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악마를 보았다. >
오만의 팔기군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팔다리, 목이 잘려 흘러 나온 피가 강을 이루어 바닥에 질퍽 거리는 모습에 북궁추가 놀란 눈을 치켜 떴다.
그 때 한 검은 무복의 젊은 인물이 지나며 성의 없이 휘두르는 손짓 발짓에 주위에 있던 팔기군들의 신형이 폭죽 터지듯 터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휘류류류류루 휘이이이이잉’
고개를 들어 보니 기분 나쁜 반투명막에 부딪치는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곳곳에 자리한 검은색 상자에 계속 빨려 들어가는 기이한 광경에 자칫 절벽에서 떨어질 뻔 했다.
“이, 이게 무슨 개 지랄들이냐....”
안력을 돋우어 보니 광란의 도가니로 변해 버린 거대한 공터에 오만의 군사들 중 서 있는 자들이 일만이 채 안 되어 보였다.
병사들이 쏟아낸 피와 내장, 수족들이 흘러 넘치는 강 한 가운데 오연한 자세로 버티고 서 있던흑색 무복의 젊은이가 허리에 찬 검을 빼어 들었다.
“저, 저 미친놈이 또 뭔 짓을 하려고...?”
자신이 보기 시작 했을 때부터 족히 일만은 죽인 것으로 보이는 놈이 검을 뽑아 들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시아아아아아아악 사아아아아악’
단 두 번의 칼질에 주위에서 창칼을 내지르던 병사 수백이 두 조각으로 갈려 나가고 이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장난스럽게 휘두르는 검에 수 많은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갈려 나갔다.
“저, 저자는 악마구나.... 사람의 탈을 쓴 악마야...”
북궁추가 겁에 질린 얼굴로 굴러 떨어 지듯 다시 밑으로 내려 갔다.
협곡 위에서 아래의 지옥도를 바라보던 신녀가 오만의 병사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며 뿜어내는 원한, 공포, 살기, 슬픔 등의 상념들이 집혼갑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이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호, 마지막 대법의 완성을 위한 재료가 다 갖추어졌구나.”
다시 내려 보니 오만의 팔기군이 죽어가며 흘린 피가 강을 이룬 가운데 오롯히 서 있던 태사조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스아아아아아아앗’
태사조의 코와 입으로 각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죽기 직전의 상념들을 마음껏 흡입하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히이이이익”
팔비곤마 북궁추가 얼굴에서 식은땀을 흘린 채 굴러내리다시피 무너진 입구 절벽에서 뛰어 내려왔다.
“쿨럭... 련주님, 무슨 일이....?”
자신이 사황련주와 함께한 이십년 동안 단 한번도 이토록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본 야율제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악마.... 아, 악마가 현세 했다.”
“련주님, 무슨 말씀 이신지....?”
그때 사황련주가 두 손을 들어 사정없이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하자 주위에 있던 정사연합맹의 고수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무, 물 좀 주라....”
사정 없이 때린 뺨이 벌개진 채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북궁추가 야율제가 내민 물잔을 받아 벌컥 거렸다.
“쿨럭 쿨럭.... 련주님, 설명을.....”
“설명은 나중에 하고 전원 후퇴 한다.”
“후퇴? 왜?”
“사황련주가 미쳤나 보다.”
“마교도 놈들 코빼기도 못 보았는데 후퇴라니 뭔 소리래?”
주위에서 웅성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모인 육천의 정사연합맹 고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할 때 북궁추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갈(喝)! 악마에게 죽고 싶은 새끼는 남든가....사황련 소속 전 인원은 바로 이 협곡을 빠져 나간다.”
북궁추의 서슬퍼런 명령에 야율제와 사황련 소속 군웅들이 마지 못해 후퇴 준비를 하고 천무맹 소속 군웅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일단 저 안에 뭔 일이 있는지 보고 올테니 천무맹 소속 인원은 후퇴 준비를 하시고 잠시 대기 하시오.”
청검장의 장주인 천성검협의 말에 천무맹 소속 군웅들이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친 임시 막사등을 거두는 동안 천성검협이 무너진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빠져 나간다!”
