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19화 (119/167)

119. 두 번의 비움

스물 둘의 장문들 중 마군사 공야무의 호명으로 둘씩 차례로 자리를 비운 후 최후에 남해검문주인 목철군과 천마 만이 술자리에 남았다.

“왜 마지막은 혼자만 불려 나갔는지요? 저도 같이 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목철군이 말없이 잔을 비우는 천마와 자신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뛰어 다니는 가운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남해검문주라고 하셨소?”

“그렇소이다.”

천마의 전신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위엄에 목철군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어깨를 억지로 치켜 올렸다.

“영생을 믿소?”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 목철군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멈추었다.

“영생이라고 하셨소이까?”

“맞소, 영생.....”

“무슨 진시황제도 아니고.... 본 장문은 영생이라는 말은 믿지 않소.”

“크크크, 맞소이다.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이까? 자, 남해검문과 목장문의 무궁한 전도를 위해 본 좌가 건배를 올리겠소.”

“감사합니다!”

그 때 마군사 공야무가 미끄러지듯 천마와 목장문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오래 지체 되어서 죄송 합니다. 사조님과 마지막 장문의 독대가 길어졌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천마님과 독대를 하며 좋았소이다.”

그 때 천마가 자신의 잔을 탁자에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좌도 남해검문의 장문과 함께 사조님을 뵈어야 겠군.”

“알겠습니다. 목장문님, 따르시지요!”

마군사 공야무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목장문이 따라 나서고 뒷짐을 진 천마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스물 하나의 장문을 집어 삼킨 전각 안에 들어선 목철군이 자신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기이한 느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경험이군.....’

목철군이 앞서 나가는 공야무를 따라 가며 흘끗 뒤를 돌아 보았다.

‘뭐야, 마치 내 퇴로를 막는 거 같잖아?’

전각 안 두 개의 굵은 초 두 개가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려 몸부림 치고 있는 가운데 저 위 상단에 태사의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람의 형상이 들어 왔다.

“정말 이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마치 유부에서 들려 오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가 대전 안을 울렸다.

“바, 반갑습니다. 저는 남해검문의 장문을 맡고 있는 목철군 이라 하옵니다. 무림 동도들이 낙일검제라는 별호로 불러 주고 있습니다.”

“흘흘흘, 가까이......”

자신의 뒤에 시립해 있던 공야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태사의를 향하고 그 옆에 천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남해검문주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성이 절대로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을 무시한 채 천천히 태사의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태사의에 신형을 묻고 있던 사조라는 자가 상체를 일으켜 어둠 속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이, 이런....”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는 주름 투성이 살들이 흘러 내리는 얼굴과 몸에 기이하게 긴 푸른 손톱과 입이라 추정 되는 부위에서 튀어 나온 새빨간 혀를 보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 치는 목철군의 신형이 누군가에게 부딪쳤다.

“이, 이게 무슨 짓....”

순간 천마의 손이 목철군의 전신의 마혈을 일정한 속도와 법칙에 따라 두드리자 땅바닥에 허물어져 가는 그의 신체가 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영생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오!”

점점 꺼져 가는 정신에 아득하게 들려 오는 천마의 말에 목철군이 쌍욕을 내뱉었다.

“이, 이런 개 썅......”

둥실 허공에 떠올라 축 늘어진 목철군의 신형이 서서히 태사의에 앉아 있는 태사조라 불리운 괴인의 바로 앞에 멈추어섰다.

기이한 푸른 긴 손톱이 나선으로 꼬여 있는 두 손이 정신을 잃은 목철군의 전신 한 치 위를 어루만지듯 천천히 배회를 하자 목철군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괴인의 손을 따라 춤을 추었다.

“흘흘흘, 대법은 사흘 후.... 준비하거라!”

“존명!”

마군사 공야무가 허리를 숙이고 포권을 취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천마 백무결이 앞으로 나서 포권을 취했다.

“태사조님, 드디어 완전한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되심을 경하 드립니다.”

“흘흘흘.... 무결아.... 네 천형을 곧 벗겨 주겠다. 조금만 참거라....”

