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굴기(屈起):몸을 일으킴 >
“그렇게 짧은 시간에 황궁과 무림을 장악 할 수 있다니 신기하군.”
북리준의 말에 유검패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마교의 천마가 태상황에 오르기 전 까지 자금성을 왕래 하였습니다. 제 의부부터 금대인까지 황궁 전체가 미망에 사로 잡혀 있는 듯 했습니다.”
“미망에 사로 잡혀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게.”
북리준의 재촉에 유검패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되살렸다.
“제 의부님과 금대인이 마교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봉공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알다마다! 두 분이 황태자 전하와 함께 마교도들에게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러신 분들이 황제폐하와 황사가 있던 어전에만 다녀 오시면 마교라는 곳이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지 않을까 라고 몽롱한 표정이 되셨습니다. 그런 후 한 시진 정도 후에는 마교라는 곳에 관대해 지신 황제폐하를 어떻게 납득 시켜야 할지 머리를 싸매시다 다시 어전에만 다녀 오시면 이런 일을 반복하고 계셨습니다.”
유검패의 말에 북리준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도문주를 바라 보았다.
“아까 이야기한 마교에 대항하고 있는 천무맹과 사황련과는 연락이 되고 있는지요?”
“삼개월에 한번 각자의 근황에 대한 서신이 전서응으로 오가는 정도라네. 천무맹은 감숙성, 사황련은 귀주의 모처에서 힘을 키우고 있다네.”
“저희 천산파와 천무맹, 사황련을 제외하고는 마교에 대항하는 세력은 없는지요?”
“마교에 의해 강제 봉문을 당한 문파들이 우리가 마교에 대항을 시작한다면 호응을 할 것이네. 실제 제갈세가, 하후세가, 모용세가, 하북팽가, 진주언가 등도 마교의 혈수를 피해 숨을 죽이고 있지만 우리 천산에 물밑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네.”
철면신산의 말에 팽무강과 친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세가의 회귀령을 어기고 이 곳 천산에 합류 할 때도 암묵적으로 허락을 해 주셨지. 지금은 흩어져 숨만 쉬고 있는 형국이지만 천산과 천무맹, 사황련 등이 마교 멸절의 기치를 들고 일어서면 분명 호응 할 것이네.”
팽무강의 말에 하후상이 콧김을 내뿜었다.
“내 아버지가 천산이 일어설 때 선봉에 우리 하후세가가 설 자리를 마련하라 전언을 보내셨어.”
현재 돌아가는 황궁과 무림의 정세를 전해 들은 북리준이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기고 좌중에 인물들 또한 침묵하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 들었다.
“황궁과 무림 두 곳에서 동시에 마교를 흔들어야 합니다. 먼저 황궁을 등에 업은 천마에게서 황실을 떨어뜨려 놓아야 합니다.”
“맞네. 기실 우리 무림세력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조정에서 동원할 수 있는 대군이지. 황제가 천마의 명으로 백만대군을 동원하다면 어느 세력이 당해 낼 것인가....”
독고우의 말에 막대광이 맞장구를 쳤다.
“지난 번 십만대군만 봐도 기가 질렸는데 백만이라면.... 상상이 안되는군.”
“검패!”
“말씀 하시지요.”
“자금성에 들어가야 겠다. 어째서 마교에 적대적이었던 유공공과 금대인이 변했는지와 황제의 신변에 천마가 무슨 금제를 했는지 확인해 봐야 겠다. 만일 내가 손을 써서 황제의 정신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일이 쉬워지겠지.”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철면신산대협!”
“말씀 하시지요.”
“제가 황궁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 천무맹과 사황련과의 회합을 주선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도문주님!”
“말씀 하세요.”
“회합에 참석 하셔서 논의 하실 내용은 각 성에 문을 열고 무림 세력을 탄압하는 마교 지부를 무너뜨리는 계획입니다.”
“마교지부를?”
놀라는 팽무강을 향해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놈들이 자신에게 대항할 세력이 없어 무사태평 할 때 처음 두 세 개의 지부를 최대한 빨리 무너뜨려야 합니다.”
