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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4화 (4/293)

4화. 동행 ― 저희가 필요할 겁니다 (1)

"대장, 들어가도 됩니까?"

객잔 한편에 위치한 방 입구에 선 사내가 소리쳤다. 나이는 얼추 마흔 중반 정도, 인상은 전체적으로 서글서글하고 눈매도 웃는 상이다.

나이가 있음에도 제법 훤칠한 외모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눈에 뛰지 않는 특이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깔끔하게 위로 묶은 머리와 점잖아 보이는 옷차림, 그렇지만 얼굴 한편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러움도 보인다.

한천(寒泉), 적화신루 소속의 인물로 백아린의 최측근이자 부총관의 직책을 지닌 사내였다.

한천의 물음에 방 안에 있던 백아린이 답했다.

"들어와."

대답이 떨어지자 한천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하얀 백의를 차려 입은 백아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한천이 언제나처럼 장난스러운 행동을 취했다.

손으로 눈을 가리며 그가 탄성을 내질렀다.

"크으, 우리 대장님은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그 실없는 소리는 대체 언제 그만할 거야?"

자연스러운 하대.

한천이 나이는 훨씬 많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이랬다. 표면적으로는 총관과 부총관의 관계. 허나 그것이 이 둘 사이의 전부는 아니었다.

백아린이 침상에 걸터앉는 걸 본 한천이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뭐가?"

"아뇨, 당장 채비를 하시고 나가셔야지 왜 쉴 것처럼 그러고 계시냐고요."

"나가자고? 오늘 천룡성의 사람하고 약속 있는 거 잊은 건 아닐 테고."

되묻는 백아린을 보며 한천이 그럴 리 있냐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그 약속 때문에 나가자는 거 아닙니까, 대장."

"어제 말했잖아. 점심 이후에 보기로……."

"어휴. 그런 거 꼬박꼬박 다 지키면 인간미 없다는 소리 듣습니다. 혼자 있었다면서요. 이럴 때 저희가 딱 찾아가서 식사도 같이하고, 술도 한잔 쫙 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다지고 그러면 오죽 좋습니까."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싱글벙글 웃어 대는 한천을 바라보던 백아린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인간미는 무슨. 어제부터 그 사람 얼굴이 궁금하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 놓고. 그 속셈 모를 줄 알아?"

"하하하. 이런, 벌써 들킨 겁니까?"

"너무 대놓고 수작질이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수작질이라니요. 전설의 문파인 천룡성의 인물이니 궁금한 건 당연하죠. 거기에 나이도 대장하고 비슷한 거 같고, 어제 미남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슬쩍 넘긴 걸 보아하니 얼굴도 제법 반반할 거 같은데 아닙니까? 정말 그러면 능력 되고 얼굴 되고…… 캬아! 천상 우리 대장님 배필감인데 궁금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자신의 양손을 짝 소리 나게 치며 탄성을 내지르는 한천의 눈동자가 재미있다는 듯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손에 닿는 베개를 집어 던질 듯이 쥐어 채던 백아린의 귓가로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그리고…… 그와의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백아린은 알고 있었다.

그 길었던 말들 대신 마지막에 뱉은 그 한 마디가 한천이 하고자 했던 진짜 속내라는 것을.

그렇지만…….

퍽!

백아린은 쥐었던 베개를 한천에게 휙 집어 던졌다.

그리고 베개에 얼굴을 맞은 그가 아프다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아고! 대장, 이건 나무로 만들어진 목침(木枕)이라고요."

"돌로 된 게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무인인 한천에게는 간지러울 정도의 타격이었지만 평상시처럼 그는 코를 쥔 채로 엄살을 부려 댔다.

그런 그를 힐끔 쳐다본 백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옆에 놓여 있는 대검의 손잡이를 쥐고는 손을 가볍게 뒤로 움직였다. 사람보다 큰 대검을 등 뒤에 매단 그녀가 문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가자."

말을 마치고 곧장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백아린의 등 뒤에 서 있던 한천이 씨익 웃고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같이 갑시다, 대장!"

* * *

천무진은 명도객잔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몸 안에 있는 기운들이 쉼 없이 꿈틀거린다.

어지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조차 평생을 달려도 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미 올라 있는 천무진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천룡성이라는 전설적인 문파의 힘이 합쳐진 덕분에 나올 수 있는 결과.

허나 천무진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시 살아나기 전의 삶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또 훨씬 더 높은 경지를 지녔었기 때문이다.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삶, 그것에 비한다면 지금 자신의 무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과거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적화신루에게도 연락을 취해 정보를 모으고 있는 그다. 그건 자신이 당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존재를 알고 그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허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

바로 스스로의 능력이었다.

