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09화 (109/167)

109. 고맙다

“남해검문?”

곤오가 돌아와서 한 보고에 북리준이 반문을 했다.

“마교도 놈들이 왜 남해검문과 연관이 되어 있지?”

곤오가 미행한 남해문도가 최종적으로 몸을 숨긴 곳이 예전 대해용가의 건물로 현재 남해검문이 자리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제야 뭔가 아귀가 맞아 가는 것 같군....”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리봉공을 마교도가 습격한 이유가 삼년 전 관제묘도 아니고 천산파도 아니었어. 남해검문에서 의뢰를 넣은 것이었어....”

이제야 왜 마교가 북리준을 노리는 지 이유를 알게 된 막대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해검문과 마교는 무슨 관계이길래 이런 시국에 암살대를 파견 하지? 정말 모를 일이네....... 설마 마교가 남해검문에게 약점을 잡힌 건가?”

“미친놈! 마교가 이런 벽지에 중소문파에 불과한 남해검문에 무슨 잡힐 약점이 있겠냐?”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자신의 뒤통수를 검지 손가락으로 긁적거렸다.

“내 말이.....”

“그나 저나 남해검문과 북리봉공이 악연은 악연인 모양이네 그려.”

“글쎄말입니다. 막숙부님 말씀대로 도대체 마교와 남해검문이 무슨 관계일까요?”

북리준과 막대광, 독고우, 곤오가 술상을 가운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시간을 두고 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세 분이서 마저 술자리를 가지세요. 저는 도문주와 교교 낭자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북리준이 도문주와 교교가 기다리는 문주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또 마교의 습격이 있었다며?”

“네, 독고, 막숙부님 덕에 수월하게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곤오가 도주하는 놈 하나를 쫓았는데 놈이 남해검문으로 들어 갔다고 합니다.”

“남해검문? 허어, 그러면 마교도가 내려 온 것이 남해검문 때문이었어?”

도문주의 말에 도교교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시간을 두고 조사해 볼 일이고 내일 영약 복용 건으로 두 분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교교를 통해 북리준이 막대한 금자를 들여 오백여명 분의 영약을 구입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도경명이 진심으로 북리준에게 고마워 하고 있었다.

“철령단, 대청신단, 태원단, 소양단은 복용 방법에 따라 오년에서 십오년 정도의 내공을 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 영약들은 이십년 정도의 내공을 만들어 준다고 소문이 나 있지 않는가?”

“맞습니다. 최상의 심법과 영약의 기운을 복용자의 전신에 두루 퍼지게 할 추궁과혈이 함께 한다면 온전히 이십년의 내공을 취할 수 있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십년 정도만 취해도 다행이겠군.”

“아닙니다. 이십년 내공을 전부 취할 수 있습니다.”

“이십년을 전부 다?”

“그 방법을 알려 드리려 오늘 두 분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도교교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건곤무극신공 인가요?”

북리준이 천산에서부터 이 곳 해남검문 문도들을 받아 들일 때 까지 모든 문도들에게 건공무극신공을 하루 두 시진 이상씩 강제로 수련 하게 한 조치가 떠올랐다.

“맞습니다.”

“북리봉공의 말대로 최상의 심법은 준비 되었다고 치고 추궁과혈은? 북리봉공 혼자 오백명을 다 하겠다고?”

“못 할 것도 없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지지요. 그리고, 건곤무극신공에 대해 저 만큼 해박한 두 분이 계신데 왜 저 혼자 하겠습니까?”

“우, 우리가요?”

“할 수 있을까?”

도교교와 도경명이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건곤무극신공의 길을 따라 약력을 도인해 주시면 됩니다. 건곤무극신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내공이 달리면 위험할 수 있지만 두 분은 공청석유를 취하신 분들인데 무엇을 걱정 하겠습니까?”

“아, 공청석유...”

도경명은 오십년, 도교교는 사십년의 내공을 가지고 있기에 일천한 내공을 가진 해남검단의 단원들의 진기를 도인 하기에 충분했다.