“천무맹주와 사황련주가 움직이려 할까? 자신들의 세로 자칫 역공을 당해 전멸할 수 있다고 생각할텐데....?”
“맞네, 현재 살아남은 세력을 합해도 마교 지부 하나를 상대 하기도 버겁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라네.”
철면신산의 말에 북리준이 자신의 좌우에 앉은 새로운 동료들을 바라 보았다.
“회합에 참석 하실 때 여기 계신 제 동료들과 동반해 주십시오. 이 분들이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 줄 것입니다.”
북리준의 말에 공야무와 휘, 단리목, 과천풍, 관자룡, 나백상, 냉유성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이 분들만으로도 마교 지부 두 세 개는 지울 수 있습니다. 마교와 황실을 분리해 낸다면 분명히 할만한 전쟁이 될 것입니다.”
북리준의 자신에 찬 말에 좌중의 인물들의 어두웠던 가슴에 희망이라는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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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파에서?”
천무맹주 절대검존 남궁휘가 창천수사 왕석산과 독대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만나서 뭘 어쩌자고.....?”
힘없이 술잔을 비우고 있는 천무맹주를 향해 왕석산이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름 전 마교도 일천오백이 천산파를 지우기 위해 천산을 올랐다고 합니다.”
“천오백? 크크크, 생존자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가....”
“아닙니다! 일천오백의 마교도 중 살아 천산을 내려간 인원이 백이 안되었다고 합니다.”
“십만대산의 마교도가 아니고 그들에게 무릎 꿇은 떨거지들이 머릿수만 채워 올라 갔나 보군. 그런대로 선전했네.....”
하루에 반 이상을 술로 지새우는 자신의 주군을 보며 왕석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마교의 무력 부대 중 천살단과 사혼단이 단주를 포함하여 오백이, 마교 사대마가 중 검천마가주와 검천마가 소속 오백과 사황팔문 소속이었던 귀혈방과 혈겁천이 들이댔다가 박살이 났답니다. 한마디로 대승이라고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왕석산의 기세에 찔끔 놀란 남궁휘가 궁시렁 거렸다.
“그래 봐야 대세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
다시 남궁휘의 손에 들린 술잔을 거칠게 빼앗은 왕군사가 벌컥 거리며 술을 들이키고는 탕 소리가 나게 상에 잔을 내려놓았다.
“마교 천하를 종식 시키기 위한 계획과 힘을 가지고 오겠다고 합니다. 예전에 제가 존경하고 따르던 절대검존은 어디 가고 나약하고 패배의식에 절은 노인이 왜 내 앞에 있는 것입니까?
일년 동안 마교도들에게 들킬세라 도망다니고 피해 다니는 것을 평생 동안 하시렵니까? 이제 그만 떨쳐 일어서세요. 과거 정도무림의 정상에 우뚝 서 있던 거인으로 돌아오시란 말입니다. 젠장!”
자신 또한 지칠대로 지치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하루 하루에 조금씩 죽어갈 때 날아온 천산파의 전언에 과거 천무맹 군사 시절의 왕석산이 자신을 냉엄하게 꾸짖었다.
‘네 놈이 무슨 군사냐? 주군이 저리 술에 젖어 죽어가는데 주군을 일으켜 세우고 마교놈들에게 어떻게 하면 피해를 주어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골몰해야 하는 것이 군사가 아니더냐?’
벌컥거리며 화주병 째로 술을 삼키는 왕군사를 힘없이 바로 보던 남궁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왕군사....”
“말씀 하세요!”
“희망이 있는가?”
“없더라도 만들어야지요. 천산파의 사백 무인인 일천오백의 마교도들을 도륙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교를 공략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들고 오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우리 대 천무맹이 떨쳐 일어나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해야지요.”
열변을 토하는 왕석산을 바라 보며 남궁휘가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자네는 아직도 젊은가 보군.....”
‘후우우우우웅’
순식간에 절대검존 남궁휘의 전신에서 지독한 주향이 퍼져 나오자 왕군사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래, 왕가 네 놈 말대로 죽을 때 죽더라고 꽥 소리는 한번 내고 죽자.”
남궁휘가 일년 동안 쌓인 주독을 내공으로 한 순간에 몰아내고는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라고?”