제 아무리 적화신루를 통해 적의 정체를 파악해 내고 방비한다 해도 결국 능력이 모자란다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그날까지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그때 그 수준에 최대한 근접해야만 했다.

과거 천하제일인의 경지까지 올랐을 때만큼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그나마 위안이 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바로 경험과, 천룡성의 무공이다.

지금의 몸으로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천무진은 과거로 돌아오기 전 천하제일인의 경지에 올랐던 경험이 있다.

무공이란 그저 내공이 많고 적음으로 강함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초식에 대한 이해와, 무공의 상리에 대한 깨달음.

내공의 적절한 분배와 상황마다 필요한 경험에 따른 판단력까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모든 것들이 한 명의 무인으로 완성되는 데에 무척이나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천무진은 이미 경험해 보았다.

한번 걸어 봤던 길, 그 길을 알고 있으니 예전의 삶보다 훨씬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거기에 전생과는 달리 자신의 발전에 가속을 붙여 줄 천룡성의 무공까지.

전생에서 천무진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녀가 가져다주었던 마공들을 익히며 심신이 붕괴되었었다.

몸과 얼굴은 녹아내렸었고, 그로 인해 계속해서 찾아드는 고통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당시엔 그녀가 준 마공들을 통해 강해졌고, 천하제일인의 길을 향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천룡성의 무공들.

이번엔 그것들이 천무진을 도울 테니까.

과거 천무진은 천룡성의 무공을 완벽히 익히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우는 와중에 그녀를 만나게 됐고, 미완의 상태에서 조종당하게 된 것이다.

그때 사부와 떨어지게 되면서 천룡성 무공의 뒷부분은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지금 운행을 떠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사부의 연락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당시 배우지 못한 천룡성의 무공을 조금 더 빠르게 익히기 위함이기도 했다.

운기조식을 마친 천무진이 눈을 떴다.

그가 옆에 놓여 있는 검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천룡성 내부에 있는 검들 중 가장 손에 익은 녀석, 분명 예전엔 꽤나 좋아했던 검으로 기억하지만…….

천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번 생에서는 단 한 번도 쥐어 본 적 없는 한 자루의 검이 떠오른 탓이다.

중원 최고 무기인 칠신기의 하나 천인혼이.

그녀가 천무진을 이용하기 위해 주었던 것이지만, 천인혼만큼은 육체를 조종당하던 그 시기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천무진이 허전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건 다 끔찍하게도 싫었는데 말이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던 천무진은 이내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가부좌를 튼 채로 심법을 운용한 것뿐이지만 천무진의 몸은 땀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격렬하게 내공을 운용하며 혈도들을 넓히기 위해 계속해서 고통을 참아 낸 탓이었다.

전생과는 달리 아직 제대로 길이 다듬어지지 않은 혈도들이 제법 있었고, 그것부터 뚫어 내는 것이 천무진의 일차 목표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끝나면 천무진의 내공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는 우선 엉망이 된 행색을 정리하기 위해 씻으러 움직였다.

준비된 욕탕에서 빠르게 씻는 걸 끝마친 천무진은 곧 옷을 갈아입고는 객잔의 일 층으로 움직였다.

점심시간이기 때문인지 일 층은 벌써부터 분주했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천무진을 발견한 어린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점소이가 헤실헤실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대협, 어제는 잘 주무셨는지요?"

"골라 준 방이 꽤 괜찮더군. 덕분에 잘 잤다."

칭찬에 기분 좋은 듯 어린 점소이가 웃음을 이어 가다 물었다.

"근데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냥 간단하게 식사 좀 하려고."

"아휴, 그 정도는 말씀만 하시면 가져다 드릴 텐데요. 지금이라도 위에 계시면 제가……."

"아니, 괜찮아. 여기서 먹지."

말을 마친 천무진은 사람들이 꽤나 많은 객잔 내부를 바라봤다.

전생까지 쳐서 제법 오랜 시간 천무진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많은 이들 사이에 섞여 시간을 보낸 기억이 이제는 가물가물할 정도다.

어제야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오늘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었던 것이다.

천무진이 이내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그쪽에 가서 걸터앉았다.

어린 점소이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식사는 뭐로 준비해 드릴까요?"

"야채 볶음에 소면 정도면 좋겠군."

"넵, 그럼 서둘러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말과 함께 어린 점소이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천무진은 앉아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그의 귓가로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밀려들어 왔다.

그들에게선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요동쳤다.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소 짜증나 있는 이도 있다.

싸우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는 반면 부드럽게 뭔가를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시장 바닥을 연상케 하는 수많은 이들의 소란스러움에 우습게도 천무진은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조종을 당하며 살았던 그로선 너무도 그리운 감정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때 시켰던 음식들이 날아들었다.

