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전쟁 개시 >
“휘아의 금강불괴가 단 일검에 깨졌다고....”
공야무의 중얼거림에 과천풍이 되물었다.
“휘아의 금강불괴라면 어느 정도 강도로 보면 될까?”
“우리 중에 휘아의 금강불괴를 깰 자는 없네. 주군 정도만이 깰 수 있을까? 그런데, 천마라는 자는 주군 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 되는 거지.”
저 해남에서 북리준과 같이 올라온 육인의 절대고수들이 침중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었다.
“곧 마교와의 최후 결전이 시작 될 터인데 주군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재수 없는 소리! 조만간 정신을 차리실 거야.”
패력천강궁 냉유성의 걱정에 나백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그러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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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어사와 공야소협은 아직 정신이 안 돌아 온것인가?”
황태자의 안타까운 물음에 유공공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이옵니다....”
“허어, 이번에도 부황의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네. 황실 비고를 열어 모든 약재를 다 쏟아 부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정신이 돌아오게 하시게.”
“알겠사옵나이다! 황상께옵서는 차도가 있으신지요?”
“고막이 상하시고 천마라는 자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계시다네. 도대체 그 천마라는 자의 무위가 어느 정도 였기에.....?”
유공공과 금대인이 북리준와 천마와의 일전을 상기하고는 몸서리를 쳤다.
“인간이 아니었사옵나이다....”
금대인의 떨리는 목소리에 황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오십만 대군과 일만문의 화포 앞에서는 찢어지겠지....”
“당연하옵니다. 필시 오십만 팔기군과 정사무림연합의 무림인들이 승전보를 울려 오기를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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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수석어의와 십인의 휘하 어의들이 공야휘를 둘러싸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다시 한번 해보시게.”
한 어의가 두꺼운 쇠침에 실을 꿰어 벌어진 공야휘의 가슴 상처를 꿰매기 위해 힘을 주었다.
“또?”
황궁에서 살을 꿰매기 위한 가장 굵은 바늘이 또 휘어지며 황궁수석어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황궁 비상 금창약을 듬뿍 발라 붕대로 감아 놓으시게. 우리 같은 어의들이 꿰맬 수 있는 상처가 아니네. 최소 이갑자 이상의 고수가 강기를 이용해야 꿰맬 수 있을 것이네.”
세 명의 어의가 황궁의 비상 금창약을 정성스럽게 발라 붕대를 힘있게 감아 내는 모습을 보고는 수석어의가 신형을 돌렸다.
“이 환자는 도무지 모르겠군. 맥도 안 잡히고 숨도 최소한의 횟수로만 쉬고 가사상태에 빠져 어찌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황상과 황태자께서 북리어사가 깨어 날 수 있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익히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 의술의 한계 너머의 일일세....”
황궁수석어의가 전신의 기혈을 북돋우기 위한 시침과 뜸을 시술하고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었다.
“진인사대천명일세.... 오늘은 이만 하게나들. 자네는 환자들의 기식에 혼을 불어 넣고 고통을 경감케 할 만양초로 만든 초를 태우시게.”
황궁 수석 어의가 방을 빠져 나가고 말단 어의가 황실 비고에서 가지고 나온 만양초로 만든 초에 불을 붙이고는 긴 한숨과 함께 방을 나섰다.
‘크으으윽’
공야휘가 거친 숨을 내뱉다 방안을 떠도는 만양초의 기운에 숨이 잦아 들었다.
‘또 왔구나.....’
커다란 희디흰 대리석 탁자에 마주 앉은 쌍괴가 다가오는 북리준을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큰일 났습니다.... 두 분 사부님의 마지막 유진인 건곤무극검륜삼절의 두 초식이 깨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무적의 초식은 없느니라....’
지괴가 손에 든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제자가 불민하여 건곤무극검륜삼절의 마지막 초식인 건곤태극무허검륜은 제자의 손에 도무지 닿지를 않사옵니다.’
‘지금 까지 아주 잘 해왔다. 네 놈이 최선을 다 했음에도 안되는 것을 우리라고 어찌 할꼬?’
천괴가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북리준을 바라 보았다.
‘천마를 막을 자는 저 밖에 없을진대 그 자를 막지 못한다면 저를 믿고 계신 두 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두 분의 업을 해소 못할까 두렵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네가 최선을 다했음에 안된다면 그도 다 우리의 업일 뿐이니라.’
