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대법을 완성하소서! >
거대한 대전 안!
눈에 잡힐 듯 자욱한 침묵이 내려 앉은 대전 안에 괴기스런 모습으로 한 가운데 둥실 떠 있는 천마의 신형을 신교의 신녀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법을 완성 하소서!”
신녀가 태사의에 앉아 있는 태상천주에게 대례를 올리고는 대전 밖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대전의 문을 폐쇄하는 굉음이 저 멀리에서 들려 왔다.
천천히 태사의에서 신형을 일으킨 태사조가 펑퍼짐한 흰색의 제사장 복장을 질질 끌며 대전 한 가운데 정신을 잃고 떠 있는 자신의 태손자에게 다가 갔다.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던 목철군의 육신이 두 손을 치켜 올리자 거대한 대전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집혼갑을 봉인 하고 있던 누런 부적들이 일제히 가루로 화하며 뚜껑이 열렸다.
‘시이이이이이 히이이이이 흐흐흐흐흑 커허헉’
집혼갑애 수집되어진 오만 팔기군의 슬픔, 원한, 살기, 분노들의 상념들이 뿌연 안개처럼 시커먼 어둠 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대전에 원혼들의 상념이 가득 차 손에 잡힐 듯 움직이는 모습에 태사조의 오른손 장심이 자신의 앞에 떠 있는 천마의 심장 위에 올려졌다.
“커허어억 커헉”
순간 눈을 부릅뜨고 입에서 한줄기 선지피를 뿜어낸 천마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태사조를 발견하였다.
“태, 태사조님......”
“그 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남해검문주인 목철군의 육신을 차지한 태사조의 얼굴에 생전 처음 보는 듯한 기이한 미소가 떠오르자 천마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져갔다.
“태, 태사조님.... 서, 설마.... 일부러 괴질의 발작을.....?”
“크크크크, 이 역천환체대법의 진정한 완성은 원혼들의 상념이 가득 담긴 친인의 심장을 취함이니라. 이 할애비의 영생에 네 놈의 심장이 요긴하게 쓰임을 영광으로 알고 가거라.”
“이이익 이이익, 아, 안돼.....”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태사조의 머리를 부숴버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꼼짝도 안 하는 자신의 신체에 절망감에 찬 탄식을 토해내었다.
“버둥거리지 말거라!”
태사조의 왼손이 쫘악 펴지며 기이한 주문이 입에서 흘러 나오자 공중을 부유 하고 있던 원혼들의 상념들이 요동 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도처럼 요동치던 원혼들의 상념이 태사조의 왼손의 기이한 움직임에 따라 물결치며 벌려진 천마의 입과 눈, 코, 귀로 사정없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자신의 칠공으로 꾸역 꾸역 밀고 들어오는 상념들의 소름끼치는 호곡성에 비명을 지르는 천마의 왼편 심장에 올려진 태사조의 우장이 파르스름한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색깔과 부피를 키워나갔다.
대전 안을 넘실거리던 자욱했던 원혼들의 상념들이 남김없이 천마의 전신으로 빨려 들어가고 태사조의 우장이 놓인 심장 부근이 푸른빛과 붉은 빛이 교대로 심장 박동에 따라 그 색을 달리 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의 박동에 따라 아름다운 푸른빛과 붉은빛이 명멸하는 심장 부근을 보며 태사조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우장이 천마의 심장을 꺼내기 위해 가슴을 헤집기 시작했다.
“커허어억 크아아아아아악.... 이, 악마....꼭 지옥에서..... 보자....”
천마의 헤집어진 가슴에서 꺼내어진 심장이 태사조의 오른손에 쥐어진 채 찬연한 푸른빛과 붉은빛을 번갈아 뿜어내는 황홀한 모습에 광소를 터뜨리며 그 심장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우적 우저적 찌이이익 우적”
오만 원혼들의 상념과 천마의 억울함, 원한이 가득 들어찬 심장을 맛있게 먹어 치운 태사조의 왼손이 뿌려지자 심장이 파헤쳐진 천마의 시신이 ‘푸스스스스’ 먼지로 화해 스러져갔다.
