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15화 (115/167)

115. 붉은 띠?

천무맹의 군사인 왕석산이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천무맹과 사황련의 경우 마교와의 전쟁 시 병력을 혼합하는 것 보다 각자 진영을 구축 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장을 열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 일구획부터 오구획 까지는 천무맹이, 육구획부터 십구획 까지는 사황련이 전담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 까지 말을 마친 왕석산이 남궁휘와 눈을 마주치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천산파와 함께 오신 백오십여개의 문파에 대한 논의는 방금 전에 끝냈고 그 결과에 대해 알려 드리기 위해 문주님을 모신 것입니다.”

“갑자기 저희가 들이 닥쳐 당황 하셨을 거라 생각 합니다. 저희는 아무런 사심 없이 마교를 거꾸러 뜨릴 생각만 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결정된 사항을 알려 주시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북리준와 회의장에 오기 전 어느 정도 말을 맞춘 도경명이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 합니다. 천산파와 같이 하시는 문파의 의기를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그래서 논의 결과 이구획에서 십구획까지의 진영을 두텁게 하고 여기 일구획을 천산파와 함께 오신 문파들께서 담당해 주셨으면 합니다.”

남에서 북으로 길게 늘어선 전장의 맨 남쪽을 가리키는 지휘봉에 도경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군사께서 말씀 해 주신 내용을 전달하고 일구획에 저희가 진영을 짜 두겠습니다.”

“도우심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왕석산이 포권을 취한 채 감사를 표하자 북리준이 손을 들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런지요?”

“말씀 하시지요.”

“저희가 맡은 일구획 바로 옆 이구획에 속한 문파의 이름을 알 수 있는지요?”

“어렵지 않습니다. 나가실 때 각 구획에 속한 문파들의 분포도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말씀해 주신 구획으로 병력을 이동 시키기 위해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대 천산파의 위명에 마교도 놈들이 오금을 펴지 못하는 통쾌한 모습을 기대 합니다.”

천무맹주의 말에 도경명이 포권을 취하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북리준이 왕석산이 건네 주는 서류를 챙겨 들고 막사를 나서고 잠시 후 팔비곤마 북궁추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만 준비를 위해 나서겠네.”

“내일 같은 시각에 이 자리에서 보도록 하지.”

남궁휘가 자리에서 일어서 북궁추와 야율제가 막사를 나서는 것을 배웅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천산파와 남해검문 사이에 구원이 있는가?”

불쑥 남궁휘의 말에 왕석산이 인상을 구겼다.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관계는 아닌 듯 합니다.”

“그 남해검문 장문이 원래 사구획에서 기어이 천산파 옆인 이구획으로 옮겨 달라고 부득 부득 우겨서 옮겨 주긴 했는데 설마 정마대전을 앞두고 지들끼리 싸우지는 않겠지?”

“그 정도로 앞가림 못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습니다. 그저 신경전 정도나 시도 하지 않을까요?”

“별 시덥잖은 일까지 신경 쓰이게 하는군. 군사는 다시 한번 우리 천무맹의 진영 구성에 만전을 기하고 천산파도 한 번 정도는 들여다 봐 줘.”

“알겠습니다.”

“염병, 대 천산파의 위명에 마교도가 오금이 저려? 말은 아주 청산유수로구나.”

팔비곤마 북궁추가 자신의 막사로 돌아와 야율제와 간단한 소채와 화주를 사이에 두고 투덜거렸다.

“정파 놈들이야 혀에 기름칠을 매일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모양이지요, 쿨럭....”

“그 문주라는 자와 북리봉공이라는 자의 무위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던데... 뭐 그 정도면 우리한테 해는 끼치지 않겠지.”

“어차피 남쪽 맨 끝의 구획이고 천무맹 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저희와는 별 상관이 없는 놈들입니다. 신경쓰지 마시지요, 쿨럭 쿨럭...”

“내가 그런 허접한 놈들을 왜 신경 써? 군사는 우리 진영을 다시 한번 돌아 보고 두 번 세 번 점검 하라고.”

“알겠습니다....쿨럭, 쿨럭....”

****

“너무 무리수를 두신 것 같습니다.”

남해검문주 목철군이 자신의 막사에서 부문주인 목철우와 단천수사 방백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리수? 이보시오 군사.”

“말씀 하시지요....”

