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54화 (154/167)

< 154. 황실풍운 >

“으흠... 황태자 전하! 일단 저는 유공공과 금대인과 함께 어전을 한번 둘러 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황상이 계신 양심전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북리준의 말에 금대인이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상이 계신 양심전을 둘러싸고 있는 천마사령대 놈들의 무위가 장난이 아니네. 개개인이 거의 나와 필적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네. 혼자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네.”

“금가 놈 말이 맞네. 황상을 따로 뵐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보겠네. 괜히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 있음이야.”

두 사람의 걱정스런 말에 북리준이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이 걱정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예전에 저였다면 분명 힘들었을 일이지만 지금은 가능 합니다.”

유공공과 금대인이 북리준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달라지기는 한 것 같은데... 키도 좀 커진 거 같고....”

그 때 북리준의 신형이 ‘스르륵’ 그 자리에서 지워지자 황태자가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 어디로....?”

유공공과 금대인이 자신의 기감을 열어 북리준의 행방을 찾았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입니다!”

순간 북리준이 황태자가 앉아 있는 태사의 옆 공간에서 안개가 뭉쳐지듯 신형을 드러내었다.

“오, 대단하군!”

황태자가 자신의 지척에 모습을 드러낸 북리준을 신기한 듯 바라 보았다.

“제가 마음 먹으면 못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심려치 마시지요. 만일 천마라는 자가 황상의 옥체에 손을 대었다면 제가 살펴보고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탁하네, 북리어사!”

황태자가 변해버린 부황의 모습에 노심초사 하며 밤잠을 못 이루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으나 북리준의 등장으로 희망의 빛이 보이자 간절한 얼굴로 북리준의 손을 잡았다.

“먼저 어전을 살펴 보고 다시 뵙겠습니다.”

“그리하시게. 유공공과 금대인이 북리어사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시게.”

“알겠사옵나이다!”

유공공과 금대인, 북리준이 황태자의 방을 나서며 황제와 황후, 황태자가 거주하는 내정을 벗어나 외조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 어전에는 누가 상주하고 있습니까?”

“어전을 관리하는 내관들과 궁녀들이 있다네.”

“천마가 자금성에 온 후 어전에 마교도들이 상주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금대인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어전에만 다녀 오면 정신이 혼미하여 무슨 말을 하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네. 그래서 금가 놈 말대로 그 곳에 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지.”

“누군가 어전에 드는 것을 제지 한다면 저를 태화전의 보수를 위해 방문한 대목장으로 소개를 해 주시지요.”

“그러는 것이 좋겠군.”

황제가 정무를 보는 지역인 외조로 접어 들어 황제가 관료들과 만나 정사를 처리하는 정전인 태화전 앞에 이르렀다.

“유공공님과 금대인님을 뵙습니다.”

태화전 앞에 내관 둘 중 오른편 내관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인 연유로 태화전을 방문해 주셨는지요?”

“태화전 내부에 보수를 위해 대목장과 함께 어전을 둘러 보려 함이다.”

내관 복장의 음험한 인상의 사내가 북리준의 위아래를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았다.

‘무공은 익히지 않았나 보군. 대목장이라고 하니 별일은 없겠지.’

“드시지요!”

내관이 앞장을 서며 옆에 서 있던 동료에게 전음을 날렸다.

‘진을 발동시키지 말게. 신녀님께는 나중에 내가 보고 하겠네.’

마교의 신전 출신 사제로 내관으로 분장하여 태화전에서 문무백관과 황제가 정사를 논할 때 마다 귀문심마진을 발동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전 전체를 둘러 보아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하다. 우리끼리 둘러 보다 나갈 터이니 네 일을 보거라.”

북리준이 전음으로 내관을 밖으로 내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유공공이 내관에게 명을 내렸다.

‘대목장이라니 별일 없겠지...’

“네, 알겠사옵나이다.”

