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사면초가
“삼왕야 전하!”
유공공의 명으로 삼왕야에게 적도의 습격을 알리러 태행산을 뒤지던 동창의 군관이 저 앞에 작은 술상을 앞에 두고 잔을 기울이고 있는 삼왕야를 발견하고 날 듯이 달려 갔다.
“전하, 황상이 계신 군막을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도들이 습격을 하였나이다. 삼왕야 휘하의 정람기와 정홍기의 군대를 돌려 적도를 주살해 달라는 유공공의 전언입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헐떡이며 보고를 마쳤으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채우고 비우는 동작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저, 전하....”
당연히 자리를 박차고 정람기와 정홍기 팔기군에 전령을 보내고 황상 일행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줄 알았던 삼왕야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수고가 많았다. 그만 쉬거라!”
“삼왕야 전하, 그것이....커헉.”
어느새 날아온 삼왕야 친위대장의 검에 목이 달아난 동창의 군관이 부릅뜬 눈으로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한 시진 안에 마무리 하겠다고 했으니 한 식경 후에 천천히 움직여 보자꾸나.”
잔을 채우기 위해 술병을 들었다 빈 것을 확인한 삼왕야가 미련없이 병을 뒤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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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같습니다.”
북리준과 나란히 길을 열던 유검패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지난 번 정마대전에서 손을 섞었던 놈들이야.”
“철강시와 독강시를 저리 투입 할 수 있는 곳이 마교 말고는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등 뒤를 바짝 붙어 따르던 유공공이 북리준에게 전음을 날렸다.
‘마교라고 하였는가?’
‘네, 십중팔구 마교도 들입니다.’
‘뿌드득...무림의 개종자들이 감히 황상의 목숨을 노려?’
‘놈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속히 황제폐하의 직속 친위대인 정황기 군에 합류해야 할 듯 합니다.’
‘계속 길을 여시게.’
황제가 술잔을 기울이던 군막에 동창과 금의위 군관들이 시체가 즐비한 가운데 흑천마가주와 검천마가주, 환천마가주가 머리를 맞대었다.
“황제가 도망 갔군.”
“도망가는 놈들을 쫓기에는 강시가 속도를 따르지 못할 터이니 환천마가주가 병력을 인솔하여 뒤를 치시게. 나와 검천이 우회해서 앞을 막겠네.”
“알겠다. 이따 보자!”
“이쪽입니다.”
흑천마가 암혼단 소속 추살대 신교도가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황제가 도망간 방향을 잡아 내었다.
환천마가주가 명을 내려 신교도들을 수습하여 황제가 도망간 곳을 향해 병력을 밀어 붙이는 사이 흑천마가주와 검천마가주가 땅을 박차고 신형을 뽑아 올렸다.
“쫓아 옵니다.”
후미에서 경계를 하며 신법을 펼치던 동창의 군관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자신들이 헤치고 나온 숲의 수풀들이 연신 흔들리며 얼핏 보이는 검은 피풍의들의 물결에 앞선 동료에게 전언을 보냈다.
“속도를 올리라 전해라. 꼬리가 붙었다.”
달리는 와중에 후미에서 보낸 전언이 유공공에게 긴급히 전달 되었다.
“추격이 시작 되었네. 속도를 높이시게.”
유공공의 말에 유검패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 땅을 박차려는 순간 북리준의 검집이 유검패의 앞을 막았다.
“왜....?”
“적이다.”
북리준의 말에 전면의 숲 사이에서 두 사람이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눈치 하나 빠른 놈이군. 저 놈이 아니었으면 그 젊은 놈이 두 조각 났을 텐데 말이야.”
흑천마가주 북궁찬이 차가운 미소를 띄우며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았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이만 끝내고 돌아가자구.”
검천마가주 위지천 또한 검을 뽑아들고는 일행들의 진로를 막아섰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유검패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북리준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시간이 없다. 단시간에 끝내야 한다.”
