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10화 (110/167)

110. 모이는 군웅들

북경성 내 자금성과 지근거리에 위치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전각군의 정문 위에 용사비등한 필체로 양각되어 있는 글이 눈 아프게 들어왔다.

‘三王府(삼왕부)’

현 황상의 동생이자 그의 총애를 받으며 청조의 막강한 군세를 한 손에 틀어 쥐고 있는 황실최고 권력자인 삼왕야가 자신의 집무실에 한 사람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변수는?”

호랑이 같이 위맹한 인상의 마흔 중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 태사의에 앉아 술잔을 들고 희롱하고 있었다.

“없사옵니다!”

조용한 어조로 자신의 술잔을 들고 웃음을 짓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마교의 군사인 공야무였다.

“크크크, 자네들 덕분에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군.”

“왕야의 꿈이 조만간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자신보다 머리가 뛰어 나거나 무예가 출중한 것이 아님에도 부황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황제의 위에 오른 형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형님이 내게 많은 것을 주셨지만 난 단 한가지만 가지면 되오. 만인지상 황제의 자리를....’

****

남해검문의 장문이 단천수사 방백과 단 둘이 말을 달려 귀주성의 어느 깊은 산 중에 들어섰다.

“이런 곳에 천마가 왔다는 건가?”

“저희 신교의 대계를 완성하기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는 장문인 같으신 분들을 보기 위해 그런수고를 마다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지요.”

방백이 말에서 내려 한 나무에 두 마리의 말을 묶어 두고는 아주 작은 소로로 길을 잡아 나갔다.

축시(새벽1~3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에 괴괴한 어둠을 뚫고 푸드덕 한 마리 부엉이가 날개짓을 했다.

“다 왔습니다.”

깊은 산 중에 다 쓰러져 가는 관제묘 앞에 선 방백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거 뭐 귀신 놀음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목철군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앞서 나가는 방백의 뒤를 쏘아 보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예상 보다 너른 공간 안 저 위 쪽에 다 낡아빠진 발이 하나 쳐 있는 그 앞 계단에 누군가 앉아 술병을 홀짝이고 있었다.

“교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백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계단에 앉아 있는 젊은 미서생에게 예를 표했다.

‘저 놈이 천마?’

목철군이 계단에 비스듬이 누워 술 호리병을 홀짝이는 천마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남해검문의 목가가 신교의 교주를 뵙소이다.”

포권을 취한 채 적당히 예를 표하는 목철군을 향해 천마가 신형을 바로 하고는 손을 들었다.

“반갑군.”

목철군이 커다란 공간을 휘이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른 동지들은....?”

“무슨 잔치 났다고 ‘우’하고 다 모여서 인사 할 일이 있나? 서로 모르고 있다가 두 달 뒤 정사 나부랭이들하고 꽝 부딪칠 때 우군을 알아 보는 재미가 있지 않겠소?”

히죽 거리며 웃음을 짓는 천마를 보고 목철군이 불편한 심기를 얼굴에 드러냈다.

“무슨 일로 이 중요한 시기에 천마께서 자리를 비우시고 이런 곳에 오시었소? 고작 대계에 참여 하는 문파의 우두머리를 한번 보려고 오시지는 않은 것 같고 말이오.”

“술 한잔 하시겠소?”

천마가 손을 휘젓자 저 편에 쌓여 있는 호리병 하나가 둥실 떠올라 천천히 목철군의 앞으로 날아왔다.

“잘 마시겠소!”

자신의 앞에 떠 있는 호리병을 잡아 나가는 순간 잠시지간 기이한 흡입력에 자신의 기가 일부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인가?’

혹시 몰라 내공을 주입한 손을 뻗어 내자 보이지 않는 반탄력이 자신의 손을 밀어 내는 느낌에 코웃음을 치던 목철군의 손에서 막강한 흡결기가 뿜어져 나오고 순식간에 호리병이 목장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하하하, 소문대로 남해검문의 백 년 래 최강 장문이 들어섰다는 말이 사실이군.”

벌컥 거리며 호리병을 입에 물고 술을 마시는 목철군의 모습을 보며 천마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술에 뭐가 들었는 줄 알고?”

“천하의 신교를 좌지우지 하는 천마가 고작 술에 뭔가를 타는 얕은 수를 쓸거라고 생각지 않으니까......”

