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한밤의 불청객 >
“엥? 그럼 우리 차례가 돌아오지도 않겠네?”
“그러게. 화포 일만문으로 초토화 시키고 오십만 대군이 밀고 들어 가면 우리가 낄 자리도 없겠구만.”
과천풍과 관자룡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주군, 무슨 걱정이라도....”
공야무가 침중해진 안색의 북리준을 보며 빈 술잔을 채워 주었다.
“천마라는 자가 이리 무모한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무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냥 도망가기에는 자존심 상하고 할 수 있을 때 까지 들이 박아 보자... 뭐 이런 거 아닐까요?”
냉유성의 말에 일행들이 그럴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출전을 위해 준비를 해 주세요. 전 황궁으로 들어 갑니다.”
“형아, 나도 같이 가! 황궁 보고 싶어.”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북리준의 손을 잡고 이야기 하는 공야휘를 보며 북리준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 나왔다.
“휘아를 제가 데리고 다녀 오겠습니다. 공야노야, 괜찮겠지요?”
“주군이 원하시면 그리 하십시오. 저 놈이 혹여 황궁에서 실수를 범할까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만...”
“휘아는 형아 말 잘 들을꺼다.”
“그래, 이 형의 말만 잘 들으면 자금성 구경을 시켜줄게.”
“나도 보고 싶기는 하지만 쩝....”
과천풍의 말에 냉유성이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넌 오문에서 걸릴 거야. 자금성은 너 같이 산도적 같이 생긴 사람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
“미친놈! 너 같이 기생오래비 같이 생긴 놈이야말로 방문 사절이란다.”
두 사람의 투닥 거림을 보며 좌중의 인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술잔을 비워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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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성 내 울창한 밀림!
‘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
공중에 둥실 떠 있는 천마의 발밑에 수만의 해골과 갓 죽은 시체들, 맹수들의 사체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에 두려운 표정으로 엎드려 절하고 있는 신강 밀림의 원주민들과 전사들, 맹수들의 머리 위로 음울한 음성이 떨어져 내렸다.
“따르라....”
이에 십만이 훨씬 넘는 시체와 동물의 사체들과 원주민 전사들, 신강 밀림에 서식하는 맹수들이 저 앞에 둥실 날아가는 천마를 따라 공허한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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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군놈들과 정사연합맹 놈들이 이 곳으로 득의양양하게 들어오다 기겁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기분이 좋단 말이야.”
광명우사가 연신 술잔을 비우는 앞에 조용히 앉아 있던 광명 좌사가 입을 열었다.
“천마께서 또 나가셨는가?”
“그렇다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병력을 데려 오실지 기대가 만빵이라네.”
천마가 한번 외유를 나갔다 올 때 마다 수만의 시체병들을 데려와 저 아래 계곡에 차곡 차곡 쟁여 놓는 모습을 본 광명 좌사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잘 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화의 불로 세상을 정화 하겠다는 신교의 이념에 반하여 망자의 육체를 억지로 불러 일으켜 세우고 천 명의 양민과 자신의 태손자까지 집어 삼킨 천마의 탐욕스런 모습에 좌사의 시름은 깊어져만 갔다.
“뭔 생각을 그리 하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좋아라 하는 광명우사를 보며 좌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는 좋겠네, 아무 생각이 없어서....”
“골 아프게 뭘 생각해? 우리가 무조건 이긴 후에 다가올 신교 천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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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중원에 다녀 오겠다.”
광명좌우사와 마군사를 갑자기 부른 천마가 툭 하니 말을 내뱉었다.
“홀로 행도 하시는 것 입니까?”
우사의 말에 천마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머리에 집어 넣은 암혼마기를 누가 제거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알겠사옵니다. 다녀 오실 동안 성전에 대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사옵니다.”
