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55화 (155/167)

< 155. 타초경사의 계 >

“황제폐하! 제 말을 잘 들어주시옵소서.”

북리준이 추궁과혈로 원기를 회복한 황제가 당장 신녀의 목을 치라고 흥분하는 황제를 향해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황상의 명대로 신녀의 목을 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당장 치거라!”

“지금 당장 신녀의 목을 떨어 뜨린 다면 황상의 속은 잠시 시원해 지시겠지요. 그럼 그 후 이 곤녕전을 둘러싸고 황상과 황후마마를 감시 하고 있는 마교도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황궁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천마의 끄나풀들은 또한 어찌 하시겠습니까?

일순간의 화풀이로 대국을 그르치는 우를 범하지 마시옵소서.”

간곡한 어조로 고하는 북리준의 말에 흥분을 가라 앉힌 황제가 심호흡을 했다.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소신의 계획은 이러하옵니다.”

북리준이 약 한식경에 걸쳐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자 황제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좋구나! 그리 하겠노라.”

“황상께옵서 힘드시겠지만 이지를 회복하시기 전 같이 행동을 해 주시옵소서. 빠른 시간 안에 이 황궁 내에서 암약하는 마교도들을 뿌리 채 뽑아 내겠습니다.”

“그리 하겠다. 북리어사가 나와 황실을 꼭 구해 주기를 바라겠노라.”

****

날이 밝자 마자 유공공과 금대인, 북리준이 급히 황태자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태자전하, 신 유공공이옵니다.”

“오, 드시게!”

황태자가 북리준 일행을 반가이 맞이했다.

‘황태자 전하, 주위를 물려 주시옵소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모두 물렀거라.”

황태자의 말에 처소에 시중을 들던 내관들과 시녀들이 전각을 벗어 나고 황태자를 암중 호위 하던 동창과 금의위 고수들이 자리를 떠났다.

‘자연스럽게 말씀을 나누시지요.’

북리준의 유공공과 금대인에게 전음을 날리고 안개처럼 그 자리에서 흩어져갔다.

‘무슨 꿍꿍이지?’

황태자가 갑자기 들이닥친 유공공과 금대인,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들어선 후 자신의 호위 무사들까지 물리는 것을 본 천마사령대 부대주가 청력을 돋우었다.

‘응, 왜 두 놈이지?’

황태자 외에 세 명이었어야 하는데 자신이 인지 하지 못하는 사이 사라져버린 놈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있...지....’

갑자기 쏟아지는 수마에 엎드린 채 잠에 빠진 천마 사령대 부대주 뒤에 북리준이 손가락을 세운 채 그 자리에서 신형이 지워져갔다.

“한 놈이 이 곳을 벗어나지 않아 재워 놓았습니다.”

“후환을 아예 없애는 것이 낫지 않을까?”

금대인의 말에 북리준이 웃음을 지었다.

“저희가 할 이야기를 다 마친 후 수혈을 풀면 잠시 졸았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직까지 저희가 움직이는 것을 마교도들이 알아 채면 안됩니다.”

기감을 펼쳐 주위 삼장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기막을 펼쳐 소리를 차단 하였다.

“어제 황상의 정신을 일깨우고 왔습니다.”

“오오, 고맙고 또 고맙구나.”

“황상의 머리 속에 천마가 풀어 놓은 마기로 인해 본인의 의지와 반하여 천마가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음에 분해 하셨으나 일거에 마교도들을 황궁에서 일소 하기 위해 아직 정신이 돌아오심을 숨기기로 하였습니다.”

“크흑.... 내가 불민하여 황상께서 고초를 겪으시는구나....”

“황태자 전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고정하시옵소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무는 황태자의 모습에 유공공이 급히 읍소를 하였다.

“제 계획을 황상께서 들으시고 속히 황태자 전하와 유공공, 금대인과 함께 실행을 명하셨습니다.”

북리준이 황상에게 고한 자신의 계획을 세 사람에게 설명을 마치자 황태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북리어사가 또 한번 황상과 본인을 구하는구나.”

“황실 전체를 구함입니다.”

금대인의 말에 황태자가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부터 북리어사의 말대로 풀 숲을 건드려 튀어 오르는 뱀들을 잡으러 가 봅시다.”

황태자의 말이 끝나자 북리준의 전음이 세 사람의 머릿속을 울렸다.