“감사합니다!”

“대법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거라....”

천마가 대전을 벗어나고 태사조라 불리운 괴인이 중얼거리듯 키득 거렸다.

“킥킥킥, 드디어 삼회차 환생이로구나. 이제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사의 육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노라, 킥킥킥킥.....”

대전 안을 울리는 기이한 호곡성에 태사의 앞에 바스러져 죽어간 스물 하나 장문인들의 사체가 ‘후우우우웅’ 들어온 바람에 날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얼마나 되었지?”

“보름....”

“저러다 저 미친년이 준이 보다 먼저 죽겠다.”

“후우, 저 년이 우리 말을 순순히 듣는 년이냐?”

하후상의 말에 언철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 저나 천산파의 도낭자는 준이와 무슨 관계길래 저렇게 같이 있는 거냐?”

“우리가 어떻게 알아? 준이가 이야기 해야 아는 거지....”

모용민의 말에 팽무강이 자신의 술잔을 들었다.

“지난 번 마사히로와의 싸움에서 살아 났듯이 준이는 다시 일어설 거야.”

“맞아! 준이가 그 지옥에서 우리를 꺼낸 사람 이잖아.”

네 친우가 묵묵히 침울한 분위기에서 술잔을 비워갔다.

“오늘은 제가 있겠습니다. 이러다 쓰러져요.”

천산파의 천금인 도교교가 자신에게 다가와 같이 북리준을 간병 하기 시작한 지 열흘이 넘었다.

처연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북리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제갈청하의 입이 열렸다.

“언니라고 해도 될까요?”

“아닙니다.”

“저 보다 나이가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동안 이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준이와는.... 무슨 관계인지요?”

열흘 만에 처음 물어 보는 자신과 북리봉공의 관계에 대해 도교교가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북리봉공께서 저희 천산파의 잃어버린 무공과 긍지, 재화를 찾아 흔쾌히 주셨습니다. 저희 천산파의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은공 이십니다.”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도낭자와 준이와의관계.....”

제갈청하의 말에 도교교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런...... 아니.... 저 혼자 은애하는... 일방적인 관계랍니다....”

도교교의 끊길 듯 힘겹게 입을 여는 모습에 제갈청하가 힘없이 웃음을 지었다.

“알아요... 준이가 그럴거라는 거...”

“절대 오해 하지 마세요. 북리봉공은 절대 저 한테 마음 한 켠 내 주신 적이 없어요. 일방적인 제 마음일 뿐입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도교교의 손을 제갈청하가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준이는요.... 솔직히 저 혼자 감당 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사람이에요...... 혹시 내가 잘 못 되거나 준이랑 사이가 조금 틀어지면 같이 내 편을 해 줄 사람이 필요 하거든요....

언니가 함께 해 주면 안될까요? 준이가 깨어난다면요.....”

제갈청하의 그 큰 눈에 맑은 눈물이 차 올라 흘러 넘치고 고개를 숙였다.

“저, 저는 자격이..... 저, 저는 그냥 저 분을 보고만 있어도 좋아요..... 제갈낭자와 두 분이 잘 되시고 저는 주위에 병풍처럼 두 분을 지켜 보기만 해도 좋아요....”

도교교 또한 그 큰 눈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보며 제갈청하가 얼싸 도교교를 안아갔다.

“언니... 저 사람 못 깨어나면 어떡해요?”

엉엉 서로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리던 두 사람이 점점 울음이 잦아 들며 머쓱한 표정으로 살며시 손을 풀었다.

“언니, 저 사람 몸을 같이 닦아 주고 저랑 술 한잔 하실래요?”

열흘 넘게 누워 있던 북리준의 등에 욕창이 날까 수시로 서로 다른 시각에 닦아 주던 두 사람이 슬픈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제갈청하와 도교교 두 사람이 발가벗은 채 누워 있던 북리준의 전신을 따뜻하게 젖은 수건으로 구석 구석 닦아주고는 송글 송글 이마에 맺힌 땀을 서로 닦아 주었다.

“이 수갑들은 도무지 풀 수가 없네요.”