“군사가 저 꼴 보기 싫은 새끼가 다음 날 뜨는 해를 못 볼 것이라고 두 번이나 내게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어찌 내 앞에서 저리 알짱거리는 거요?”

“이 건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래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손에서 놈을 처리 하려는 거요. 그 전쟁통 속에 그 새끼가 마교도에게 뒤졌는지 내 손에 뒤졌는지 누가 알 것이며 설마 알았다 쳐도 모르고 그랬다고 잡아 떼면 될 일!”

‘허허, 네 놈의 신체가 천주마강맥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내 손에 갈가리 찢어졌을 놈이...’

방백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장문인 뜻대로 하시지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군사는 물러 가시오.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소이다.”

목장문의 축객령에 방백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벗어났다.

“저 건방진 놈을 이번 전투를 끝으로 안 볼 수 있다니 속이 후련합니다.”

목철우가 자신의 잔을 들고는 방백이 나간 막사의 출구를 쏘아 보았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당연하지요. 전쟁이 개시 되고 한식경 후라고 했습니다. 놈이 신호를 주면 그 때.....크크크!”

“다시 한번 문도들을 단도리 하고 오너라. 이번 전쟁이 우리 남해검문이 중원 무림 한 가운데 우뚝 설 절호의 기회이니라.”

“알겠습니다.”

****

“저희에게 할당된 구획이 정해 졌으니 내일 부터는 저희 지역에서 진법을 훈련하겠습니다.”

도문주의 막사에 돌아온 북리준이 독고우와 막대광, 풍령곡주 독고패, 곤오와 유검패, 도교교, 기룡이 함께 논의를 진행 하고 있었다.

“그러는 것이 낫겠군. 이젠 제법 진의 틀이 잡혀 나가고 있으니까 우리가 지켜야 할 구획에서 움직이는 것이 맞지.”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에 걸린 전장도를 보며 혀를 찼다.

“맨 끝에 그나마 작은 구획을 준 것을 보니 우리가 어지간히 못 미더웠나 봐.”

그 때 북리준이 왕군사에게 받아온 서류를 보던 도경명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놈들 이거 뭐 하자는 거지?”

“뭔데?”

막대광의 물음에 도경명이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우리와 맞닿은 구획에 남해검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좀 찜찜해서요.”

도경명이 내려 놓은 서류를 들고 읽어본 독고우가 막대광에게 넘겼다.

“우연이겠지....”

“이거 앞에는 마교를 뒤에는 남해검문을 상대해야 하는 개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거 아냐?”

막대광의 말에 도기룡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요, 남해검문이 그래도 천무맹에 속한 정도 문파인데....?”

“네 놈이 북리봉공과 남해검문의 악연을 몰라서 하는 말이지. 그리고 내가 본 남해검문의 장문이라는 놈.... 속을 모르겠더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일단 놈의 목표는 저 하나일 확률이 크니 제가 놈을 예의 주시하겠습니다.”

“하아, 이거 앞 뒤에 적을 놓고 싸워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구만.”

막대광의 말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놈이 저를 노린다면 그 순간이 놈이 이 세상에서 하직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잘 지켜야 한다.”

단천수사 방백이 자신의 막사에서 홀로 술잔을 들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막사 오른편 천장 구석의 어둠이 일렁이더니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법사자님이 옆에 계시고 제가 뒤에 있는데 누가 그 놈을 상하게 하겠나이까? 놈이 죽이려 벼르는 그 놈을 제가 먼저.....”

“놔두거라! 괜한 경각심만 불러 일으킬 뿐이다. 놈의 말대로 전장에서 누구의 검을 맞아 죽었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

이번 전쟁이 끝나는 대로 바로 놈을 데리고 이 곳을 떠야 한다.”

“다 준비 되어 있습니다.”

****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정사연합군 일만여명의 무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들이 맡은 구획에 진영을 구성하는 저 건너편 새카맣게 몰려 있는 마교도들이 뿜어 내는 마기에 전의를 불태웠다.

“그게 뭐요?”

이구획에 남해검문의 문도들이 오른팔에 두른 붉은 천을 보며 점창파의 무인이 물었다.

“우리 남해검문의 의기를 상징하는 표시오.”

“잘해 보시오.”

점창문인이 웃으며 자신의 문파가 진을 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래?”

