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날 이겨야 돼! >
이백년 넘게 지켜온 종루와 불곡비종이 눈 앞에서 부서져 내리는 모습에 공야무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사부, 저 사람이 내 주군이야?”
“그렇단다. 이제 너와 내가 이 섬에서 벗어나 저 너른 중원으로 갈 수 있단다.”
“그럼 주군은 나보다 세겠네?”
“그렇지 않을까?”
두 사제가 두런거리며 이야기 하는 동안 수만마리의 갈매기들이 불곡비종이 부서져 버린 산 위에 융단처럼 맴을 도는 장관에 미소를 지었다.
“귀인이시여. 일단 내려 가셔서 누군가 찾아 오기를 기다리시면 될 듯 합니다.”
공야무의 말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까맣게 수 놓은 갈매기들을 일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누군가 이 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궁금 했는데 못 찾을 수가 없겠군요.”
“저도 저런 방법으로 이 곳을 가리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바닷가 앞 초옥으로 돌아온 북리준이 조촐한 술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제와 자리를 함께 했다.
“저의 태태사부님께서 천산쌍선님과 연이 닿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의 태태사부님께 두 권의 비급을 내려주시면서 이 곳 파면종을 지키는 임무를 주셨다고 합니다.”
공야무가 북리준과 화주잔을 기울이면서 종루지기가 된 사연을 풀어 놓았다.
“현천금강장과 금강묵현권의 비급과 함께 금성지체를 찾아 단철갑을 수련시키라 명하셨는데 다행이 제 대에 이 놈을 찾아 내었습니다.”
화주병을 든 채 연신 병나발을 불며 히히덕 웃던 공야휘가 북리준과 눈이 마주치자 헤벌죽 웃음을 지었다.
“우연히 왜구들의 습격으로 조실부모하고 죽기 일보 직전 이었던 이 아이를 데려 왔는데 저희 사부님과 함께 그토록 찾던 금성지체 인 줄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이 곳에 데려와 생활 하던 중 제가 이삼일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 묵린철갑망이라는 괴수가 섬에 올라 왔던 모양입니다. 그 괴망이 휘아를 먹이로 알고 삼켰는데 오히려 휘아가 괴망 뱃속의 내단을 취하고 배를 찢고 나왔고 그 이후 약 이갑자의 내공과 상하지 않는 육체를 가지게 되었지만 저렇게 지능이 조금 떨어지게 되었답니다.”
공야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의 제자이자 자식 같은 공야휘를 바라 보았다.
“쌍선님이 내려 주신 단철갑을 대성하여 현재 완전한 금강불괴에 이르렀습니다.”
“금강불괴요?”
북리준이 공야무의 금강불괴라는 말에 놀라 반문을 했다.
“네, 저 놈의 몸뚱아리는 도검수화가 불침하고 제자의 금강묵현권은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북리준이 연신 화주병을 입에 물고 있던 공야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귀인께서 제가 살아 숨 쉬는 동안에 이 곳을 찾아 주시지 않으셨다면 제 사부가 그러했듯이 저 놈에게 제 전 내공을 격체전공으로 전하려고 했으나 이렇게 오셔서 저와 휘아의 금제를 풀어 주셨으니 주군이 하시는 일에 저도 한 손 보탤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그 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공야휘가 불쑥 북리준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주군아! 너 힘세?”
“응, 많이...”
“내 주군이 되려면 날 이겨야 해! 나 보다 힘이 약하면 내 주군이 될 수 없어.”
“그럼 내가 휘아의 주군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공야휘가 잡고 있던 화주병을 상 위에 올려 놓고는 평상 위에서 내려와 북리준의 손을 잡았다.
“여기에서 싸우면 우리 집 다 부서져. 저기 사부하고 맨날 싸우던 곳으로 가자.”
“휘아야, 주군께 그러면 안된다.”
“아닙니다. 휘아의 말이 맞지요. 그래, 같이 가자꾸나.”
북리준이 푸근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리며 공야휘의 손에 이끌려 삼방이 깎아지른 듯 한 절벽에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에 도착했다.
“날 이겨야 돼. 그럼 진짜 주군으로 불러줄게.”
“괜찮으시겠습니까?”