다가오는 소리에 눈을 뜬 천무진의 앞으로 어린 점소이가 가져다준 음식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른 음식들 중에는 천무진이 시키지 않은 만두 한 접시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천무진이 시선을 돌린 채로 말했다.

"이건 내가 안 시켰는데?"

"쉿쉿. 에이, 아시지 않습니까."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소년이 슬쩍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 속삭임의 의미를 알았는지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어제 쥐여 준 은자의 효력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천무진이 만두 하나를 든 채로 피식 웃어 보였다.

"잘 먹으마."

"시키실 것 있으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말과 함께 어린 점소이는 다른 주문을 받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천무진이 손에 쥔 만두를 입에 넣은 채로 우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바로 그때였다.

덜컹.

객잔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갑작스레 내부에 흐르는 묘한 침묵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일부분에서 작아진 목소리를 느낀 천무진이 자연스레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잦아든 소란의 일부.

당연히 막 이 객잔에 들어선 누군가 때문일 거라 예상한 것이다.

천무진의 시선이 향한 입구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만두를 우물거리며 씹고 있던 천무진이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계단 쪽으로 향하던 상대방도 마침 천무진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에게로 다가왔다.

상대는 다름 아닌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던 백아린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에는 방금 전 함께 움직였던 부총관 한천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성큼 맞은편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라? 위에서 식사를 안 하고 여기 계셨네요?"

비싼 방에 머물기도 했고, 비밀 문파인 천룡성의 인물이니 당연히 은밀하게 있기를 바랄 거라고 여긴 그녀였기에 다소 의외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려온 김에 그냥 먹고 가려고."

굳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기에 천무진은 대충 대꾸했다. 그리고는 이내 맞은편에 서 있는 백아린을 향해 말을 이었다.

"뭐해? 계속 서 있을 거야?"

천무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그녀는 맞은편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등장만으로 객잔 내부를 조용하게 만들 정도의 미녀다.

당연히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걸 천무진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만두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로 한 시간에 비해 너무 이르지 않아?"

순간적으로 심법에 빠져 있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간 건가 했지만, 바깥에 뜬 해를 보아하니 아직 만나기엔 한 시진 가까이 이른 게 분명했다.

천무진의 질문에 백아린이 딴청을 부리며 주방 쪽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여기 주문 안 받아요?"

마찬가지로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어린 점소이가 그녀의 부름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달려왔다.

"무엇을 드릴까요?"

점소이의 말에 백아린이 뒤쪽에 있는 한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도 간단하게 소면이나 먹을 생각인데 어떻게 할래?"

백아린의 질문에 아직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던 한천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술 마셔도 됩니까?"

"안 돼."

단칼에 잘라 버리는 그녀의 대답에 그는 금방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로 점소이에게 말했다.

"소면 두 그릇만 가져다주렴."

"예,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사라지고 한천의 시선이 천무진에게로 향했다. 당연히 천무진 또한 초면의 인물인 그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넉살 가득한 웃음과 함께 한천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하, 이런 유명인을 다 뵙다니 영광입니다. 한천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백아린 총관님을 모시는 부총관이지요."

소개와 함께 포권을 취해 보이는 한천을 천무진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짧은 순간, 그렇지만 천무진은 한천에게서 이상한 뭔가를 포착했다.

그건 바로 그의 오른손이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지만 포권을 취하는 오른손의 주먹이 다 쥐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미묘하지만 반응이 느리게 따라오는 듯한 느낌까지.

천무진의 시선이 자신의 오른손에 머물러 있다는 걸 눈치챈 한천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어? 혹시 지금 제 오른손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신 겁니까?"

"뭐 조금. 그보다 그쪽도 앉아. 가뜩이나 다들 이쪽을 힐끔거리는데 일어나서 떠들어 대기까지 하니 정신이 사나워서 말이야."

곧바로 백아린의 옆에 자리한 한천이 자신의 오른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하하하! 예전에 엄청난 고수들과 백대일로 싸우다가 크게 다쳤는데 그게 아직도 안 낫지 뭡니까? 하도 오래전 일이라 이젠 전혀 아프지도 않고 보시는 것처럼 평상시에는 별 문제 없습니다."

허풍 가득해 보이는 어투로 그가 말했고, 워낙 큰 목소리였던 탓에 주변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허나 그런 모르는 이들의 실소에도 한천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천이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크으, 우리 대장이 별말 안 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정말 대단한 미남이십니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혼인은 하셨는지……."

순간 옆에 있던 백아린이 발로 그의 발등을 콱 밟아 버렸다.

