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13화 (113/167)

113. 초대하지 않은 손님

“천산파?”

정마대전의 개전 장소에 미리 도착한 천무맹의 작전부 막사에 창천수사 왕석산이 손에 든 전서를 보며 중얼 거렸다.

“네, 광동, 광서, 운남, 복건의 중소문파들이 천산파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합니다.”

천산파와 함께 움직이는 문파들의 이름 면면을 살펴본 왕군사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천무맹이나 사황련에 들지 못한 소규모 문파들이 천산파의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 하려는 건가? 안타깝군....”

“머리수만 많은 오합지졸들이 모여 봐야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요. 어디에 배치를 하실지 미리 생각해 두심이 좋을 듯 합니다.”

부군사의 말에 왕석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합지졸이라도 일천의 무인이면 적들에게 경각심을 줄만은 하겠군. 천산파에 대한 조사는?”

부군사가 건네는 책자를 받아든 왕석산이 자신의 책상 한 켠에 책자를 던져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맹주를 뵈러 가야겠다. 천산파에 대한 건과 사황련과의 연합 전선에 관한 협의를 드려야 겠다.”

“천산파라고 했는가?”

사황련주인 팔비곤마 북궁추가 손에 든 술잔을 내려 놓으며 질문을 던졌다.

“네, 쿨럭.... 백 년 전 마교의 발호를 온 몸으로 저지하다 스러져간 비운의 문파지요.”

“그 천산이 지금 올라오는 천산과 같은 곳인가?”

사황련의 군사인 병호서생 야율제가 자신의 술잔을 비우고는 말을 이어갔다.

“알 수가 없지요. 백년 전 천산파의 무공을 알아 볼 자들이 남아 있지 않고 그렇다고 마교 한테 ‘쟤 네들이 백년 전에 너희들과 사생결단을 낸 그 천산파가 맞냐?’ 라고 물어 볼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쿨럭 쿨럭...”

야율제의 말에 북궁추가 피식 웃음 터뜨렸다.

“한번 물어 볼까? 크크크... 그 문주라는 자와 수뇌부들은?”

“문주는 도경명이라 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도교교와 도기룡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무공 수위는..... 모릅니다. 천산에서 내려 온 것은 확실한데 그 이후로 누구랑 부딪친 적이 전무 하더군요, 쿨럭 쿨럭....

아, 유일하게 무위가 확인된 자가 봉공으로 있습니다. 광동 지방에서는 꽤나 유명한 자더군요. 해남검단이라는 왜구들과 드잡이질을 하기 위해 만든 검단에 정삼품 호군참령어사로 부임하여 청조의 골치덩이인 왜구를 일소해 버렸습니다.”

“호오, 왜구들을....”

팔비곤마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야율제를 재촉 했다.

“이름은 북리준.... 처음에는 도천학이라는 가명을 썼다가 지금은 실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별호는 해남검귀라 하고 청조의 관리로 있다가 금번 정마대전 직전에 관직을 놓고 야인으로 돌아와 천산파의 봉공으로 변신을 했더군요, 쿨럭 쿨럭....”

술잔을 들어 단숨에 삼킨 야율제가 잦아든 기침을 뒤로 하고 말을 이어갔다.

“마사히로라는 왜구의 수장과 대결 시 검강을 구현 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소문이 맞다면 최소 절정급의 고수로 평가 할 수 있지요.”

“검강을 구현하는 고수라..... 봉공이라는 자가 그 정도면 문주는 그 위?”

“도문주라는 자의 무위를 본 자가 없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문주 자리를 가위바위보로 딴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천산파에서 최고의 무위를 가지고 있겠지. 그 북리봉공이라는 자가 썼던 무공이 천산의 무공이라 봐야 되는 건가?”

“그것은 직접 물어 봐야겠지요. 단순히 무공이 높다고 천산파의 무공 한 자락도 모르는 자를 봉공으로 앉히지는 않겠지요, 쿨럭 쿨럭 쿨럭...”

야율제가 마치 자신의 기침을 멈출 명약이라도 되는 듯 급히 술잔을 들이켰다.

“천산파와 함께 하기로 급조된 놈들의 면면을 보니 신경 쓸 놈들이 하나도 없더만.”

“천산파가 그런 어중이 떠중이들을 모아 뭘 하려는지 한번 지켜 볼 필요는 있습니다.”