마군사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천마가 말을 마치고 ‘스스스슷’ 신형이 그 자리에서 지워져 가는 모습을 보고 우사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천마님의 무위는 정말 상상을 못하겠군. 신교 역사 이래 천마님의 경지에 다다른 천마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나도 그게 걱정일세.... 사람이 신이 되려고 하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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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시게!”
북리준이 공야휘와 함께 자금성 안에 들어 유공공과 금대인을 만났다.
“여기는 제 의제인 공야휘라고 합니다.”
“반갑네, 공야소협!”
“나 소협이 아니야. 공야휘야 공야휘!”
유공공과 금대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북리준이 설명을 했다.
“호오, 금강불괴라....”
“그 과정에 약간 정신이 어려진거라고?”
“나 어리지 않아. 착한 거야.”
유공공과 금대인이 천진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공야휘를 웃으면서 바라 보았다.
“황상께옵서는 무탈 하신지요?”
“아주 좋다고 하시네.”
“황상을 한번 뵐 수 있을런지요? 황상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금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황상께옵서 북리어사가 언제 오는지 수시로 묻곤 하셨네. 바로 기별을 넣겠네.”
금대인이 방을 나서자 유공공이 북리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사연합맹의 무림 고수들도 십만대산으로 향하는가?”
“네, 청조의 오십만 대군이 십만대산으로 진군하는 시기에 맞추어 같이 움직일 예정입니다.”
“아마도 무림인들이 손 쓸 일이 없을 것이네. 화포 일만문으로 초토화 시키고 오십만 대군이 그 와중에 살아남은 적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추살할 것이네.”
“저도 유공공님의 말씀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변수가 있을 수가 없지 않는가? 뭘 걱정 하시는 겐가?”
“천마라는 자가 이렇게 무모하게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자네의 기우일 뿐일세.”
그 때 금대인이 방으로 들어와 손짓을 했다.
“바로 들라 하시네.”
“휘아에게 사람을 하나 붙여 자금성 구경을 부탁 드립니다.”
“걱정말게. 마침 검패가 들어와 있으니 같이 움직이게 하겠네.”
공야휘를 유검패와 함께 자금성 구경을 하게끔 조치를 취하고 유공공, 금대인과 함께 황제를 보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상께 접근 하려면 일천명의 황궁 고수들을 뚫어야 하네.”
황제의 처소인 곤녕궁을 사겹 오겹으로 포위하고 있는 동창과 금의위, 팔기군의 황궁 고수들을 지나 황실 친위대가 포진해 있는 최후의 방어선을 통과한 후 황제가 있는 어전에 당도 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북리준이 예를 표하자 어좌에 앉아 있던 황제의 얼굴에 온기가 감돌았다.
“오, 왔는가? 왜 이리 짐에게 소홀한 것인가?”
“죄송하옵니다. 강호에 몸 담은 무부 인지라..”
“이리 올라 오너라.”
황제가 손짓을 하며 자신의 옆에 북리준을 앉혔다.
“마교를 멸하고 난 후 북리어사에게 내 큰 상을 준비하고 있음이니 기대 하거라.”
“황송하옵니다. 댓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옵니다.”
“허허, 북리어사가 이리 나오니 짐이 더더욱 주고 싶구나.”
황제가 두런 두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저 밑에서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유공공과 금대인이 서로 전음을 주고 받았다.
‘북리어사가 저희 상전이 될 확률이 무지 높지요?’
‘말하면 입만 아프다. 앞으로 잘 보이도록 하자꾸나.’
“황상의 환후를 보려 합니다. 잠시 눈을 감아 주시겠나이까?”
“알았노라!”
황제가 스스럼 없이 눈을 감자 북리준의 오른손이 펴지며 황제의 머리 위 두 치 정도에 머물렀다.
‘후우우우우우웅’
정순한 건곤무극심기가 황제의 머리 한 켠에 마기가 자리하고 있던 곳을 세밀하게 훑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기가 완전히 제거 되었구나.’