“두 분 먼저 약을 취하시지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두 분은 워낙 내공이 있으시기에 약 오년 정도의 내공 정도만 취하셔도 성공 일 것입니다. 제가 진기를 도인 하는 것을 잘 기억해 두셨다가 내일부터 천산파 문도들의 영약 섭취를 시작 할 것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예전 공청석유를 취했을 때의 분위기가 떠올라 도교교의 얼굴이 붉어졌다.

‘허허, 교교와 북리봉공이 이어졌으면 좋겠구나...’

도경명이 열심히 내일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북리준을 도화빛 물이 든 얼굴로 훔쳐보는 자신의 딸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

“무슨 일이지? 무공 훈련도 접어 두고...”

왕일과 승진이 자신들을 북리준의 개인 연무장으로 불렀다는 말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술 한잔 하자는 건가?”

“미친! 술은 왜 연무장에서 먹냐?”

“아, 그렇구나....”

왕일과 승진이 북리준의 개인 연무장 앞에 다다르자 유검패가 웃음을 지으며 둘을 맞이 했다.

“들어가시지요.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오랜만입니다. 군관님!”

“지금은 군관이 아닙니다. 교두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이 놈이 워낙 머리가 나빠서...”

왕일이 승진에게 눈을 흘기고는 유검패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검패가 다시 문을 굳게 걸어 닫았다.

“어서들 와!”

“어, 그래! 무슨 일로 부른거야? 무공 수련 빼 먹으면 직접 두들겨 팬다며?”

승진이 주위를 둘러 보며 북리준에게 다가 갔다.

“왕일형님, 승진아, 여기 앉아서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잘 들어.”

개인 연무장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북리준이 가리킨 자리에 주저 앉은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술 먹을려고?”

“술이 어딨냐? 고만해라....”

“두 사람이 뭘 먹기는 먹을 건데... 잘 들어.”

“봐요! 준이가 우리 한테 좋은 거 줄려고 부른 거잖아요.”

승진이 뿌듯한 얼굴로 왕일을 째려 보았다.

“건공무극신공은 매일 두시진 이상씩 수련 하고 있지?”

“당연하지. 네가 그리 신신당부를 했는데...”

“형님하고 나는 밤잠 줄여 가며 더 하고 있어.”

북리준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옆에 쌓여 있는 자그마한 목함 무더기에서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뭐야?”

승진이 북리준의 옆에 대략 이백여개 정도 쌓여 있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의 작은 목함 무더기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디보자... 이건 대청신단이구나.”

목함 앞에 적힌 자그마한 글을 본 북리준이 중얼거렸다.

“대청신단? 어, 이거 영약이야?”

“맞아! 우리 천산파 문도들 전체에게 복용 시킬 영약이야. 내 말대로만 하면 이십년 정도의 내공을 취할 수 있어.”

“이, 이십년.....?”

왕일과 승진이 서로를 쳐다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대청신단을 한 사람씩 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복용한 후 건공무극신공을 운기하면 내가 추궁과혈로 약력을 도인 할 꺼야. 아마 내가 도인 하는 진기로 삼주천 하면 약력의 내공 전환이 완료 될거야.”

“준아....”

왕일과 승진이 눈물이 글썽 거리는 눈으로 한 손씩 붙잡았다.

“모든 해남검단원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질 거야. 일단 왕형님부터 시작 할테니 승진이는 저 편 탁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어.”

승진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는 북리준이 가리킨 탁자로 향했다.

“형님! 제 앞에 등을 돌리고 가부좌를 틀어요. 그리고, 내가 신호를 주면 이 대청신단을 입에 넣고 씹어 삼키고는 내가 도인 하는 대로 약력을 일주천 하면 됩니다.

진기를 도인 하는 동안 입을 절대 벌리거나 소리를 내면 안됩니다. 알았죠?”

“알았다.... 저, 정말 고맙다.....”

해남검단에 몸을 담은 이래 북리준에게 받기만 하고 준 것이 없다는 생각에 왕일이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네게 줄게.....’

****

“지금쯤 시작 했겠군....”

독고우가 술잔을 들며 중얼거렸다.