“단시간에? 허허, 광오한 놈이로고....아해야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단시간에 우리의 목을 딴다는 것이지?”
“네 놈이 왜 이승을 떠나게 되었는지 저승에서 묻거든 신교 사대마가의 흑천마가와 검천마가주가 보내서 왔다고 이야기 하거라.”
신교의 사대 마가 중 두 마가의 가주라는 말에 뒤에 서 있던 유공공과 금대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차하아앗”
북리준의 빛살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가며 일월신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 순간 거대한 검기의 파도가 두 마가주를 덮쳐갔다.
“가소롭구나....”
‘까가가가가각 까까강 까드드드드득’
두 마가주의 검이 자신들을 삼키기 위해 덮쳐오는 무극만파의 검기들을 자신들의 검으로 하나 하나 풀어 나갈 때 북리준의 양팔이 거대한 용틀임을 일으켰다.
‘시이이이잉 쌔애애애앵’
두 개의 일월쌍륜이 두 수갑에서 거칠게 모습을 드러내고 두 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뢰가 검을 바삐 놀리는 두 마가주를 엄습해 나갔다.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일월천뢰륜법의 일월벽력의 위용에 두 마가주가 급급히 신형을 뒤로 물리며 한껏 마기를 불어 넣은 검을 흑백쌍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뇌기를 향해 내리긋자 공간이 한껏 팽창되었다가 터져 나가며 뇌성이 울려 퍼졌다.
“이런 개 같은....”
두 마가주가 정신 없이 수비를 하며 쌍욕을 내뱉는 가운데 북리준이 가라앉은 눈으로 일월신검이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을 절멸시키는 한 자루의 검 앞에 누가 서 있겠는가?’
광오한 말에 걸맞는 마사히로가 재로 화해 사라져가게한 무극멸절의 거대한 힘 앞에 두 마가주가 이를 악 다물고 전신의 마기를 검에 밀어 넣으며 자신들의 성명 절기인 구유수라마검과 지옥검세의 절초를 쏟아내었다.
“이럴수가....”
유공공의 등에 업힌 채 세 사람의 대결을 지켜 보던 황제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늘의 신장 인 양 일월신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우뚝 서 있는 북리준의 전면 숲이 완전 초토화 되어 거대한 공터가 생겼고 그 공터 중앙에 전신에서 피를 뿜어내며 겨우 서 있는 두 혈인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검공인가.....”
칠공에서 진한 피를 연신 게워내고 있던 검천마가주의 입에서 질문이 흘러 나왔다.
“남해무극칠절 중 무극멸절이라 하오.”
“쿨럭 쿨럭.... 크허어억.... 대단한 검공...”
이미 선 채로 절명해 버린 흑천마가주를 일별한 검천마가주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갔다.
너무도 엄청난 북리준의 무위에 일행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붙박힌 채 거대하게 보이는 북리준의 등을 바라 보았다.
‘세 개의 절초를 연이어 펼쳐도 무리가 없구나.... 예전 같았으면 하나의 절초에 전신의 기가 다 빨려 나갔었는데...’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검집에 수납하고 뒤를 돌아 보니 얼어붙은 채 자신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 보는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따르시지요!”
유공공과 금대인이 북리준의 말에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일깨우고는 앞으로 치달리는 북리준의 뒤를 따라 땅을 박찼다.
“크아아아악, 마, 막아라!”
환천마가주가 도주 하는 일행들의 뒤를 잡아 일방적인 도륙을 시작하고 이에 오십여명의 동창과 금의위 군관들이 일자로 방진을 꾸린 채 마교도들을 막아 나갔다.
“이 놈들이 뭐 하길래 앞을 안 막고 있는 거야?”
단 일각 만에 오십여명의 군관들을 썰어낸 환천마가주가 급히 앞으로 나서다 눈에 익은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했다.
“뭐, 뭐야? 당한거야?”
