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40화 (140/167)

< 140. 황사로 봉하겠노라. >

“남해검문주? 저 자가 남해검문의 문주라는 말이오?”

천무맹주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굳어 있자 사황련주가 두려운 얼굴로 마차에 앉아 있는 천마를 바라 보았다.

“그, 그렇소.... 틀림없는 남해검문주요. 목철군이라고 했나....”

황제의 친위대에 둘러싸인 천마와 신녀가 탄 마차가 눈이 화등잔만해진 자신들을 지나쳐 갈 때 천마의 무심한 눈을 보며 천무맹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를 몰라 본다?”

“일부러 모른 체 하는 것이 아니요?”

사황련주의 말에 남궁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수 있겠군. 저 자는 지난 번 마교와 일차 대전 때 우리 뒤통수를 친 문파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남해검문주가 천마로 둔갑 했을까? 혹시 비슷한 사람이 아닐런지요?”

“분명히 목철군, 남해검문주가 틀림 없소.”

확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여는 천무맹주의 말에 사황련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중에 황제가 천마와 우리와의 화합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하니 그 때 확인해 봅시다.”

저 멀리 수 많은 군중들이 좌우 대로에 길게 늘어선 길을 천천히 나아가는 마차를 보며 사황련주가 식은땀을 닦아 내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청조의 대소신료들이 가득한 어전 안!

황제의 등장에 대소신료들이 오체복지를 하며 예를 표하는 동안 한켠에 서 있던 천마와 신녀가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무엄하구나!”

정일품 태사의 호령에 신녀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희 신교에서는 성화전의 성화를 제외 하고는 절을 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어디 감히!”

“그만 두시오. 신교라는 종교의 율이 그렇다지 않는가?”

황제가 손을 들어 태사를 말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대가 현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는가?”

“그렇사옵나이다. 황제폐하께옵서 저를 자금성에 초청해 주시어 기꺼운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호오, 그대들의 종교가 불을 숭상한다고 하여 다른 이름으로 배화라 불리운다는 것이 맞는가?”

“조금 와전된 이야기 이옵니다. 저희 신교는 하루 다섯 번의 예식에 쓰이는 성화를 성스럽게 여기는 것이온대 이를 두고 타 교단에서 단순히 불을 숭앙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옵니다.”

천마의 말에 황제가 매우 흥미로운 얼굴로 어좌에 기댄 상체를 세웠다.

“자네의 신교는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는가?”

황제의 질문에 신녀가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신교는 세 가지의 좋은 행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매일 실천 하며 살도록 강조하고 있사옵니다.

애초에 사람의 본성이 선하여 좋은 생각이 좋은 말을 낳고 다른 이들에게 좋은 말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좋은 행동을 하며 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행동은 바로 악을 물리치는 무기가 된다고 저희 신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호오.. 좋은 교리로군.”

천마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호한 마기와 신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이한 향기에 어전에 위치한 대소신료들의 눈이 몽롱하게 풀려 나갔다.

“우리가 신교를 잘 못 알고 있었나 보오.”

“저리 좋은 교리와 신심을 가지고 있는 곳을 마교라고 폄하하고 있는 무림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소이다.”

대소신료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하는 신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기 시작했다.

천마신교의 신녀가 차분한 어조로 신교에 대한 긴 설명을 마치자 황제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훌륭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신교를 마교라 폄하하는 무림인들의 편협함이 본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구나. 천마 그대의 이름을 알고 싶다!”

“백무흔이라 하옵니다.”

“무흔이라... 정말 좋은 이름이구나. 백교주는 들으시오.”

“하명하시옵소서!”

“신교의 교주는 자금성에 머물며 본 황의 황사가 되어 주셨으면 하오. 가능 하시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부족하나마 황상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도록 노력 하겠나이다.”

천마와 황제의 대화를 지켜 보던 유공공과 금대인이 서로 몽롱한 눈빛으로 전음을 주고 받았다.

‘저희가 신교를 오해한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가 보다. 왜 이런 신교를 마교라 칭하고 배척하려고 했을꼬?’

