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배신
“크카카카, 가자꾸나!”
전장을 떨어 울린 기이한 소성에 삼구획의 오른팔에 붉은 띠를 두른 신검방 무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정사연합군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이, 이 무슨 개 같은....”
전면에서 물밀 듯 밀려 오는 마교도들을 맞아 전력을 쏟아 붓고 있던 점창파의 무인이 자신의 뒤를 갈라오는 검에 그대로 허물어져 갔다.
“배, 배신.... 배신이다. 신검방이 배신...커헉!”
천무맹과 사황련 진영에 있던 연합군 중 오른팔에 붉은 띠를 둘렀던 정사 문파들이 느닷없이 아군의 뒤를 쳐 나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앞뒤에서 공격을 받은 정사연합군이 삽시간에 목이 달아났다.
남해검문을 싸움을 하는 와중에 예의 주시하고 있던 북리준의 눈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죽어라, 크카카카카!”
뒤편에 모여 있던 붉은 띠를 팔에 두른 남해검문도들이 자신의 앞에서 마교도와 피를 튀기며 싸우고 있던 정도 문파 중 하나인 창룡궁 궁도들을 뒤에서 급습하기 시작했다.
“남해검문이 배신했다!”
북리준이 사자후를 내지르며 정사연합군의 뒤를 들이치는 남해검문도들을 막아섰다.
“이런 개 양아치 같은 새끼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막대광이 자신의 묵룡도를 뒤로 돌려 자신의 뒤를 쪼개 오는 남해검문도를 두 조각으로 갈라 버렸다.
곳곳에서 ‘배신이다.’ 라는 고함 소리와 함께 그런대로 백중세를 유지 하고 있던 정사연합군의 진영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오른팔에 붉은 띠를 두른 놈들이 배신자요!”
북리준의 사자후에 적아를 구분 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무인들이 그제서야 팔에 묶인 붉은 띠를 식별하고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붉은 띠를 두른 놈들이 배신자다!”
여기 저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광명좌사가 자신의 혈조에서 흘러 내리는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너무 빨리 탄로가 났는데.....”
원래대로 라면 신호 후에 정사연합군의 진영을 마음껏 헤집고 자신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시작하자마자 정체가 탄로가 나 오히려 정사연합군 가운데 낀 변절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런 배신자 새끼들.... 죽어라!”
팔에 두른 붉은 띠를 보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도창에 산산히 갈려 나간 배신자들이 전면의 연합군을 뚫고 마교도와 합류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간자를 심어 놓았는가?”
절대검존 북궁휘와 팔비곤마 북궁추의 검과 곤을 무리 없이 받아 내던 천마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간자라.... 그냥 우리 협력자라고 해 두지.”
천마의 검에 전신에 자잘한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혈인이 되어 가던 남궁휘가 노호성을 내질렀다.
“비겁한 놈!”
“이기는 놈이 장땡이야. 너희 둘 다 덤벼도 나 하나 감당 못하는데 그만 항복 하라구.”
‘후우우우우우웅’
공간을 가르며 날아 오는 묵빛 곤이 순식간에 열 개로 분리되어 천마의 전신을 곤죽으로 만드기 위해 날아 오자 천마가 코웃음을 친 채 천마군림보로 땅을 내지르자 ‘쿠르릉’ 주위 땅이 뒤집어지며 솟아오른 돌과 흙이 곤마의 곤을 맞아 나갔다.
‘콰콰쾅 콰아앙 콰과쾅.’
순식간에 자신의 앞을 막아서 흙벽을 뚫고 나온 북궁추의 눈에 뭉클거리는 마기를 머금은 천마의 검이 자신의 얼굴을 갈라왔다.
‘지랄....’
눈을 질끈 감은 북궁추가 살며시 눈을 떠보니 어느새 자신의 앞을 막아선 남궁휘의 검에서 창궁무애검이 피어 올라 막다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리다 북궁추와 함께 땅을 굴렀다.
“아깝다, 한 놈은 보낼 수 있었는데 말이야.”
사이한 미소를 지으며 히죽 웃음을 짓는 천마를 향해 북궁추가 넘어진 남궁휘에서 손을 내밀었다.
“신세 한번 졌소.”
“천만에.... 다시 한번 해 봅시다.”
남궁휘가 땅을 박차고 제왕검형에 온 힘을 실어 내 뿜고 팔비곤마 또한 자신의 최고 절초인 광마십팔곤을 펼치며 저 공중에 둥실 떠 있는 천마를 향해 쇄도해 가기 시작했다.
