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41화 (141/167)

< 141. 죽음의 초청장 >

북경 내 천산파 무인들이 묵고 있는 객잔 뒤편 너른 연무장에 거대한 화롯불과 함께 천산파 일행들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정사연합맹을 해산 하고 자파로 귀환하라고?”

황제의 명에 의한 강제 화해로 정마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정사연합맹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자파로 귀환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럼 우리도 해남으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

막대광의 말에 도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천산의 경우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입니다.”

“드디어 지긋 지긋한 전쟁이 끝나는 구만. 이제 남해로 내려가 유유자적한 생활을 누리자구.”

막대광의 말에 독고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단순한 놈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불씨를 임시방편으로 덮어 둔 거잖아. 마교 놈들이 십만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곳 중원 무림 각 성에 지부를 낸다는 것은 언제라도 마교가 검은 야욕을 드러낼 수 있음이야.”

“독고숙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가 위치한 광동성에 마교 지부만 해도 청조에서 지원해 준 부지가 저희 천산파와 그리 멀리 않습니다.”

“까짓거 놈들이 겁도 없이 대들면 다 베어버리면 되지 뭐!”

“참 단순한 놈이로고.... 북리봉공, 뭘 그리 골똘이 생각하는가?”

독고우가 일행들이 시끌벅적 늦은 저녁과 술로 들뜬 분위기에 생각에 잠겨 있던 북리준에게 잔을 권했다.

“아, 죄송합니다....”

“북리봉공, 이번에 황사로 봉해진 남해검문주와 닮은 자를 생각하시는지요?”

옆에 앉아 있던 도교교의 말에 북리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생길 수가 있을까요? 더구나 천마가 그 짧은 시간에 바뀔 수가 있는지도 불가사의합니다.”

“그렇게 닮았나?”

막대광이 술잔을 비우고는 북리준의 잔을 채워 주었다.

“천무맹주님도 왕군사도 목철군이라 생각 했을 정도니까요.”

“숨겨진 쌍둥이일 확률이 제일 높겠군. 만일 그 자가 목철군 본인이었다면 제일 먼저 북리봉공의 목을 취하기 위해 몸을 날렸겠지.”

“그건 저 놈 말이 맞지. 목가 놈이 북리봉공과의 악연이 보통이 아니었잖아?”

독고우와 막대광의 말에 도문주가 맞장구를 쳤다.

“두 숙부님의 말씀에 나도 한 표네. 목철군 그 간사한 자가 천마가 되었다면 제일 먼저 북리봉공을 찾아 왔을 것이네. 그런데, 북리봉공을 전혀 알아 보지 못했다고? 그러면 다른 사람인 거지.”

“그럼 목철군은 마교로 돌아가 죽었을까요?”

“그건 모르겠군. 그런데 아직 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닐까? 북리봉공의 말대로 이승에 없거나 십만대산에 남아 있거나....”

도문주의 말에 북리준이 찜찜한 마음을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정마대전은 종결 되었으니 내일 해남으로 돌아가야지요.”

그 때 천산파 일행들이 식사를 하는 곳 저 뒤편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합석해도 될런지요?”

“아, 어서 오시지요.”

철면신산 제갈성과 제갈청하, 하후상, 팽무강, 언철진, 모용민 등 친우들이 줄줄이 손에 술병들을 들고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내일 이면 자파로 복귀하는 지라 이별주 한잔 하려고 들렸습니다.”

철면신산의 말에 제갈청하, 친우들이 우루루 북리준 주위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북리준이 자신의 잔을 잡아 가며 건배를 제의 하자 제갈청화와 친우들이 일제히 잔을 들었다.

“청하 동생도 돌아 가는 거야?”

도교교가 자신의 옆에 자리를 잡은 청하와 잔을 부딪쳤다.

“언니만 좋은 일 시킬 일이 있어요? 아버지 한테 허락 받아 같이 해남으로 내려 갈꺼예요.”

“아, 잘됐다. 정말 잘됐어!”

도교교가 진심으로 좋아하며 손뼉을 쳤다.

“우리 준이 옆에 우리 외에 다른 여자들이 얼씬 거리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 하자구요.”

“당연하지!”

도교교와 제갈청하가 신이 나서 연신 술잔을 들이키는 모습을 본 팽무강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언제 국수를 먹여 주는 거야?”

“아, 조만간.....”

북리준이 머쓱한 표정으로 도교교와 제갈청하를 바라 보았다.

“자네들도 다 복귀하는 건가?”

