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남검귀-157화 (157/167)

< 157. 은혜를 입었노라 >

“모든 조치를 다 끝냈습니다.”

태화전의 내관 부총수 였던 소전이 신녀 신도설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동창과 금의위에 끌려갔던 자들을 제외하고 몇 이나 모았느냐?”

“저를 포함 하여 칠백이십오명입니다.”

“많이도 집어 넣었구나....”

광명좌우사가 천마의 명으로 곳곳에 신교도들을 우겨 넣었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실제 이만한 인원이 황궁에 들어와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

“넉넉잡고 열흘만 버티거라. 천마께서 돌아오시면 황태자부터 동창, 금의위 까지 다 쓸어 버릴 것이니라.”

“신녀님께서 빠른 조치를 해 주셔서 교도들이 한결 마음을 놓고 있습니다.”

신녀 신도설의 명으로 곤녕궁 내 신교도들이 아닌 내관, 나인, 숙수들을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고 소전이 가져다 준 명단의 교도들을 곤녕궁으로 다 불러 모아 놓았다.

“소전 네가 교도들을 잘 다독이거라.”

“알겠습니다.”

소전이 물러가고 그 뒤에 천마사령대 조장인 염평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주와 부대주, 그리고 십인의 사령대원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수색을 멈추어라. 천마께서 오실 때 까지 너희 천마사령대 인원은 황제의 침전을 물샐 틈 없이 경비 하는 것에만 전력을 쏟거라.”

“저희들 만으로 되겠사옵니까?”

자신의 상관들인 대주와 부대주의 실종으로 불안한 심정으로 염평이 입을 열었다.

“황제가 우리 손아귀에 있음이니 함부로 이 곳을 공격하거나 섣부른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천마께서 오시면 다 해결 될 일이니 황제의 경비에만 신경을 쓰거라.”

“알겠습니다.”

염평이 밖으로 나서 십인의 천마사령대원들을 데리고 황제의 침전으로 향했다.

“천마께서 부재 중이신 시점에 도발을 했다는 것은 나를 아주 우습게 보았다는 거지. 밀영!”

신녀의 부름에 집무실 한 켠의 공간이 이지러지더니 흑의 무복을 입은 인영이 나타났다.

“추혼단을 불러 들여라.”

말없이 허리를 숙인 밀영이라는 흑의무복의 사내가 다시 그 자리에서 지워져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광명우사가 자금성 지근거리에 대기해 놓은 추혼단을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군.”

천마사령대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상황에서 천마가 돌아오기 까지 버티기에 부족한 무력을 보충을 명한 신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마께서 돌아오시면 네 놈들은 다 끝장이다.”

****

밀영이라 불리운 흑영이 신녀가 있는 전각을 벗어나 자금성 밖으로 빠져 나가는 뒤를 북리준이 귀신같은 신법으로 따라 붙었다.

약 한 식경 정도 달렸을까? 고관대작들이 기거하는 부촌의 한 거대한 장원 앞에 선 흑영이 문을 일정한 간격으로 문을 두드렸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가슴 오른편에 追魂(추혼)이라는 글이 원안에 든 무복을 입은 사내가 밀영을 안으로 들여 보냈다.

“신녀께서 자금성 안으로 들라 명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마교 무력 부대 중 수위에 꼽히는 추혼단의 단주 야운평이 태사의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천마사령대주와 부대주, 사령대원들이 연이어 실종 되었고 자금성 내 신교도들이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에게 체포 되고 있습니다.

이에 신녀께서 곤녕궁에 신교도들을 다 모으시고 추혼단을 불러 들이라 명하셨습니다.”

“천마께서 자리를 비우신 시점에 공교롭구나. 준비 하거라. 자금성으로 들어간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어느새 밀영의 뒤에 선 북리준이 일월신검을 든 채 뒷짐을 지고는 싱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꼬리를 달고 왔구나.”

“죄송합니다.”

밀영이 급히 고개를 숙이고 죄를 청하자 추혼단주가 뒤에 서 있던 부단주에게 입을 열었다.

“조력자가 있는지 확인하라.”

“그럴 필요 없다. 혼자 왔거든!”

“참으로 광오한 놈이로구나. 네 놈이 지금 어디에 들어 왔는지 알고나 하는 이야기인가?”