“앞으로 한 달 후입니다.”
“그동안 난 폐관 수련을 하겠네. 내가 없는 동안 패잔병 마냥 비실거리는 천무맹도들을 나 같이 일으켜 세우시게.”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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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사백이 일천 오백을.... 거기에 배신자인 귀혈방과 혈겁천이 쓸려 나갔다니 속이 다 후련하군.”
사황련주 팔비곤마 북궁추가 자신의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병호서생 야율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언에 의하면 마교 사대호법과 함께 행방불명 되었던 북리봉공이 기연을 얻고 막강한 동료들과 함께 귀환한 모양입니다.”
“크크크, 그래봐야 그 악마를 당해 낼 수 있을까?”
북궁추가 산더미 같이 쌓인 시체더미 위에서 광소를 터뜨리던 천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쿨럭...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움츠리고 있을 수는....”
“그래, 자네 말이 맞지. 죽을 때 죽더라도 팔비곤마 북궁추가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적도들의 머리에 각인을 시키고 죽어야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자세한 것은 회합 때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략적으로 마교와 밀착된 황궁을 분리하고 각 성에 있는 마교지부부터 손을 댄다는 내용이더군요.”
“좋아! 그렇지 않아도 나 혼자라도 마교놈들 지부로 쳐들어 가려고 했는데 잘 되었군. 같이 죽어줄 동료가 있다면 내 삶이 허무하지는 않은 거지....”
“쿨럭 쿨럭.... 무슨 자살을 하러 가십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최대한 살 수 있을 때 까지는 버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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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왔는가?”
유검패가 자신의 의부에게 기별을 넣어 자금성 안으로 잠입하듯 들어온 북리준을 유공공과 금대인이 반가이 맞이했다.
“무탈 하셨는지요?”
“그렇지 못하다네....”
유공공의 말에 금대인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어전에만 다녀 오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자꾸 마교 편을 들게 된다네.”
금대인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황상이 천마라는 자에게 홀려 황상 위에 군림하고 있고 조정의 모든 대소사가 태상황이라 불리우는 천마의 재가가 없이는 쌀 한톨도 살 수가 없다네....”
“황태자 전하께서는요?”
“초반에는 틈만 나면 황상을 찾아 뵙고 천마라는 자의 진면목에 대해 설득을 하셨으나 육개월 전 황상의 대노에 직면 하시고서는 처소에서 나오시지를 않고 계시네.”
“천마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보름 전 십만대산에 신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면 자금성을 떠났다네. 이상한 건 놈이 자리를 비우면 황상을 뵐 수가 없음이야....”
북리준이 유공공과 금대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김 후 눈을 떴다.
“황상의 곁에 누가 있습니까?”
“마교의 신녀라는 무녀가 항시 붙어 있다네. 그리고 천마가 황상을 보호 한다는 명분으로 천마의 직속 무력부대인 천마사령대가 황상의 침소인 곤녕궁 내 양심전에 상주하고 있다네.”
“문제는 황상을 배알키 위해 가면 항상 그 신녀라는 마녀가 황상을 만나게 해 주지 않는 다는 거네.”
“하나 하나 풀어 보죠. 일단 황태자 전하를 뵙게 해주시지요. 그 후 어전을 한번 둘러 볼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곳에 뭔가 수작을 부려 놓았을 것 같습니다.”
북리준이 눈을 빛내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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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는가?”
황태자 윤청이 빠짝 마른 모양으로 슬프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행방불명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노라.”
“감사하옵니다. 전하, 한 가지 전하께 질문 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방문을 하였나이다.”
“말해 보거라.”
“황상과의 최근 대화를 상기 시켜 주시옵소서. 황상과의 대화 시 이상하다고 느끼신 점은 없으셨는지요?”
황태자가 술잔을 내려 놓고는 저 앞 허공을 바라 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이상한 점이라.... 그렇군. 황상께옵서 대화를 하실 때 항시 내 눈을 보시면서 말씀을 하셨는데 언제부터 인가 저 먼산을 바라 보시면서 말씀을 하시더군. 마치 인형처럼 말일세....”
< 153. 굴기(屈起):몸을 일으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