“곤오는 언제 보낼건대?”

옆에 앉아 조용히 술잔을 들어 홀짝 거리던 곤오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북리봉공이 내일 시간을 알려 준다고 했어.”

“쩝, 정말 우리는 안 먹을껴?”

“아이구, 추하다 이놈아! 네놈이나 나나 비싼 영약을 먹어 봐야 화장실이나 조금 편히 가는 정도인데 미쳤다고 먹냐?”

“미친놈! 화장실 편히 가는 게 얼마나 좋은데...”

“술이나 많이 처먹고 몸을 많이 움직여라. 그러면 화장실 잘 갈테니까.”

‘미친새끼, 먹기 싫으면 지나 처먹지 말지 왜 나까지 끌어들여....’

막대광이 불퉁거리는 표정으로 연신 술을 들이키는 모습을 보며 독고우가 웃음을 지었다.

“대광아!”

“왜 임마.....”

“너랑 함께 한 지가 얼마나 되었지?”

“삼십년이 훠월씬 넘었지, 왜 아깝냐?”

항상 불퉁 거리면서도 살수로써 주위에 아무도 없이 외롭게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불쑥 끼어 들어와 이리 함께 해 준 막대광에게 참으로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그냥 네 놈한테 고마워서....”

“미친새끼! 고작 그거 먹고 주정이냐?”

“내가 북리봉공한테 이야기 해서 한 알 빼 달라고 할까?”

“그래 주면 고맙..... 에이, 됐다. 더러워서 안 먹는다.”

“혹시 나 한테 아주 귀한 무엇인가가 생긴다면 꼭 너한테 줄게.”

“어어어어, 왜 이래? 닭살 돋잖아.... 너나 많이 쳐 드세요.”

막대광이 헤벌죽 웃음을 지으며 독고우의 잔을 채워주었다.

“나도 고맙지 뭐.... 항상 퉁퉁 거리는 내 투정을 다 받아 주는 놈은 너 밖에 없으니까...”

두 사람이 잔을 들어 부딪치며 맑게 웃음을 짓자 옆에 있던 곤오가 헤벌죽 자신도 웃음을 지었다.

****

“내일 당장?”

남해검문 장문인 목철군이 독대를 요청한 단천수사 방백의 입에서 나온 말에 반문을 했다.

“네, 대계의 완수 전에 천께서 직접 뵙기를 원하십니다.”

“이봐, 조금 있으면 정마대전이라 할 일이 많은데 내가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거야?”

“부문주가 잘 하고 있고 현재까지 별 문제가 없습니다.”

방백이 불쑥 찾아와 마교 교주를 만나러 가자는 뜬금없는 제안에 목철군이 적잖이 당황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 한 것 아니야? 정마대전 한 달 전에 천무맹에 합류 해야 하는데 말이야.”

“다 감안해서 동선을 짰습니다. 그 부분은 제게 맡기시지요.”

“알겠다. 내일 군사와 나 둘만 출발 한다고?”

“네, 넉넉잡고 열흘 정도면 돌아 올 수 있습니다.”

“부문주에게 이야기는 하고 가야겠지?”

“제가 이미 언질을 해 두었습니다. 내일 묘시정(새벽 6~7)에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장문 집무실을 벗어나 자신의 침소에 든 방백이 모처럼 혼자만의 술상 앞에 앉았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끝나가는군....”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울한 목소리에 방백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선택이 되어야 끝나는 거 아니겠는가?”

“현재로써는 제일 유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곳에 집혼사자님이 오신 것이구요.”

“아무도 모를 일이지. 아무튼 대계가 완성 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되네...”

혼자 자작을 하며 온 몸에서 말도 안되게 농밀한 마기를 피어 올리는 방백의 귀에 귀령의 말이 들려왔다.

“천산파의 애송이는 어찌할까요? 제가 손을 쓸까요?”

“그냥 놔 두어라. 대계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내가 직접 나서겠지만 그냥 변두리 인물이라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귀령, 너도 내일을 위해 오늘은 그만 쉬거라.”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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