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44화 (144/167)

< 144. 천산쌍괴와의 조우 >

“쥐새끼 같은 놈!”

맹렬히 저 앞에 쏘아져 가는 북리준을 쫓는 혈마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저 놈을 몰아 가자. 난 오른쪽.”

“난 왼쪽으로....”

흉마와 전마가 좌우로 갈라지며 속도를 높였다.

“놈!”

순식간에 북리준의 오른편으로 접근해 온 흉마의 겁마수가 옆구리를 뜯어내려 다가 오자 ‘타닥’ 두 발을 부딪쳐 방향을 틀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전마의 대도가 공간을 가르며 북리준의 허리를 갈라오자 공중에서 기이하게 몸이 틀어지더니 다시 오른편으로 내달았다.

“언제까지 도망 갈 수 있는지 두고 보마!”

‘슈우웅’

흉마의 권에서 뿜어져 나온 단혼포의 권강이 달리는 북리준의 등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천근추!’

쑤욱 순식간에 땅으로 꺼지듯 떨어지는 북리준의 머리 한치 위를 권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여기는....?’

정신없이 세 노마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당도한 곳이 예전에 마사히로에게 일검을 맞고 떨어져 내린 너른 그 절벽가였다.

“쿠르르르르릉”

절벽 밑 광폭한 울음소리를 내며 광룡소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절벽가에 다다른 북리준을 혈마, 흉마, 전마가 에워쌌다.

“크크크, 다 도망 쳤느냐?”

“네 놈이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아 왔구나.”

“갈기 갈기 찢어서 저 절벽 밑으로 뿌려주마.”

삼십년 넘게 동고동락해 온 친우의 죽음에 세 노마가 광포한 살기를 내뿜었다.

“누가 찢어져서 저 절벽 밑으로 떨어질지는 마지막 남은 사람이 알겠지.”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뽑아 들고 세 노마를 향해 투기를 뿜어 내었다.

“그래, 마음껏 꿈틀거려라. 제대로 밟아주마.”

“조심해라, 우리 중에 광마를 홀로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니까 합공을 하는거지....”

소리 없이 신형이 지워진 흉마가 어느새 북리준의 후면을 점하고 양손에서 펼쳐진 구유마수가 음험한 기운을 뿜은 채 뻗어 나오고 달려든 혈마의 적혈귀조가 북리준의 머리를 뜯으려 날아 들었다.

“차차창 채애애애앵”

일월신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구유마수와 적혈귀조를 두드리고는 흉마의 오른팔을 뱀이 타고 기어 오르듯 목줄을 물어 뜯으려는 찰나 전마의 묵광도가 일렁거리는 검은 마기를 줄줄 흘리며 북리준의 가슴을 갈라 왔다.

‘시이이이이이 콰차차차차창’

긴급히 뒤로 물러서며 양 팔에서 뿜어낸 일월혈륜이 전마의 묵광도과 부딪치며 굉음을 내고 연이어 뻗어지는 혈마와 흉마의 혈수에 공간을 내어 주며 점점 혈인으로 변해갔다.

‘이대로는 필패다....’

자신의 옆구리와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 구유마수의 음기와 적혈귀조의 마기가 내기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전마의 묵광도가 자신의 몸을 스치며 내는 도상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모험이다!’

북리준이 일월신검과 일월혈륜을 있는 힘껏 떨쳐내자 세 노마가 흠칫 뒤로 물러섰다.

“포기 하는 게냐?”

“우리 셋의 협공을 이리 받아 내다니.... 광마 놈이 실수로 죽은 것은 아니구나.”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우고 놈의 목을 잘라 광마의 제사상에 올리자구.”

‘무극이란 무엇인가?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음이라.....’

한번도 시전해 보지 못했던 남해무극칠절의 최후 절초인 무극을 펼치기 위해 자신의 진원지기 까지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심상치 않다. 먼저 조져!”

북리준 일월신검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기이한 현상에 세 노마가 자신들의 최고 절초인 수라파천도법과 자하투음살, 마겁환음수가 북리준의 전신을 분쇄하기 위해 날아 왔다.