“우리 사대세가도 피해가 적지 않아 빨리 돌아가 정비를 해야지.”

팽무강의 말에 언철진이 북리준의 잔을 채워 주었다.

“상이 놈은 하후가에 도움이 안된다고 밖에서 놀다 오라고 했다네. 아마 같이 남해로 간다든가 그러던데?”

“후하하하!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남 바다 사나이의 삶을 살 것이다.”

“퍽이나....”

하후상의 호쾌한 말에 모용민이 부러운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친구, 내 머물 방 한칸은 내 줄거지?”

“당연하지. 원하는 방을 이야기 하면 바로 줄게.”

“역시 준이 밖에 없군!”

어찌 되었건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일행들이 마음껏 술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꺼림칙한 기분이 가슴 한 켠 비집고 올라오려는 것을 북리준이 애써 내리 눌렀다.

****

“북리준? 해남검단?”

새로운 천마며 금번에 황사로 봉해진 백무흔이 신녀와 광명좌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네, 천마님에게 육신을 제공한 목철군과 악연으로 얽혀 있는 자입니다.”

광명좌사의 말에 백무흔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님, 목철군의 기억을 전혀 가져 오시지 못하셨나요?”

“이 놈이 괜히 천주마강맥을 타고 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소멸 되지 않고 완강이 버티는 중에 자신의 기억을 철저히 막고 있구나. 조만간 소멸될 놈이 쓸데없이....”

혀를 차며 술잔을 비우던 천마를 향해 냉면혈조 사공백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목철군이 남해검문주에 오르기 전부터인 해남검단 시절부터 왜구들과의 결탁에 이르기까지 북리준이라는 놈과 사사건건 부딪친 모양입니다.”천마의 명으로 십만대산에 억류되어 있던 목철군의 동생인 목철우를 통해 얻어낸 정보를 계속 풀어 내었다.

“자칫 천주마강맥이 저희에게 넘어 오기 전 왜구와의 결탁이 밝혀지는 바람에 청조의 반역죄로 끌려 갈 뻔 했다고 합니다.”

“이 놈, 아주 가지가지 했구만.”

신녀가 채워주는 잔을 비운 백무흔이 끌끌 거렸다.

“어찌 되었건 천마님의 육신을 아는 자들을 서서히 줄일 필요가 있사옵니다.”

“그 놈이 속한 천산파의 위치가 남해라고?”

“네, 그렇습니다.”

“광동성 지부 개설이 완료되면 사대호법을 내려 보내라. 흑풍단과 함께 천산파를 쓸어 버리라 일러라. 그래도 내게 싱싱한 육체를 준 놈인데 대신 원수를 갚아주어야지. 그리고, 각 성에 지부설립이 완성되면 제 이계를 시행하라.”

“존명!”

백무흔이 비스듬이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신녀에게 눈짓을 하자 광명좌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광명좌사가 방을 빠져 나가자 신녀가 걸치고 있던 사제복의 옷고름을 풀고 흘러내린 사제복 안에 탐스런 나신이 드러났다.

“젊어진다는 것은 말이야.... 정말 좋단 말이지....”

자신의 향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걸어 오는 신녀를 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

광서성에 위치한 남해무문!

“미친놈들이 뭐라는 거야?”

남해무문주 낙일검 손복전이 손에 들린 편지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광서성 마교 지부 개파식에 초청한다는 초청장이 아니라 참석하지 않으면 후환을 감당할 각오를 하라는 협박장이구만.”

남해무문의 군사가 씩씩 거리는 문주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참석 하는 것이....”

“이런 썅! 말미에 있는 글 못 봤어? 참석 하는 것이 마교에 귀의 한다는 의견 표명으로 본다잖아. 미쳤다고 마교에 귀의 하냐구?”

“몇몇 소문파들이 남해무문이 어떻게 할지 답을 달라고 합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는 개수작이지. 불가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광서성 마교 지부의 개파식이 있은 지 열흘 후!

남해무문의 정문 경비를 서는 두 무사가 두런 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광서성에 있는 문파 중 반수 정도가 마교의 개파식에 참석 했다는 구만.”

“그냥 개파식 참석이 아니었다며? 참석한 문파는 마교에 귀의 한다는 서약을 했다던데?”

“미친놈들.... 믿을 종교가 없어 마교를 믿어?”

“그나 저나 우리 남해무문도 반 마교 회합에 곧 참석 한다고 하더라.”

“그렇겠지. 우리 문주님이 마교 라면 치를 떠시는 분이신데....”