“일단 눈 앞에 마교라는 공동의 적이 있으니 차후에 군사 말대로 지켜 보자구.”

****

“멈추시오. 어디에서 오신 동도분들이신지요?”

일천여명의 천산파와 중소문파들이 전장에 다다르자 저 앞에 백마를 탄 천무맹 복장의 무인이 달려 나왔다.

“저희는 천산파의 무인들이고 뒤에 계신 분들은 광동, 광서, 복건, 운남에 자리를 잡고 계신 문파의 무인분들이십니다.

정마대전에 마교의 반대편에서 검을 들기 위해 이리 모였습니다.”

북리준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한 채 천무맹의 무인에게 말을 건넸다.

“반갑소이다. 난 천무맹 소속 백룡철검대 대주 백룡유성검이라 하오. 천무맹의 이름으로 동도 여러분들을 환영 하오. 천천히 저 성채 앞으로 이동해 오시면 여러분들을 맞이할 사람이 나올 것이오.”

백룡철검대 대주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을 모니 수 많은 군막이 너른 평원 한 곳에 넘치도록 그 수를 불려 가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천산파와 중소문파들을 떠나 서편에서 다가 오는 한 무리의 무인들을 향해 말을 달려 나가는 백룡유성검을 보며 옆에 있던 막대광이 웃음을 지었다.

“무슨 꼬랑지에 불 붙은 개 마냥 뛰어 다니누만...”

“네 놈은 비유를 해도 꼭 너 같이 하냐. 많이 바쁠 수 밖에.... 중원 무림의 주인 자리를 놓고 건곤일척의 전쟁이 벌어질테니까.”

독고우가 저 앞 너른 평원에 수 많은 무림인들이 득시글 거리는 모습을 보며 말을 받았다.

“자, 일단 저희도 빨리 가서 자리를 배정 받아야지요. 열흘 동안 이동 하느라 많은 분들이 피곤하실테니까요.”

면사를 두른 도교교의 말에 독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쉬어야지.”

도문주의 말에 천산파와 그와 함께 하는 중소문파들이 백룡유성검이 가리킨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

“휴우,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왕일과 승진이 천산파가 기거할 구역에 막사를 꾸리며 자신들의 주위에 수많은 군막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무림인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형님은 이렇게 많은 무림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수?”

“네 놈이나 나나 같은 곳에서 십수 년을 같이 지냈는데 보기는 뭘 봐?”

승진의 말에 왕일이 자신의 짐을 풀어 내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놀지 말고 빨랑 막사를 준비하고 검진 수련을 하지 않으면 준이한테 혼난다, 너!”

“아, 내가 논다고 했소?”

“야, 다니면서 다시 한번 단도리 해. 술 먹는 새끼는 그 자리에서 목을 칠 거라고.”

“형님 손까지 안 갈 것이니 염려 붙들어 매쇼.”

부랴 부랴 자신의 짐을 부려 놓고는 휘하 청룡대원들의 상황을 점검하러 승진이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모두들 원로에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천산파에 지정된 공간에 막사를 꾸리고 진영을 형성한 북리준이 도문주의 막사에서 늦은 저녁 겸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도문주, 도교교, 도기룡의 옆에 독고우, 막대광, 곤오, 풍령곡주 사망도 독고패와 유검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원형의 거대한 회의 탁자에 연이어 중소문파의 대표로 태천문 류비도 섭송인, 흑천각주 혈전갈 소벽, 남해무문주 낙일검 손복전이 오랜만의 제대로 된 저녁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좋은 날 술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겠소이까?”

손복전의 말에 소벽이 매섭게 말을 쏘아 붙였다.

“북리봉공의 말을 콧구멍으로 들었냐? 이 곳 천산파의 진영에서는 전쟁이 끝날 때 까지 금주라고 했잖아. 이 모자란 놈 같으니...”

“앞으로 개전일이 보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긴장하면 힘이 드니까 오늘만 예외로 했으면 의견도 못 내놓냐? 네 년이 술이 뭔지 알아야지...”

“또또.... 자꾸 이러면 두 사람 말고 다른 문파의 사람들로 대체해 달라고 천산파에 건의 하겠네.”

섭노야가 노기 띤 얼굴로 입을 열자 손복전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저 년이 자꾸 시비를 거는 거 보셨잖습니까?”