“듣거라! 이 시간 이후로 천마의 교주 백무흔을 황사로 정하여 본 황을 포함한 모든 대소신료들은 무시로 지혜를 구하도록 하거라.”

“존명!”

모든 대소 신료들이 오체복지를 하며 어전이 떠나가라 목소리를 돋우는 가운데 백무흔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피어 올랐다.

****

“정녕 남해검문주 였단 말씀이십니까?”

어전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천무맹주, 사황련주, 북리준이 있던 방 안에서 놀란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네. 기도는 달라졌으나 분명 목철군 그 자 였다네.”

천무맹주의 확신에 찬 말에 북리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그 자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황련주가 자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지옥도를 만든 자가 고작 남해검문주 였던 자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인상을 찌푸렸다.

“남해검문주인 목철군이라면 저와 악연이 상당한 자입니다. 제가 직접 만나 보면 그 자가 천무맹주님이 말씀 하신 자와 동일인 인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북리준이 목철군과의 오래된 악연을 해남검단에서부터 왜구에 얽힌 이야기까지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했다.

“허허, 정말 악연이었구려.”

“그 자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북리봉공을 보면 뭔가 다른 반응이 있겠소이다.”

사황련주 또한 북리준과 목철군과의 얽힌 악연을 듣고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 때 방 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황상께옵서 어전으로 듭시라 명을 내리셨나이다.”

세 사람이 의관을 정제하고 내관의 안내에 따라 어전으로 향하는 길에 퇴청하는 대소신료들의 몽롱한 눈빛에 북리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공공님, 금대인님!”

마침 자신의 앞을 지나쳐 가는 유공공과 금대인을 보며 북리준이 나직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다.

“어, 북리어사로군. 그래.... 황상께옵서 신교의 교주와 정사연합맹의 화해를 중재 하시겠다고 하니 잘 따르시게...”

금대인이 몽롱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휘적 거리며 자신의 갈길을 걸어갔다.

‘정상이 아닙니다.’

북리준의 전음에 천무맹주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정상이 아니라니요?’

‘방금 저와 대화를 한 유공공과 금대인은 마교에 대한 생각이 저희와 같으신 분이신데 황제의 중재를 잘 따르라니 이상할 밖에요.

저 두 사람은 마교와 악연이 상당하여 마교 척결에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분들입니다.’

거대한 어전 정 중앙 보좌에 자리를 잡은 황제에게 세 사람이 오체복지를 하였다.

“만세 만세 만만세!”

“자리에서 일어서거라.”

고개를 드니 황제의 보좌 옆에 오연히 서 있는 천마를 본 순간 북리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분명 남해검문주입니다.’

‘내 말이 맞다니까.’

천무맹주와 북리준이 눈을 맞추고는 매서운 눈길로 목철군을 쏘아 보았다.

“새로이 황사로 모신 백교주와 정사연합맹 사이에 오해가 있는 듯 하여 본 황이 중재코자 하노라.”

‘황사?’

‘마교 교주를 황사로 봉했다는 거네?’

천무맹주와 사황련주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 보았다.

“본 황이 신교 교리에 심취하여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중원무림의 구성원들이 신교에 대한 오해가 큰 듯 하여 이 자리를 마련 하였다.”

황제가 또렷한 어조로 자신이 중재를 하기로 마음 먹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북리준이 목철군과 눈을 몇 번이고 마주쳤음에도 일체의 미동도 없음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몰라 보는 건가? 정말 쌍둥이란 말인가?’

“이에 이 시간 이후로 신교와 정사연합맹의 소모적인 전쟁을 끝내기를 명하노라.”

“신민인 천무맹주가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말하거라!”

“황제폐하께서 말씀 하신 중재안을 저희가 받아 들인다하더라도 마.... 신교가 작금에 벌이고 있는 무림문파의 습격을 멈추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나이다.”

“무림문파의 습격?”

황제가 무슨 일이라는 표정을 짓자 백무흔이 웃음을 지으며 답을 했다.

“제가 이 곳으로 오는 동안 신교의 수하들이 명하지 않은 일을 한 듯 하옵니다. 바로 기별을 넣어 중단 시키겠나이다.”

“되었는가?”

