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42화 (142/167)

< 142. 선수(先手) >

자신과 거의 비등한 세를 유지하며 항상 티격태격했던 손문주가 시체도 못 남기고 남해무문과 함께 재가 되어버린 현실에 소벽이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초청장의 내용을 정말 실현 하고 있군요...”

도교교의 말에 막대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개 같은 놈들이! 이제 막 개파한 놈들이 기존에 있던 문파들을 갈아 내 버리겠다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독고우의 말에 태천문주인 류비도 섭송인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광서, 운남, 복건, 하남, 호북 등의 마교 개파식에 참석을 거부한 문파들이 피로 씻겨 나가고 있다 합니다.”

“황실에서는 무어라고 합니까?”

“무림의 일은 무림인들끼리 해결하라는 황제의 명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염병! 황제 새끼가 마교 지부를 각 성에 내라고 허락을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안 벌어졌을 거 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발뺌을 해?”

막대광이 흥분을 하며 길길이 뛰는 와중에 도문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북리봉공,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순간 회의실에 모인 중인들이 일제히 북리준에게 시선을 모았다.

“싸움을 걸어 온다면 응해야지요. 섭문주님과 소각주님은 이틀 뒤 마교 광동지부의 개파식에 불참하기로 표명한 중소문파들을 이 곳으로 모아 주세요. 가능 하시겠습니까?”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섭송인이나 소벽 또한 한 문파의 문주로 자신들의 근거지를 비운다는 것에 불안한 마음으로 북리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광동성에 속한 무림 문파들이 역으로 마교 광동지부를 먼저 칩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놈들이 쳐들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선수를 치는 거지.”

막대광이 자신의 묵룡도를 손을 탕탕 쳐내었다.

“나도 북리봉공의 의견에 찬성 합니다. 섭문주님과 소각주님이 수고를 해 주시고 저희는 이틀 뒤 놈들의 개파식을 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 때 조용히 듣도 있던 제갈청하가 좌중의 인물들을 일별했다.

“잠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저희가 놈들의 개파식을 노린다는 정보가 새어 나가면 저희가 역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주었으면 좋겠다.”

북리준의 말에 제갈청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섭문주님과 소각주님이 광동성 내 중소문파에게 기별을 띄우실 때 개파식 불참을 결정한 문파들의 마교에 대항하는 회합을 이 곳 천산파에서 할 것이라 말을 전해 주시고 각 파의 정예 무인 각 이십인씩을 대동해 달라고 요청을 해 주세요.”

“회합과 정예 무인 이십인....”

섭문주가 제갈청하의 말을 되뇌이자 청하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파악 하기로 마교 각 지부의 인원이 일백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천산파의 정예와 각 중소문파의 정예 이백 이면 광동 마교 지부를 지우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마교 지부를 우리가 지우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하려는가?”

독고우의 질문에 제갈청하가 자신을 바라보는 중인들을 일별했다.

“아까 섭문주님의 말씀대로 다른 성에서는 이미 마교 지부 개파식에 불참을 통보한 문파를 지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청조정에서는 수수방관할 모양새인데 저희 광동성에서 먼저 선수를 친 후 천무맹과 사황련에 기별을 띄워 각 성에서 마교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제갈청하의 의견대로 이틀 뒤 마교 광동지부의 개파식과 같은 날 천산파에서 회합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섭문주와 소벽이 급히 일을 처리 하게 위해 천산파를 나섰다.

****

광동성의 한 가운데 위치한 광주!

옻칠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거대한 정문 위 현판에 ‘신교광동지부’라는 글이 사이한 기운을 뿜어내며 양각되어 있었다.

“신교의 개파를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마교의 개파식에 참석을 표명한 문파의 대표들이 연신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개파를 축하하는 선물을 놓고 안으로 줄줄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에서 오셨소이까?”