공야무가 죄송스런 마음과 약간은 기대가 되는 상반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편하게 관전 하시지요.”
북리준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저 앞에 웃통을 벗어 제끼고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고 있던 공야휘의 앞에 섰다.
“내 몸 아주 단단해. 날 쓰러뜨리면 주군으로 인정해 줄게.”
“알았다.”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검집 채 들고는 공야휘를 바라 보았다.
“난 준비 되었다.”
“그럼 간다!”
‘쿠우웅’
공야휘가 발을 구르자 마치 쏘아진 포탄처럼 북리준에게 달려 들며 권강을 잔뜩 두른 양 권을 폭풍처럼 쏟아 내었다.
‘까까깡 까가가가깡 까강 깡깡’
북리준의 검집이 자신의 전신을 터뜨릴 듯 쏟아져 들어오는 금강묵현권을 툭툭 때려 내자 쇠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까아아앙’
일월신검의 검집이 천산파천삼검의 검로에 따라 공야휘의 머리를 직격 했으나 쇳소리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권각을 내질러 왔다.
‘정말 튼튼하군!’
검집에 삼성 정도의 내기를 실어 때려 내었으나 마치 모기가 물었냐는 듯 신경 쓰지 않고 멧돼지처럼 달려 드는 공야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까강 까가가강’
어느새 북리준의 양 손에서 솟아 오른 일월쌍륜에 가슴을 직격 당한 공야휘가 우당당탕 뒤로 서너바퀴를 굴러 나갔다.
“어, 불곡비종을 깬 륜이구나. 잡아서 부서버려야지.”
북리준의 의념이 담긴 일월쌍륜이 쉴새없이 공야휘의 전신을 두들기고 이에 굴렀다 벌떡 일어서고 다시 땅바닥을 구르고 어떡하던 두 개의 쌍륜을 잡아 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잠깐만!”
북리준이 다시 저만치 나뒹굴었다 일어서 달려 들려는 공야휘를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대로는 밤을 새도 안 될 것 같은데 우리 내기를 하자.”
“내기? 좋아.”
“저기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보이지?”
북리준이 손을 가리키는 곳에 약 삼장이 넘어 보이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서로 각자의 바위를 어떻게 빨리 부수는지를 공야노야가 심판을 봐서 누가 이겼는지 판가름 해 주는거야.”
공야무가 북리준이 자신의 제자가 상할까 이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할 거야.”
공야휘가 왼편에 있는 거대한 바위로 다가 가더니 두 주먹에 내기를 불어 넣고는 있는 힘껏 내리치기 시작했다.
‘쿠웅 콰아앙 쾅 콰아아앙 쿠쿠쿵’
공야휘의 금강묵현권에 연타를 당한 바위가 허리 어름부터 금이 가면서 무너져 내리고 떨어져 내리는 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그 큰 바위를 계속 주먹으로 내리쳐 금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일다경!”
공야무가 커다란 한 무더기 돌무덤으로 화해 버린 잔해 앞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으스대는 공야휘를 향해 외쳤다.
“내 차례구나.”
북리준이 오른편에 있던 바위 앞 오장 앞에 서서 일월신검을 뽑아 들었다.
‘일월신검 앞에 선 그 무엇이든 멸하고 끊어 내니 궁극은 무이니라!’
남해무극칠절의 멸절의 검로를 따라 일월신검이 내리그어졌다.
“케헤헤헤헤, 내가 이겼다. 꿈쩍도 안 하잖아? 어어어....”
일월신검을 검집에 갈무리 하고는 북리준이 신형을 돌리자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던 공야휘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푸스스스스스스’
일말의 부서짐이나 그어짐이 없이 굳건히 서 있던 바위가 순간 먼지로 변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산산이 흩어져갔다.
“오오, 이게 쌍선님들의 검이구나...”
공야무가 단 일검에 먼지로 화해 버린 거대한 바위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북리 귀인의 승!”
공야무의 고함소리에 공야휘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휘아야! 네가 완전히 진 것이 아니니까 너무 낙담하지 말거라. 너 정도의 무위라면 중원에 나가 너를 이길 자가 많이 없을 것이다.”
“그래? 내가 그렇게 세?”
“그럼.”
“어찌되었건 내가 졌으니까 오늘부터 내 주군을 해.”
