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38화 (138/167)

< 138. 황제의 변심 >

양심전 황제의 침소 안에 뭉클거리는 안개가 자욱 피어 오르며 그 안개 사이로 누군가 뒷짐을 진 채 앞으로 나섰다.

“네 놈은 누구냐? 거기 아무도 없느냐?”

황제가 검은색 무복의 젊은 사내가 자신의 침전 앞에 서서 빙글 거리는 모습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작금의 황제라는 놈이구나.”

“무엄하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널 도와 주러 올 놈은 없느니라. 내가 여기를 다녀 간 것은 조금 있으면 너도 잊을 것이니라.”

황제가 이불을 들어 나삼 차림의 황후의 몸을 가리고 젊은 사내의 바로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무엇을 원하느냐? 본황의 목숨이냐?”

황제가 굳건한 얼굴로 호령하는 모습에 목철군의 육체를 빼앗은 백무흔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뭐에 쓸려고? 그나 저나 내가 누군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구나.”

도대체 겹겹이 자신의 호위 하기 위해 에워싼 궁중 수비대와 자신의 안위를 직접 책임지는 황실 수호대를 뚫고 자신의 앞에 선 사내의 정체가 궁금하기 그지 없었다.

“네 놈의 정체를 밝히거라.”

“나? 네가 나를 잡기 위해 오십만 대군과 일만문의 포전단을 모으고 있지 않느냐, 크크크!”

자신의 앞에서 클클 거리는 젊은 사내의 정체를 알게 된 황제가 다시 의연한 자세로 백무흔을 바라 보았다.

“네가 현 마교주인가?”

“그렇지. 우리들끼리는 천마라고 부른다.”

“천마여! 본 황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황제의 말에 백무흔이 천천히 뒷짐을 풀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게 원하는 것은 없다. 그저 내 꼭두각시가 되어 주면 그 뿐!”

“놈! 호락 호락 본황이 네 놈의 손에 휘둘릴 것이라 생각 하는가?”

“본좌는 그렇게 생각한다.”

양심전 안을 가득 채워 꿀렁 거리던 흰 안개가 천마의 양손에 피어 오른 검은 마기에 ‘휘류류류륭’ 흡수 되기 시작했다.

“무슨 요사스러운 짓을 하려는 것이냐?”

“요사스러운 짓이라.... 그렇군.”

천마의 양 손에 모인 짙디 짙은 꿈틀거리는 검은색 마기를 보며 황제가 고함을 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 놈의 목을 자르거라. 커허어억!”

천마의 좌장이 펼쳐지며 황제의 정수리에 얹어지고 우장에 꿈틀거리는 마기들이 살아 있는 벌레들인양 황제의 눈, 코, 입, 귀로 파고 들어 갔다.

“크허어어어억 아아아아악”

자신의 눈코입귀에 밀려 들어오는 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비명을 지르는 황제의 귓가에 백무흔의 입김이 닿았다.

“이 나라를 잘 쓰겠다....”

****

“긴급어전회의요?”

황궁 내관의 급보에 황태자가 서둘러 의관을 정제하고 어전으로 향했다.

“오셨나이까?”

이미 기별을 받은 정일품 태사, 태부, 태보를 위시하여 영시위내대신과 장난의위사대신, 제독구문보군순보오영통령까지 청조 최고위 대소신료들과 동창의 영반인 유공공과 금의위 위장인 금대인 등이 황제의 등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아시는가?”

황태자가 자신의 자리로 가는 도중 유공공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전혀 짚이는 바가 없나이다. 한 달 전 마교 이차 정벌을 위한 진행 사항을 점검 하시려는건지... 소신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황제폐하 듭시오!”

어전 내관의 호령에 대소신료들이 오체복지를 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좌정들 하시게.”

보좌에 앉은 황제의 명에 신료들이 자리에 앉았다.

“본 황이 지시한 일들에 대하여 수정할 것이 있어 이리 불렀네.”

