 동병상련으로 우애가 깊습니다. 짧게는 일년 길게는 십년이상 왜구와의 싸움에 단련되어 있기에 실전 경험 만큼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북리준의 열정어린 열변에 도경명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우리야 오히려 검단원들이 천산파의 문도들이 되어 준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

도경명이 말끝을 흐리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을 한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문주님이 걱정하시는 바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문도들과 함께 꾸려나가야 할 천산파의 재정이 걱정 되시는지요?”

“그렇다네. 급히 천산을 떠나 오면서 천산 동부에 많은 재정을 놓아 두고 왔는데 오백 가까운 문도들이 는다면 그에 대한 재정도 생각을 해야 할 수 밖에 없네.”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가 천으로 싼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이게 무엇인가?”

도경명이 북리준이 건네주는 묵직한 것을 풀러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금괴 아닌가?”

묵직한 무게와 그것이 금이라는 것을 안 도경명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왜구들의 근거지를 토벌하면서 얻은 전리품입니다. 이런 금괴가 상당히 많이 준비 되어 있으니 재정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셔도 될 듯 합니다.”

“와우, 이 거 하나면 광동성 내에 웬만한 주루 하나는 사겠다.”

막대광이 도경명이 건네주는 금괴를 손에 들고 가늠해 보더니 히죽 웃음을 지었다.

“북경에 가서 이 곳 해남검단의 토지와 건물을 정당한 가격에 인수 하기로 합의를 마쳤습니다. 검단원들의 의견을 수렴 하여 남고자 하는 문도들의 수를 파악하여 대대적인 개보수를 할 예정입니다.”

“으흠, 그럼 이 곳이 천산파의 광동지부가 되겠구만.”

“그러네요. 하하하, 벌써 지부가 만들어 지는 건가요?”

도경명의 말에 모두들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술잔을 들었다.

****

“잘 되가고 있지요?”

오랜만에 왕일, 승진과 술자리를 가진 북리준이 물었다.

“각 대주들이 현 상황을 설명하고 천산파의 문도로 남기를 원하는 검단원들을 취합하고 있다. 우리 청룡대의 경우 여덟 빼고는 다 남겠다고 한다.”

“그 여덟은 이 곳 어촌에 자리를 잡고 다시 어부의 삶을 꾸리겠다더라. 물론 벌써 애저녁에 어촌을 드나들며 자기 짝을 찾은 사람들이고, 크크.”

“형님과 승진이도 굳이 나 때문에 남지 말고 다른 삶이 있다면 찾아 가도 돼.”

“네 놈 덕분에 이렇게 숨 쉬고 살고 있는데 당연히 너와 함께 해야지.”

“왕형님, 우리 솔직해집시다. 형님이나 나나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잖아요. 그리고, 준이 옆에 있으면 이리 외롭지 않은데 어디를 갈려고 연극을 해요?”

“크크, 맞다. 네 옆에 있으면 죽을 때 까지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두 사람이 히죽 거리며 술잔을 비우고 그 모습을 북리준이 흐뭇한 얼굴로 바라 보았다.

“분명 앞으로의 싸움은 무림인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밝히고 작업을 하는 거지?”

“그럼, 네가 그리 신신당부를 했는데.... 다들 왜구들과의 그 아귀 다툼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무림인들이라고 별 다르겠냐고 하더라.”

승진이 말을 마치고 자신의 잔을 비웠다.

“많이 달라. 하지만 내가 이 곳에 와 삼재검진과과 창병의 혼합진으로 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를 줄였듯이 스스로의 몸을 지킬 무공을 가르칠 거야.”

“무공? 그거 아무한테나 알려 주는 거 아니잖아?”

승진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산파의 무공을 가르칠거야. 백년 전 전 무림에 우뚝 섰던 위대한 문파의 무공이니까 기대 해도 좋아.”

“머물 곳도 주고 밥도 주고 무공도 가르쳐 주고... 너무 밑지는 장사 아냐?”

왕일의 말에 승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받았다.

“형님 말이 맞아. 그래놓고 무림인들의 싸움에 예전 해남검단 같이 칼받이로 쓰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더라.”

“해남검단원들은 내 형제고 가족이야. 절대 형제와 가족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은 없어. 나를 믿어 봐!”

****

다음 날!

“검단주님, 벽라, 금사도주님이 오셨습니다.”

유검패의 안내로 북리준의 집무실에 들어선 두 도주에게 자리를 권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검단의 해산 작업으로 할 일이 많아 소원했습니다. 이해해 주시지요.”

“별말씀을요. 검단주님 덕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고 또한 크나큰 도우심에 두 도가 하루 하루 다르게 일취월장 성장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보고자 하셨는지요?”

북리준이 수결하고 있던 서류들을 옆으로 치우고 두 도주을 바라 보았다.

“남해검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 말입니다.”

금사도주의 조심스런 말에 북리준이 두 도주를 바라 보았다.

“어떤 움직임을 말씀 하시는지요?”

근래 검단의 해산과 천산파의 재건을 위해 하루가 짧아 미처 남해검문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한 북리준이 질문을 던졌다.

“남해검문이 자신들의 근거지인 해남도를 비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해남도를 비운다고요?”

“네, 벌써 오할 이상이 광동성 내 모처로 이동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벽라도주의 말을 이어 금사도주가 입을 열었다.

“중원 무림 진출을 공식화 하고 몇 년 전부터 흑건질풍대와 백건폭풍대로 정지 작업을 해온 문파들 중 가장 규모가 컸던 남천방가와 대해용가의 터로 전 문도들과 남해검문의 모든 것들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