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14화 (114/167)

114. 거리를 두지!

“오호, 그 동안 신수가 훤해 지셨소! 가면을 벗으니 보기가 좋군.”

이죽 거리는 목철군의 옆에 조용히 시립해 있는 단천수사 방백이 눈을 빛내며 북리준을 응시했다.

“시비를 걸러 온 것이오?”

“하하, 누가 감히 호군참령어사를 지내신 해남검단의 전 단주에게 시비를 걸겠소이까? 그냥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 적적 했는데 이리 얼굴을 아는 사람이 왔다기에 인사나 하려 들렀소이다.”

“인사를 다 했으면 그만 물러 가시오. 그 쪽과 서로 반가이 인사를 할 정도의 사이가 아니지 않소이까?”

북리준의 차가운 말에 목철군이 희게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명이 긴 분이군요. 이번 정마대전에서도 그 긴 명줄이 붙어 있을지 두고 봅시다.”

“그나 저나 보내주신 선물 잘 받았소이다. 두 번이나 과분한 분들을 보내 주셨던데 지금 남해검문이 서야 할 자리가 이 곳이 아니지 않소이까?”

북리준이 마교도들이 자신을 습격한 일을 은근히 빗대어 말하자 옆에 서 있던 방백의 눈이 번득였다.

“장문, 이만 돌아가시지요. 이런 작은 문파와 실갱이를 할 시간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북리봉공이라고 했나? 함부로 입을 놀리다 제 명에 못 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네. 명심하시게!”

방백의 눈에 찰나지간 떠올랐다 사라진 마기를 장중에 있는 그 누구도 눈치 채지를 못했다.

“그 쪽에서 걱정 해 주시지 않아도 걱정할 사람이 많네요. 남해검문의 장문이 시간이 많이 남아도나 보네. 이런 곳에서 시비나 걸고 말이야.”

불쑥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오고 북리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전 해남검단의 군사를 지내셨던 분이 오셨구려. 제갈세가도 사람을 가려 사귀지를 못하는 가 보오.”

제갈청하와 철면신산이 북리준에게 다가오며 눈으로 인사를 건네자 철면신산이 묵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해남 구석에서 힘을 좀 쓴다고 인정을 받으니 대 제갈세가를 이리 가벼이 입에 올리는 구려. 아까 그 쪽 군사가 한 말을 거꾸로 새겨 들었으면 좋겠군.”

“이, 이런 어디서 감히....”

목철군이 자신의 검에 손을 대려는 찰나 뒤에서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와아, 우리 준이 인기가 이렇게 좋았어? 준이 볼려면 줄을 서야 하는 거야?”

“네 놈이 줄을 좀 세워라.”

하후상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팽무강의 정겨운 목소리에 북리준이 다시금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네, 다 들.... 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네.”

하후상이 반가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다 인상을 구기고 있는 남해검문 장문을 보며 이죽 거렸다.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살아 있을 동안 즐겨라. 곧 네 놈과 골목 친구들의 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신형을 패액 돌려 나가는 목철군의 뒤를 따르는 방백의 눈이 다시 한번 북리준을 일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저 바보는 왜 와서 욕을 잔뜩 먹고 간대?”

제갈청하가 북리준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갔다.

“잘 지냈어?”

“나야 항상 잘 있었지. 천산파는 문제 없지?”

북리준과 제갈청하가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 보던 도교교가 가슴 한 구석이 칼로 후비듯 아파 오는 느낌에 휘청 거렸다.

“숙부님....”

휘청 거리는 도교교를 잡은 독고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질녀가 많이 피곤한 가 보다. 들어가서 쉬시게.”

“네, 죄송합니다.”

도교교가 막사 안으로 들어서고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도문주가 고개를 저었다.

“교교가 많이 힘들것이네.”

“어쩌겠습니까? 두 사람이 풀어야 할 일이지요.”

북리준이 제갈청하와 친우들에게 둘러싸여 오랜만의 해후를 하는 모습을 지켜 보던 두 사람 사이에 막대광이 끼어 들었다.