눈을 뜬 북리준이 손을 거두며 황제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되옵니다.”
“아주 기분이 좋구나. 북리어사의 손에서 나오는 기운이 짐의 머리를 아주 맑게 해주는구나.”
“다행이 황상의 머리에 자리하고 있던 마기는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혹여라고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하시라도 저를 불러 주시옵소서.”
곤녕궁을 나온 북리준이 유공공과 금대인에게 부탁을 했다.
“당분간 황상의 주변에 대기 할 수 있게 휘아와 제게 묵을 수 있는 처소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여 천마라는 자가 다시 황상께 마수를 뻗칠지 대비를 하고자 합니다.”
“북리어사가 그래 준다면 우리는 바랄 것이 없네.”
유공공과 금대인이 곤녕궁 바로 옆에 북리준과 공야휘의 처소를 마련해 주고 그 밤에 조촐한 환영연을 열어 주었다.
“십만대산에 오십만 대군과 일만 화포가 언제쯤 도달 할런지요?”
함께 한 유검패의 물음에 유공공이 대답을 했다.
“넉넉잡고 이개월이면 될 듯 하다.”
“마교와의 결전이 끝나고 나면 북리어사님과 함께 해남에 내려가고 싶습니다.”
“안된다. 이번만은 네 놈이 양보하거라.”
“의부님....”
“동창에서 검패 너의 자리를 찾아야 네 의부님도 마음이 편하실 거 아니냐? 이번에는 네가 고집을 꺾거라.”
금대인이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유공공의 편에서 입을 열었다.
“검패! 나중에 조정의 일에서 은퇴하고 나면 그 때 내려오시게. 유공공님의 입장도 이해해야지.”
북리준이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유검패가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의 의부를 바라 보았다.
“의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북리어사와 충분히 무림 생활을 겪었으니 이를 바탕으로 황상을 잘 모시는 것이 네 할 일이니라.”
“북리어사는 황상께서 관직을 내리신다면 받으실 생각이신가?”
금대인의 질문에 유공공도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마교의 일이 잘 마무리 되면 저는 해남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오순도순 살 예정입니다.”
“허허, 사람이 너무 욕심이 없음이야....”
“나도 형아랑 같이 갈꺼야!”
옆에서 연신 생전 처음 마셔보는 고급술을 연신 들이키던 공야휘가 불쑥 끼어 들었다.
“당연히 휘아도 같이 가야지.”
“하아, 공야소협이 부럽습니다...”
유검패가 진정 부럽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잔을 비웠다.
유공공과 금대인, 유검패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고 생전 처음 마셔보는 고급술에 취한 공야휘의 얕은 코고는 소리에 북리준이 웃으며 침상에 몸을 눕혔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이, 이건.....”
북리준이 쏜살같이 방을 벗어나 황제가 기거하는 곤녕궁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 마기의 주인.... 천마가 돌아왔다!”
자신이 황제의 머리에서 지웠던 마기가 자금성 전체에 진하게 드리워지는 아찔한 느낌에 서둘러 땅을 박찼다.
“이런....”
곤녕궁 가장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동창과 금의위들이 터지고 찢긴 시신들에서 터져 나온 피가 내를 이루어 흘러내리고 자욱한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급하다....”
북리준이 신형을 날리는 길목마다 찢기고 터진 시체들이 줄지어 있음을 보고 속도를 배가 하였다.
“놈, 멈추어라!”
곤녕궁의 마지막 방어선에 모여든 황실 친위대와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 자신들의 앞에 오연히 서 있는 천마를 향해 달려 들었다.
‘퍼버버벅 퍼퍽’
뒷짐을 진 천마에게 달려든 동창과 금의위 위사 다섯이 천마와의 일장 거리에서 그대로 터져 나갔다.
“이, 이게 무슨 무공이....”
황실친위대주가 속수무책 터져 나가는 황궁고수들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 162. 한밤의 불청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