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45화 (145/167)

< 145. 세 가지 안배 >

천지쌍괴가 회한에 젖은 눈을 들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내 쓰잘데기 없는 측은지심이 우리의 업이 되어 우화등선의 기회를 놓치고 이렇게 너를 기다리게 되었구나.....”

지괴 냉가려의 한탄에 천괴 도천학이 지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이 또한 다 하늘의 안배라 생각하오.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두 분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 태일회악지체에 금제를 지괴님이 가하셨는데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 태일회악지체를 타고난 아기가 제가 아는 자란 말씀입니까?”

“아, 미안하구나. 너무 우리끼리만 이야기 한 듯 하구나. 네 말이 맞다. 태일회악지체를 타고난 아기에게 금제를 가해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랐으나 마교의 천마라는 자가 악신의 계시를 받아 산골짜기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던 아이를 찾아낸 모양이더구나.”

“그 화전민 마을을 피로 씻어 버리고 그 태일회악지체를 금제한 생사금침을 제거한 것도 그 당시 천마라는 자였다.

우린 지금 네가 누워 있던 쌍괴동에서 우화등선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우리가 실수로 살려준 태일회악지체로 촉발된 업의 인과로 인해 등선이 불가함을 알게 되었고 이 업의 해소를 위해 일월수갑 안에 우리의 영을 담아 너를 이백년 동안 기다린 거란다.”

천괴의 말에 지괴가 미안한 얼굴고 천괴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두 사람의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모습에 북리준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제자가 두 분을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 할런지요?”

“아, 또 미안!”

천괴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네 놈도 아마 짐작할 것이다. 그 태일회악지체를 타고난 놈이 천주마강맥의 몸을 차지하고 무림과 황실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

“백무흔......”

북리준이 목철군의 육체를 차지한 마교의 태상천주였고 현 천마로 변신한 백무흔의 오만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 놈의 야욕을 분쇄하고 이 세상에서 놈을 지워내면 우리의 업이 소멸되어 육도윤회의 사슬에 우리도 몸을 실을 수 있다.”

천괴의 말에 북리준이 이해를 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두 분의 업을 소멸하기 위해 현 천마와 대적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 자의 무위와 세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무력을 갈무리한 이백년 넘게 전생을 하여 살아 남은 노마의 무위를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현재 자신의 무력으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놈, 설마 우리가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대로 온 몸이 부서져라 들이 박으라고 하겠냐, 무식하게.... 네가 세 번의 비움을 성공했으니 기대 하거라.”

끌끌거리는 천괴의 얼굴에 장난스런 표정이 떠오르고 지괴가 그런 천괴의 손을 잡아나갔다.

“장난은 그만 하세요, 상공!”

“저 놈 표정이 재미있잖아? 놀리는 재미가 있는 놈이라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문득 제갈청하와 도교교의 얼굴이 떠올랐다.

“금아가 지금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네 놈 몸의 외상을 치료하고 있을테니 최대한 빨리 몸을 추스르거라. 그 후 금아가 안내하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우리의 안배가 나타날 것이다.”

“준아! 우리 두 사람의 무거운 업을 네 어깨에 지움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부디 우리와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태일회악지체를 소멸시켜 다오.”

“네가 성공하던 실패하던 우리는 너를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천괴가 손을 뻗어 북리준의 어깨에 얹고 지괴의 손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항상 우리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그만 가거라..... 다음에 또 보자꾸나....”

“우리는 또 보기를 원한다면 꼭 성공해야 한다, 클클클!”

순간 앉았던 의자가 쑤욱 밑으로 떨어져 내리며 북리준이 끊임없는 추락을 시작했다.

****

“끄으으윽 크흐흑”

북리준이 온몸을 엄습하는 격통과 타는 듯한 목마름에 겨우 눈을 뜨는 순간 무엇인가 시원한 것이 입가에 닿았다.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물을 남김없이 삼켜낸 북리준의 눈 앞에 금아가 자신의 입에 물고온 물을 흘려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금아야....”

“끄응 끄응!”

북리준이 정신을 차린 모습에 금아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 떠오르며 자신의 머리를 북리준의 볼에 부볐다.

온 몸에 힘이 돌아 오지 않아 누운 채로 금아가 입에 물고 온 해산물과 물로 배를 채우며 낮과 밤이 열 번 정도 바뀌는 것을 느낀 어느 날!

“끄으으으윽 으으윽”

겨우 겨우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 하는 손발의 감각과 힘으로 드디어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데 성공을 했다.

팔로 흐느적거리는 하체를 끌고 벽에 상체를 기대어 낸 북리준의 얼굴이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휴우.... 밖의 사정이 궁금하구나...”

자신이 얼마만큼 시간 동안 정신을 잃었고 겨우 상체를 일으킨 기간도 가늠이 되지 않아 고개를 들어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동부의 천장을 바라 보았다.

“뿌오?”

금아가 상체를 벽에 기대어 있는 북리준의 보고는 기쁜 얼굴로 입에 무엇인가를 문 채 다가 왔다.

“고맙다, 금아야! 네가 나를 두 번이나 구해 주었구나....”

“꾸오오.”

금아가 북리준의 하체에 무엇인가를 떨구었는데 눈이 세 개이며 온 몸이 투명한 물고기 한 마리가 펄떡 거렸다.

“먹으라고?”

북리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금아가 머리로 북리준의 발을 밀며 재촉을 했다.

“알았어.”

자신의 손바닥 보다 조금 작은 물고기를 입에 밀어 넣자 ‘푸드득’ 북리준의 목구멍 안으로 녹아 들어 갔다.

“으으윽...”

얼음 보다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엄습하고 힘없이 옆으로 쓰러져 버리는 북리준을 자신의 등에 태운 금아의 등껍질이 벌겋게 달아 올라 삼목빙어로 인해 피어난 음기를 다스려 나갔다.