“영웅은 일처 삼첩도 가능 한거야. 뭘 걱정해? 제갈청하 소저도 빼어난 사람이지만 우리 교교도 빠질 것이 없잖아. 무공이면 무공, 미모면 미모, 거기다 대 천산파의 소문주... 어때?”

“미친놈아! 무슨 사람의 인연이 그런 무공과 배경으로 다 되어 지는 거냐?”

“없는 것 보다는 백배 낫지. 안 그러냐?”

옆에 서 있던 곤오가 막대광의 말에 그저 히죽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 놈도 지 사부를 닮아서 도무지 속을 모르겠어...”

그 때 북리준이 자신들의 친우들과 철면신산을 도문주에게 소개 하기 위해 다가 왔다.

“여기 계신 분은 천산파의 현 문주 되시는 도문주님이시고 여기는 제 친우들과 제갈세가의 철면신산 대협 이십니다.”

제갈청하와 친우들이 각자 자기 소개를 하는 중에 북리준이 누군가를 찾는 모습을 보고 제갈청하가 소근 거렸다.

“누구를 찾아?”

“아, 도문주님의 따님이시고 군사 역할을 하고 계신 도낭자가 금방 여기 있었는데.... 너희들을 소개 시켜 주려고.”

“질녀는 몸이 안 좋아 먼저 들어가 쉰다고 했네.”

독고우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하 너하고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서 오늘 꼭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다음에 인사 시켜줄게.”

“그래, 알겠어!”

북리준이 친우들과 철면신산, 천산파의 주요 인물들과 막사 안으로 들어가기 전 곡굉과 상수인 부부에게 다가갔다.

“형님! 형수님도 계신데 너무 막 나가지 말아요.”

“내가 뭘... 그 재수 없는 상판이 보기 싫을 뿐이었어.”

“형님 별호가 운수도라는 것을 형수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 혼자 몸이 아니니 옛날 같이 막 들이대지 말아요.”

“알았어. 잔소리 그만 푸고 들어가서 일 봐라.”

곡굉이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상수인의 손을 잡자 북리준이 손을 내저었다.

“아, 내 앞에서는 그러지 말라니까...”

북리준이 막사에 들어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식사들은 다 하고 왔지?”

“그럼! 먹는 것이 남는 거지.”

예의 하후상의 쾌활한 목소리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모두들 지금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북리준이 기감을 퍼뜨려 주위에 자신들을 염탐하는 자가 있는지 살핀 후 기막을 펼쳤다.

“남해검문과 마교와 연계를 하고 있는 정황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제갈청하가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북리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기 계신 분들이 가문의 호출을 받아 해남검단을 떠난 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북리준이 객잔에서 흑건질풍대주와 시비가 붙어 그의 목을 벤 후 두 번이나 마교의 고수들에게 습격을 받은 사실을 설명했다.

“확실히 마교도가 맞는가?”

철면신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오삼계를 잡으러 팔각채에 들어 갔을 때 관제묘의 진법을 발동 시키기 바로 전 저와 맞닥뜨렸던 마교도 둘이 살아 있었더군요. 추혼단과 천살단의 단주 들이었습니다.”

“어, 맞아! 황태자 전하와 함께 우리를 습격 했던 놈들이 추혼단과 천살단이라고 했어.”

모용민이 두 이름이 불현 듯 생각나서 입을 열었다.

“문제는 남해검문 장문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군. 자네를 습격 했던 자들이 마교도 라는 것은 확실한데 그 살아남은 자 하나가 남해검문으로 들어 갔다고 마교와 남해검문이 손을 잡았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애매하군...”

철면신산의 말에 제갈청하가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나요? 북리봉공을 습격했던 마교도과 남해검문의 누군가와 내통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 하잖아요?”

“에이, 설마 남해검문 전체가 마교 편에 섰겠어? 그러면 처음부터 저 쪽 편에 가 있었어야지.”

하후상의 말에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다 북리준이 그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분들만 알고 계시고 정마대전이 벌어지면 남해검문과는 거리를 두시는 것으로 하지요.”

“이거 뒤통수가 따가운 상태에서 싸워야 하는 건 아니겠지?”