‘염탐하는 놈을 깨우겠습니다.’

북리준의 검지가 펴지며 황태자의 집무실 동편 들보 위에 은신해 있던 천마사령대 부대주의 혈을 무형의 기운이 두드렸다.

‘으응, 내가 잠시 졸았나.... 측간이라도 갔다온 모양이군.’

“그래서 본 태자가 자금성 전체를 지금 이 시간 부로 순시를 하겠으니 세 분은 준비를 해 주시기 바라오.”

“알겠사옵나이다!”

****

“황태자가 자금성 전체를 순시하고 있다?”

“네, 갑자기 유공공과 금대인, 대목장이라는 젊은 사내와 함께 자금성 순시를 하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합니다.”

“천마께서 자리를 비우시니 별 떨거지들이 움찔 거리는구나.”

“순시 뿐 아니라 각 궁과 전각에 속한 인원들에 대한 점검도 명했다고 합니다.”

“황제가 비실 거리니 자신이 황제가 금방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군. 황제나 그 아들놈이나 천마께서 오시면 스러질 존재들이거늘....”

황제가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모습을 내려다 보던 신도설이 한껏 비웃음을 지었다.

“그냥 잠시 착각 속에 살게 놓아 두세요.”

신도설이 자신에게 정중하게 보고 하는 천마사령대주를 향해 명을 내렸다.

“알겠소이다.”

천마사령대주가 방을 나서자 신도설이 표독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황제의 피가 따로 있더냐? 천마께서 내게 이 나라를 주신다고 하셨으니 신도씨가 황상의 씨가 됨이니라. 호호호호호호!”

신도설이 요사스런 웃음을 지으며 황제의 침전을 나서자 눈을 감고 있던 황제가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다.

‘요사스러운 것! 곧 네 년의 목이 땅에 떨어질 것이니라.’

****

“태화전 내 속한 모든 내관과 궁녀, 군속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았느냐?”

황태자의 근엄한 목소리가 태화전 앞 문무백관이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거대한 광장을 울렸다.

“네, 그렇사옵나이다.”

내관과 궁녀를 총괄하는 태감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모두들 청황실에 종사하느라 노고가 크구나.”

황태자가 모아둔 내관과 궁녀, 숙수 등 약 오백명이 넘는 인원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줄 사이로 북리준과 한 내관이 책자 하나를 들고 누비기 시작했다.

“대 청조의 기강이 해이해진 듯 하여 본 태자가 기강을 바로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음이니라.”

‘지랄을 하세요. 곧 신교 천하가 오면 니네 황실은 개박살이 날거라구. 이게 뭔 지랄이래...’

머리를 숙이고 황태자 욕을 퍼 붓고 있던 신교의 첩자인 막사동이 숙인 머리 아래로 보이는 신발을 보며 살짝 고개를 들었다.

“고생이 많군!”

멀쩡하게 잘 생긴 사내가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자 그 뒤를 따르는 태화전 내관 총수의 눈에 노여움이 떠올랐다.

‘뭐, 뭐야? 왜 저런 눈깔로 날 보는 거야?’

무엇인가를 책자에 적은 내관 총수가 찬바람이 불도록 쌩 하니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막사동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 쌔한 기분은 뭐지?’

저 위에서 뭐라 뭐라 떠들고 있던 황태자의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자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 보던 내관 총수의 얼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태화전을 시작으로 중화전, 보화전의 외조를 돌고 난 후 내정인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에 이르렀다.

“멈추시지오.”

황태자 일행이 마지막으로 황제가 기거하는 곤녕궁에 이르자 신녀와 천마사령대가 앞을 가로 막았다.

“내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느냐?”

“받았사옵나이다. 허나 이 곳은 황태자의 부황이신 황제폐하가 거하시는 곳이옵니다. 이만 옥보를 멈추시지요.”

마교의 신녀이며 대제사장인 신도설이 신교 제사장의 복장으로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곤녕궁 내 근무하는 내관과 궁녀, 황상의 호위군관 등은 당장 나와 도열하지 못할까?”

추상같은 음성으로 호령하는 황태자를 보며 신도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얘가 뭘 잘 못 먹었나? 갑자기 왜 이 난리를....’

“태상황께서 돌아 오시면 그 진노를 어찌 감당 하시려는지요?”

“다 본 태자가 감당할 터이니 당장 내 명을 시행하거라.”