“전하! 현재 진행 중인 마교 이차 정벌을 위한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 중에 있나이다. 어떤 수정 사항이 있으신지 하문하여 주시옵소서!”

이차 정벌을 위한 총사령관에 임명된 제독구문보군순보오영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본 황이 일시적인 분을 이기지 못하여 자칫 청조의 기강을 흔들만한 일을 잘못 명한 듯 하네. 이 어려운 시국에 오십만 정병과 일만문의 포전단을 일개 무림 문파 하나를 지우기 위해 동원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듯 하네.”

황제가 평소와 다름 없는 어조로 차분하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무림의 일은 무림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나랏일에 열중 하는 것이 옳은 듯 하다.”

“황상이 말씀 하신 일개 무림 문파가 황상과 황후,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목숨을 노렸고 삼왕야와 함께 모반을 획책했사옵니다. 이는 대역죄에 해당하는 만큼 금번 기회에 확실하게 저희 청조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사옵니다.”

유공공이 피끓는 목소리로 황제에게 고하였다.

“유공공의 말이 옳사옵니다. 일차 정벌 시 저희 청조 팔기군 십만 중 팔만을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저 흉악한 마교를 확실하게 징벌 하셔야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금대인의 말에 대소신료들이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영창 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본 황이 밤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니라. 이의는 받아 들이지 않겠노라. 십만대산을 향할 예정 이었던 오십만 대군과 일만문의 포 전단은 원래의 임무로 돌아가 충실히 임하도록 하라.”

단호한 어조와 표정으로 할 말을 마친 황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황태자와 대소신료를 뒤로 한 채 바로 퇴청을 하였다.

“황태자 전하....”

유공공이 급히 입을 벌린 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아, 유공공....”

“급히 황제폐하를 뵙고 지금 말씀 하신 것이 진정 이신지 확인을 부탁 드리옵니다.”

“아, 알겠소이다.”

황태자가 급히 자리를 뜨고 난 후 어전에 남아 있던 대소신료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한 달 전, 황상의 진노가 하늘에 닿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듯 하였는데 왜 갑자기....”

정일품 태사의 한탄에 맞은편에 서 있던 태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황상의 명이 떨어졌소이다. 움직이기 시작한 오십만 팔기군과 일만문의 포전단을 원래 위치로 돌리려면 할 일이 태산이로소이다.”

이차 정벌을 위한 총사령관에 임명된 제독구문보군순보오영통령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부님의 말씀 대로 황상의 명을 이행하기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본관은 이만...”

제독구문보군순보오영통령이 어전을 나서자 대소신료들이 하나 둘 황상의 명을 이행하기 위해 어전을 벗어났다.

집무실에 돌아온 유공공이 자신을 따라 들어온 금대인의 안절부절하는 모습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신 사납다. 자리에 앉거라!”

유공공의 호령에 금대인이 자리에 앉아 급히 찻잔을 들어 입에 부어 넣었다.

“왜 갑자기 황상의 생각이 바뀌셨을까요? 한달 전만 해도 서슬 퍼런 황상의 분노에 마교가 당연히 박살 날 줄 알았는데....”

“황태자 전하께서 황상을 뵈러 가셨으니 곧 우리를 부르시겠지.”

잠시 후 황태자의 처소로 들라 하는 내관의 전언에 유공공과 금대인이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전하!”

“후우, 어서들 오시오.”

황태자가 근심에 찬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황제폐하의 의중을 엿보셨는지요?”

유공공의 조심스런 말에 황태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마교 이차 정벌에 차질이 없게끔 황태자가 세심하게 관여하라고 말씀 하셨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이러한 명을 내리시다니....”

“혹여 황상의 건강에 이상이 없으신지요?”

“또렷하게 말씀을 하시고 제대로 명을 내리시며 평소와 다름이 없으셨습니다.”

황태자와 유공공, 금대인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었다.

“의지가 견정하시나이까?”