우회하여 황제일행들을 앞을 막기로 한 흑천마가주와 검천마가주의 처참한 시신을 앞에 두고 환천마가주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두 놈을 이 지경으로 만든 고수가 포함되어 있다? 정보가 틀리잖아! 동창의 영반과 금의위장이 최고수라고 했는데 그 두 놈을 상대로 이 지경으로 저 세상을 건너간 것은 아닐텐데....?”
전신이 예리한 검기에 저며진 채 혈인이 되어 땅에 널부러진 두 마가주의 시신을 일별하고는 환천마가주가 시선을 들었다.
“쫓는다!”
“존명.”
자신들의 가주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한 흑천마가 암혼단과 야월단 소속 무사와 검천마가 검무대와 천검대 무사들 중 둘씩 가주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나머지 검수들이 복수심에 벌개진 얼굴로 황제 일행을 쫓아 나가기 시작했다.
“멈추시게.”
일월신검을 든 채 숲을 헤쳐 나가는 북리준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 막았다.
“아, 삼왕야 전하!”
유검패가 반가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려 하자 북리준이 차가운 얼굴로 유검패의 앞을 가로 막았다.
“길을 열어라. 본 황의 아우이니라.”
유공공의 등에서 내려온 황제가 북리준의 등을 보고 입을 열었다.
“죄송하오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북리어사, 이 무슨 무엄한 행동인가?”
금대인이 황후를 내려 놓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북리어사의 말이 맞아. 삼왕야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니까....”
전신에서 삼엄한 살기를 뿜어 내며 자신의 친위대와 함께 앞길을 막고 있는 삼왕야를 보며 유공공이 앞으로 나섰다.
“어인 연유로 이런 망동을 저지르시는 것입니까?”
유공공의 말을 듣고 있던 황제와 황태자의 얼굴이 하애지며 떨리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상녕아.... 네가 진정 역모를 꾀한 것이냐?”
황제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삼왕야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되었소이다.... 형님!”
“왜... 내게 서운한 무엇이 있었기에.... 도대체 왜?”
황제가 자신이 아끼고 총애했던 삼제의 배반에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절규를 했다.
“형님이 내게 서운하게 한 것은 없수다. 그냥 천자라는 자리에 나도 올라 보고 싶었을 뿐이오.”
그 때 지나온 숲 길이 부산스러워 지더니 필두에 선 환천마가주와 마교도들이 북리준와 유공공, 금대인, 유검패, 황제와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를 포위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놓칠 뻔 하지 않았느냐?”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흑천마가주와 검천마가주와 검을 섞은 자가 누구냐?”
유공공과 금대인, 유검패가 황제 일행을 가운데 두고 원진을 구성하는 동안 북리준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그 두 사람과 검을 섞었소이다.”
“네 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무림의 동도들이 해남검귀라고 불러 주고 있소이다.”
“해남검귀....?”
“쓸데 없는 짓거리는 접고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황제와 황태자가 미상의 적도들에게 변을 당하고 내가 바로 그 뒷수습을 해야 하니 말이다, 크크크크!”
약 사백의 마교도들과 오십여명의 삼왕야 친위대가 겹겹이 여덟 사람을 포위해 있는 가운데 황제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깃들었다.
‘얼마나 버티면 될까요?’
차츰 자신들에게 포위망을 좁혀 다가 오는 적도들에게 시선을 고정 한 채 북리준의 전음이 유공공에게 날아들었다.
‘한 식경 정도?’
이각 정도를 버텨야 한다는 말에 북리준이 굳은 얼굴로 일월신검을 잡아 나갔다.
‘검패,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말아라. 오히려 내 무기가 이런 포위가 된 상태에서 유리 할 수도 있다. 두 대인께 전하거라.’
북리준의 전음에 유검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공공과 금대인에게 전음을 날렸다.
“빨리 끝내시게.”
삼왕야의 말에 환천마가주가 진득한 살기를 피어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저 놈만 처리 하면 나머지는 쉽습니다. 제게 맡겨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