“휴우... 전신의 내공이 다 스러졌구나. 이제 범인보다 못한 몸이 되어 버렸어....”

여러날을 혼절 하고 깨기를 반복한 어느 날!

스스로 운신이 가능 하여 쌍괴동 안 천산쌍괴의 무덤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북리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금아야, 천산쌍괴 어르신들이 해 놓으신 안배를 네가 알고 있다고 하던데 아직 내가 준비가 안된 거니?”

“꾸오옹!”

금아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북리준의 옷깃을 물었다.

“어딜 가자는 거야?”

북리준이 금아가 이끄는 대로 쌍괴동의 깊숙한 곳까지 천천히 이동을 했다.

“여기는 아무 것도 없잖아....”

처음 쌍괴동에 들어와 쌍괴의 무공을 수련할 동안 전체 동부를 탐색해 보았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고 있던 북리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꾸우우우”

막다른 동굴의 끝에 다다른 금아가 자신의 머리로 벽을 가리켰다.

“막다른 곳이잖아..... 어?”

당연히 막힌 길이기에 쳐다만 보고 돌아갔던 벽이 미세하게 일렁이는 모습에 경호성을 질렀다.

“진법?”

북리준이 손을 뻗어 벽을 짚으니 ‘쑤우욱’ 손이 벽을 통과하는 느낌에 급히 손을 빼내었다. 이어 얼굴을 벽에 들이밀어 한참을 살펴보고는 다시 머리를 빼내었다.

“자욱한 안개와 흩날리는 배꽃잎이라.... 지괴님의 건곤이화진이다.”

기억을 더듬어 건곤이화진의 파훼법을 계산한 북리준이 거침없이 벽 안으로 신형을 밀어 넣었다.

북리준을 삼켜 버린 벽 앞에 꾸벅 거리며 졸고 있던 금아의 머리가 번쩍 치켜 들려졌다.

‘후우우우웅 화아아아앙’

기음과 함께 막다른 벽이 요동을 치더니 ‘화아아악’ 막다른 벽이 순식간에 흩어져 갔다.

“됐다!”

북리준이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앞에 돌로 만든 탁자가 있고 그 위에 태극이 일렁이고 있는 모양의 영롱한 기운이 넘실 거리는 투명한 구슬 하나와 수어피로 만든 책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로 다가가 구슬을 들어 안을 들여다 보니 푸른색과 붉은색이 연신 꿈틀거리며 태극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구슬을 조심스럽게 원래 자리에 내려 놓고는 책자를 들어 책을 펼쳤다.

‘연자여! 이 글을 보았다면 마지막 관문까지 다다른 모양이다. 우리의 실수로 인한 업의 소멸을 위해 연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움에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구나.’

“지괴님이시구나....”

자리를 잡고 앉아 책자를 들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네 놈에게 세 가지 최후의 안배를 남긴다. 네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전언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업을 소멸시키기 위한 첫 번째 안배는 네 놈 눈 앞에 있는 원기옥이니라.’

“원기옥?”

‘네 놈이 우리의 안배를 따라 세 번의 비움을 완성했다면 이 구슬을 취하라. 이 구슬은 나와 내자의 진원지기를 뽑아 응축한 것으로 구슬을 취한 후 건공무극신공을 운용하면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것이다.’

“두 분의 진원지기를 응축한 구슬이라고?”

영롱한 빛이 연신 살아 움직이는 구슬에 시선을 주었다 거두고 다시 책자를 넘겼다.

‘두번째 안배는 변화된 몸에 맞는 무공이다. 네가 기존에 익혔던 상공의 남해무극칠절과 내 무공인 일월천뢰륜법을 합쳐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였으니 동부를 나서기 전에 완벽하게 익히거라.’

“아,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치셨다고....?”

남해무극칠절과 일월천뢰륜법을 최대한 같이 활용하려 노력 하였으나 서로가 보조적인 역할로만 활용했던 한계에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건곤무극검륜삼절!”

‘마지막 안배는 너를 위한 세력이다. 네가 아무리 막강한 무공을 몸에 지녔다 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조력자의 힘이 필요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안배를 완성했다면 금아가 안내해 주는 곳으로 가 너와 함께할 무적의 동반자들을 얻거라.’

“세력.... 무적의 동반자들....?”

어느덧 책자의 마지막 장으로 접어든 북리준의 눈에 각기 다른 두 사람의 필체가 들어왔다.

‘네 놈이 성공 할지 실패 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혹여 실패를 하더라도 우리에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주면 나 천괴는 만족할 것이다.’

‘내 측은지심이 불러 일으킨 결과에 상공과 네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상공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 우리의 업을 소멸해 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켰으면 하는 아녀자의 바램을 적는다.’

책자를 덮은 북리준이 눈을 감고 격동하는 감정을 추슬러 책자를 원기옥 옆에 놓고는 정중하게 구배지례를 올렸다.

“두 분 사부님의 유훈을 받들어 무림을 어지럽히고 있는 태일회악지체를 없애 두 분 업의 소멸과 무림의 평화를 지켜내겠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비장한 각오를 다진 북리준이 쌍괴의 진원지기로 만든 원기옥을 집어 들었다.

“꾸오오옥”

뒤에 서 있던 금아가 그 자리에 주저 앉으며 자신의 등을 머리로 가리켰다.

“네 등 위에서 구슬을 취하라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는 금아가 납작 엎드렸다.

“그래, 이것도 두 분의 안배겠지. 이번에도 신세를 지자.”

북리준이 금아의 든든한 등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른손에 든 원기옥을 뚫어져라 바라 보다 거침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 145. 세 가지 안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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