아직 공포에 질린 기가 남아 있는 얼굴로 후퇴를 명하는 북궁추를 따라 사황련 소속 사천여 무인들이 뒤도 안 돌아 보고 북로를 벗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안에서 뭘 보았길래 꽁지에 불 붙은 강아지 마냥 저리 도망간다냐?”
“사황련주가 어릴 때 보았던 귀신 비스므리 한 것을 보았나 보네, 크크크.”
정신없이 후퇴 하는 사황련 무인들을 비웃던 천무맹 산하 무인들이 절벽을 타고 오르는 천성검협을 바라 보았다.
“끄응, 도대체 뭘 보았길래..... 다 왔다!”
청검장의 장주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호리병 지형 안을 보다 자신의 코를 화악 덮치는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이게 무슨.......”
거대한 호리병 지형 안에 잘리고 꺾이고 죽은 오만 여명의 팔기군들이 흘린 피가 강이 되어 흘러 넘치고 그 지옥도 안에 검은 옷을 입은 마교의 사제 백여 명이 곳곳에 숨겨진 표면에 범어가 꿈틀대는 사이한 상자를 수거 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었다.
“허어억, 이, 이게....”
그 때 시체들의 산 중앙에 오연한 자세로 뒷짐을 진 채 서 있던 한 인물을 안력을 돋우어 바라 보았다.
‘저, 저놈은 남해검문주인 목철군인데.... 우리를 배반하여 마교의 주구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 때 남해검문가 자신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방향을 향해 씨익 웃음을 짓더니 오른팔목을 투욱 하니 떨쳐 내었다.
‘저 새끼가 뭐하는 지랄....커어허헉!’
순식간에 자신의 목을 가르고 지나가는 묵색의 반월형 강기에 천천히 뒤로 넘어져가는 청검장주의 목이 먼저 떨어져 내리고 그 뒤를 이어 목이 잘린 몸이 뒤따라 굴러 떨어졌다.
“어? 내려오나 보다.”
‘후두두둑’ 자그마한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에 천무맹 산하 무인들이 고개를 들고 내려오는 청검장주를 기다렸다.
‘투욱 툭 투투투툭.’
뭔가 공 같은 것이 툭툭 튀어 내려 오다 자신들의 발치에 떨어진, 미처 눈을 감지 못하고 경악하는 표정의 청검장주의 수급을 말없이 바라 보았다.
“내막은 사황련주에게 듣는 것이 낫겠소이다.”
한 청성문인의 말에 천무맹 산하 무인들이 우루루루 북로를 벗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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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후조로 나선 북리준의 귀에 산 너머 저편에 병장기 부딪는 소리와 비명성이 자그마하게 들려 왔다.
북리준이 오른손을 뻗어 정지를 명하자 사십명의 척후조 들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저 쪽은 벌써 맞붙은 모양인데?’
옆에 선 독고우의 전음에 북리준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저희 쪽도 시작 할 때가 되었는데 너무 조용합니다.’
그 때 곤오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자신들이 지나온 협곡의 위쪽을 가리켰다.
“이런..... 전속 후퇴!”
북리준이 땅을 박차고 팔기 제이군이 멈추어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리며 소리를 쳤다.
“정장군! 위, 위를 조심 하시오.”
척후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효기참령장군이 저 앞에서 급박하게 뛰어 오는 북리준이 치는 고함소리에 무심코 위를 올려다 보았다.
“이, 이익, 전원 전투 준비! 위에서 적들이 공격해 온다.”
좌우 협곡에 족히 수천은 되어 보이는 기이한 차림의 인물들이 흔들거리는 걸음으로 절벽에서 뛰어 내렸다.
“저런 미친.....”
“강시입니다.”
막대광이 입을 벌린 채 욕지기를 내뱉으려는 찰나 북리준의 신형이 앞으로 쭈욱 뻗어 나갔다.
“강시들입니다. 절대 부딪치지 마시고 물러 나십시오.”
사정없이 높디 높은 절벽에서 몸을 날리는 망혼철강시와 천독강시들이 땅에 떨어져 내리며 부딪친 창칼이 부러져 나가고 병사들이 부서져 내렸다.
“크아아아아, 도, 독이다!”