“더 이상 이야기 했다가는 제가 혼이 날 지경입니다. 일말의 여지가 안 보였습니다.”

“황상의 지엄한 명이 떨어졌으니 어명대로 진행 할 밖에요...”

금대인의 말에 유공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황상의 목숨을 노리고 모반을 획책하고 팔만 팔기군의 목숨을 앗아간 마교를 가만두라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나 저나 이 비보를 북리어사에게 빨리 전하여야겠습니다.”

금대인이 황태자에게 예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축 처진 어깨로 방을 나섰다.

****

“뭐라는 거야?”

자금성에서 보내온 전언을 천산파의 수뇌부와 제갈청하, 팽무강, 모용민, 하후상, 언철진 등이 듣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림의 일은 무림인들끼리 해결하라고? 갑자기?”

막대광이 북리준이 전하는 말을 듣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제 아침 긴급어전회의에서 황제가 명한 내용이라 합니다. 마교 이차 정벌을 위해 준비 중이었던 오십만대군과 일만 포 전단을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북리준 또한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치매 온 거 아냐?”

막대광의 말에 유검패가 인상을 구겼다.

“말씀을 삼가시죠. 양부님의 말씀으로는 황제 폐하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하셨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확인 하신 일입니다.”

“크흠 큼... 미안하오!”

유검패가 동창 영반의 양아들이며 동창의 군관이라는 것을 깨달은 막대광이 사과를 했다.

“그나 저나 청조의 대군이 없으면 마교를 토벌할 힘이 현 무림에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네요.”

제갈청하의 말에 좌중의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맹주과 사황련주에게도 이 사실을 전하고 추후 계획에 대해 논의를 해 봐야 겠습니다.”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도문주가 입을 열었다.

“나도 동행하겠네.”

“네, 검패와 문주님은 저와 함께 정사연합맹으로 가시지요.”

****

“무림의 일은 무림인들끼리 해결하라....”

북리준과 도문주, 유검패가 천무맹주와 사황련주, 왕군사, 야율군사와 함께 침중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왜? 오십만대군과 일만 포전단을 모아 가서 가루로 만들고 오라고 길길이 뛴 게 한 달 전인데.... 뭐? 무림인들끼리 해결 하라고?”

사황련주가 콧김을 내뿜으며 으르렁 거렸다.

“뭔가 석연치 않지만 황상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지요. 현실적으로 마교 이차 정벌은 무산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왕석산 군사의 말에 야율제 군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쿨럭...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저희 정사연합맹에서 이차 마교 정벌에 동참할 무림인들을 겨우 이만에 맞추었습니다. 쿨럭.... 청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저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병호서생의 냉혹한 말에 좌중의 인물들이 침묵을 지켰다.

“두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겠군요. 첫째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다시 한번 십만대산으로 쳐들어가 정사연합맹과 마교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는 것이고 둘째는 마교가 십만대산을 내려올 때를 기다려 상황에 맞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지요.”

“전자는 기름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 드는 격이고 후자가 맞을 것 같군. 천마 보다 더한 악마가 버티고 있는 그 곳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북궁추가 피바다위에서 광소를 터뜨리던 악마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후자의 경우 마교가 일반 민초들에게 패악을 부려 황제가 마음이 변하여 청조의 도움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요, 쿨럭...”

“만일 마교가 청조 황제의 변심을 알아채고 밀고 내려 온다면?”

천무맹주의 말에 좌중의 인물들이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지요! 마교놈들이 죽거나 우리가 죽거나...”

왕석산의 말에 야율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첫번째 목표가 어디라고?”

“공동의 호랑말코들...”

“크크크, 주군의 명이 떨어졌으니 이제 우리 세상이지!”

“너른 중원에 많은 놈들이 우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가자!”

마교의 신임 사대호법인 전마, 광마, 흉마, 혈마가 십만대산을 내려 오며 저희들끼리 희희덕 거리고 있었다.

< 138. 황제의 변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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