“하나만 더 신교의 교주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정 이 시간 이후로 중원 무림과의 전쟁을 멈추기를 원합니까?”

“황제폐하께서 이리 중재를 하시는데 당연하지요.”

“그럼 당연히 신교의 교도들이 다시 십만대산으로 돌아 가겠군요.”

북리준의 말에 천마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아, 그것은 조금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황상께서 저희 신교의 교리에 감화 하시어 전 중원 무림에 신교의 지부를 건설하라 명하셨습니다.

황상의 명에 따라 각 성에 신교의 지부를 개파할 예정 이오니 이 점 양해 바랍니다.”

백무흔의 말에 세 사람이 뜨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았다.

“그건 불가 합니다.”

사황련주의 말에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련주는 본 황의 명에 불복하겠다는 것인가?”

“그, 그게 아니오라....”

‘일단 물러나시지요. 현재 이 곳에서 황상의 생각을 바꿀 방법은 없는 듯 합니다.’

북리준의 전음에 북궁추가 이를 꽉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황상의 뜻대로 되실 것입니다.”

“아주 좋다. 이 시간 이후로 신교와 정파, 사파가 한데 어울려 평화로운 무림을 만들기를 희망 하노라. 그만 물러들 가거라.”

황제의 축객령에 북리준이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제폐하! 황사께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말하라!”

북리준이 어좌 옆에 오연히 서서 자신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천마교주라는 자에게 질문을 더졌다.

“혹시 남해검문주인 목철군 장문과 어떤 관계인지 묻고 싶습니다.”

“남해검문주.... 목철군.... 전혀 생소한 이름들이군요. 그런 자를 알지 못합니다.”

일말의 흔들림 없이 웃음을 띈 채 대답하는 백무흔이라는 천마를 보며 북리준이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아는 자와 너무 흡사하여 착각을 한 듯 하옵니다.”

천무맹주와 사황련주, 북리준이 어전을 벗어나는 동안 각자의 생각에 잠겨 한 마디 말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

“천마가 황사가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북경 제일루에 대기 하고 있던 왕석산과 야율제가 천무맹주의 말에 어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더 황당한 것은 우리가 일차 마교 대전 때 손을 섞었던 그 천마가 아니라는 거야.”

사황련주의 말에 야율제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쿨럭... 백무결이 아닌 자가 천마로 자금성에 들어왔다는 말씀 입니까?”

“그렇다니까... 백무흔이라고 하는 자인데 더 웃기는 것이..... 천무맹주와 북리봉공의 말을 직접 들어 보게.”

사황련주가 속에서 솟아 오르는 천불을 술로 끄려는 양 연신 술잔을 비워댔다.

“왕군사도 익히 아는 얼굴이 새로운 천마가 되어 나타났다네.”

천무맹주가 처연한 얼굴로 잔을 비웠다.

“제가 익히 아는 얼굴이라.... 누군지요?”

“우리 뒤통수를 세게 때리고 마교로 돌아선 문파 중 남해검문의 장문인 목철군이라네.”

“네? 목장문이 천마라구요?”

왕석산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황당한 표정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분명 생김새는 목철군 그 자가 맞습니다. 문제는 몸에서 흘려 내는 기도와 우리를 전혀 모르는 듯한 행동 등이 석연히 않습니다.”

“쌍둥이라니까!”

사황련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술잔을 비웠다.

“쌍둥이인데 성도 다르고 여지껏 어디에 숨어 있다 갑자기 새로운 천마가 되어 나타났다는 거지?”

남궁휘도 답답한 표정으로 연신 잔을 비워내었다.

“쿨럭...황제의 중재에 천마도 수긍 하였습니까?”

“그렇다네. 지금 마교도들이 일으키고 있는 무림문파의 습격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하며 곧 중단하겠다고 하더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더 이상 놀랄 일이 없겠다 싶었던 두 사람이 불안한 표정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황제가 마교의 지부를 각 성에 내어 주라고 명했습니다.”

“마, 마교의 지부를 각 성에 말입니까?”

왕군사가 너무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네....”

천무맹주가 기울인 술병에 술이 떨어진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 140. 황사로 봉하겠노라.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