“고맙지만 너와 나는 주군과 수하가 아니라 형제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형제?”
“그래, 우리 휘아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내 동생이 되어주렴. 난 우리 휘아의 형이 되어 줄게.”
북리준의 말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공야무를 향해 공야휘가 입을 열었다.
“사부, 주군이 형이 되어도 되나?”
“주군이 명하시면 따르면 된단다.”
“크하하하. 그럼 형이 되어 줘. 나한테도 형이 생긴거네.”
공야휘가 신이 나서 북리준에게 다가와 와락 껴안고는 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그 검은....?”
공야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천괴...아 천선님의 남해무극칠절 중 멸절이라는 검입니다.”
“하아, 정말 이름과 딱 맞는 검법이군요.”
저 멀리 바다 저편에 검붉은 태양이 뉘엿 뉘였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공야무가 공야휘의 손을 잡았다.
“오늘 같이 기쁜 날, 밤새 술잔을 기울이시지요.”
“좋습니다!”
“형, 형, 형, 형!”
공야휘가 북리준의 손을 잡고 기쁜 표정으로 형을 외치는 모습에 공야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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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군!”
사람 네다섯이 탈만한 자그마한 소선에 한 사람이 노를 잡고 무심히 수만마리 갈매기 들이 떼를 지어 군무를 펼치고 있는 섬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굵고 아름다운 긴 수염에 기골이 장대한 거한의 등에 예사롭지 않은 단창 세 자루가 부채 모양으로 꽂혀 있었고 한번 노를 저을 때 마다 삼장 정도씩 거친 바다를 가로 질러 날 듯이 섬으로 다가갔다.
“그래, 어디 어떤 인물인지 보러 갈까?”
자신이 타고 온 소선을 힘들이지 않고 한 손으로 해변가에 올려 놓은 단창을 지닌 거한이 저 앞에 보이는 모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손님이 온 듯 하군요.”
북리준이 평상에 앉아 공야무와 차를 들고 있다 싱긋 웃음을 지었다.
“공야동생은 항상 이 시간에 놀러 나가는 모양이군요.”
“아마 금구공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금구공을 아주 좋아 하거든요.”
그 때 모옥 안에 들어선 거한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불곡비종을 울린 귀인을 만나러 왔소이다.”
문 쪽에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던 북리준이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반갑소이다. 난 이 곳 종루지기인 공야무라 합니다.”
공야무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천운뇌격창 관자룡이라 합니다. 앞에 계신 분이 파면종을 울리신 분이 맞으신지요?”
“그렇습니다. 북리준이라 합니다.”
천운뇌격창 관자룡이라 자신을 소개한 거한이 유심히 북리준의 전신을 살펴 보았다.
‘뭐야? 그리 세 보이지 않는데....’
“일단 차라도 한잔....”
공야무의 말을 손을 들어 제지한 관자룡이 불쑥 북리준을 가리켰다.
“우리 사부님의 말씀대로 파면종이 울렸으니 금제는 풀렸다고 믿소. 허나 귀인께서 쌍선님들의 안배에 따라 우리를 거느릴 수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소이다.”
관자룡의 말에 공야무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장소를 옮기시지요....”
“따르시지요.”
공야무가 앞서고 북리준이 그 뒤를 따르며 관자룡에게 말을 건넸다.
지난 번 공야휘와 손속을 섞었던 예의 그 공터로 향하는 중에 공야무가 전음을 날렸다.
‘몇이나 오는지 모르겠지만 올 때 마다 이래야 할 듯 합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의 동반자를 얻는 일 인데 감수해야지요.’
삼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에 도착한 공야무가 공터의 한 켠으로 물러났다.
“만일 내가 당신을 이긴다면 앞으로 우리는 서로 볼일이 없소. 우리 선사님들에 대한 예의는 여기까지만 지킬 것이오. 난 금제를 벗어나 저 너른 중원무림으로 나아가 내 무위를 마음껏 떨칠 것이오.”
검은 미염이 인상적인 거한의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알겠소이다. 만일 내가 그 쪽을 이긴다면 나와 함께 하시겠소?”
“내가 패배한다면 주군의 예로 대하겠소이다.”
< 148. 날 이겨야 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