‘네가 우리의 말을 이해하고 건곤태극무허검륜을 시전 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역천혈마지체의 마주를 이길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제자 죽을 지언정 최선을 다해 보고 싶습니다.’
북리준이 무릎을 꿇고는 간절한 어조로 천산쌍괴를 바라 보았다.
‘건이란 무엇인가? 이는 방위로 동을 가리키고 하늘을 뜻함이요.’
‘곤이란 무엇인가? 이는 방위로 서를 가리키고 땅을 뜻함이라.’
천괴와 지괴가 무릎 꿇은 북리준을 향해 번갈아 입을 열었다.
‘건곤이라 함은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공간이요.’
‘이는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광대무변의 공간을 뜻함이다.’
북리준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천산쌍괴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태극은 무엇인가? 음양과 결합하여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근원이다.’
‘태극은 무극과 같아 혼돈 즉 무의 상태이기에 만물이 시작되는 곳이다. 원인 무극이 음양으로 분리되어 이를 태극이라 한다.’
‘태극은 중용이며 공존이고 안락이다.’
‘사무여한의 태극형상은 안락의 공존인데 몸은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은 몸에 의지, 몸과 마음이 공존하며 둘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음양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둘이니라.’
북리준의 뇌리에 쏟아져 들어오는 의미심장한 심어들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무허란 무엇인가? 실체가 없고 헛됨도 없음이니라.’
‘법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일으킨 생각을 하나로 묶어 정해 놓은 것 일뿐! 그 법 자체도 여여한 하나의 존재일 뿐, 거기에 실다움도 헛됨도 없슴이니 이것이 곧 무아이니라.’
커다란 깨달음에 해맑은 미소를 가득 머금은 북리준의 얼굴을 보며 천괴가 입을 열었다.
‘너나 우리나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천명을 기다릴 뿐.... 닿지 못했다고 아쉬워 말고 그냥 그대로 흘러가게 두거라....’
‘우리는 너를 만나게 해 준 하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 한다. 우리의 업은 우리의 것일 뿐,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북리준이 눈을 뜨고 감사를 표하려 할 때 자신의 신형이 훅 밑으로 꺼지고 저 위에서 천괴와 지괴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북리준이 북받친 울음을 터뜨렸다.
‘흐흐흐흐흑 흐흐흑’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흘러내린 맑은 눈물을 느끼며 북리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
“휴우.....”
북리준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방금 천괴와 지괴가 던져준 마지막 화두를 참오하기 시작했다.
‘콰카카카카카 쿠르르르르릉’
북리준과 공야휘가 누워 있던 방 전체가 우르르 굉음을 내며 흔들리고 하단전에서 일어난 일양이 거침없이 기경팔맥을 치달아 돌다 심장에 모이고 중단전에 이른 이양이 다시 기경팔맥으 휘돌아 뇌로 모여 삼양이 되어 떠올랐다.
‘우르르르르릉’
세 개의 양이 하나로 모여 백회혈에 치달으니 ‘세 개의 꽃이 정수리에 모인다.’는 삼화취정에 이르렀다.
‘둥실’
세 개의 아름답고 찬란한 꽃 세송이가 피어오르고 곧이어 삼화취정을 이룬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의 삼양이 전신을 치달아 돌자 북리준의 칠공에서 뿜어져 나온 아름다운 오색찬란한 기운이 백회혈 위에서 다섯 개의 고리가 서로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삼화취정에 이어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른 북리준의 얼굴에 진리란 언어를 초월하여 이른다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떠올랐다.
다섯 개의 영롱한 기의 고리가 북리준의 코와 입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고 번쩍 떠진 북리준의 눈에서 금광이 뻗어 나왔다.
“그래....진인사대천명이지요....”
잔잔한 미소를 지은 북리준이 자리에서 일어서 고통에 겨운 숨을 내쉬고 있는 공야휘에게 다가갔다.
북리준의 손이 한번 저어지자 어의들이 꽁꽁 싸맨 붕대가 스르륵 풀어지며 갈라진 공야휘의 가슴이 드러났다.
‘스스스스 솨사사사삭’
북리준이 공야휘의 벌어진 가슴 위 한 치위에 뻗은 오른장에서 찬란한 금빛 섬광이 터져 나오고 잠시 후 쩍 벌어진 공야휘의 가슴이 서서히 다물어 아물어져갔다.
“무슨 일이....”