‘고오오오오오오’

묵빛의 도강과 자색의 수강, 회백색의 조강이 북리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이한 와류에 휩쓸리며 ‘쑤우우우웅’ 공간이 중첩되는 듯 하더니 공간이 순식간에 팽창을 거듭하고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절벽이 깨어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쿠르르르르릉”

거대한 폭발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 오르고 잠시 후 드러난 정경은 지옥도 그 자체 였다.

세 노마의 최후 절초와 북리준의 무극이 충돌한 여파로 세 노마의 팔다리, 머리가 여기 저기 갈가리 흩어져 있고 충격의 여파로 갈라진 땅 저 끝에 북리준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피갑칠을 한 모습으로 진한 피를 연신 게워내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쩌저적!”

북리준이 피를 게워 내며 신형을 눕힌 절벽이 충돌의 여파로 갈라지며 저 광폭한 소용돌이가 휘몰아 치는 광룡소로 통째로 떨어져 내렸다.

‘끝인가.....’

자신이 딛고 있던 땅과 함께 떨어져 내리는 북리준의 의식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

“벌써 사흘째에요...”

북리준이 세 노마두를 유인하여 사라진 후 천산파와 광동성 내 중소문파가 죽을 힘을 다해 마교의 무력 부대 중 하나인 흑풍단을 물리 치고 난 후 사라진 북리준을 찾아 수색을 벌이고 있던 제갈청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북리봉공의 무위로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네. 곧 돌아 올 것이야.”

독고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수심에 차 있던 제갈청하와 도교교를 다독거렸다.

그때 수색에 나섰던 유검패가 급박한 표정으로 날아 왔다.

“세 노마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앞장서시게!”

유검패가 신형을 날리자 그 뒤를 독고우와 막대광, 제갈청하, 도교교가 급히 따라 나섰다.

“여기 입니다!”

남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절벽가에 머리, 몸, 팔, 다리가 이리 저리 널부러져 있는 곳을 유검패가 가리켰다.

“여기서 결전을 벌였구나....”

부서지고 깨어진 땅과 나무들의 폐허를 보며 막대광이 혀를 찼다.

독고우가 세 노마두의 시체 잔해와 움푹 파인 땅과 그 너머 잘려 떨어져 나간 땅덩어리를 보며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세 노마두가 이리 찢겨 죽었으니 북리봉공이 이긴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꼬?”

막대광이 잘려져 나간 절벽가 끝에서 중얼 거렸다.

“쿠콰콰콰카 쿠르르르릉”

자신의 발밑에서 광폭한 울음소리를 내며 휘몰아 치는 광룡소를 보며 막대광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아닐 것이네. 다시 한번 수색 범위를 넓혀 찾아 보시게...”

도교교가 창백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을 보고 독고우가 다가 왔다.

“맞아, 독고놈의 말대로 북리봉공이 그리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잖아? 다시 한번 잘 찾아 보자구.”

막대광이 애써 눈길이 자꾸 가는 광룡소를 외면한 채 자리를 벗어 났다.

‘싸움의 흔적과 떨어져 나간 땅 덩어리.... 부디 생환하시게....’

독고우가 굉음을 내며 소용돌이 치는 광룡소를 외면한 채 신형을 돌렸다.

****

“크으으으윽 커허어어억”

온몸을 엄습하는 고통과 텅 비어버린 단전, 상할 대로 상한 진원으로 인한 격통에 눈을 뜬 북리준의 앞에 익숙한 머리가 연신 자신의 상처를 햝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의식이 수면 아래로 꺼져 내려갔다.

‘금아가 또 날 구했는가....’

‘응, 여기는?’

영롱한 빛을 내는 자욱한 안개 속을 거닐고 있던 북리준의 눈 앞에 선풍도골의 남자와 신비한 미소가 아름다운 미부가 커다란 돌로 된 탁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왔구나!”

선풍도골의 호쾌하게 생긴 중년의 사내가 자신을 향해 손짓을 했다.

“여기 앉거라. 참으로 오랫동안 너를 보기 위해 기다렸단다.”

신비한 미소의 미부가 정녕 기쁜 표정으로 북리준을 맞이했다.

“천산쌍괴 어르신?”