북리준이 자신의 고함소리 덕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자신의 머리를 갈라 오는 검의 예기에 급히 천유신보를 펼쳐 상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끝까지 내 행사를 방해 하는구나!”
남해검문주 목철군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좌수에 검을 쥔 채 북리준을 노려 보았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마교의 편에 섰느냐?”
“네 놈이 걱정해 줄 일이 아니다. 그냥 내 검에 죽어 주면 고맙겠다.”
“나도 드디어 고대하던 복수를 하게 되어 고맙구나.”
검날이 기울어진 채 잡은 좌수의 검이 괴랄한 각도로 검기의 파도가 몸을 일으켰다.
‘따다다다다당 따다다당 따당.’
목철군의 좌수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남해 삼십육검이 북리준의 요혈들을 베어 내기 위해 집요하게 비행을 시작하고 북리준의 일월신검이 백년 만에 풀어내는 천산십팔류가 자신을 덮쳐 오는 검기의 파도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갔다.
순식간에 오십여합을 주고 받은 목철군과 북리준이 잠시 떨어져 서로를 쳐다 보았다.
“명불허전이군. 해남검귀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아. 이제 장난은 그만 하지.”
목철군이 낙일검제라는 자신의 별호를 가져다 준 낙일추혼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좌수에 든 목철군의 검이 용음을 내며 몸서리를 치자 북리준이 자신의 일월신검에 건곤무극심공의 내기를 몰아 넣기 시작했다.
목장문의 좌수검이 검강을 머금은 채 해가 떨어져 내리듯 북리준을 향해 쏟아져 내리자 ‘쿠르르르릉’ 뇌기를 머금은 일월신검이 광룡의 울부짖음을 내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두 검강의 부딪침에 주위에 있던 마교도와 연합군들이 땅바닥에 나뒹굴었고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너른 공터가 생겼다.
“쿨럭 쿨럭.... 이게.... 커허어억.”
자신의 낙일추혼검을 뚫고 들어온 뇌격의 몸부림에 일부 노출이 된 목철군이 좌수를 타고 올라오는 뇌기에 피를 토해 내었다.
“끝내자구나!”
북리준이 신형을 띄워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연신 피를 게워 내고 있던 목철군의 목을 치기 위해 검을 횡으로 그어내었다.
‘카아아아아앙’
순간 피를 게워내고 있던 목철군의 앞에 자신의 검을 늘어뜨린 채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방백이 눈에 들어왔다.
“네 놈도 마교도로구나....”
방백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정순한 마기에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고쳐 잡았다.
“흑운, 신교의 영역으로 모셔라!”
순간 허공에서 검은 구름이 모여드는 듯 하더니 뚝 하니 온몸에 뭉클거리는 마기를 두른 흑의인이 떨어져 내렸다.
“존명!”
연신 피를 토해내는 목철군의 혼혈을 짚은 흑운이 목철군을 어깨에 들쳐메고는 쏜살 같이 신교의 영역으로 날아갔다.
단 한번의 부딪침이었으나 자신 보다 아래가 아님을 느낀 북리준이 신중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정체가 무엇이냐?”
“집혼사자!”
“혼을 모은다...... 의미심장하군.”
“네 놈 때문에 저 새끼한테 당한 수모를 이제야 갚을 수 있겠구나. 지옥에 가거든 야차도 마유와 파운마검 서패천에게 안부를 전해 주거라.”
“네 놈이었구나. 내게 살수를 파견한 놈이...”
남해검문의 군사이며 단천수사 방백이라 불리웠던 자의 검에서 정순하기 이를 데 없는 마기가 피어 올랐다.
“이만 가거라!”
방백이 힘있게 떨친 검에서 쏟아져 나온 마검기를 향해 북리준의 검이 세상을 갈라 놓는 선을 내놓았다.
‘콰르르릉’
마검기와 무극단섬의 부딪침에 공간이 터져 나오고 어느새 신형을 박찬 방백의 검이 북리준의 심장을 향해 날아 오고 ‘끼릭’ 북리준의 왼팔목이 뒤틀리자 어느새 방백의 뒤통수를 쪼개 가는 흑월을 향해 방백의 신형이 뒤집어 지더니 마검이 흑월을 직격했다.
‘카아아아앙 카앙 카가가가각’
어느새 신형을 드러낸 일월이 방백의 허리를 갈라버리려 희디흰 이를 드러내고 튕겨난 흑월이 방백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연신 자신의 검을 휘둘러 일월쌍륜을 쳐 내던 방백의 눈이 순간 번득였다.