정문 바로 옆 신교 광동지부 개파식에 참석하는 방명록을 작성하는 방명소가 자리를 하고 그 앞에 개파식에 참석하는 문파 대표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광동성 흑살당에서 왔습니다.”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가져온 예물을 산처럼 쌓인 곳에 놔두고 안으로 들어서던 흑살당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제기랄... 방명록이나 쓰는 놈들도 저리 고압적이네... 휴우, 힘이 부족하니 이렇게라도 살아야지...’

바로 옆 광서성에 위치한 남해무문과 혼원당, 무해관등이 광서지부 개파식에 불참을 선언했다 한 줌 재로 화해 버린 소문에 흑살당은 생존을 위해 무릎을 꿇기로 마음 먹었다.

‘개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 최고지.... 응?’

맥없이 방명소에서 준 출입패를 든 채 흑살당주가 정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저 멀리에서 수 많은 무림인들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각 자의 무기를 든 채 자신이 서 있는 마교 지부 정문으로 나아 오고 있었다.

‘이런... 일단 관망하자...’

얼른 손에 들었던 출입패를 품에 갈무리 하고 발걸음을 뒤로 돌려 정문에서 떨어진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그 때 정문을 경비하던 마교도 하나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잠시 후 가슴에 劍天(검천)이라는 황금색 실로 수 놓인 검은 무복을 입은 자가 검을 든 채 십여명의 검무대원들과 뛰어 나왔다.

“여기는 나라에서 인정한 신교의 광동지부이니라. 무슨 용건으로 이리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난입 하려는 것이냐?”

사대마가 중 검천마가 소속 검무대주가 신교 광동지부장의 신분으로 앞으로 나섰다.

“난 천산파의 현 문주인 도경명이라 한다. 이 곳 광동에는 마교도들이 설 땅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왔노라.”

내공을 실은 쩌렁한 목소리가 마교 광동지부 안에 들어가 있던 광동성 내 중소문파 대표들의 귀를 울렸다.

“뭐야? 천산파?”

“이거 개파식 참석하다 엄한 피 볼라...”

“일단 여기를 벗어 납시다.”

안에 들어가 있던 중소문파의 대표들이 우루루 정문을 빠져 나가는 모양을 본 지부장이 뒤에 있던 수하에게 전음으로 무엇인가를 지시했다.

‘이거 이거 재미있겠는데...’

정문을 벗어나 뒤로 한참을 물러나 있던 중소문파 대표들 사이에 낀 흑살당주가 고개를 쭈욱 빼내었다.

“신교의 성화에 뛰어들 불나방들은 안으로 들어오너라.”

마교 지부장이 땅을 박차고 뒤로 신형을 날려 안으로 뛰쳐 들어가자 북리준과 독고우, 막대광이 앞으로 나섰다.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빼들자 옆에 서 있던 막대광이 묵룡도를, 독고우가 용영검을 손에 쥐었다.

“광동의 열혈무림인들이여! 이 곳 우리 땅에 마교도들이 설 땅이 없음을 우리들의 검으로 보여 줍시다!”

도문주의 일갈에 뒤에 서 있던 이백여명의 중소문파 정예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마교도를 이 땅에서 몰아내자!”

“죽여라!”

북리준과 독고우, 막대광이 땅을 박차고 정문을 통과하며 휘두르는 검과 도에 매복해 있던 마교도들이 피를 뿌리며 갈라져 갔다.

‘시이이이잉 사아아아앙’

북리준의 양 팔에서 뻗어 나온 일월혈륜이 비행을 시작하자 좌우 사방에서 뛰쳐 나오는 마교도들의 목에 달라 붙어 게걸스럽게 피를 탐했다.

“크하하하하, 좋구나!”

막대광의 묵빛 도기를 두른 묵룡도에 가로막은 마교도의 검이며 몸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지고 독고우의 용영검이 공간을 헤집을 때 마다 달려드는 마교도들의 목이 둥실 공중에 떠올랐다.