단신으로 신교 오대 무력집단의 하나인 추혼단 백인이 드글 거리는 장원 안에 홀로 쳐 들어온 정신 나간 놈을 향해 야운평이 비웃음을 베어물었다.

“추혼단인가 뭔가 하는 떨거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고 왔는데....”

“놈을 갈기 갈기 찢어 놓거라.”

단주의 명에 부단주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어슬렁 거리는 걸음으로 북리준의 앞에 섰다.

“구경들 하거라. 놈을 찢고 자금성으로 움직일 것이다.”

부단주가 어느새 잘생긴 사내놈과 자신을 둘러싼 추혼단원들을 보며 검을 빙글 돌렸다.

‘파아앗’

땅을 박차고 날아 오른 부단주의 검이 북리준을 양단하기 위해 기쾌한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응?’

자신의 검에 갈라졌어야 할 사내의 신형이 쑤욱 공간을 가르며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미간이 뜨끔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려 하는 때에 ‘푸화아아학’ 두 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다.

“뭐, 뭐야?”

심드렁한 표정으로 부단주의 검에 양단될 적을 바라 보던 추혼단원들이 혼비백산하며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한 가닥 하는 놈이로구나...”

단 일검에 부단주가 둘로 갈라져 버림에 침중한 어조로 야운평이 자신의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놈씩 오면 시간이 걸리니 한꺼번에 다 와라.”

“이런 시건방진....”

북리준의 에워싸고 있던 추혼단원들이 들썩거리자 태사의에서 내려온 추혼단주가 손을 들었다.

“네 놈의 만용에 찬사를 보내주마. 정히 네놈이 이승과 작별하고 싶어 하니 그 소원을 들어주마. 쳐라!”

추혼단주의 명에 백여명의 추혼단원들이 일제히 적을 잘라 내기 위해 신형을 띄워 에워싸자 그 안에서 ‘시이이이잉 위이이잉’ 기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북리준의 양 손에서 솟아 오른 일월쌍륜에 수 많은 추혼단원들이 찢겨 나가고 번쩍이는 일월신검의 궤적에 걸린 마교도들의 검이고 도고 팔다리가 사정없이 갈라져갔다.

공중에 비산하는 피보라와 팔다리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내릴 무렵 오른팔과 왼다리가 날아간 추혼단주만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서 버르적 거렸다.

“이, 이게.....”

“잘 가거라!”

원을 그린 일월신검의 궤적에 걸린 추혼단주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사, 사신이다....’

장원 숲 구석에 겨우 몸을 숨긴 밀영이 귀식대법을 시전 한 채 자신이 만든 피바다 위에 서 있는 북리준을 훔쳐 보았다.

‘휘리리릭’

추혼단원들의 피를 한껏 머금은 검을 털어 내고 검집에 수납한 젊은 사내가 신형을 돌려 나가자 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다행히 안 들...커허어억’

신형을 돌리며 성의 없이 툭 털어낸 오른손에서 뻗어 나온 일륜이 숨어 있던 밀영의 심장을 스쳐 지나갔다.

“아직은 몰라야 한다....”

이각이 채 안 된 시간에 백여명의 추혼단원들을 도륙한 북리준이 밖으로 나서며 열려진 문을 닫고는 자금성으로 신형을 날렸다.

“올 때가 지났거늘.....”

신도설이 추혼단이 곤녕궁에 당도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에 자신의 손톱을 깨물었다.

“오겠지.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을려고...”

스스로 다독이며 기분전환을 위해 자신을 기다리는 성노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준비는 다 되었네.”

유공공이 피비린내를 물씬 풍기고 들어선 북리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황후께서는...?”

“황태자 전하께서 기별을 넣어 방금 전 곤녕궁을 벗어 나셨네.”

“동창과 금의위 위사 오백과 황궁 내 황상 직속 부대인 정황기, 양황기 친위부대 일천이 곤녕궁 전체를 에워쌌다네.”

유공공과 금의위의 말에 북리준이 피범벅이 된 옷을 내려다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을 갈아 입고 황상을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제가 황제폐하를 모시고 나오면 바로 군을 움직이시면 됩니다.”

“부탁하네!”

찜찜한 기분을 한바탕 정사로 풀어낸 신녀가 황제의 침전으로 향했다.