“좋구나....”
그 자리에 앉아 태손자의 심장을 통해 얻은 자신을 완성 시켜줄 거대한 힘을 몸 안에 갈무리 하기 위헤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
“천마께서는 좀 어떠시오?”
광명좌사의 집무실에 우루루 몰려 들어온 오행기주와 신임환천마가주, 독천마가주, 마군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좌사를 바라 보았다.
“태상천주께서 치료를 하신다고 하셨으니 마음을 놓으셔도 될 듯 합니다.”
“아, 다행입니다.”
오행기주가 안도의 표정을 짓자 광명좌사가 마군사 공야무에게 시선을 던졌다.
“적도들은 어찌 되었소이까?”
“북로로 진입한 육만의 적도들은 겨우 육천 정도 살아 돌아나갔고 남로로 진입한 적도들도 반 수 이상이 십만대산에 시체로 남았소이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저희 쪽도 물론 피해가 크긴 하지만 적도들의 피해에 의하면 조족지혈이지요.”
오행기주의 말에 중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사,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마군사 공야무가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광명좌사의 표정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아, 아닙니다. 잠시 생각할 일이 있어서.... 그럼 남은 적도들은 십만대산을 내려갔습니까?”
“지들이 고작 그 인원으로 뭘 어쩌겠습니까? 꽁지가 빠져라 내 빼야지요.”
독천마가주인 천독룡의 비웃음에 오행기주가 맞장구를 쳤다.
“물경 십일만이 다 된 대군이 저희 십만대산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삼만이 채 안 되는 생존자들만이 겨우 빠져나갔으니 완벽한 저희의 대승이지요.”
저마다 신교의 승리를 축하하는 말을 던지는 가운데 광명좌사가 툭 말을 끊어 내었다.
“천마께서 몸을 추스르시고 일어 서시기 전까지는 경거망동 하지 말아야 하오. 아무리 우리가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천마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면 반쪽의 승리일 뿐이오.
모두들 나가셔서 부상자들의 치료에 전념해 주시고 전투의 상흔을 치유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 주시오.”
광명좌사의 말에 좌중의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무실을 나섰으나 마군사 공야무만이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군사께서 하실 말씀이라도....?”
“천마께서 절벽에서 떨어져 내린 것이 적도들의 수장들에게 부상을 입으신 것이 아닌 듯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마군사가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광명좌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좌사께서 떨어져 내리신 천마님의 상태가 어떠셨는지요?”
“기식이 엄엄하셨고 양 팔 푸른 혈관이 불거진 모양이 마치 뱀이 팔을 기어 다니는 형상이었소. 칠공에서 피를 흘리셨으나 외상은 없어 보였소이다. 그런데 어인 연유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광명좌사의 물음에 마군사 공야무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좌사께서 천마님을 안고 십만대산 심처로 들어 가실 때 절벽 위에서 내려온 천무맹주와 그 천산파의 봉공의 표정이 괴이했습니다.”
“괴이했다라.... 조금 더 설명을 부탁 드리오.”
“만일 그 두 놈의 협공에 천마께서 저 지경이 되었다면 당연히 천마님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 들었어야 되는데 그 두 놈들의 얼굴이 천마님의 부상을 미심쩍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마군사의 말에 광명좌사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뛰어 내린 두 놈이 천마님을 안은 좌사를 쫒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주춤 거리는 모습을 미루어 짐작컨대 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일이 있었던 듯 합니다.”
마군사 공야무의 말에 말없이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광명좌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군사! 저 편 북로에서 실어온 집혼갑이라는 기물의 용도를 알고 계시오?”
“집혼갑.... 솔직히 모릅니다. 신교의 신전에 속한 신녀와 사제들만이 만지고 옮기는 신성한 기물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마군사의 물음에 광명좌사가 말을 이어갔다.
“태상천주님이 기거 하시는 대전에 그 집혼갑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마님을 태상천주님의 대전에 모셔다 드리고 나오면서 본 그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태상천주님의 대법을 완성을 위한 그 무슨 쓰임새가 있는 물건이겠지요. 그나저나 전 아직 태상천주님의 새로운 모습을 뵙지 못해서 내심 궁금합니다.”