“그럼 누구겠냐? 네 놈이 우리의 안배에 이르지 못하고 죽을까봐 노심초사 했느니라.”

“사부님들을 뵙습니다!”

북리준이 천산쌍괴를 향해 정중하게 구배지례를 올렸다.

“오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천괴 도천학과 지괴 냉가려의 생전 모습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 보는 북리준을 향해 천괴가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궁금한 것이 많을테니 여기 앉거라.”

신선과 같은 풍모의 천산쌍괴의 앞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은 북리준을 향해 지괴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우화등선을 하신 것 입니까?”

“네 놈이 우리 둘의 시신을 장사 지내 놓고 개뿔 우화등선은....”

천괴가 퉁명스럽게 입을 열자 지괴가 손을 내저었다.

“천천히 하나씩 이야기 해 줘야지요.”

“임자가 하구려. 내가 말 주변이 없어서...”

천괴가 퉁퉁 거리는 말에 지괴가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해소 하지 못한 업이 있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단다.”

“업이라 하심은....”

“네 놈이 익히 아는 놈이니라.....”

천괴의 말에 북리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두 분의 해소 하지 못한 업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단다. 지금으로부터 이백년 전 우리가 천산을 떠나 이 곳 남해로 오기 위해 중원 무림을 가로지르는 여행 중에 생긴 일이었단다.”

“천기가 매우 어지럽군요....”

지괴 냉가려가 시커먼 하늘을 가로 지르는 불길한 별똥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남동방향인가?”

천괴 도천학이 천기를 헤아려 손가락을 짚어 점괘를 가늠해 보고는 신형을 일으켰다.

“가서 확인해 보아요.”

천괴와 지괴가 육지비행의 신법으로 몸을 날려 약 한시진 후 깊은 산속 한 동굴 앞에 내려섰다.

“여기인가 보군.”

천괴가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그 뒤를 지괴가 뒤따랐다.

시커먼 어둠이 자리한 동굴 안을 거리낌 없이 들어선 천괴의 눈에 널부러져 죽어 있는 미부와 그 아래 꼬물거리고 있던 갓난 아기가 들어왔다.

“이놈이로구나....”

천괴가 어미의 배를 찢고 나와 자신의 탯줄을 우물거리고 씹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갓난아기를 보고 손가락을 들었다.

“잠시만요....”

천괴의 오른 손가락 검지에 뿌옇게 맺힌 금강일지로 아기의 머리를 터뜨리려는 찰나 지괴가 앞으로 나섰다.

“허허, 임자도 천기를 헤아려 보았잖소. 이 놈은 누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태일회악지체요. 이 놈을 살려두면 수만, 수백만의 목숨이 스러질 것이오. 악의 싹은 애초에 잘라 버려야 하오.”

땅바닥에 주저 앉아 초롱한 눈을 빛내고 있는 아기를 안아든 지괴가 아기와 눈을 마주쳤다.

“이 아기가 전설의 태일회악지체로 클지 무탈하게 일반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지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임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가 남해로 내려가는 길에 태일회악지체를 발견하게 된 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악을 잘라 내라는 계시라 생각하오.”

천괴의 말에 지괴의 눈에 망설이는 빛이 역력했다.

“임자, 우리에게 아이를 하늘에서 내려 주지 않으시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면 안되오.”

“상공, 이렇게 하지요. 이 아이가 태일회악지체로 각성하지 못하도록 금제를 가하도록 하지요. 그 후에 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마을에 맡기도록 해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는 아내를 보며 천괴가 혀를 찼다.

“쯧쯧.... 임자가 원하는 대로 하구려. 만일 우리 살아 생전에 이 놈이 각성을 한다면 분명히 내 손으로 이 놈의 목숨을 거두겠소.”

“고마워요. 이 아기에게도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지괴 냉가려가 자신의 품에서 접혀 있는 헝겊 꾸러미를 꺼내 펼치자 그 안에 금침과 은침이 길이별로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명문과 뇌호혈에 생사금침을 박아 태일회악지체의 각성을 애초에 막겠어요. 병약하겠지만 살아나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거예요.”

“임자 마음이 가는대로 하시구려.....”

< 144. 천산쌍괴와의 조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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