“황제가 내 손아귀에 있으니 천마께서 오시기 전까지 수성만 하면 되는 것이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별일 없을 거라 스스로 다독이던 신도설이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피 내음?”

황제의 침전에 다가갈수록 짙어지는 피 비린내에 신도설이 땅을 박차고 침전의 문을 열어 젖혔다.

“이, 이런.....”

텅 빈 황제의 침상과 그 주위에 널부러져 죽음을 맞이한 천마사령대원들의 모습에 신녀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어떻게.... 천마께서 이 침전을 벗어나면 머리가 터져 버린다고 했는데.....”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 가던 신도설의 눈에 저 편 벽에 검을 들고 자신을 쏘아보는 황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네 이년!”

“호호호, 그럼 그렇지. 천마께서 하신 일인데.... 그런데 어떻게 정신이 돌아온거지?”

신도설이 황제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혼비백산하다 침전을 떠나지 않고 있는 황제를 발견하고는 광소를 터뜨렸다.

“황상.... 무리하지 마시고 이리로 오시지요. 천마께서 황상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시도록 조치를 취해 주실 것입니다.”

천천히 검을 든 채 자신에게 진득한 살기를 피워 올리며 다가오는 황제를 보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상의 그 무딘 검으로 내 목을 취하겠다는 건가요?”

“내가 친히 네 년의 목을 취하겠노라.”

“호호호호, 밤이 길면 꿈도 긴 법이지요. 그만 꿈을 깨시지요......으응?”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지풍에 마혈을 점혈당한 신도설이 그 자리에서 굳어져갔다.

“이, 이익.....혈도를 풀어라.... 나를 해한다면 천마께서 이 황궁을 피로 씻을 것임이니라....”

온 몸이 굳어 눈을 뒤룩 거리며 표독스런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신도설의 눈 앞에 대목장이라고 불리웠던 사내가 들어왔다.

“천마가 황궁에 신경 쓸 틈이 없을 것이다. 넌 저승에 먼저가 천마를 기다리거라.”

북리준이 뒤로 물러나자 성난 표정의 황제가 천천히 검을 치켜 들었다.

“아아악, 나, 나를 해하면 천마께서 너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실 것이다. 명심 하....컥!”

황제의 검이 수평으로 궤적을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진 표독스런 표정의 머리가 툭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감히 본황을 가지고 놀려 들다니!”

“황상! 제 등에 업히시지요. 황상께서 이 곳을 벗어나시면 대계가 시작 될 것입니다.”

북리준이 내민 등에 업힌 황제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은혜를 입었노라.....”

“북리어사가 황상을 모시고 무사히 나왔습니다.”

유검패의 보고에 유공공과 금대인이 자신들의 검을 뽑아 들었다.

“곤녕궁 안에 있는 자들 중 마교도가 아닌 자들은 하나도 없다. 단 한명도 살려 두어서는 안되느니라.”

자신의 앞에 도열해 있는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존명!”

동창과 금의위 무복을 입은 위사들이 일제히 곤녕궁 경내로 검과 도를 든 채 날아 들고 잠시 후 하늘을 찌르는 듯한 비명성과 함께 진한 피비린내가 자금성을 덮어 나갔다.

****

감숙성 내 마교 감숙 지부!

“천무맹의 떨거지들은?”

“신교도들과 저희 교에 귀의한 문파들이 이잡듯이 뒤지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 올 것입니다.”

감숙지부장인 귀령검 도자인이 흡족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콰아아앙’

무엇인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병장기가 부딪는 소리가 잠시 나는 듯 하더니 다시 조용해 졌다.

“무슨 일인지 알아 보고 오너라.”

그 때 밖에서 누군가의 쩌렁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교 감숙지부장은 나와서 목을 길게 늘어뜨려라. 내 검이 마교도들의 피에 목말라 있느니라.”

“어떤 미친 놈이?”

귀령검 도자인이 자신의 검을 들고 밖으로 나서자 약 열명의 적도들이 오백여명의 감숙지부 신교 무사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 너는....?”

“오, 날 알아 보는 놈이라면 그리 급이 낮지는 않겠구나?”

천무맹의 맹주이며 무림인들에게 절대검존이라 불리웠던 남궁휘가 호기롭게 자신의 검을 들었다.

< 157. 은혜를 입었노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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