그 때 저 앞에서 흉흉한 분위기를 온 몸에서 내뿜으며 다가오는 오십여명의 무리들을 보며 무사가 소리를 쳤다.

“거기서라! 여기는 대 남해무문이니라. 용건을 밝히거..... 커허억!”

순식간에 공간을 단축하고 날아온 두 자루의 손도끼에 두 무사의 목이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용건은 이거야, 키키키!”

마교 사대 마가 중 흑천마가 소속 암혼단주가 자신의 도끼에 흐르는 피를 혀로 햝으며 히죽 웃었다.

“개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아라!”

암혼단주의 명에 오십여명의 암혼단 마교도들이 일제히 땅을 박차고 남해무문의 담을 넘어갔다.

“크아아아악, 저, 적이다.”

순식간에 남해무문에 난입한 마교도들의 독수에 남해무문의 무사며 하인, 하녀 가릴 것 없이 명을 달리했다.

“이, 이 놈들! 당장 멈추지 못할까?”

남해무문주인 낙일검 손복전이 자신의 눈 앞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가는 식솔들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게 순순히 신교에 귀의하면 이런 꼴을 안 봐도 되었잖아?”

전신에 남해무문의 무사들을 베어내며 튄 피로 피갑칠을 한 암혼단주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무공을 모르는 식솔들은 놔 두거라.”

“문주를 잘못 만난 탓을 해야지....”

손문주가 자신의 검을 들고 땅을 박차고 킬킬 거리고 있는 암혼단주를 양단하기 위해 검을 내리그었다.

“느려!”

손문주의 검을 우보를 뒤로 빼내어 앞으로 흘려낸 암혼단주의 작은 손도끼 두 자루가 어느새 손문주의 머리와 가슴에 박혀 들었다.

“커어억, 이, 이 천인공노할....”

암혼단주가 뽑아낸 도끼 위로 피가 뿜어져 나오고 눈을 감지 못한 손복전이 그대로 절명을 했다.

“이제 신교의 시대가 오고 있음이다.....”

자신의 암혼단원들에 의해 남해무문에 속한 자들이 피를 뿜어내며 신형을 눕히고 어느새 피어난 거대한 화마가 남해무문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

“콰아앙!”

천무맹주인 절대검존 남궁휘가 왕군사의 보고에 집무실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이 무슨 개소리란 말이야? 마교에 귀의 하지 않으면 멸문이라고?”

“각 성에 개파한 마교 지부의 개파식에 참석 한다는 것이 마교에 귀의 한다는 뜻을 표명 한 것으로 인식하고 불참한 문파들은 성화의 뜻으로 정화한다고 합니다.”

“황궁에서는 뭐라는가? 황제가 중재를 했으면 이런 일에 대한 조치가 있을 거 아닌가?”

남궁휘의 말에 왕석산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청조에 기별을 넣었더니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알아서 하라는 전언이....”

“이런 지랄 같은 상황이 다 있나? 마교놈들의 지부 개파를 조정에서 허락해 놓고 이런 분탕질은 우리가 알아서 하라고? 사황련 쪽은?”

“저희와 똑같은 상황입니다. 마교 지부 개파식에 불참한 문파들이 피로 씻겨 나가고 있습니다.”

천무맹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자신의 검을 들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쟁을 원하면 응해주마! 사황련주와의 긴급 회합을 요청해 주게.”

****

“광동성 신교 지부 개파식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이 왔는데..... 말미에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그려.....”

천산파 도문주가 독고우, 막대광, 곤오, 북리준, 도교교와 제갈청하, 하후상이 함께한 자리에서 마교의 초청장을 꺼내 들었다.

“뭐야? 이게 말이냐 밥이냐? 참석하는 문파는 마교에 귀의 하는 것으로 알고 불참하는 문파는 성화의 뜻으로 정화하겠다고? 이런 미친 새끼들이....”

그 때 밖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태천문 장문인과 흑천각주님이 내방 하셨습니다.”

“들라 하시게.”

사색이 된 얼굴로 회의실로 들어선 섭송인과 소벽을 도문주가 맞이 했다.

“어서들 오시지요.”

“초, 초청장... 초청장을 천산파도 받으셨는지요?”

“네. 그것에 관해 회의를 진행 중 이었습니다.”

섭장문인이 자리에 앉아 급히 차를 들이키고 옆에 자리한 혈전갈 소벽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과, 광서지부 개파식에 불참한 남해무문이 피로 씻겨 나갔습니다. 개새끼 한 마리도 살아 남지 못했다고 합니다.”

< 141. 죽음의 초청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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