화들짝 놀란 듯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렸던 한천이 이내 자신을 향한 천무진의 시선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둘러댔다.

"하하, 놀라셨죠? 쥐가 나서 말입니다."

"우리 부총관이 쓸데없는 소리가 좀 많아요. 그래도 일하는 실력은 괜찮으니 믿어도 될 거예요."

말을 하며 슬쩍 노려보는 백아린의 시선에 한천은 괜히 다른 쪽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때마침 소면이 나왔고, 자연스레 백아린은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어제 부탁하신 걸 알아오는 데 얼추 칠 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렇게나 길어?"

"원하시는 게 겉핥기식의 것들이 아니니까요."

맘에 안 든다는 듯 말하는 천무진을 향해 곧바로 백아린이 답했다.

간단한 정보의 규합이라면 이틀 이내면 충분하다.

허나 천무진은 그 양휴라는 자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자 했다.

적화신루 내부에 있는 그에 대한 정보에 추가적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알아내야 하는 상황.

거기다가 그 정보들이 규합되어 자신의 손에까지 들어오는 걸 감안하자면 칠 일도 무척이나 신경을 써 준 덕분에 가능한 시간이다.

천무진이 물었다.

"조금 더 빨리는 안 돼?"

"네, 이것도 말도 안 되게 많은 이들을 움직인 거라 서요."

"치잇, 곤란한데."

천무진은 답답하다는 듯 앞에 놓인 찻물을 들이켰다. 앞의 소면을 한 젓가락 떠서 삼킨 그녀가 물었다.

"왜요? 무슨 급하신 일이라도 있어요?"

"운남에 갈 일이 있어서."

운남이라는 말에 백아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운남성은 지금 자신들이 있는 사천성의 바로 옆이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다.

사실 운남에 가야 한다는 천무진의 말에 백아린은 상당히 곤란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천무진과의 관계를 최대한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그가 운남으로 떠나고 이번 의뢰를 끝으로 천룡성과의 연락이 끊긴다면 백아린으로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적화신루는 정보로 살아가는 단체.

그랬기에 지금 나타난 천룡성과의 연을 이어 가고 싶었다.

그들이 등장했다는 건 곧 중원에 큰 사건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리고, 정보 단체에게 있어 그런 큼직한 일들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그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적인 상황이었다.

백아린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하, 이대로 보내면 안 되는데.’

그녀가 슬쩍 한천에게 전음을 날렸다.

『뭔가 잡아 둘 수 없겠어?』

『자기 발로 가겠다는 걸 뭔 수로 막습니까.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 수도 없고.』

『그럼 이대로 보내자고?』

『아뇨, 그럼 안 되죠. 천룡성과 연이 닿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데.』

『천재일우의 기회인 걸 알면 부총관도 뭔가 생각을 좀 해 보든지!』

『에이, 생각은 대장이 해야죠. 몸을 움직이는 게 부하인 제 몫 아니겠습니까? 하하.』

『매일 나이 핑계 대면서 뒷전으로 빠지는 통에 대장인 내가 발바닥에 불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누구더라?』

백아린의 전음에 할 말이 없었는지 한천은 갑자기 딴청을 부렸고, 그녀는 속으로만 이를 갈아야 했다.

허나 지금은 한천과 이런 종류의 전음으로 시간을 낭비할 상황이 아니었다.

연을 이어 가기 위해선 뭐라도 더 알아야 된다 생각했는지 백아린이 다급히 물었다.

"갑자기 거긴 왜요?"

그녀의 질문에 천무진이 답했다.

"그쪽 말고 또 한 명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애초에 천무진이 천룡성의 거점에서 나온 건 적화신루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 또한 이번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를 굴리던 백아린이 제안했다.

"굳이 직접 가실 필요 있나요. 원하시면 저희 쪽에서 연락을 취해 받아야 할 게 있으면 이쪽으로 가져오게 하고, 혹 전해야 하실 말이 있으신 거면 전하도록 하죠."

"됐어. 내가 직접 만나지 않으면 절대 이야기가 될 상대가 아니라서."

천무진이 만나고자 하는 상대와는 사실 이번 생에선 전혀 인연이 없다. 그를 알게 된 것 또한 이번이 아닌 죽기 전의 삶에서였다.

정신을 지배당해 조종당하는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기억나는 한 사람.

그리고 바로 그가 이용만 당했던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 끝에 선택한 천무진의 마지막 패이기도 했다.

지금의 그는 알지 못하지만, 환생하기 전의 삶에서 보아 왔던 모습을 알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그와의 만남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천무진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가 만나려는 그놈…… 무지하게 지랄 맞거든."

지랄 맞은 성격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실력까지.

허나 천무진 또한 그 두 가지 모두에서 져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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