북리어사와 공야휘가 누워 있던 전각에서 터져 나온 금빛 섬광에 어의들이 기겁을 하며 문을 열어 젖혔다.
“저, 저...... 괜찮으신지요?”
북리준이 공야휘의 침상 옆에서 서서 미소를 짓고 말끔한 자신의 가슴을 신기한 듯 만지고 누르고 있는 공야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게 무슨....”
뒤늦게 들어선 황궁수석어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북리준과 공야휘에게 다가갔다.
“저는 황궁수석어의 이옵니다. 북리어사, 손목을 한번 잠시 내어 주시지요.”
북리준이 웃음을 지으며 손목을 내밀자 수석어의가 떨리는 손을 잡아 진맥을 했다.
“공야소협도....”
“잡아 보셔야 맥이 안 잡힐 것입니다. 그나 저나 유공공과 금대인을 뵈었으면 합니다.”
북리준의 말에 황궁수석어의가 그제서야 생각 났다는 듯 급히 입을 열었다.
“열흘 전에 마교와의 최후 결전을 위해 십만대산으로 두 분 다 떠나셨습니다.”
“열흘 전에.... 아뿔싸!”
북리준이 급히 옆에 곱게 개어 놓은 무복과 일월신검을 챙겨들고 공야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휘아야, 지금부터 전력으로 달려야 한다.”
“응, 나 잘 달려!”
“어의께서는 황상과 황태자 전하께 저와 휘아가 전장으로 출발했다고 전해 주시오.”
황궁수석어의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북리어사가 깨어나면 지체 하지 말고 기별을 하라는 어명이 계셨소이다. 황상과 황태자 전하를 뵙고 가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황상과 황태자 전하께는 다녀 와서 죄를 청하겠다 고해 주시오.”
북리준과 공야휘가 흰색과 흑색의 무복을 입고 밖으로 나서는 것을 어의들이 급히 잡으려 했다.
“간다!”
“응.”
북리준이 공야휘의 손을 잡고 땅을 박차고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오장 정도를 치솟아 오르더니 ‘패애액’ 육지비행의 신법으로 두 줄기 흰선과 흑선을 남기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저, 저, 저..... 날아갔어.....”
북리준과 공야휘가 날아간 저 편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어의들을 보며 수석어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상을 알현하러 간다. 정신들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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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둥 둥 둥’
십만대산 아래 넓디 너른 평야 저 편에서 거대한 전고 소리와 함께 일만문의 화포가 위용을 드러내었다.
그 뒤를 오십만 대군과 일만 오천의 정사연합맹의 무림고수들이 침중한 표정으로 따르고 있었다.
“화포 정위치!”
일만문의 화포가 마교의 소굴인 십만대산의 출입구를 향해 정조준 하였다.
“준이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것을....”
도교교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제갈청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마교 놈들을 깨뜨리고 우리 둘이 가서 준이의 멱살을 잡아 잠을 깨우자구요.”
“그래, 그러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뒤에서 듣고 있던 도문주와 독고우, 막대광도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며 전의를 다졌다.
“나와 사황련주, 그리고 여섯분의 절대 고수분들은 천마를 상대합니다.”
천무맹주인 남궁휘의 말에 앞에 서 있던 팔비곤마 북궁추, 현천금강 공야무, 단혼절백도 단리목, 대라광천부 과천풍, 천운뇌격창 관자룡, 선풍금사편 나백상, 패력천강궁 냉유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애병을 매만졌다.
“주군을 깊은 잠에 빠뜨린 놈을 제대로 두들겨 주자구.”
과천풍이 자신의 선풍쌍부를 양손에 나눠지고는 콧바람을 내뿜었다.
“말하면 잔소리지. 내 적혼시로 놈의 심장을 꿰뚫어 주겠어.”
“그 전에 내 도의 허락을 받고....”
“시끄럽고 놈의 목은 내 금사편이 부러뜨릴거야.”
냉유성과 단리목, 냉유성의 호언장담에 관자룡이 고개를 내저었다.
“호기를 부리는 것은 좋은데..... 우리가 다 덤벼도 못 당하는 주군을 이긴 상대야.”
“관자룡의 말이 맞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공야무가 가슴 한 켠에서 불타오르는 전의를 애써 내리 누르며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저, 저게 뭐야?”
일만문의 화포를 방포 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포수들의 눈에 저 앞 십만대산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이한 ‘무엇들’을 보며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 164. 전쟁 개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