“크하하하, 참으로 맘이 통하는 지기를 만났구려. 시간이 허락 한다면 언제고 천만대산에 귀하를 초대해 밤새 술잔을 기울입시다.

끝까지 나와 함께 한다면 남해검문 장문이 원하는 중원 무림에 귀 파의 터전을 가지실 수 있을 것이오.

이리 얼굴을 보았으니 다음에는 밝은 낮에 당당하게 만납시다.”

천마가 웃음을 지으며 다음을 기약하자 목철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마시던 호리병을 옆에 있던 탁자에 올려 놓고는 신형을 돌렸다.

조용히 천마에게 다시 허리를 숙인 방백이 저 앞에 휘적 거리며 관제묘를 벗어나는 목철군의 뒤를 따랐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거리지?”

“천마께서 대계를 함께 할 동지분들의 얼굴을 직접 보시고 싶다 하셔서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 가셨을 것입니다.”

“도무지 무슨 도깨비 놀음인지 모르겠군.”

이번 회합에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문파의 면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왔던 목철군의 얼굴에 다시 한번 못마땅한 표정이 떠올랐다.

“빨리 복귀하세. 할 일이 산더미야.”

산 밑에 묶어 두었던 말을 타고 박차를 가하며 달려 나가는 목장문의 뒤에 선 방백이 고개를 돌려 자신들이 내려온 산을 올려다 보았다.

“결과가 어찌 나려는지.....?”

방백과 목철군이 나선 한참 뒤 계단에 반쯤 누워 있던 천마 백무결이 손짓을 하자 해남검문주가 마시던 호리병이 둥실 떠올라 자신의 뒤에 쳐 있던 발 안으로 날아가고 누군가의 손이 그 호리병을 잡아 자신의 앞에 놓인 검은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집어 넣었다.

“다 끝난 건가?”

발 안에 스무개의 검은 상자를 보며 웃음 짓고 있는 희디흰 가면을 쓴 육감적인 체형을 가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빨리 서두르자구.”

어느새 관제묘 구석에 녹아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조심스럽게 스무개의 상자를 관제묘 뒤편에 대기 하고 있던 고급스런 마차에 옮겨 실었다.

“출발 하겠습니다. 보중 하시기를....”

“흰소리는 집어 치우고 최대한 빨리 결과나 알려!”

“네, 알겠습니다.”

마부석에 앉은 흰가면의 여인이 말 등에 채찍을 떨어 뜨리자 쏜살같이 마차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저 중에 하나만....”

천마가 호리병을 입에 물고 떠나가는 마차를 보고는 중얼 거렸다.

****

“이게 내공의 힘이구나.....”

승진이 왕일과 함께 대청신단을 복용한 후 처음 갖는 검진 훈련에 혀를 내둘렀다.

“왜구 새끼들 열이 와도 끄덕 없겠는데요?”

승진, 왕일과 함께 삼재검진을 구성 하던 부하와 창병이 달라진 검진의 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삼재검진....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거 아냐? 천산검결이 중심이 된 검결이니.... 천산검진으로 하자구.”

왕일의 말에 승진이 고개를 주억 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주위에 영약을 복용한 후 처음 갖는 검진 훈련에서 확연히 달라진 위력을 체감한 전 해남검단 단원들과 천산무관의 무인들이 희열에 찬 얼굴로 구슬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 분 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미흡하지만 이 정도 라면 마교와의 싸움을 해 볼만 합니다.”

대 연무장의 지휘대 위에 자리한 북리준의 말에 아직 피로가 회복 되지 않아 안색이 창백한 도경명과 도교교가 기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게 다 북리봉공의 덕일세.”

“절대 고수의 숫자가 부족합니다. 두 분은 오늘까지만 체력을 안배 하시고 내일 부터는 제게 천산파천삼검을 본격적으로 수련 하겠습니다.”

“알겠네!”

“알겠습니다.”

그 때 독고우가 거대한 덩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자신의 아들이자 풍령곡의 현 곡주인 사망도 독고패와 함께 북리준 일행에게 다가왔다.

“천산파 문주님을 뵙습니다.”

“오, 풍령곡의 곡주님께서 오셨군요.”

“북리봉공, 도낭자도 안녕 하셨는지요?”

풍령곡주의 인사에 북리준과 도교교가 포권을 취했다.