황제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천마의 부재로 황제를 써 먹을 수 없음에 신도설이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하하, 감히 본 태자를 협박하는 것인가. 신녀?”

“어찌 감히....”

“황상의 용안을 뵌 지도 육개월이 넘었다. 곤녕궁 내 식솔들을 단속 후 황상을 뵙겠다.”

“아니되옵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신녀의 말에 황태자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무어라? 자식이 아비를 뵙겠다는데 신녀가 막겠다는 것인가?”

‘이 자식이 천마님이 계실때는 숨도 안 쉬고 있더니 정녕 미친 것 인가?’

“황상께옵서 기가 허하시어 침상에 계시옵니다.”

“황상께옵서? 당장 어의를 들라 이르라.”

“어의는 왔다 갔고 지금은 숙면을 취하고 계십니다.”

“알겠노라. 그럼 곤녕궁 내 모든 식솔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모아 놓거라. 시간이 꽤 걸릴 것인즉 그 후에 황상을 뵙겠노라.”

‘하아, 이 놈이 정녕 미쳤구나. 어차피 재워 놓았으니 내 명이 없으면 깨지 못한다. 황제의 자는 얼굴이나 마음껏 보고 가거라.’

“알겠사옵나이다. 준비 하겠습니다.”

곤녕궁 앞 대전에 약 사백의 식솔들과 호위 무사들이 도열해 있고 그 사이를 북리준이 예의 내관 총수와 함께 거닐기 시작 했다.

‘저 자식이....!’

멀쩡하게 잘 생긴 사내 놈이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 자들의 면면을 본 신녀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내관 총수가 차가운 눈빛으로 사내가 어깨를 두드리는 자들의 이름을 적는 모습을 보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고 바로 옆 천마사령대주에게 전음을 날렸다.

‘저 놈, 우리 신교도들을 골라내고 있음이에요.’

‘놈이 이 곳을 벗어나는 순간 신녀의 눈에 안 보이도록 치우겠소이다.’

두 사람이 눈을 뒤룩 거리며 전음을 나누는 모습을 저 멀리에서 지켜보던 유공공과 금대인이 웃음을 지었다.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곤녕궁 안에는 마교도들이 흘러 넘치는구나.’

북리준이 두 세명 당 한번 꼴로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에 유공공이 혀를 찼다.

‘북리어사가 기연을 만나 마기를 가진 자들을 저리 구분해 낼 수 있으니 조만간 황궁 내 마교도들을 다 걷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북리 어사의 말대로 풀 숲을 건드렸으니 뱀들이 튀어 오르겠지.’

북리준이 모든 곤녕궁 내 식솔들의 점검을 마치고 저 위에 오연하게 서 있는 황태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을 뵈러 가겠다. 길을 열거라.”

“따르시지요.”

신도설이 이를 악 다문채 길을 열자 그 뒤를 천마사령대주가 따르고 황태자 일행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황상께서 어의의 처방을 받으시고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용안을 뵈시고 그만 물러나셨으면 합니다.”

“자식된 도리로 어찌 부황이 병환이 드셨는데 물러간단 말이냐? 오늘은 부황의 침전 옆에서 밤을 지새울 터이니 그리 알라.”

‘밤 새 지랄을 해 보거라. 천마님의 마기에 침습된 황제놈이 깨어 날 일은 전무하다...’

“황태자의 뜻대로 하옵소서....”

‘천마께서 돌아오시면 이 놈을 먼저 폐위 시켜달라 청을 넣어야 겠군. 네 놈이 스스로 명을 재촉한 것이니 원망은 말거라.’

신도설이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채 황제의 침전을 벗어나며 같이 움직이는 천마사령대주에게 전음을 날렸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 지 잘 감시해 주세요.’

‘알겠소이다!’

천마사령대주가 침전을 벗어나며 동쪽과 남쪽 들보 위에 은신하고 있던 사령대원들에게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신녀와 천마사령대주가 침전을 나서고 문이 닫히자 마자 황태자가 황제의 침상으로 다가가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자신의 부황을 불렀다.

“황상, 저 청이옵니다.”

그 때 은신하고 있는 사령대원들의 시선이 황제의 침상에 쏠려 있을 때 뒤쪽에 서 있던 북리준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져갔다.

“잠재웠습니다.”

북리준의 신형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입을 열자 죽은 듯 잠자고 있던 황제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 155. 타초경사의 계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