제갈청하가 일월수갑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나도 풀어 보려 했는데 실패했어....”

두 사람이 북리준의 전신을 깨끗이 닦아 낸 후 정성스럽게 붕대를 다시 감아 내었다.

“언니, 한 식경만 둘이 술 한잔 해요.”

북리준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굳게 닫은 눈과 입을 보고는 도교교가 처연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청하동생.... 가요,,, 그리고, 고마워요...”

“딱 한식경이에요.”

“알아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방을 나선 후 방을 밝히고 있던 하나의 초가 북리준의 상태처럼 위태롭게 펄럭 거렸다.

‘이놈 이거 정말 미련하기 이를데 없는 놈일세...’

‘지난 번 보다 더 지독하게 당했네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북리준의 눈에 다시 뿌연 안개 속에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 왔다.

‘두 번째 비움이니 이번에 그릇을 넓힐 수 있겠군.... 그나 저나 그 놈이 한 수 더 빠르면 어찌하누....’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저와 당신이 가늠할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 할 뿐이지요....’

북리준이 자신의 시선 너머 구름에 싸여 있는 두 사람의 희미한 신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쌍괴 어르신들이 맞으시지요?’

‘허허, 조금 후에 다시 만나자꾸나....’

지괴로 보이는 신형이 손을 들어 내젓자 북리준의 신형이 둥실 떠올라 급속하게 뒤로 빨려 나갔다.

‘어, 어르신들....’

‘투우웅’

갑자기 고요히 누워 있던 북리준의 신형이 침상에서 튀어 오르며 두 팔목에 채워진 수갑에서 기이한 잠력이 ‘화아아아악’ 뿜어져 나오자 위태롭게 팔랑 거리던 촛불이 그 명을 다하고 두 수갑에서 뿜어져 나온 영롱한 기운이 북리준의 전신을 다시 감싸고 회전을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우웅’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북리준의 전신을 오색찬란한 서기가 맹렬히 회전을 일으키자 ‘우드드득 우드득’ 몸 속에서 무엇인가가 제자리를 잡아 나가는 기음이 울려 나왔다.

제갈청하와 도교교가 정성스럽게 전신을 감싼 붕대에 북리준의 몸에서 흘러나온 매캐한 이물질에 물들어 가고 ‘파아아아아앗’ 시커멓게 변색된 붕대가 터져 나가며 푸스스 먼지로 화해 버렸다.

‘휘류류류류류류’

옥같이 투명하게 변한 북리준의 전신을 희롱하던 오색서기가 서서히 북리준의 칠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가득한 방에 찬란한 서기에 휩싸인 신형이 천천히 침상으로 내려 앉은 잠시 후 북리준의 눈이 번쩍 떠졌다.

“분명 쌍괴 어르신들이 맞아....”

전신에 차 오르는 정순한 내기와 이리 저리 움직여 보는 손발의 최적화된 움직임에 북리준이 고개를 저었다.

“두 번의 비움..... 하늘의 뜻....”

그 때 밖에서 두런 거리는 목소리에 자신의 벗은 몸을 확인한 북리준이 황급히 옆에 놓인 깨끗한 무복을 집어 들었다.

“어, 촛불이 꺼졌네요.”

“우리가 나올 때 방문을 열어 놓고 나왔나 봐요.”

너무도 귀에 익은 제갈청하와 도교교의 목소리에 옷을 입고 침상에 걸터앉은 북리준의 입에 미소가 어렸다.

“아악, 준아!”

문을 열고 급히 화섭자로 초에 불을 켠 제갈청하가 자신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북리준을 보며 비명을 지르며 그 품에 뛰어 들어갔다.

“흐흐흐윽, 준아.... 괜찮아...?”

제갈청하가 북리준을 얼싸 안고 자신의 볼을 북리준의 얼굴에 비비며 오열을 하자 부러운 표정의 도교교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북리봉공.... 몸은 괜찮으신지요?”

“아, 죄송합니다.... 청하야, 도낭자가 계신데...”

북리준이 간신히 제갈청하를 떼어놓고 멋쩍은 웃음을 짓자 도교교가 괜찮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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