“네 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니까 그렇지.”

그 때 도교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낭랑한 목소리고 중인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셨으면 잠시 회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천산파의 군사 겸 무사부를 맡고 있는 도교교의 힘 있는 말에 도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일 이나 모레 정도 저희 천산파와 함께 하시는 문파 분들이 담당하게 될 전장의 위치가 나올 것입니다.

저희가 담당해야 할 전장의 위치가 정해지면 북리봉공께서 저희가 함께 운용할 진법을 여러분들께 알려 드릴 것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도교교의 말에 손복전이 손을 들었다.

“말씀 하시지요.”

“진법이라는 것이 상당히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추어야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인데 천산파 분들이야 가능 하시겠지만 이번에 급하게 모인 중소문파 무인들이 고작 보름이라는 기간 동안 해 내겠소이까?”

“오랜만에 사람다운 말을 하는구나.”

혈전갈 소벽이 손문주의 매서운 눈길을 코웃음을 치며 흘려 보냈다.

“손문주님의 지적이 타당합니다.”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도교교가 고개를 잠깐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제가 여러분들게 알려 드릴 진법은 마교도들을 도륙하기 위한 다시 말씀드리면 공격을 위한 진법이 아닙니다.”

“공격을 하지 않고 그럼 전장에서 뭘 합니까?”

혈전갈 소벽의 말에 중인들이 북리준에게 시선을 모았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마교도의 무력에 비해 여기 오신 문파분들의 무위가 많이 떨어집니다. 제가 예전에 마교도와 검을 섞은 적이 있었기에 객관적으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문파를 무시 하는....”

“손문주! 현실을 직시하게. 북리봉공의 말이 맞지 않는가? 우리 문파들의 무공과 무력이 어디에 내 놓을 정도가 되는가? 그것이 되었다면 벌써 천무맹이나 사황련에서 정중히 우리를 초대 했겠지... 흥분하지 말고 들어보시게.”

섭노야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손전복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입을 닫았다.

“제가 여러분들께 알려 드릴 진법은 삼방미환진입니다.”

“삼방미환진....”

섭노야가 처음 들어 보는 진법의 이름을 되뇌이자 북리준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저희가 맡은 전장이 뚫리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이 진법을 구사할 것입니다. 이 진법의 요체는 세 개의 방위 즉 중앙, 우익, 좌익 삼방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들어오는 적을 미환에 빠뜨려 말살하는 진입니다.

물론 아까 말씀 드린 방어에 최상의 진이기도 합니다. 마교의 무위가 저희의 예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강하다면 수비 일변도로 삼방에서 벌어지는 위험을 수시로 움직여 도움을 주는 진법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손복전이 다시 손을 들었다.

“다른 문파들이 진법이라는 것에 참여 하지 않는다고 하면요?”

“그래서 세 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입니다. 만일 저희의 작전에 참여를 원치 않는 문파가 있으시다면 그 이름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참여 안 하는 문파에 불이익이 있나요?”

혈전갈 소벽의 말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불이익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구잡이식의 싸움으로는 많은 희생을 피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전에 청조의 군대에서 대규모 전쟁을 다년간 경험했었습니다. 물론 군인들과 무림인들의 싸움은 엄연히 차이가 있지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돌격 앞으로’를 외치기에는 마교도들의 무력이 너무 거셉니다. 진을 형성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무공이 낮은 문파나 무인들도 이 전장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북리준이 말을 마치자 섭노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천산파에서 우리 중소문파를 보호해 주시기 위하여 하시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 힘이 닿는 한 다른 문파를 꼭 참여 시키겠습니다.”

그 때 회의 막사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듯 하더니 곡굉의 노한 음성이 들려 왔다.

“이보시오! 지금 천산파와 다른 문파들의 회의가 있으시니 다음에 내방해 달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하하, 천산파의 위명이 높긴 높은 가 보군. 별 거지 같은 낭인 찌끄레기가 감히 내 앞에서 고개를 바짝 쳐 드는 것을 보니까...”

“말씀을 삼가시지요.”

이어 들리는 주작대주 상수인의 목소리에 북리준이 신형을 일으켰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북리준이 막사를 나서니 노한 표정의 곡굉과 상수인의 앞에 검을 든 손으로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해검문의 장문 목철군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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