‘피피피피핑’
일월쌍륜을 튕겨낸 방백의 마검에서 미세한 검기가 암기와 같이 북리준에 쏟아지고 미처 피하지 못한 검기가 북리준의 왼쪽 어깨를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갔다.
“크으윽”
북리준의 양팔이 기이한 곡선을 그릴 때 마다 이리 저리 튀어 날아다니며 검기를 날리는 방백의 공격에 북리준이 점점 혈인이 되어 갔다.
‘이대로는 당한다.....’
북리준이 다시 자신의 옆구리 살을 한 웅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마검기에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북리준이 자신의 앞에서 마검을 곧추 세우고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하는 방백을 향해 내기를 실은 일월신검을 사정없이 쏘아 보냈다.
“우웃, 채애애앵”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고 날아오는 상대의 검을 걷어낸 방백의 눈 앞에 좌우의 공간을 갈라오는 거대한 륜의 비행에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 이런.....”
천산십팔류의 탄격으로 검을 날려 보낸 북리준이 뒤이어 펼친 일월천뢰륜법 중 천뢰단혼에 방백이 네 조각으로 갈라져 땅에 떨어져 내렸다.
“쿠에에엑, 쿨럭.....”
연이은 무리한 공격에 내기가 뒤틀려 피를 토해낸 북리준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겼다.....”
네 조각으로 갈라진 방백의 시신 너머 일월신검을 회수한 북리준의 뒤로 동료들이 모여 들었다.
“수고했어. 보통 놈이 아니었네....”
어느새 다가온 제갈청하가 북리준의 입에 묻은 피를 자신의 소매로 닦아 주었다.
이 모습을 뒤에서 말없이 지켜 보던 도교교의 어깨에 도문주가 손을 얹었다.
그 때 일행들의 저 편 허공에서 표표히 떨어져 내리는 희디흰 무복을 입은 자를 보며 누군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처, 천마다.....”
천상제의 신법으로 허공에서 마치 계단을 타고 내려 오듯 떨어져 내리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백이 죽어?”
뒷짐을 진 채 땅에 발을 딛는 천마 주위에 있던 정사연합군이 슬금 슬금 뒤로 신형을 빼내었다.
“천무맹주님과 사황련주님이 당하신 건가?”
누군가의 탄식 어린 말에 천마를 향해 달려 오던 소림의 무승이 소리를 질렀다.
“천무맹과 사황련의 무인들은 후퇴 하시오. 두 맹주님의 부상이 심하셔서 후일을 기약 하라 하셨소.”
소림 무승의 전언에 정사연합군들이 뒷걸음질 치며 눈치를 살폈다.
“내 지기 중 한 명이었던 방백을 죽인 자는 앞으로 나서라.”
천마의 노기 어린 음성에 한순간 군웅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안 나오면 여기 있는 놈들을 깡끄리 죽여 버리겠다.”
천마가 뒷짐을 진 두 손을 풀고 쳐든 두 손에 붉고 푸른 두 개의 불덩어리가 이글거렸다.
“나요! 내가 그를 죽였소.”
“안돼!”
“괜찮아....”
자신의 손을 잡아 끄는 제갈청하의 손을 조용히 뿌리치고 북리준이 앞으로 나섰다.
전면에 천마를 위시한 마교도들이 진영을 형성하고 이 편에는 북리준을 중심으로 그 뒤에 정사연합군이 사기가 저하된 채 뭉쳐 있었다.
“본좌가 중요한 일이 있는 관계로 네 놈에게 단 한 수만 펼치겠다. 막지 못하고 피한다면 네 놈 뒤에 있는 동료들이 증발 할 것이다.
다음에도 네 놈을 또 보았으면 좋겠구나!”
천마가 말을 마친 후 자신의 앞에 피갑칠을 하고 위태롭게 서 있는 북리준을 향해 두 개의 이글거리는 이질적인 기운을 합쳐 쏘아 보냈다.
‘둥실’ 두 개의 이질적인 불꽃 두 개가 공중에 떠올라 합쳐 지더니 붉고 푸른 두 개의 불꽃이 서로를 희롱하며 그 부피를 키우며 천천히 북리준과 그 일행들에게 날아 오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공간이 두 불꽃의 희롱에 터져 나갈 듯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일별 하고는 천마가 미련 없이 신형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