떨어져 내린 천독강시를 향해 도를 휘두르던 군관이 뿜어져 나온 혈독에 전신이 녹아 내려갔다.
“목을 노리시오. 독강시의 경우 목을 치고 급히 자리를 피하시오.”
천무맹주 절대검존 남궁휘의 검에 목이 달아난 철강시들이 강철 같은 손아귀로 옆에 있던 병사들을 쥐어 터뜨리며 쓰러져갔다.
“아... 늦었다....”
독고우가 오만이 넘는 군대 사이에 떨어져 내린 수천구의 강시들에 의해 찢어지고 녹아 내리며 자신의 목을 잡고 숨을 못 쉬며 땅을 뒹구는 병사들과 무림 군웅들을 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공간, 공간을 만드시오.”
북리준이 강시들이 날뛰는 한 가운데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강시들의 목을 날리고 위험에 처한 군인들과 군웅들을 옆으로 밀어 내었다.
“강시들을 가운데로 몰아야 합니다.”
북리준의 사자후에 우왕좌왕 강시들의 제물이 되던 군웅들이 서서히 강시들을 북리준이 만들 원 안으로 몰아 넣기 시작했다.
“강기를 사용할 줄 아는 고수분들은 앞으로 나서 주시오.”
연신 고함을 지르는 가운데 북리준의 손을 떠난 일월쌍륜이 군웅들에게 달려 드는 망혼철강시과 천독강시의 목을 날리고 있었다.
북리준의 말에 강기를 사용할 줄 아는 고수들이 전면으로 나서고 팔기군과 일반 무림 군웅들이 부상자들을 끌고 뒤로 빠졌다.
“목을 끊어내야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강기를 머금은 검과 도가 가운데 몰아 넣은 강시들의 목을 끊어 내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이익 사아아아악’
북리준의 양 팔에서 연장되어 나온 일월쌍륜이 공간을 헤집으며 철강시와 독강시의 목을 쳐 내고 천무맹주와 구파일방의 장문과 장로들이 자신들의 검과 도로 다가 오는 강시들의 목을 끊어 내었다.
“철강시만 상대해 주시오. 독강시는 내가 맡겠습니다.”
독강시의 독에 자유로운 북리준의 말에 강기를 사용하는 고수들이 철강시만을 상대로 나아가고 북리준의 일월신검이 독강시의 목을 연신 쳐 내었다.
약 한 시진에 걸친 대혈투 끝에 땅에 선 강시들이 한 구도 없는 모습에 강기를 사용하는 고수들이 검과 도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이, 이겼다!”
뒤에 물러서 있던 군웅 중 한명이 내는 이겼다는 목소리에 옆에 서 있던 한 무인이 중얼거렸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네....”
수천의 강시들이 목이 끊어진 채 엎어져 있는 주변에 일만이 넘는 팔기군과 무림인들의 시신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전열을 정비 할 수 있게 뒤로 병력을 물려 주시지요.”
북리준이 자신의 검과 륜을 수납하고는 부사령관에게 다가갔다.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전군을 뒤로 한마장 후퇴 한다.”
정장군의 명에 남은 사만의 무리들이 부상자를 수습하고 뒤로 물러나려 부산한 가운데 북리준의 인상이 굳어져갔다.
“적입니다. 전군 전투 준비를 부탁 드립니다.”
북리준의 말에 효기참령장군이 침중한 표정으로 기를 실어 명을 내렸다.
“전군 전투 준비!”
그 때 강시와 전사자들의 시신 너머로 수 많은 마교도들이 꾸역 꾸역 밀려 나오는 모습에 군웅들이 저마다의 병기를 움켜 잡았다.
“끌끌끌.... 한 이만 정도는 자빠뜨릴 수 있다지 않았는가?”
뒷짐을 진 채 오연한 자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천마가 입을 열었다.
“저기 서 있는 놈 때문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마군사 공야무가 손을 들어 전면에 고요히 서 있는 북리준을 가리켰다.
“호오, 네 놈이 아직 살아 있었느냐?”
자신의 친우인 방백을 죽인 북리준의 얼굴을 기억한 천마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 132. 악마를 보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