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지옥현세 >
북리준과 천무맹주가 협곡 양 옆에서 정사연합맹의 무림인들을 이끌고 효기참령장군 앞으로 나아 왔다.
“임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정장군이 포권을 취했다.
“정말 수고 많았소이다. 두 분이 아니였으면 많은 희생자를 여기에 남길 뻔 했습니다.”
군에서 오랜 전투를 경험해 온 정장군이 좌우 절벽에서 은신하고 있다 쏟아 부어졌을 바위와 기름, 화살을 상정해 보고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런 지형은 공격하는 군대가 정녕 불리한 곳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오!”
자신의 휘하 팔기군들을 목숨을 구해준 북리준을 향해 정장군이 다시 감사를 표했다.
“다시 척후조를 운용하여 길을 열겠습니다. 군을 정비하여 이 협곡에 진입하여 주시지요.”
정장군이 대군의 전진을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북리준이 천무맹주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맹주님께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허허, 아닐세. 자네 덕분에 손맛 한번 제대로 보았네. 천마놈과 다시 한번 검을 맞대기 전에 몸 한번 잘 풀었다네.”
“천마와의 싸움에는 저도 한 칼 거들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천무맹주가 정사연합맹의 고수들을 몰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뒤에 서 있던 친우들이 북리준에게 다가왔다.
“모두들 고생 많았다.”
“절벽 아래만 내려다 보고 있던 놈들 뒤통수를 갈긴 건데 뭐.... 어렵지 않았어. 이 곳에서 하후세가의 신창이 탄생 했음을....읍읍!”
하후상의 말에 친우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절 거리려는 하후상의 입을 막고는 질질 끌고 사라져갔다.
“몸 조심해!”
제갈청하가 다가와 가만히 북리준의 손을 잡아주었다.
“걱정 하지마. 넌 도누님하고 같이 움직이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뒤로 빠져, 알았지?”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남을 확인한 제갈청하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알았어.”
북리준이 예의 척후조를 다시 불러 전방의 길을 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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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 아주 우리가 지 놈들 꼬붕인 줄 아는가 보네.”
방금 전 왔던 군관이 혹시 뒤를 칠지 모르는 마교도들을 방비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하고 가자 팔비곤마 북궁추가 걸진 욕을 한사발 내뱉었다.
“쿨럭.... 뒤에 올 놈이 있었으면 벌써 왔겠지요. 총병은 우리가 그냥 놀다 갈까 걱정이 되나 봅니다...”
병호서생 야율제가 인상을 구기고 허리에 찬 호리병의 술을 연신 들이키고 있던 사황련주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냥 시늉만 하고 오겠습니다. 련주님은 쉬고 계시지요.”
“씨벌놈이 아주 무림인을 개차반으로 취급 하는구만. 이래서 관무불침, 관무불침 하는 거야. 더러운 관리새끼들이랑 어울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쿨럭 쿨럭.... 련주님 뜻대로 될 것입니다.”
거대한 호리병 모양의 너른 터에 간이막사를 꾸리고 밥을 짓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팔기군들의 모습을 좁은 통로를 통해 지켜 보던 북궁추가 작게 욕을 내뱉고는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식사 하시지요.”
야율제가 수하들이 챙겨준 저녁식사를 들고 붂궁추와 함께 자리를 했다.
“먹자, 배는 곯지 않아야 마교놈들하고 싸우지.”
북궁추가 자신의 앞에 놓인 이동식 상에 놓인 수저를 들고 연신 밥을 우겨 넣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본 야율제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수저를 들고 국을 뜨려는 찰나 국그릇의 국이 자그마한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응? 이게 무슨...”
국그릇에서 떠오른 작은 파문이 점점 그 크기를 더해 가더니 순간 ‘콰아아앙 콰쾅’ 굉음과 함께 련주와 자신의 가운데 놓인 상이 뒤집어 졌다.
“이런 씨벌... 무슨 일이...어어헉!”
입맛은 없지만 억지로 밥을 우겨 넣고 있던 북궁추가 갑자기 뒤집어진 상과 흔들리는 땅에 고개를 드니 저 앞 호리병 지형에 진입하는 좌우 절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습격이다. 전원 전투 준비!”
북궁추가 자신의 애병인 용호쌍곤을 쥐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호리병 모양의 공터 밖 길에 노숙을 하게 되어 불만을 터뜨리던 정사연합맹의 무인들이 저마다의 병기를 들고 사주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적도들의 움직이 없습니다.”