“채애애애애앵 카가칵”

도교교의 팔에 둘려있던 조화신검이 검으로 화하여 줄기 줄기 뽑혀 나오는 천산 십팔류에 마교도들이 힘없이 땅에 널부러지고 제갈청하의 비도가 번뜩일 때 마다 어김없이 이마와 목에 박힌 비도를 부여 잡고 마교도들이 쓰러져갔다.

“파죽지세로고...”

정문 앞으로 나아와 안을 들여다 보고 있던 흑살당주가 천산파 무인들의 고절한 무공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문제는 광동지부를 지운 후 일 텐데.... 어찌 되었건 관망이다.”

흑살당주가 방명소에 놓여 있던 방명록에 자신이 써 놓은 종이를 찢어 품에 넣고 놓아 두었던 예물더미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쥐고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달려 도망을 쳤다.

약 한 시진 후 이백여명의 천산파와 중소문파들의 정예에 의해 마교 광동지부 내 마교도들이 전멸하고 북리준의 일월신검에서 뿜어져 나온 단섬에 둘로 갈라진 지부장을 끝으로 전투가 막을 내렸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부터 마교와의 전쟁이 다시 시작 되었으니 각 문파들은 이 시간 이후로 모든 식솔들과 함께 저희 천산파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교의 지부 하나를 쓸어 버린 것에 대한 보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 때 무인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마영방의 방주요. 천산파의 의지에 동감하여 일을 벌였는데 마교에서 대대적인 토벌대를 보내 온다면 저희들 만으로 감당이 되겠습니까?”

“이 곳 광동지부의 습격은 시작일 뿐입니다. 각 성의 마교 지부를 정사연합맹의 무림인들이 함께 공격을 개시 하였습니다. 마교의 토벌대가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되어진다면 충분히 해 볼만 합니다.”

도문주의 말에 중소문파의 수장들과 정예들이 각 파의 사상자들을 수습하고 마교 광동지부를 벗어났다.

“킁, 저거 거슬리는구만!”

막대광이 정문을 빠져 나오며 걸려 있던 ‘신교광동지부’ 라는 현판을 보고는 땅을 박차 묵룡도를 휘둘렀다.

‘사가가각’

현판이 네 조각으로 나뉘어 땅에 떨어지고 이어 내려선 막대광이 현판을 발로 밟았다.

“언제까지 네 놈들이 이런 현판을 걸지 두고 보겠다. 거는 족족 잘라 버릴 거니까!”

****

천산파를 위시한 광동성 내 중소문파 연합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마교 광동지부를 향해 약 이백여명의 마교도들이 도착했다.

“허, 죽지 못해 안달이 난 놈들이 많구나.”

천마의 명에 의해 천산파를 지우려 내려온 사대호법과 흑풍단원들이 폐허가 되어 버린 신교 광동지부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네.”

광마의 말에 흉마가 살심이 동한 얼굴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하루 말미를 주마.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 오너라.”

“존명!”

신교의 무력부대 중 하나인 흑풍단주가 흉마의 명에 단원들을 모았다.

“켈켈켈, 감히 신교도들을 이리 개 잡듯이 잡은 놈들에게 후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줘야겠군.”

혈마가 부패가 시작된 신교도들의 시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사대호법이 폐허가 된 광동지부 안 마당에 털썩 주저 앉아 오리구이와 화주를 연신 뜯고 마시며 시신을 수습하는 흑풍단원들을 바라 보았다.

“어떻게 찢어 죽일꼬?”

“갈아 마셔버려야지.”

“그 천산파라는 아해들이 개입되었으면 좋겠구만.”

“그게 뭔 상관이야? 광동성에 있는 무림문파들을 다 피로 씻어내 버리면 되지, 크크크!”

네 명의 노마들이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 하는 가운데 연신 뜯고 마시는 기괴한 모습을 담장에 잔뜩 내려와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 142. 선수(先手)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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