내관으로 변장한 마교 사제가 천천히 밖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고 북리준이 유공공과 금대인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마교도입니다. 갈무리한 마기가 예사롭지 않은 자로군요.’

동시에 전음을 날린 북리준을 보며 두 사람이 눈이 동그래지며 서로를 쳐다 보았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어, 동시에 전음을 날릴 수가 있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유공공과 금대인이 감탄성을 내며 저 멀리 사라지는 내관의 눈을 쏘아 보았다.

‘곳곳에 마교도들이 들끓는 구나....’

‘곧 정리 하겠습니다.’

“엥, 어떻게...?”

금대인이 유공공에 보낸 전음을 듣고 대답을 하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었다.

‘남의 전음을 들을 수가 있는가?’

‘네, 기연을 얻은 후 가능해 졌습니다.’

‘허허, 황실의 홍복이로고...’

감탄의 눈빛으로 뒷짐을 진 채 태화전 전체를 천천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고 있는 북리준을 뒷 모습을 바라 보던 유공공과 금대인이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금가야, 오늘은 정신이 온전 한 듯 하다.’

‘저도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항상 어전에 들어온 후 일각만 지나면 머리가 혼미해 졌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리준이 예리한 눈으로 태화전 안을 돌며 대목장이 수리를 위해 점검을 하듯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고 만지고 두드리며 돌다 뒤를 돌아 보았다.

“황상의 어좌를 살펴 봐도 될런지요? 어좌의 수평이 안 맞는 듯 합니다.”

“그러시게나.”

‘서편과 동편 들보 위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감히 어전을....?’

‘이 곳에 진법을 깔아 놓은 듯 합니다. 자세한 것을 조금 더 살펴 본 후 나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북리준이 황상이 앉아 정무를 보는 어좌에 가까이 다가가 여기 저기를 살펴본 후 내려와서는 두 사람에게 다가 왔다.

“다 점검 하였습니다. 집무실에 가서 수리에 대한 세부 일정을 협의 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이 태화전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자 예의 그 내관이 세 사람에게 허리를 숙였다.

“다 보셨는지요?”

“그렇다. 수고 하거라.”

유공공, 금대인, 대목장이라는 젊은이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옆에 서 있던 동료사제가 입을 열었다.

“신녀님께 바로 보고해야 하나?”

“잠깐 들어 갔다 온 건데.... 안에서도 수상스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하니 나중에 내가 따로 보고 드림세.”

****

유공공의 집무실에 들어선 금대인과 북리준이 자리를 잡자 북리준이 기막을 펼쳐 자신들의 대화를 밖에서 감지 하지 못하게 차단을 했다.

“기막을 펼쳤습니다. 마음 놓고 말씀 하셔도 됩니다.”

“그래, 태화전에 진법이 설치 되어 있다고?”

“네, 확실합니다. 곳곳에 숨겨진 부적들과 부작들의 방위와 위치를 확인했고 이 진의 축은 황상의 어좌에 붙어 있는 번개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용의 형상입니다.”

“어떤 종류의 진인가?”

“태화전 안에 들어선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기억을 흐리는 진입니다.”

“허허, 그런 진이 다 있는가?”

“다행이 제가 선사님께 진에 대한 공부를 사사받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파훼는 당장 가능한가?”

“가능하지만 일단 오늘 밤 황상을 만나 뵙고 나서 적당한 시기에 파훼를 하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유공공과 금대인이 서로를 바라 보았다.

“북리어사, 꼭 황상의 영명하신 정신이 돌아 올수 있게 부탁 하네.”

****

“그만 누우시지요.”

마교의 신녀이며 진법과 부적술로 무림을 어지럽히다 멸문지화를 당한 신도세가의 마지막 생존자인 신도설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이끌려 침상으로 오르는 황제를 비웃음을 한껏 머금은 얼굴로 바라 보았다.

“우리의 꼭두각시 황제께서 살 날이 그리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동안이라도 편히 쉬셔야지요.”