정사연합맹의 무인 육천이 양 옆 절벽과 앞 뒤를 살핀 후 보고를 해 왔다.
“뭐야? 마교놈들이 습격한 것이 아니었어?”
북궁추가 보고를 받은 후 자신의 곤을 들고 무너져 내린 호리병 지형 진입로를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북궁추가 용호쌍곤을 등에 매달고는 무너져 내린 진입로의 돌더미들을 딛고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호리병 지형의 아래 부분에 약 삼만의 군대들이 야영 하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자신의 지휘 막사 안에서 나름 호화로운 저녁상을 받고 있던 총사령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아보겠나이다.”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와 땅이 흔들리는 느낌에 총병이 수저를 내려 놓고 막사를 나섰다.
“보고 드립니다. 이 곳에 들어서는 입구와 저 앞 빠져 나가는 출구가 절벽이 무너지면서 막혔나이다.”
“적도들의 습격인가?”
“그것이.... 입구와 출구가 무너지고 난 후 아직 적도들의 움직임이 포착 되지 않았습니다.”
“에잉... 막힌 출구를 뚫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 한가?”
“반나절 정도는 지체 될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군관의 보고에 인상을 구긴 총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부터 병력을 투입하여 날이 밝기 전까지 출구를 뚫어 놓아라.”
“충!”
호리병 지형의 위쪽에 자리한 약 이만의 군세중 일부 병력들이 어수선한 가운데 무너져 내린 출구쪽으로 모여 들었다.
“아주 제대로 막혔네.”
“젠장! 이거 뚫으려면 밤 새야겠는데...”
“그나 저나 이렇게 출구를 막아서 시간을 벌겠다는 거야 뭐야?”
“그런가 보네. 듣기로 적도들의 숫자가 이만이 채 안된다고 하는데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가 보지.”
그 때 호리병 지형을 둘러싸고 있던 절벽 가에 흰색 사제복을 입은 신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 저기 누가 있는데?”
어느 한 병사가 절벽가에 흰 옷을 입은 여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어, 진짜! 저기 봐봐.”
웅성거리는 군사들을 내려다 보던 신교의 신녀가 두 손을 들고 기괴한 목소리로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언어를 영창 하기 시작했다.
“나막 사라바타 카테이약 사라바 보테이뱍 사라바 타타라셍타 미카로샤텐 캬키 사라바 타타라셍바 샤라바 비티남 훔 트라카 캄맘....”
얇고 가는 기괴한 목소리로 들려 오는 기이한 영창에 아래 모여 있던 군사들이 동요 하기 시작했다.
“저 미친년은 뭐야?”
“귀신을 부르는 것 같아...”
“병신,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어?”
“어, 저, 저게 뭐야...?”
거대한 두 개의 공터가 이어진 호리병 모양을 둘러싼 협곡의 위에서 무엇인가 기분 나쁜 반 투명한 막이 뿜어져 나와 병사들의 머리 위에 덧 씌워지기 시작했다.
“활을 쏴 죽여 버려!”
“저기 까지 활이 닿냐?”
기이한 영창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호리병 지형에 있던 오만 군사들의 머리 위에 반 투명한 막이 드리워져 갔다.
“시행 하소서!”
호리병 지형을 둘러싼 협곡 위에서 뿜어져 나온 기이한 반투명막이 거대한 반원 모양으로 병사들의 머리를 감싸 앉자 신녀의 영창소리가 잦아 들더니 조용히 뒷걸음질로 뒤로 물러섰다.
“저게 무엇이냐?”
십만 팔기군의 총사령관인 총병이 자신의 머리 위에 덧 씌워진 기분 나쁜 반 투명 막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별 일 아닌 듯 합니다.”
기괴한 영창 소리에 기분이 묘해진 총병이 자신의 머리 위를 막아 버린 기이한 막을 손으로 가리켰다.
“기분 나쁘다. 출구를 빨리 뚫거라. 이 곳을 벗어나야 겠다.”
호리병 지형의 위쪽에서 웅성거리고 있던 한 팔기군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어? 저, 저기 좀 봐..... 사람인가?”
하늘 위에서 뒷짐을 진 채 표표히 떨어져 내리는 한 인영을 보고 군사들이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야 귀신이야?”
“하늘에서 저렇게 내려 오면 신선 아닌가?”
천천히 하늘에서 계단을 밟듯이 내려 오는 모습을 보며 한 군관이 소리쳤다.
“천상제.,..... 저 전설의 신법을 보다니....”