자신에게 다가오는 동료가 남해검문도들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남해검문의 의기를 상징하다나 뭐라나?”

“별 시덥잖은..... 어, 저기도 정신 나간 문파가 있네.”

점창이 맡은 구역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신검방의 방도들의 오른팔에 매인 붉은 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팔에 저 딴 것을 두른다고 마교 놈들의 칼이 빗나가기를 바라는 거야 뭐야?”

천무맹주와 사황련주가 마교와의 대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독대를 하고 있었다.

“단숨에 문질러 버립시다. 다시는 마교놈들이 중원 무림에 발을 못 붙이게 말이오.”

절대검존 남궁휘가 남궁세가의 무복을 입고 자신의 애검을 창천신검을 탁자에 올려 놓은 채 사황련주를 바라 보았다.

“당연한 말씀이오. 사황련 또한 전력을 다해 이번 대전에서 승리를 쟁취할 것이오.”

두 사람이 눈을 들어 자신들이 진영을 꾸린 반대편에 꾸역 꾸역 몰려드는 마교도들을 보며 다시 한번 전의를 불태웠다.

“보중하시고 나중에 술이나 거하게 한잔 합시다.”

남궁휘의 말에 팔비곤마 북궁추가 흑오철로 만든 거대한 쌍곤을 양 손에 나뉘어 쥐고는 자신의 진영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목해 주십시오!”

천산파와 백오 십개 중소문파의 연합세력이 모여 있는 일구회에 북리준의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보름 간 진법을 훈련 받으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분명 여러 무림 동도분들이 흘리신 땀의 댓가를 이 곳 전장에서 맛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 전쟁터의 투기에 휩쓸려 자리를 이탈 하는 일이 없도록 옆에 계신 전우분들이 서로 서로를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삼방의 전방에 위치한 천산파 검수들의 이동 방향을 보시고 같이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모쪼록 이번 정마대전에서 살아 남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이번 대전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북리준이 천여명의 연합세력을 두루 돌아다니며 다독이다 바로 옆 구획에 오른팔에 붉은 띠를 두른 남해검문도들을 보았다.

‘붉은 띠....?’

독고우, 막대광, 곤오, 유검패 등의 고수들이 포진해 있는 이구획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북리준이 다가갔다.

“남해검문도들을 예의 주시해 주셔야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설마 놈들이 검끝을 우리한테 돌리기야 하겠는가?”

막대광의 말에 북리준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급히 입을 열었다.

“잠시 확인을 좀 할 일이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부탁 드립니다.”

북리준이 이구획을 지나 삼구획, 사구획 안의 무엇인가를 급히 확인한 후 오구획에 속해 있는 제갈세가에게로 다가갔다.

“북리봉공 왔는가?”

마교와의 전투를 준비하는 중에 자신들에게 다가 오는 철면신산이 반가운 얼굴로 북리준을 맞이했다.

“왔어?”

제갈청하도 자신의 검과 비도들을 챙기다 밝게 웃음을 지었다.

“잠시 이야기 좀....”

철면신산과 제갈청하를 한쪽으로 데리고 나온 북리준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확신은 없습니다. 남해검문이 오른팔에 붉은 띠를 착용한 것을 보고 일구획부터 오구획까지 살펴 보았더니 약 이십여개의 문파가 같은 띠를 팔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북리준이 가리킨 곳을 보니 자신들과 같은 구획에 속한 천도각의 무사들이 오른팔에 선연한 붉은 띠를 두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제갈세가에서 하후세가, 모용세가, 진주언가, 하북팽가에도 주의를 주셨으면 합니다. 왜인지 저들의 붉은 띠가 마음에 걸립니다.

사황련 측에는 미처 확인을 못 해 보았는데 그 쪽도 저런 띠를 두른 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침 팽무강이 제갈세가로 전언을 가지고 다가 오다 북리준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왔다.

“이 곳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일구획에 속한 거 아니었나?”

급히 제갈청하가 북리준의 이야기를 요약 하여 말하자 팽무강의 얼굴이 굳어져갔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군. 상이와 민이 철진이한테도 내가 이야기 해 놓을께.”

팽무강이 급히 인파를 헤치고 자신들의 친우들이 있는 곳을 신형을 날렸다.

“모쪼록 보중하시고 이따가 뵙겠습니다. 청하도 몸조심하고!”

북리준이 청하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자신의 구획으로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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