신녀의 손에 이끌려 침상에 누운 황제가 멍한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 보았다.

“눈을 감아야지...”

신녀의 말에 멍한 표정의 황제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참 말도 잘 들어요. 상으로 뽀뽀!”

신녀가 황제의 볼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신형을 일으켰다.

“천마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나도 쌓인 피로와 욕정을 해소해야지.... 호호호!”

황제의 침소 바로 옆 방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근육질의 성노를 떠올리며 요사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신녀가 방을 나서고 황제의 고른 숨소리만이 떠도는 방안을 감시하던 천마사령대원이 속으로 궁시렁 거렸다.

‘어떤 년은 떡이나 치러 가고 난 병신이 되어 버린 황제 놈 자는 모습이나 밤새 봐야 하고...응? 갑자기 왜 이렇게 졸립지.... 그래 잠이나 자야겠다. 신녀가 깨우기 전까지 시체처럼 자는 놈을 봐야 뭐 하겠어....’

북리준이 허공을 격하고 세밀하게 짚어낸 수혈에 저도 모르게 잠에 곯아 떨어졌다.

어느새 황상의 침상 앞에 선 북리준이 이불을 걷고 황상의 전신을 향해 우장을 뻗어 세밀하게 무엇인가를 감지하려 기를 운용했다.

‘마기로구나....’

황제의 뇌 한 켠에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농밀한 마기를 느끼고는 우수와 좌수를 황제의 머리 위에 펴고 건곤무극심공의 정명한 내기를 모아 내었다.

‘생물로서의 마기로구나... 섣불리 뽑아 내려다 황제의 뇌가 망가질 수도 있음이야.’

‘빼낼 수 없다면 소멸시켜야지!’

북리준의 좌우장에 삼갑자가 넘는 금빛 내공이 넘실 거리며 황제의 머리 위로 황금빛 서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커허어억’

황제의 머리에 자리 잡은 마기가 북리준이 쏘아보내는 금빛 서기에 반응하며 꿈틀 거리자 황제의 몸이 극심한 고통에 침상에서 튀어 올랐다.

‘놈! 그만 몸부림치거라.’

북리준의 양 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기가 점점 가늘어지며 농도가 더해 가더니 황제의 뇌에 자리잡은 마기를 직격하기 시작했다.

‘끄어어어어어억’

짓눌린 신음을 내며 눈을 부릅뜬 황제의 두 손이 북리준의 옷을 꽉 잡아내었다.

기막을 방 전체에 둘러 황제의 비명소리가 밖으로 전혀 새 나가지 않게 조치를 한 북리준이 긴 한숨과 함께 두 손을 황제의 머리 위에서 내렸다.

“지독한 마기로구나... 천마의 무공이 만만치 않겠구나....”

황제의 머리 쪽에 자리한 마기를 온전하게 소멸한 북리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 내고는 황제의 전신을 추궁과혈하며 죽어가는 생기를 일깨웠다.

“크흐흐흐, 너, 너느 누, 누구인가?”

깊고 어두웠던 공간에 갇힌 듯 보고 들은 것을 인지 할 수는 있었으나 천마라는 자의 명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나약한 몸을 저주 하던 황제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담아 입을 열 수 있었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황상께서 난의사에 봉해 주셨던 북리준이라고 하옵니다.”

“지, 짐을 일으켜 달라....”

황제가 북리준의 부축으로 힘겹게 침상 위에 상체를 세워 앉자 마자 북리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고 또 고맙구나.... 짐의 몸이 천마라는 자의 손에 놀아 나다 생을 마칠 줄 알았느니라.”

“일단 기력을 회복 하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제가 추궁과혈로 원기를 회복 시켜 드리겠사오니 잠시 등을 내 주시옵소서.”

북리준이 황제의 등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장심에 건곤무극심공의 기를 운용하여 황제의 등에 가져다 대었다.

< 154. 황실풍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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