팔기군들의 머리 위 약 삼장 정도에 둥실 신형을 멈춘 젊은 사내가 두 손을 하늘로 올리자 호리병 지형을 둘러싼 절벽가에 숨겨둔 수 많은 검은 상자들이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뭔가 열리는 소리인가 본데...”
“크캬캬캬캬캬캬,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준수하게 생긴 젊은 사내의 입에서 저 지옥 유부에서 들려 오는 듯한 악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병사들이 동요 하기 시작했다.
“뭐여, 저 미친 놈은?”
“죽여 버려! 창이고 화살이고 쏴 죽여.”
“맞아! 아주 갈기 갈기 찢어 발기자.”
팔기군 병사들의 눈에 기이한 열기가 피어 오르고 전신에서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공중에 떠 있는 목철군을 향해 창과 활을 날리기 시작했다.
‘티팅 티티티팅 티팅 차차창 차차차창’
쏘아 보낸 활과 창이 목철군 주위에 둘러진 호신강기에 튕겨 사방으로 날아가 다른 병사의 머리를 꿰뚫고 가슴에 틀어 박혔다.
“이런 개자식이...나를 죽이려고 활을 쏴?”
“이건 어떤 썩을 놈의 창이여? 시방 나한테 던진겨?”
튕겨진 화살과 창에 터져 나오는 분노를 못이긴 병사들이 주위의 동료들에게 검과 창을 돌렸다.
“죽여!”
순식간에 삼만의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창을 내지르고 검을 휘두르며 활을 쏘는 난장판이 여기 저기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죽여라! 모두 죽이거라.”
허공에 떠 있던 목철군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 아래에 있던 수십명 병사의 머리가 ‘퍼버버벅’ 터져 나갔다.
“나, 난 살고 싶어....”
서로 죽이기 위해 검도창을 내지르는 동료들 사이에서 바로 옆에 머리가 터져 죽어나가는 친우를 보며 공포에 질린 한 병사가 머리를 감싸 안았다.
“크케케케, 죽어, 죽어!”
머리를 감싸 안은 병사의 목을 잘라버린 병사가 다음 먹이감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저 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아 오너라.”
자신이 주둔하고 있는 곳에서 저 위 편의 소란스러움을 감지한 총병이 소리를 질렀다.
“위 쪽 병사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잠시 후 급하게 다가온 군관이 다급하게 보고를 했다.
“우리끼리 싸운다는 것이냐?”
“그게.... 정신 없이 창을 내지르는 놈을 잡아 따귀를 때려 정신을 돌아 오게 했더니 신선이 내려 왔다고 헛소리를 하더이다.”
“신선? 누가 술을 풀었느냐?”
“아닙니다. 아예 술은 물자에서 배제 하였습니다.”
그 때 한 병사가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위 편에서 창칼이 부딪고 비명이 난무하는 공포스런 상황에서 검은색 무복 차림의 누군가가 뒷짐을 지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네 놈은 누구냐? 난 십만 팔기군의 총사령관이니라.”
자신의 머리 위 약 삼장 정도 위에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던 자의 손가락이 탁 튕겨지자 지휘봉을 든 채 호령하던 총병의 머리가 퍼억 터져 나갔다.
“본좌는 하늘 이니라! 죽이고 또 죽이거라...”
목철군의 육신을 빼앗은 태사조의 음울한 음성에 병사들 사이에 기이한 열기가 피어 오르더니 한 병사가 들고 있던 창으로 앞에 서 있는 군관을 그냥 찔러댔다.
“죽어 죽어, 네 놈이 평소에 나를 업신 여겼지? 죽어!”
엎어져 있는 군관의 등을 수십차례 찌르던 병사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다른 창에 절명 하고 오만의 팔기군들이 서로를 상잔하는 지옥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죽이고 또 죽이거라.”
태사조가 전장 한 가운데 내려와 휘두르는 손짓과 발짓에 수십의 병사들이 터져 나가고 머리고 팔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공포스런 광경에 주위에 있던 팔기군들이 공포에 질려 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살고 싶어... 커허억”
“죽어 죽어...컥”
“끄응 끙... 이게 무슨 고생이냐?”
호리병 지형의 입구에 무너져 내린 바위들을 힘들게 기어 올라 겨우 정상에 도착한 북궁추가 고개를 내밀었다.
“도대체 뭐가 이리 시끄러워?”
고개를 내민 북궁추의 눈에 책에서나 보아 왔던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개 같은....”
< 131. 지옥현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