“무탈 하셨는지요?”

“하하, 살수들이 무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밝게 웃는 사망도를 보며 독고우가 입을 열었다.

“풍령곡도 정마대전에 참여 하기로 하였다네. 천무맹에 가는 것 보다 천산파와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야.”

“일면식도 없는 천무맹에 가 봐야 살수나부랭이 취급을 받을 것이 뻔한데 우리를 식구처럼 생각해 주는 천산파가 백배는 낫지요.”

“환영합니다! 저희 천산과 풍령곡은 한 식구이지요.”

도경명의 말에 풍령곡주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바로 그거지요. 닷새 안에 풍령곡의 식구들이 이 곳에 당도 할 예정입니다.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풍령곡 분들이 정마대전에 참석 하시기 전 까지 편히 쉬실 수 있게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도교교가 든든한 우군의 합류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아버님과 막숙부님과 술 한잔 하려는 문주님과 북리봉공님도 합석 하시지요.”

“기꺼이 참석 하겠습니다.”

북리준 또한 부족한 천산파의 무력에 큰 힘이 되어줄 풍령곡의 합류가 고맙기 그지 없었다.

좋은 분위기에 술자리를 가지기 위해 이동 하려는 일행들에게 유검패가 다급하게 달려 왔다.

“검패도 합석 시켜야 겠습니다.”

“봉공!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손님?”

북리준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르자 유검패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광동, 광서, 복건, 운남의 중소문파 이십여개가 천산파와 함께 할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방문을 하였습니다.”

“허허, 술자리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겠군. 도문주와 북리봉공은 얼른 가 보시게. 내가 아들놈과 막가놈하고 술잔을 기울일테니.”

독고우가 풍령곡주와 함께 등을 돌려 나가자 북리준이 유검패가 넘겨주는 방문 배첩을 받아 들었다.

“천무맹, 사황련 소속의 문파가 섞여 있네요.”

북리준이 준 배첩 명단을 받아 훑어본 도교교가 중얼 거렸다.

“이들 중에 순수하게 우리 천산파와 함께 하려는 문파가 몇 인지 모르겠구만....”

도경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북리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일단 만나 보고 순수치 않은 의도를 가진 자들은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뿐입니다. 저희의 무력이 풍령곡의 가세로 웬만한 중소문파는 힘으로 누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자신 있게 그들을 대하시지요. 제가 뒤에 서 있겠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도경명이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 웃음을 지었다.

“그래, 대 천산파의 당대 장문인 내 뒤에 북리 봉공까지 있는데 뭘 걱정 하겠는가? 만나보세, 무슨 말들을 할런지!”

천산파의 접객당에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은 이십여명의 중소문파 대표들이 오른편에서 천무맹, 왼편에는 사황련 소속으로 나뉘어 앉아 불편한 침묵 속에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쪽 같이 불순한 의도로 천산파에 접근하는 거는 경우가 아니지 않아?”

사황련 편에 앉아 있던 차가운 인상의 붉은 무복이 인상적인 여자의 말에 반대편 천무맹 편에 앉아 있던 청삼 무복의 인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불순한 의도? 우리는 마교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몸을 일으킨 천산파와 함께 하겠다는 건데 뭐?”

“다 보인다 그 시커먼 속이....”

“흑천각주! 말 조심해. 여기서 한바탕 해 보겠다는거야?”

“남해무문주, 많이 컸구나. 감히 본녀에게 그 따위 말투를 쓰다니...”

순간 천무맹과 사황련 측이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가 접객당을 내리 눌렀다.

“이보시오들, 주인들이 오시면 우리를 보고 뭐라 하시겠소? 진정들 하시오....”

백발 백염의 마의를 입은 촌노가 입을 열자 두 사람이 들었던 검과 도를 내렸다.

“태천문 노야가 아니었으면 넌 내년 오늘이 제삿날이었어.”

“뚫린 입이라고 마구 지껄이거라...”

‘휴우, 이 곳의 주인이 진정 천산의 진전을 이은 분들이라면 당신들의 검은 속을 못 알아 차릴 것 같은가....’

자신과 같이 순수하게 마교를 응징하기 위해 천산파와 함께 싸우기를 원하는 문파는 한 손으로 겨우 꼽을 정도임에 태천문 노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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