“젊은 육신으로 완벽하게 옮겨 지셨고 조만간 신교도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실 것입니다.”
광명좌사가 마군사와 전투 후 제반 정비해야 할 것을 논의 한 후 마군사가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조용히 술잔을 기울여 비우기를 반복하여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광명좌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천마님을 대전에 남기고 나오며 본 태상천주님과 신녀의 그 마지막 눈빛이 왜 이리 찜찜한고.... 잡스런 생각이로다!”
다시 빈잔을 채우며 입으로 가져가는 광명좌사의 복잡한 심사가 그의 얼굴 위를 떠돌았다.
****
부상자를 포함하여 약 이만이 조금 넘는 인원이 남로를 빠져 나와 애초에 북로로 진입한 팔기 제일군과 전투가 끝난 후 조우하기로 한 평야에 도착하였다.
“오오, 왔다!”
“남로의 제이군이 돌아왔어.”
너른 평야 한켠에 패잔병 마냥 웅크리고 있던 약 육천여명의 정사연합맹 무림군웅들이 힘겹게 평야에 들어서는 제이군을 맞이했다.
“아니.... 왜 무림인들만 있는 것이오? 팔기군들은 회군했소이까?”
제이군의 사령관이 효기참령장군이 피로에 가득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던 사황련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그것이....휴우.... 말하자면 깁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오만 팔기군 중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소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럼 육만의 제일군 중 생존자가 고작 오천이 넘는 인원이라는 말이오? 북로에 그 만한 피해를 줄 마교도들이 또 있었단 말이오?”
연신 질문을 퍼부어대는 정장군 앞에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던 북궁추를 구원해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장군! 일단 군을 수습하여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여 수비를 위한 진을 꾸려야 합니다.
그 후에 북로에서 일어난 일을 수뇌부 회의에서 같이 듣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정장군이 자신이 너무 흥분하여 사황련주를 몰아 붙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아니오. 충분히 이해 합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저희 십만 팔기군의 총 사령관께서는 전사 하신 것이 확실합니까? 혹시 포로로 잡히신 것은 아니신지요?”
“이따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애석하지만 전사하신 것이 확실 합니다.”
사황련주의 말에 정장군이 출발 할 때 십만의 정예병을 동원하였으나 마교와 충돌 후 팔만을 저 산에 묻고 왔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눈을 감았다.
“군을 정비 후 정장군의 막사에서 뵙겠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정장군이 생존한 팔기군의 수습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비참한 표정으로 서 있던 사황련주 앞에 천무맹주가 다가갔다.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고생은 무슨.... 내 용호쌍곤 한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도망친 주제에 말이오....”
“자세한 것은 저녁에 듣기로 하시지요.”
북리준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서로 지친 상황에서 천천히 시간을 갖기로 제안을 했다.
이만 팔기군들이 부상자들을 누일 군막을 만들고 하루 종일 먹지 못해 굶주린 배를 채울 저녁을 짓기 위한 연기가 평야 곳곳에서 피어 올랐다.
“왔어?”
북리준이 자신의 막사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려 모인 천산파 식구들에게 다가 오는 제갈청하를 맞이했다.
“식사를 같이해요, 동생!”
도교교가 자신의 곁을 내주고 저녁을 챙겨 주자 청하가 자리를 잡았다.
“처참하구만....”
막대광이 곳곳에서 들려 오는 부상자들의 신음소리와 생존자들의 한숨소리에 툭 말을 뱉었다.
“완전한 패배야. 이건 뭐 변명의 여지가 없구만.”
독고우가 입맛이 없는지 두어술 뜨던 수저를 내려 놓았다.
“그런데 말이야. 천마는 어떻게 된거야? 천무맹주님과 준이 너 한테 부상을 당한거야?”
문득 제갈청하가 생각 난 듯 질문을 던졌다.
“아니, 우리는 천마에게 단 한번의 공격도 적중 시키지 못했어. 오히려 그의 막강한 무력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까지 했어.”
< 134. 대법을 완성하소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