팽무강의 말에 다들 얼굴에 일말의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

다음 날!

“천무맹주와 사황련주의 회합에 동석을 해달라고?”

아침 일찍 천무맹의 전령으로부터 회합에 참석해 달라는 전서를 전달 받은 도문주가 놀란 표정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그들이 좋은 취지로 초대를 한 것은 아니라 판단됩니다.”

“그럼 어떤 뜻이라 생각 하는가?”

“도낭자가 말씀 해 보시지요.”

북리준의 바라 보는 도교교의 눈이 아픈 빛이 찰나지간 스쳐 지나고 이어 입을 열었다.

“저희 천산파를 우대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한 백오십여개의 중소문파들을 이제 와서 전장에 재배치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판단이 선 듯 합니다.

차라리 그 문파들을 대표한 우리를 회합에 참석 시켜 전장의 한 구역을 떼어 방비케 하는 것이 중소문파들을 홀대 하지 않고 뭔가 대우를 해 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겠지요.”

“맞습니다. 저들이 보기에 저희의 정체성이 아직 모호하고 백오십개의 문파가 모였다고 하지만 그 무력이 천무맹과 사황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도문주의 말에 북리준이 굳은 인상으로 대답을 했다.

“저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저들이 생각하듯 오합지졸이 아니라 대국에 영향을 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됩니다.”

“북리봉공의 말씀대로 저희에게 할당된 전장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분명 저들이 꼭 지켜내야 할 중요한 요지를 할당 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

“자네 그거 봤어?”

천무맹 휘하 백쾌당 소속의 두 검수가 막사 한 구석에서 몰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뭘 말하는거야?”

“천산파가 뭔가 하는 문파와 백오 십여개 떨거지 문파들이 훈련 하는 거 말이야.”

“아, 무슨 진법 훈련 한다던가 하는 거?”

“아주 개판 이라고 하더라구. 천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천산파의 봉공이라는 자의 구령에 맞춰 이쪽으로 우르르르르, 저쪽으로 우르르르르 몰려 다니는 모양이 아주 가관이더라구.”

두 사람이 연신 주위를 살피며 호리병을 입에 번갈아 물려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군대로 아니고 진법은 지랄.... 뭐 힘도 안 되는 놈들이 모여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지.”

“내 말이.... 그 놈들이 지켜내야 할 전장을 마교에게 내 주면 그 옆에 자리한 다른 문파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을 것은 자명 한데 그런 요지에 놈들을 배치 하겠어?”

“위에서 알아서 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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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맹주 절대검존 남궁휘와 창천수사 왕석산, 그 반대편에 사황련주 팔비곤마 북궁추와 군사인 병호서생 야율제가 자리를 잡은 한 켠에 도경명과 북리준이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천산파 문주인 도경명이라 합니다.”

“천산파의 봉공인 북리준입니다.”

“하하하,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천산파가 몸을 일으킨 것은 우리 무림의 홍복입니다.”

남궁휘가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두 사람을 환영 했다.

“천산파의 전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왔소. 반갑소이다.”

북궁추가 두 사람을 향해 형식적인 포권지례를 취했다.

“자자, 시간이 많이 없는 관계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 가겠습니다.”

천무맹의 군사인 왕석산이 정마대전이 벌어질 전장의 전도가 걸린 벽으로 다가 갔다.

“마교도 놈들이 저 편에서 진영을 짜고 있습니다.”

왕석산이 가리킨 정사연합군의 진영 반대편을 지휘봉으로 찍어 내었다.

“약 팔천 여명으로 추정 되며 천마를 위시하여 광명좌우사, 오행기주들과 오행기, 마교를 떠 받치는 네 기둥인 흑천마가, 검천마가, 독천마가, 환천마가 등 사대 마가와 그 휘하의 마인들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이어 정사연합군이 진영을 구성하고 있는 곳을 가리킨 왕석산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 정사연합군은 약 일만여명으로 천무맹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를 위시한 이백여개 문파, 사황련의 사황팔문을 중심으로 한 사파 이백 오십여개 문파, 그리고 천산파가 함께 하신 백오 십여개의 문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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